ㅇ 며칠전 경주 '동남산 가는 길' 코스를 사전 조사하면서 경주시 홈페이지를 찾게 되었고, 여기에서 걷기코스중에 '소금강산 트레킹'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별 준비없이 기본코스만 폰으로 캡쳐하고 경주로 출발, 트래킹에 나섰다.
ㅇ 경주시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코스 설명을 인용해본다
‘산=등반=체력적 부담‘이라는 공식 탓에 경주의 산을 경험할 엄두를 못 낸다면, 소금강산이 답이다. 등산이라기보다는 산책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쉬운 코스이다. 코스는 쉽지만 귀한 문화유산과 빼어난 경치를 얻을 수 있으니 금상첨화. 탈해왕릉, 굴불사지사면석불이 있는 소금강산 기슭을 훑고 정상까지 오른 뒤 내려와 소금강산과 가까운 곳에 있는 고분과 공원을 둘러보는 코스이다. 3-4시간이면 충분하게 다녀올 수 있다.
ㅇ 그야말로 체력적으로 부담없는 운동 겸 산책코스로 적당하다. 다만 소금강산에 올랐다가 같은 길로 되돌아 내려 오거나 황성공원으로 가기 전 용강동 고분을 왕복하는 과정은 자칫 지루함을 느낄 수 있고, 초행인 사람에게는 코스를 안내하는 이정목이 없기 때문에 나처럼 사전조사 없이 탐방에 나서면 부분적으로 네비의 도움을 받거나 주변인에게 물어서 돌아야 한다.
ㅇ 사색과 걷기에 좋은 계절이 왔다. 맑은 가을 하늘아래 사방에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고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은 마음과 몸을 살찌운다.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과 대화하며 나를 위한 쉼과 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음은 내가 스스로 찾아가는 행복의 길이다.
■ 탐방일 : 2020. 10. 16(금), 흐림
■ 탐방코스 : 소금강산 트래킹(탈해왕릉 ~ 황성공원)
탈해왕릉 - 굴불사지석불상 - 백률사 - 소금강산 정상 - 동천동마애삼존불좌상 - 동천동 사방불 탑신석 - 용강동 고분 - 황성공원
■ 탐방거리 : 6.9km * 트랭글 기록
(오늘 본인처럼 탈해왕릉에서 황성공원까지 갔다가 출발점으로 걸어서 되돌아와도 돌아오는 길은 2.5km정도 밖에 안되기 때문에 전체 10km가 안된다)
■ 탐방시간 : 2시간 42분
출처 : 경주문화관광/경주여행/여행코스추천/자박자박 경주걷기/소금강산 트레킹
http://www.gyeongju.go.kr/tour/page.do?mnu_uid=2542&
경주국립공원 8개 지구 중 하나인 소금강산은 금강산에 견줄 만큼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산이다. 경주 시가지에 자리한 야트막한(해발고도177m) 산으로, 신라 사람들은 소금강산을 오악 중 하나인 ’북악(北岳)‘으로 부르며 신성하게 여겼다. 삼국유사에는 금강산이라는 이름이었는데, 근대에 들어 소금강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불교 공인을 위해 순교한 이차돈 관련 유적이 있어 불교 성지로 알려져 있다. 굴불사지사면석불, 백률사, 동천동마애삼존불좌상 등 귀한 문화유산이 산자락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소금강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경주 시가지 전경도 볼거리 중 하나. 높지 않은 산이라 부담 없이 갈 수 있다는 점 역시 매력적이다. 소금강산으로 반나절 트레킹을 나서 보자. (경주시 홈페이지 인용)
경주 탈해왕릉
사적 제174호
위치 : 경주시 동천동 산17
이곳은 신라 제4대 탈해왕(57~80재위)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왕은 석씨로 이름은 '탈해'이고 왕호는 '이사금'이다. 탈해왕은 62세때 유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13년간 재위하였다. '삼국사기'에는 왕이 다파나국의 왕과 왕비 사이에서 알로 태어나 불길하다 하여 보물과 함께 궤짝에 넣어 바다에 버려졌다가 신라로 떠내려와 성장했다는 설화가 실려 있다. 탈해왕이 세상을 뜨자 성의 북쪽인 양정 언덕에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능은 경주 금강산 남쪽 자락에 있다. 봉분을 장식한 석물은 확인되지 않는다. 1974년에 내부 구조가 굴식돌방무덤인 것을 확인하였다. 능의 주변에는 신라 화백회의의 근원이 되는 장소인 표암과 이를 기리기 위하여 1925년에 건립한 표암재가 있다. 또한 탈해왕의 제향을 드리기 위하여 1980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 온 숭신전도 있다.
표암 유허비
'박바위'(표암)는 경주이씨 시조 알평공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곳이다. 순조 4년(1804)에 후손 좌의정 경일이 현인을 공경하고 조상을 추모할 곳이라는 내용으로 비문을 짓고 형조판서 집두가 쓰고 장령 진택이 감독하여 이 비를 건립하였다. 원래 표암 앞을 흐르던 동천가에 있었으나 홍수의 피해를 입어 1879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광림대의 석혈
이 석혈은 알천양산촌의 시조 알평공이 하늘에서 내려와 처음으로 목욕한 곳이라고 전해온다. 이곳은 경주이씨 혈맥의 근원지인 동시에 신라건국의 산실로서 "광명이세"의 이념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큰 뜻을 밝히고 신라의 화백회의가 시작된 유서깊은 곳이다.
이곳 표암 일대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54호로 지정되어 있다.
표암이란 '박바위' 또는 '밝은바위'를 뜻하는데, 신라 6촌 가운데 알천 양산촌의 시조 이알평이 이 바위에 내려와 세상을 밝게 하였다 하여 표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기원전 69년 6촌장이 여기에 모여 화백회의를 열고 신라 건국을 의결하였으며, 그 후 기원전 57년 신라가 건국되었다. 이와 같이 표암은 신라 건국의 산실이고 화백이라는 민주 정치제도의 발상지인 성스러운 곳이다.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보물 제 121호 통일신라시대 8세기 위치 : 경주시 산업로 4214-76
이 불상은 경주의 북쪽 산인 소금강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ㅇ으며, 높이 약 3m의 커다란 바위에 여러 보살상을 조각한 사방불 형태이다.
불상은 서쪽면에는 아미타삼존불, 동쪽면에는 약사여래좌상, 남쪽면에는 삼존입상, 북쪽면에는 보살상 두분이 새겨져 있는데 특히 북쪽면의 보살상 중 한 분은 얼굴이 열하나에 팔이 여섯 달린 관세음보살입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시대 경덕왕이 백률사를 찾았을때 땅속에서 염불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땅을 파 보니 이 바위가 나와서 바위의 사방에 불상을 새기고 절을 지어 굴불사라 불렀다고 한다.
1985년의 발굴조사에서 고려시대의 건물터가 확인되었다. 출토유물 가운데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금고에는 굴석사라는 명문이 있다.
백률사 대웅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406-1
백률사는 '삼국유사' 등의 기록에 나오는 자추사일 것이라 한다. 자추사가 맞다면 신라 법흥왕 14년(527)에 불교를 나라의 종교로 삼도록 순교한 이차돈을 기리기 위한 절이다.
이 건물은 임진왜란때 불타고 그 후 다시 지어졌다. 단층의 목조 기와집으로 옆에서 보면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집으로 좌우 협칸에 쌍여닫이문을 두었다. 기단부는 일부 신라시대 양식을 지니고 있다.
대웅전에 모셨던 금동약사여래입상은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금동비로자나불좌상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세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의 3대 금동불로 알려져 있다.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은 지금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고구려는 일찍이 불교를 받아들였지만 신라는 고구려가 불교를 공인한지 150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빗장을 열지 않았다. 몰래 불교를 섬겼던 이차돈은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이차돈의 목이 베였을 때 흰 젖이 솟구쳐 올랐고, 주위가 어두워지며 비가 꽃처럼 내렸다. 그의 머리는 날아가 경주 금강산 정상부에 떨어졌다.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을 본 법흥왕은 불교를 공인하고 이차돈의 머리가 떨어진 자리에 ‘자추사’라는 이름의 절을 세워 그의 명복을 빌었다. 후에 백률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 경주 동천동 마애삼존불좌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4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용강동 산 67
이 불상은 경주의 북쪽 소금강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조금 내려간 곳에 위치한다. 부처님 세 분을 얕은 돋을새김하였으나, 지금은 바위면이 떨어지고 이끼가 심하여 정확한 모습을 알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다.
가운데 여래상은 민머리이며 머리둘레에는 두광을 2중으로 하였고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을 큼직하게 조각하였으며, 내부에 선을 돌렸고 얼굴은 넓적하게 조각하였다. 옷은 양 어깨에 걸친것으로 보이며 왼손은 무릎에 올리고 오른손은 들어올린 것 같다.
오른쪽 보살상은 길쭉한 얼굴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둘레에 두광을 2중으로 하였다. 정면을 향하지 않고 본존을 향하고 앉은 모습이 특이하다.
왼쪽 보살상은 얼굴과 몸체 부분의 바위가 떨어져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머리 둘레에는 2중으로 두광을 돌렸고, 다행히 머리에 쓴 관에 불상이 새겨져 있어 관음보살임을 알게 한다. 따라서 이 불상들 중에 가운데 부처는 아미타불이며, 오른쪽은 대세지보살이라고 판단된다. 옷의 표현 등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경주 동천동 사방불 탑신석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5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770-3
이 석조물은 탑에 사용된 몸돌로 여겨진다. 네 면에 조금 파들어간 듯이 조각된 불상은 좌상으로 각각 다른 손 모양을 하고 있지만 두광과 신광을 모두 갖추고 있다.
네 면에 불상을 조각한 것은 동서남북 네 방향에 있는 부처를 상징하는데 이곳의 불상은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사방불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네 면의 아랫쪽에 앞으로 튀어나온 받침에 8개의 3겹 연꽃이 조각되어 있다. 불상 윗쪽에도 앞으로 튀어나온 부분이 있어서 얼핏보면 지붕처럼 보이는데, 윗면에 8개의 3겹 연꽃이 조각되어 있다. 탑신석 윗면에는 위에 놓일 탑신 받침을 조각하였다.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이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모습이다.
1982년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탑신석의 위치가 조금 옮겨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현재 옆에 있는 4개의 돌로 짜맞춘 기단부와 서남 모서리에만 남은 탑구 석재는 당시에 출토된 것들이다. 1999년에 주변을 작은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경주 용강동 고분
사적 제328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용강동 1130-1
이 고분은 '개무덤' '고려장'으로 불리던 폐고분으로 파괴가 심하여 1986년 경주고적발굴단이 발굴조사하였다.
석실(돌방)의 구조는 남벽의 중앙에 연도가 연결된 정방형의 단실분으로, 네 벽 모두 장방형의 깬돌로 정연하게 쌓고 시상 높이에서 부터 차츰 들여쌓아 천장을 둥근 활모양으로 만들었다.
시상은 서벽과 북벽에 붙여 동서로 길게 놓여 있는데, 벽쪽을 제외한 가장자리에 편평한 깬돌을 쌓고 그 내부를 깬돌과 냇돌로 채운 다음 점토를 두텁게 바르고 회칠을 해서 마무리 했다.
석실 내에서 사람의 치아와 함께 토용, 흙으로 만든 말, 청동제 십이지신상, 토기, 구슬, 돌베개 등이 출토되었다. 토용은 높이 12~22cm의 전신상이며 흙으로 빚어 만든 뒤 백토를 입히고 그 위에 붉은 색으로 채색한 것이다. 신라지역에서 출토된 다른 토용에 비해 매우 사실적이다.
1986년 경주고적발굴조사단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했는데 통일신라시대 때 유행한 굴식돌방무덤의 형태로 밝혀졌다. 목곽 안에 피장자를 모시고 그 위에 돌을 쌓아 봉토를 덮는 신라시대의 대표적 고분유형인 돌무지덧널무덤은 도굴이 어려운 데 반해, 용강동고분과 같은 굴식돌방무덤은 무덤 내부의 돌방 안으로 사람이 드나들기 쉬워 도굴꾼들의 주요 표적이 되었지만 다행이 유의미한 유물들이 제법 나왔다고 한다.
경주시 황성동 산 1-1번지에 자리한 황성공원은 옛날 경주(동경)의 중심에 위치한 고양수라 불리던 곳이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동경의 불길한 기운을 누르기 위해 숲을 조성하였고, 동경의 영원한 영화를 누리기 위한 유서깊은 공원이다.
1975. 2. 17에 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895,373제곱미터의 부지에 소나무 등 58종 11,773본의 수목이 생육하고 있다.
주요시설로는 경주예술의전당을 비롯한 문화시설과 시민운동장, 실내체육관, 축구공원 등의 체육시설, 충혼탑, 김유신장군동상, 최시형선생동상, 6.25참전용사 무공선양비 등의 시설도 들어서 있다.
▲ 이경록 시비, 목양오세재선생문학비, 박목월선생 노래비 앞을 차례로 지난다.
▲ 북녘을 향해 호령하듯 우뚝 서있는 김유신 기마상은 원래 동쪽을 향하고 있었는데, 1975년 4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이 포항종합제철을 방문하시는 길에 이 동상을 지나면서 "민족의 통일을 생각하고, 광활한 대륙을 호령했던 웅혼한 기상을 되살리는 뜻으로 동상을 다시 만들어 북쪽을 향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1976년 7월 15일에 기공하여 1977년 9월 1일에 준공하였다고 한다.
동상좌대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 명각(銘刻) 휘호(揮毫)하신 이 우람한 기마상은 1975년 4월 17일 동상을 다시 만들어 방향도 바꾸어 세우라는 분부를 받들어 신라 삼국통일의 주역이신 김유신장군의 위훈을 오늘에 되새기며, 온 겨래의 호국정신을 일깨우고 조국의 평화통일 과업을 이룩해 나가는 벅찬 앞길에 찬연한 횃불을 밝혀 길이 후세에 전하고자 여기 화랑의 정기 넘치는 서라벌 옛 터전에 자리 잡아 멀리 북녘을 향해 우뚝 세우다.
황성공원에서 출발점인 탈해왕릉까지 승용차 회수를 위해 걸어가기로 한다. 네이버 길찾기로 확인하니 불과 2.0km 안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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