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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영의 보금자리

▣ 나의사랑/내고향 예천5

고향은 늘 넉넉하다. 2021. 10. 2(토) 맑음, 청명한 전형적인 가을 날씨 평소에도 자주 가지못한 고향이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 모두 돌아가시니 발걸음은 더욱 멀어젔다. 그나마 고향을 지키는 손아래 처남이 있어서 오랫만에 고향을 찾았다. 지금은 헐어버리고 없는 옛 집터와 텃밭에 심어놓은 고구마를 캤다. 시집 간 큰 딸이 중학교때 와서 그렇게 재미었어 했으니 벌써 20여년전의 일이다. 마음은 한창인데 지나간 시간은 너무나 빠르다. 가끔씩 고향에 가면 늘 그렇지만 이번에도 우리가 캔 고구마 전부와, 밤, 깨, 고추 등 차량 트렁크가 차고 넘칠 정도로 한 보따리 싸왔다. 그래서 고향은 언제나 푸근하고 넉넉하다고 하는 모양이다. 2021. 10. 5.
내 고향 용문 금당실 중학교 이후 고향을 떠나 대구로 오게되었고, 이후 가족들도 모두 대구에 자리를 잡으면서 자연스레 멀어진 나의 고향 60이 넘어선 어느 날 우연히 고향의 모습을 사진으로 접하게 된다. 많은 시간이 흘러 주변 환경이 바뀌고 정비되기도 하였겠지만 내가 다녔던 용문초등학교와 중학교, 금곡교회 그리고 내가 태어난 우리집과 이사해서 마지막까지 살았던 또 다른 우리 집은 아직도 사진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정감록에 기록된 십승지(十勝地)중의 하나인 금당실 마을은 어른이 된 지금에 보면 널찍한 평야 지대에 멋지게 자리잡은 명당으로 보인다. 아득한 어린시절 추억이 되살아나고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한 고향의 포근함과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2021. 2. 11.
내 고향 예천 용문 (1) 2016. 8. 7(월) 입추전일, 숨이 턱턱 막히는 무진장 더위 예천8경.hwp 내가 고향을 떠난것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부터이다. 시골에서 유학생활을 한다고 연합고사를 치루어 대구 소재 학교로 입학한것이 약 40여년전인 1977년도의 일이다. 개인적으로 고향을 일찍 떠나기.. 2016. 8. 8.
예천,고향 (2) 2008. 11. 3.
예천,고향 (1) '08.10월 어느날, 자주가지 못하지만 고향 동네모습 2008. 1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