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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영의 보금자리
▣ 트래킹# 탐방 #답사

경주 소금강산 트레킹

by 영영(Young Young) 2020. 10. 27.

ㅇ 며칠전 경주 '동남산 가는 길' 코스를 사전 조사하면서 경주시 홈페이지를 찾게 되었고, 여기에서 걷기코스중에 '소금강산 트레킹'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별 준비없이 기본코스만 폰으로 캡쳐하고 경주로 출발, 트래킹에 나섰다. 

ㅇ 경주시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코스 설명을 인용해본다
‘산=등반=체력적 부담‘이라는 공식 탓에 경주의 산을 경험할 엄두를 못 낸다면, 소금강산이 답이다. 등산이라기보다는 산책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쉬운 코스이다. 코스는 쉽지만 귀한 문화유산과 빼어난 경치를 얻을 수 있으니 금상첨화. 탈해왕릉, 굴불사지사면석불이 있는 소금강산 기슭을 훑고 정상까지 오른 뒤 내려와 소금강산과 가까운 곳에 있는 고분과 공원을 둘러보는 코스이다. 3-4시간이면 충분하게 다녀올 수 있다.

ㅇ 그야말로 체력적으로 부담없는 운동 겸 산책코스로 적당하다. 다만 소금강산에 올랐다가 같은 길로 되돌아 내려 오거나 황성공원으로 가기 전 용강동 고분을 왕복하는 과정은 자칫 지루함을 느낄 수 있고, 초행인 사람에게는 코스를 안내하는 이정목이 없기 때문에 나처럼 사전조사 없이 탐방에 나서면 부분적으로 네비의 도움을 받거나 주변인에게 물어서 돌아야 한다. 

ㅇ 사색과 걷기에 좋은 계절이 왔다. 맑은 가을 하늘아래 사방에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고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은 마음과 몸을 살찌운다.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과 대화하며 나를 위한 쉼과 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음은 내가 스스로 찾아가는 행복의 길이다. 

 

■ 탐방일 : 2020. 10. 16(금), 흐림
■ 탐방코스 : 소금강산 트래킹(탈해왕릉 ~ 황성공원)
탈해왕릉 - 굴불사지석불상 - 백률사 - 소금강산 정상 - 동천동마애삼존불좌상 - 동천동 사방불 탑신석 - 용강동 고분 - 황성공원 
■ 탐방거리 : 6.9km  * 트랭글 기록  
(오늘 본인처럼 탈해왕릉에서 황성공원까지 갔다가 출발점으로 걸어서 되돌아와도 돌아오는 길은 2.5km정도 밖에 안되기 때문에 전체 10km가 안된다)
■ 탐방시간 : 2시간 42분

 

 

▲ 오늘 다녀온 소금강산 트레킹 코스이다. 탈해왕릉에서 출발, 황성공원까지 약 7Km거리다.
▲ 구글어스로 본 코스이다.
▲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떠나는 '소금강산 트레킹' 캡쳐사진이다. 주요지점간 거리와 소요시간이 표시되어 있고 나름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있다. 초행인 사람들은 사전에 함 읽어보면 탐방에 도움이 된다.

출처 : 경주문화관광/경주여행/여행코스추천/자박자박 경주걷기/소금강산 트레킹

http://www.gyeongju.go.kr/tour/page.do?mnu_uid=2542&

 

경주문화관광

한국관광의 메카 Beautiful Gyeongju가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www.gyeongju.go.kr

경주국립공원 8개 지구 중 하나인 소금강산은 금강산에 견줄 만큼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산이다. 경주 시가지에 자리한 야트막한(해발고도177m) 산으로, 신라 사람들은 소금강산을 오악 중 하나인 ’북악(北岳)‘으로 부르며 신성하게 여겼다. 삼국유사에는 금강산이라는 이름이었는데, 근대에 들어 소금강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불교 공인을 위해 순교한 이차돈 관련 유적이 있어 불교 성지로 알려져 있다. 굴불사지사면석불, 백률사, 동천동마애삼존불좌상 등 귀한 문화유산이 산자락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소금강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경주 시가지 전경도 볼거리 중 하나. 높지 않은 산이라 부담 없이 갈 수 있다는 점 역시 매력적이다. 소금강산으로 반나절 트레킹을 나서 보자. (경주시 홈페이지 인용)

 

 

 

▲ 경주 소금강산 트래킹을 위해 승용차를 타고 오전 10시 24분경, 신라 탈해왕릉 주차장(경북 경주시 동천동 510-1)에 도착한다. 주차장은 무료이고 평일이라 조용하다.
▲ 주차장을 벗어나 도로(산업로)와 반대편 송림숲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에 '숭신전'이 있고 몇걸음 더 이동하면 경주 탈해왕릉 안내판을 만난다. 숭신전은 광무 2년(1898)에 군수 권상문이 신라 제4대 임금인 탈해왕의 제사를 모시기 위해 세웠으나 1906년부터는 신라의 3성 시조 임금(박, 석, 김)을 같이 모셨고 이때부터 ‘숭신전’이라고 불렀다.
▲ 경주 탈해왕릉 안내판에는 탈해왕릉과 표암재, 숭신전의 소개와 이들의 배치도를 그려 놓았다. 숭신전은 생략하고 왕릉과 유허비각, 광임대, 표암재 등을 차례로 돌아보기로 한다.

경주 탈해왕릉   
사적 제174호
위치 : 경주시 동천동 산17
이곳은 신라 제4대 탈해왕(57~80재위)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왕은 석씨로 이름은 '탈해'이고 왕호는 '이사금'이다. 탈해왕은 62세때 유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13년간 재위하였다. '삼국사기'에는 왕이 다파나국의 왕과 왕비 사이에서 알로 태어나 불길하다 하여 보물과 함께 궤짝에 넣어 바다에 버려졌다가 신라로 떠내려와 성장했다는 설화가 실려 있다. 탈해왕이 세상을 뜨자 성의 북쪽인 양정 언덕에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능은 경주 금강산 남쪽 자락에 있다. 봉분을 장식한 석물은 확인되지 않는다. 1974년에 내부 구조가 굴식돌방무덤인 것을 확인하였다. 능의 주변에는 신라 화백회의의 근원이 되는 장소인 표암과 이를 기리기 위하여 1925년에 건립한 표암재가 있다. 또한 탈해왕의 제향을 드리기 위하여 1980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 온 숭신전도 있다. 

 

 

▲ 안내판 앞에서 몇걸음 옮기면 신라 제4대 탈해왕릉이 있다. '탈해'란 이름은 궤를 풀고 나왔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다른 왕릉에 비해서 크기가 약간 작다는 느낌과 봉분을 둘러싼 둘레돌은 보이지 않는다.
▲ 왕릉을 반시계 방향으로 한바꾸 돌아가며 우측과 후면에서 본 모습이다. 탈해왕릉은 경주 금강산 남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데, 신라에서 석씨 성을 가진 여덟 왕 중에 무덤이 남아 있는 것은 '탈해왕릉' 뿐이다. 그런데 이 왕릉이 탈해왕릉이 맞는 지에 대한 의견은 갈리는 편이다. 경주 중심부의 평지에 있는 신라 초기왕들의 무덤과 달리 외곽지의 산 중에 있어서 외곽의 산에 주로 왕을 모셨던 통일신라시대의 왕릉이 아닐까 하는 설이 제기되었다.
▲ 왕릉을 한바꾸 돌고 왕릉 왼쪽 야트막한 산위에 자리잡은 '표암 유허비'와 '광림대'를 향하여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 잠시 계단을 올라서면 표암 유허비각을 만난다. 비각 좌전면에는 '표암 유허비' 표석이 서있고, 외삼문을 들어서면 비각안에 경주이씨 시조 유허비가 서있다.

표암 유허비
'박바위'(표암)는 경주이씨 시조 알평공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곳이다. 순조 4년(1804)에 후손 좌의정 경일이 현인을 공경하고 조상을 추모할 곳이라는 내용으로 비문을 짓고 형조판서 집두가 쓰고 장령 진택이 감독하여 이 비를 건립하였다. 원래 표암 앞을 흐르던 동천가에 있었으나 홍수의 피해를 입어 1879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 표암 유허비각의 우측 모습이다.
▲ 표암 유허비각의 우측으로 계단을 따라 오르면 20여미터 후방에 비석과 '광림대'가 자리하고 있다.

광림대의 석혈
이 석혈은 알천양산촌의 시조 알평공이 하늘에서 내려와 처음으로 목욕한 곳이라고 전해온다. 이곳은 경주이씨 혈맥의 근원지인 동시에 신라건국의 산실로서 "광명이세"의 이념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큰 뜻을 밝히고 신라의 화백회의가 시작된 유서깊은 곳이다. 
 이곳 표암 일대는 경상북도 기념물 제54호로 지정되어 있다.

 

 

▲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길에 아랫쪽에 자리한 표암재(瓢巖齋)가 한눈에 들어온다.
▲ 왕릉 앞으로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 짧은 목교를 건너서 이정목이 서있는 곳에서 우향하여 표암재로 이동한다. 왼쪽으로 가면 백률사까지는 1.5Km, 다불마을은 1.0km이다.
▲ 빛바랜 안내판과 산앙문(山仰門) 뒤로 표암재(瓢巖齋)가 자리하고 있다.

표암이란 '박바위' 또는 '밝은바위'를 뜻하는데, 신라 6촌 가운데 알천 양산촌의 시조 이알평이 이 바위에 내려와 세상을 밝게 하였다 하여 표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기원전 69년 6촌장이 여기에 모여 화백회의를 열고 신라 건국을 의결하였으며, 그 후 기원전 57년 신라가 건국되었다. 이와 같이 표암은 신라 건국의 산실이고 화백이라는 민주 정치제도의 발상지인 성스러운 곳이다. 

 

 

▲ 안내판 앞을 지나면 담장 안쪽에 붉은 기둥을 보이는 사당(祠堂)인 악강묘(嶽降廟)와 경주이씨 시조(始祖) 알평공(謁平公)의 경모비(景慕碑)를 만난다.
▲ 표암재 앞 수로 앞을 따라가면 포장도로와 접하고 우향하여 이동한다. 우측 사진은 도로에서 돌아 본 모습이다.
▲ 탈해왕릉에서 들판길을 따라 580여미터쯤 가면 ~
▲ 소금강산 굴불사 입구를 만나고 ~
▲ 몇걸음 직진하면 좌측에 백률사 네거리가 위치하고 진행방향은 백률사 방향으로 직진한다. 네거리에 서있는 이정표에 의하면 굴불사지석불상 까지는 0.1km, 백률사까지는 0.2km이다.
▲ 직진하여 네거리 방향으로 돌아 본 모습이다. 왼쪽에 굴불사 대웅전이 보인다.
▲ 굴불사에서 직진하여 60여미터쯤 가면 굴불사지 주차장을 만나고 이정목과 안내판이 서있는 주차장 오른쪽 방향으로 이동한다.
▲ 주차장을 지나 몇걸음 후방 삼거리에 이정목과 경주국립공원 안내판이 서있는데, 이정목에는 비포장 오른쪽 방향에만 다불마을 1.5km, 소금강산정상 0.7km 표시가 있고 가야 할 왼쪽 포장도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다. 오른쪽 비포장길로 올라가면 굴불사지 석불상을 볼 수 없다. 왼쪽으로 진입한다.
▲ 이정목 앞에서 왼쪽 포장길로 들어서서 주차장 방향으로 돌아 본 모습이다.
▲ 연등이 달린 바닥돌 포장길의 완만한 오르막길을 따라간다.
▲ 주차장에서 100여미터 가지않아 좌측에 안내판과 큼직한 바위 한개가 보인다. 굴불사지 석불상이다.
▲ 입구에 안내판 앞을 지나 작은 다리를 건너 바위 앞으로 간다.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보물 제 121호   통일신라시대 8세기  위치 : 경주시 산업로 4214-76
이 불상은 경주의 북쪽 산인 소금강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ㅇ으며, 높이 약 3m의 커다란 바위에 여러 보살상을 조각한 사방불 형태이다. 
 불상은 서쪽면에는 아미타삼존불, 동쪽면에는 약사여래좌상, 남쪽면에는 삼존입상, 북쪽면에는 보살상 두분이 새겨져 있는데 특히 북쪽면의 보살상 중 한 분은 얼굴이 열하나에 팔이 여섯 달린 관세음보살입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시대 경덕왕이 백률사를 찾았을때 땅속에서 염불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땅을 파 보니 이 바위가 나와서 바위의 사방에 불상을 새기고 절을 지어 굴불사라 불렀다고 한다. 
 1985년의 발굴조사에서 고려시대의 건물터가 확인되었다. 출토유물 가운데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금고에는 굴석사라는 명문이 있다. 

 

 

▲ 불상주위에는 키낮은 팬스가 설치되어 있고, '굴불사지석각불상'의 표석이 서있다. 남서 방향의 모습이다.
▲ 서쪽 방향에는 서방 극락정토를 관장하는 부처 아미타 삼존불이 새겨져 있다.
▲ 북쪽에는 보살상 두분이 새겨져 있는데 음각으로 새겨진 왼쪽 보살상은 사진상으로는 형체를 잘 알 수 없지만 얼굴이 열하나에 팔이 여섯 달린 관세음보살입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것이다.
▲ 북동면 및 동면의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는 약사여래좌상의 모습이다.
▲ 남동면 및 남면의 석가모니 삼존불 입상이다.
▲ 불상주위를 시계 방향으로 한바꾸 돌고 입구로 나와 좌향하여 포장길을 따라 올라가면 왼쪽 아래로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많은 사람들이 불상 주위를 돌면서 소원을 빌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 황토포장도를 따라 몇십미터 올라가면 돌계단 갈림길을 만나서 왼쪽 돌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 급경사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잠시뒤에 헤어진 황토길을 다시 만나고 ~ 이번에는 오른쪽 돌계단 대신에 왼쪽 황토길을 따라가 본다. 오른쪽 돌계단은 백률사 법당 방향으로 직행하는 길이고 왼쪽 황토 포장도는 백률사 요사채 방향으로 좀 더 돌아가는 길이다.
▲ 대나무가 울창한 황토 포장도로를 따라 잠시 올라가서 ~
▲ 해우소와 송죽당 앞을 지나면 ~
▲ 백률사 요사채 방향으로 이어진다. 우측 사진은 지나 온 방향으로 돌아 본 모습이다.
▲ 대웅전 법당 안을 조심스럽게 들여다 보고는 ~
▲ 들어온 곳과 반대방향 백률사 입구쪽으로 나간다. 입구에는 내용이 잘 안보이는 '금강산 백률사 사적비'와 안내판이 서있다.

백률사 대웅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406-1
백률사는 '삼국유사' 등의 기록에 나오는 자추사일 것이라 한다. 자추사가 맞다면 신라 법흥왕 14년(527)에 불교를 나라의 종교로 삼도록 순교한 이차돈을 기리기 위한 절이다. 
 이 건물은 임진왜란때 불타고 그 후 다시 지어졌다. 단층의 목조 기와집으로 옆에서 보면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집으로 좌우 협칸에 쌍여닫이문을 두었다. 기단부는 일부 신라시대 양식을 지니고 있다. 
 대웅전에 모셨던 금동약사여래입상은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금동비로자나불좌상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 세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의 3대 금동불로 알려져 있다.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은 지금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고구려는 일찍이 불교를 받아들였지만 신라는 고구려가 불교를 공인한지 150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빗장을 열지 않았다. 몰래 불교를 섬겼던 이차돈은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이차돈의 목이 베였을 때 흰 젖이 솟구쳐 올랐고, 주위가 어두워지며 비가 꽃처럼 내렸다. 그의 머리는 날아가 경주 금강산 정상부에 떨어졌다.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을 본 법흥왕은 불교를 공인하고 이차돈의 머리가 떨어진 자리에 ‘자추사’라는 이름의 절을 세워 그의 명복을 빌었다. 후에 백률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 백률사 입구를 빠져나와 몇계단 내려가면 좁은 삼거리에 자그만 이정표가 서있다. 오른쪽은 주차장에서 돌계단길을 통하여 백률사 방향으로 바로 연결된 길이고 소금강산정상은 왼쪽길로 올라간다.
▲ 왼쪽으로 턴해서 돌아 본 모습이다.
▲ 소금강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직등이 아니라 산의 사면을 빙 ~ 돌아가듯 완만하게 이어진다. 진행로 좌측에 크고 작은 바위더미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 사면길 벤치 앞을 지나 ~ 구조표시목(32-01)을 만나고 ~
▲ 성균진사 경주김공의 묘 앞을 지나고 ~ 오른쪽 비석에는 '임란창의경주김공용호지묘" 비석이 서있다.
▲ 포근한 산 사면길을 따라 ~
▲ 이정목이 서있는 갈림길에서 좌향하여 올라간다. 하단 우측 사진은 좌향하여 돌아 본 모습이다. 지금까지 온 방향은 굴불사지 0.5km, 직진하면 다불마을 0.2km, 오른쪽은 탈해왕릉 0.8km, 진행방향은 왼쪽 소금강산 정상 0.2km, 다불마을 1.0km 방향이다.
▲ 목계단과 완만한 오르막길을 따라 ~
▲ 이정목이 서있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불상을 잠시 돌아보고 되돌아와 왼쪽 소금강산 정상으로 가기로 한다. 지금까지 온 방향으로는 표시가 없고, 왼쪽은 소금강산 정상 0.1km, 다불마을 0.9km, 오른쪽은 경주 동천동 마애삼존불좌상 10m이다.
▲ 이정목 앞에서 오른쪽으로 몇걸음 옮기면 바위 앞에 표석과 안내판이 서있다.

▲ 경주 동천동 마애삼존불좌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4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용강동 산 67
이 불상은 경주의 북쪽 소금강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조금 내려간 곳에 위치한다. 부처님 세 분을 얕은 돋을새김하였으나, 지금은 바위면이 떨어지고 이끼가 심하여 정확한 모습을 알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다. 
 가운데 여래상은 민머리이며 머리둘레에는 두광을 2중으로 하였고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을 큼직하게 조각하였으며, 내부에 선을 돌렸고 얼굴은 넓적하게 조각하였다. 옷은 양 어깨에 걸친것으로 보이며 왼손은 무릎에 올리고 오른손은 들어올린 것 같다. 
 오른쪽 보살상은 길쭉한 얼굴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둘레에 두광을 2중으로 하였다. 정면을 향하지 않고 본존을 향하고 앉은 모습이 특이하다. 
 왼쪽 보살상은 얼굴과 몸체 부분의 바위가 떨어져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머리 둘레에는 2중으로 두광을 돌렸고, 다행히 머리에 쓴 관에 불상이 새겨져 있어 관음보살임을 알게 한다. 따라서 이 불상들 중에 가운데 부처는 아미타불이며, 오른쪽은 대세지보살이라고 판단된다. 옷의 표현 등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 중앙에 본존불이 있고, 양쪽에는 본존불을 좌우에서 보좌하는 협시보살이 새겨져 있는데, 중앙의 본존불 좌상의 높이가 3m에 이르는 꽤 큰 규모이다.
▲ 이정목 삼거리로 되돌아 나와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
▲ 이정표가 서있는 삼거리를 만나고 ~ 왼쪽은 운동시설, 소금강산 정상은 우향하여 진행한다. 이정표에는 지금까지 온 방향으로만 '경주 동천동 마애삼존불좌상' 표시가 되어 있다.
▲ 우향하여 완만한 오르막길을 몇십미터 따라 올라가면 ~
▲ 정상석과 돌탑, 이정목이 서있는 소금강산 정상에 닿는다. 정상석에는 소금강산 해발 177m로 기록하고 있다. 낮은 야산이지만 정상석 외에는 벤치 한개도 보이지 않는게 이상하게 느껴진다.
▲ 지금까지 온 방향은 굴불사지 0.7km, 탈해왕릉 1.0km, 직진하면 다불마을 0.8km 방향이다. 정상석 앞에는 삼각점(경주 433, 1995 재설)이 박혀있다.
▲ 소금강산 정상에서는 나무로 인해 조망이 시원하게 트이는 곳은 없고 백률사 주차장까지 왔던길로 다시 내려간다. 정상 바로아래 체육시설 삼거리를 지난다.
▲ 이정목이 서있는 동천동 마애삼존불좌상 갈림길에서 오른쪽길로 내려간다.
▲ 힘들지 않고 포근한 사면길과 완만한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간다.
▲ 이정목이 서있는 4거리에서 오른쪽 굴불사지 0.5km 방향으로 내려간다.
▲ 이어지는 사면길에 ~ 유난히 경주에서만 몇군데서 발견되는 줄눈 바위, 마치 고의로 바위에 흠짓을 낸듯한 모습이다. 백률사 앞 삼거리에서 좌향하여 돌계단길을 따라 내려간다. 소금강산 정상으로 올라갈때는 오른쪽 백률사 방향에서 내려왔었다.
▲ 백률사 앞 삼거리에서 좌향해서 돌아 본 모습이다.
▲ 경사가 급한 돌계단길을 따라 내려가 ~ 황토길을 만나서 좌향해서 내려간다.
▲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을 지나 ~ 주차장을 빠져 나간다.
▲ 주차장을 나와 굴불사 앞 백률사네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경주시청 방향으로 직진한다. 하단 사진은 횡단보도 건너 백률사 방향으로 되돌아 본 모습이다.
▲ 백률사 네거리에서 계속 직진해서 360여미터 가면 시청네거리를 만나고 우향하여 용강동 방향 양정로를 따라간다.
▲ 우향하여 60여미터 가면 도로 우측에 양정어린이공원 안내판과 '경주 동천동 사방불탑신석' 안내판을 만난다.
▲ 공원 우측 안쪽에 자리한 사방불탑신석 앞에는 표석과 안내판이 서있다.

경주 동천동 사방불 탑신석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5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770-3
이 석조물은 탑에 사용된 몸돌로 여겨진다. 네 면에 조금 파들어간 듯이 조각된 불상은 좌상으로 각각 다른 손 모양을 하고 있지만 두광과 신광을 모두 갖추고 있다. 
 네 면에 불상을 조각한 것은 동서남북 네 방향에 있는 부처를 상징하는데 이곳의 불상은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사방불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네 면의 아랫쪽에 앞으로 튀어나온 받침에 8개의 3겹 연꽃이 조각되어 있다. 불상 윗쪽에도 앞으로 튀어나온 부분이 있어서 얼핏보면 지붕처럼 보이는데, 윗면에 8개의 3겹 연꽃이 조각되어 있다. 탑신석 윗면에는 위에 놓일 탑신 받침을 조각하였다.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이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모습이다. 
 1982년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탑신석의 위치가 조금 옮겨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현재 옆에 있는 4개의 돌로 짜맞춘 기단부와 서남 모서리에만 남은 탑구 석재는 당시에 출토된 것들이다. 1999년에 주변을 작은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 탑신석의 높이는 약 82㎝이고 탑신석 네 면에 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이곳은 흔히 ‘동천동 사지(寺址)’로 불리는 곳으로 탑신석의 주변에 또 다른 석탑재와 장대석(長臺石)이 남아 있다. 그리고 통일신라시대의 기와 조각과 고려청자 조각이 흩어져 있다.
▲ 경주시 보건소 앞을 지나 ~
▲ 사방불 탑신석에서 450여미터쯤 가면 경주 용강동 고분을 만난다.

경주 용강동 고분
사적 제328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용강동 1130-1
이 고분은 '개무덤'  '고려장'으로 불리던 폐고분으로 파괴가 심하여 1986년 경주고적발굴단이 발굴조사하였다. 
석실(돌방)의 구조는 남벽의 중앙에 연도가 연결된 정방형의 단실분으로, 네 벽 모두 장방형의 깬돌로 정연하게 쌓고 시상 높이에서 부터 차츰 들여쌓아 천장을 둥근 활모양으로 만들었다. 
 시상은 서벽과 북벽에 붙여 동서로 길게 놓여 있는데, 벽쪽을 제외한 가장자리에 편평한 깬돌을 쌓고 그 내부를 깬돌과 냇돌로 채운 다음 점토를 두텁게 바르고 회칠을 해서 마무리 했다. 
 석실 내에서 사람의 치아와 함께 토용, 흙으로 만든 말, 청동제 십이지신상, 토기, 구슬, 돌베개 등이 출토되었다. 토용은 높이 12~22cm의 전신상이며 흙으로 빚어 만든 뒤 백토를 입히고 그 위에 붉은 색으로 채색한 것이다. 신라지역에서 출토된 다른 토용에 비해 매우 사실적이다. 

 

 

▲ 고분 주위를 시계 방향으로 한바꾸 빙~ 돌아본다.

1986년 경주고적발굴조사단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했는데 통일신라시대 때 유행한 굴식돌방무덤의 형태로 밝혀졌다. 목곽 안에 피장자를 모시고 그 위에 돌을 쌓아 봉토를 덮는 신라시대의 대표적 고분유형인 돌무지덧널무덤은 도굴이 어려운 데 반해, 용강동고분과 같은 굴식돌방무덤은 무덤 내부의 돌방 안으로 사람이 드나들기 쉬워 도굴꾼들의 주요 표적이 되었지만 다행이 유의미한 유물들이 제법 나왔다고 한다. 

 

 

▲ 용강동 고분에서 왔던 길로 130여미터 되돌아가 동천 농협은행 작은 네거리에서 우향하여 횡단보도를 건너 트레킹 마지막 코스인 황성공원을 찾아간다. 하단 사진은 우향해서 돌아 본 모습이다.
▲ 동천 농협에서 200여미터 지나 철길 건널목을 건너고 ~
▲ 건널목을 지나 130여미터 가면 원화로(황성지하도 네거리)를 만나 횡단보도를 건너면 왼쪽에 황성공원이 위치한다.
▲ 황성공원 입구로 들어서면 우측 파고라 쉼터 앞에 공원의 유래와 현황을 기록한 대형 공원안내판이 서있고 ~

경주시 황성동 산 1-1번지에 자리한 황성공원은 옛날 경주(동경)의 중심에 위치한 고양수라 불리던 곳이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동경의 불길한 기운을 누르기 위해 숲을 조성하였고, 동경의 영원한 영화를 누리기 위한 유서깊은 공원이다. 
1975. 2. 17에 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895,373제곱미터의 부지에 소나무 등 58종 11,773본의 수목이 생육하고 있다. 
 주요시설로는 경주예술의전당을 비롯한 문화시설과 시민운동장, 실내체육관, 축구공원 등의 체육시설, 충혼탑, 김유신장군동상, 최시형선생동상, 6.25참전용사 무공선양비 등의 시설도 들어서 있다. 

 

 

▲ 공원 입구를 지키는 사자상(?) 오른쪽에는 독립운동과 지역 봉사활동에 일생을 바친 조인좌 선생의 기적비가 서있다. 산책로를 따라 공원을 한바꾸 돌고 오늘 트레킹을 마감할려고 한다.
▲ 경주시립도서관 앞을 지나 ~ 6.25 참전과 월남전 참전 명예선양비 앞을 지나고 ~
▲ 한국전쟁민간인 희생자 위령탑을 만나고 ~
▲ 상수리, 느티, 떡갈나무 등 크고 작은 나무들이 어울려 숲을 이루고 있다.
▲ 맥문동 꽃단지가 조성된 송림아래 산책로를 따라간다. 산책로는 전체 960m 순환형으로 안내판이 서있는 이곳에서 출발점인 주차장 방향으로 이어진다.
▲ 시민운동장 옆과 충혼탑 앞을 지나고 ~

▲ 이경록 시비, 목양오세재선생문학비, 박목월선생 노래비 앞을 차례로 지난다. 

 

 

▲ 김유신장군 동상을 보기위해 가파른 계단을 따라 공원의 야트막한 동산인 ‘독산(獨山)’으로 올라간다.
▲ 삼국통일의 주역인 김유신 장군의 능름한 기마상(騎馬像)은 현세의 젊은이들에게 용기와 자존감을 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 북녘을 향해 호령하듯 우뚝 서있는 김유신 기마상은 원래 동쪽을 향하고 있었는데, 1975년 4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이 포항종합제철을 방문하시는 길에 이 동상을 지나면서 "민족의 통일을 생각하고, 광활한 대륙을 호령했던 웅혼한 기상을 되살리는 뜻으로 동상을 다시 만들어 북쪽을 향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1976년 7월 15일에 기공하여 1977년 9월 1일에 준공하였다고 한다. 

 

동상좌대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 명각(銘刻) 휘호(揮毫)하신 이 우람한 기마상은 1975년 4월 17일 동상을 다시 만들어 방향도 바꾸어 세우라는 분부를 받들어 신라 삼국통일의 주역이신 김유신장군의 위훈을 오늘에 되새기며, 온 겨래의 호국정신을 일깨우고 조국의 평화통일 과업을 이룩해 나가는 벅찬 앞길에 찬연한 횃불을 밝혀 길이 후세에 전하고자 여기 화랑의 정기 넘치는 서라벌 옛 터전에 자리 잡아 멀리 북녘을 향해 우뚝 세우다.

 

 

▲ 황성공원내 ‘독산(獨山)’은 모양이 큰 고분 같기도 하고, 작은 인조산 같기도 한데, 왜병과 전투를 벌였던 곳으로 유명하다. 독산에서는 전망도 나쁘지 않다.
▲ 김유신 장군 기마상을 보고 계단을 내려가 공원 입구로 향한다.
▲ 공원 안내판을 만나고 ~
▲ 뒤로 돌아보면 방금 내려온 독산의 김유신 기마상이 눈에 들어온다.
▲ 황성공원 입구 주차장에서 트랭글을 종료하고 오늘 트래킹을 마친다.

 

 


 

 

황성공원에서 출발점인 탈해왕릉까지 승용차 회수를 위해 걸어가기로 한다. 네이버 길찾기로 확인하니 불과 2.0km 안팎이다. 

 

 

▲ 공원을 나와 원화로에서 우향한다. 우측 사진은 탈해왕릉으로 돌아가는 길을 카맵에 표기한 것이다.
▲ 우향해서 250여미터쯤 가서 경주고용복지센터 앞 삼거리에서 경주시청 방향으로 좌향한다.
▲ 200여미터 가서 철길을 건너고 ~
▲ 다시 210여미터 가서 4거리에서 횡단보도 건너 직진한다.
▲ 참가자미 식당이 두군데 보인다. 나중에 옆지기와 같이 와봐야겠다.
▲ 360여미터쯤 가서 백률사네거리를 만나 횡단보도를 건너 굴불사 앞에서 우향한다.
▲ 황금들판을 따라 백률사네거리에서 290여미터쯤 가서 삼거리를 만나면 우측으로 ~
▲ 삼거리에서 100여미터쯤 도로를 따라 가다가 도로를 벗어나 왼쪽 표암재 앞 수로를 따라 진행한다.
▲ 자그만 다리를 따라 수로를 건너 경모비석 앞으로 이동한다.
▲ 조동문(肇東門)뒤로 시조의 위폐를 모신 사당(祠堂)인 악강묘(嶽降廟)가 보이고 ~ 안내판과 표석(기념물 54호, 경주표암)이 서있는 산앙문(山仰門)과 탈해왕릉앞을 지난다.
▲ 왕릉 안내판을 지나서 ~
▲ 출발점인 주차장으로 되돌아 온다. 오후 1시 54분, 승용차를 타고 무사히 귀가
▲ 트랭글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