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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영의 보금자리
▣ 트래킹# 탐방 #답사

삼릉 가는 길 (서남산 가는 길) 2

by 영영(Young Young) 2020. 11. 1.

▲ 남간 당간지주는 네거리에서 멀지않은 130미터쯤 떨어진 벌판에 덩그러이 서있다.
▲ 경주 남간사 옛 절터에서 500m 정도 떨어져 있는 논 가운데 동서로 세워진 화강석 당간지주는 밑부분이 50cm 정도 노출되어 있다. 똑같은 형태와 크기로 마주 서 있는 두 돌기둥은 하단부가 깊게 묻혀 있는데, 바닥돌이 없고 기단부가 없으므로 기단 위에 당간을 세우던 받침돌도 보이지 않는다.

▲ 경주 남간사지 당간지주
보물 제909호, 통일신라시대 중기, 높이 3.6m
당간은 절에서 불교의식을 할때 부처와 보살의 공덕을 기리거나 마귀를 물리칠 목적으로 달았던 '당'이라는 깃발의 깃대를 말하며, 이 당간을 받쳐 세우는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남간사는 해목령을 뒤로하여 서남산에 있었던 절로 지금은 주춧돌과 우물 등이 남아있으며, 당간지주는 동서로 70cm의 간격을 두고 마주보고 있다. 
 이 당간지주는 윗부분과 옆모서리를 다듬었고 안쪽은 십자 모양이 홈을 판 것이 특이하다. 지주 아래위에 둥근 구멍을 뚫었는데 그 구조가 단순하며 안정감을 준다.

 

 

▲ 당간지주 앞을 지나 몇걸음 옮기면 이정목 두개가 서있는 삼거리에서 포석정 430m방향으로 우향한다. 하단 최우측 사진은 우향하여 돌아 본 모습이다. 왼쪽 산자락 방향에는 금오봉 4.4km 이정목이 서있다.
▲ 시멘트 포장 들판길을 따라 ~ 짧은 다리를 건너고 ~
▲ 당간지주에서 180미터쯤 가면 탐방로 좌측에 농가주택이 있고 길이 오른쪽으로 휘어지는 바닥에 '삼릉가는 길' 표식이 보인다. 지금까지 온 방향은 '월정교 가는 길' 진행방향은 '삼릉 가는 길'로 표시하고 있다. 음각 사이에 흙으로 오염되어 한눈에 알아볼 수는 없다.
▲ 탐방로 좌측 산자락에 녹색 팬스뒤로 청림사지 삼층석탑이 시야에 들어오고 ~
▲ 들판으로 이어지는 탐방로변 녹색 팬스에는 '청림사지 삼층석탑 (임시주차장) 가는 길" 청색 안내판이 걸려있다.
▲ 앞 농가주택에서 300여미터 들판길을 따라가면 삼거리를 만나서 좌향하여 진행한다. 이곳 삼거리에도 '삼릉가는 길' 표식이 있다. 지금까지 온 방향은 월정교 가는길, 직진은 삼릉가는길, 진행방향은 왼쪽 청림사지 가는 길이다. 청림사지 삼층석탑을 보고 되돌아와 삼릉으로 가기로 한다.
▲ 삼거리에서 좌향하여 녹색팬스 옆 길을 따르면 ~ 경주남산 창림사지 발굴조사 안내판을 만난다.

경주남산 창림사지 발굴조사
경주남산(사적 제311호) 서록에 위치하는 창림사지에 대한 문화재 보존.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2011년 5월부터 발굴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조사결과 현위치를 중심으로 한 평탄지역에서 새로운 절터가 추가로 확인되었습니다. 동-서 쌍탑지에서는 팔부신중용이 양각된 기단갑석 등 다수의 석탑부재가, 탑지 북쪽에서는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조사성과를 바탕으로 정밀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좌전방에 보이는 석탑을 향해 녹색 팬스옆길을 따르면 ~ 판넬 가건물 앞에서 또다른 경주남산 창림사지 발굴조사 안내판을 만난다.

경주남산 창림사지 발굴조사
경주남산(사적 제311호) 서록에 위치하는 창림사지에 대한 문화재 보존.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2011년 5월부터 발굴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조사결과 현 창림사지 3층 석탑을 중심으로 한 산지지역에서 가람배치를 알 수 있는 담당지가 확인되었습니다. 탑을 중심으로 외곽에 담장을 둘렀고, 탑지 아랫단에 고맥이 초석을 사용한 건물지(6칸X4칸)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향후 이와 같은 조사성과를 바탕으로 정밀 발굴조사를 진행하여 창림사지의 모습을 확인할 계획입니다. 

 

 

▲ 탐방로는 좌로 휘어지며 서서히 오르막 고도를 높혀가면서 오솔길 갈림길을 만나고 ~
▲ 앞 삼거리에서 440미터쯤 올라가면 창림사지 삼층석탑을 만난다.
▲ 탑 앞에 '경주 남산 창림사지 삼층석탑' 표석과 안내판이 서있다.

경주 남산 창림사지 삼층석탑
보물 제1867호
높이 약 6.98m
남산의 서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창림사지는 삼국유사에 신라 최초의 궁궐지로 기록된 유서깊은 곳이다. 언제 궁궐이 창림사로 변경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며, 조선 후기에 들어와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창림사지의 가람배치는 제일 낮은 서쪽에서 능선을 따라 동쪽으로 높아지는 계단식 형태를 한 산지가람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삼층석탑은 가장 높은곳에 자리잡고 있다. 
 청림사지 삼층석탑은 전체적으로 규모가 웅장하며, 신라시대 삼층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 8세기 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1층 탑신석에는 문비를 표현하였으며, 상층 기단부에는 팔부신중이 조각되어 있으나 4구만이 남아있다. 오랫동안 무너진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으며, 1976년에 결실된 부재를 보강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 창림사지 삼층석탑은 경주 남산 일대에 흩어져 있는 수십 기의 석탑 중 가장 웅장한 규모로, 높이 약 7m에 이른다. 오랫동안 무너진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으며, 1976년에 결실된 부재를 보강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 석탑은 신라시대 삼층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 8세기 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1층 탑신석에는 문비를 표현하였으며, 상층 기단부에는 팔부신중이 조각되어 있으나 4구만이 남아있다.
▲ 주변에서 제일 높은 위치에 자리한 석탑에서 내려보이는 창림사지(昌林寺址)는 삼국유사에 신라 최초의 궁궐터였다고 기록이 남아 있으며 창림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하여 고려시대까지 존속되다 조선 초에 폐사된 것으로 전해진다. 창림사지의 가람배치는 제일 낮은 서쪽에서 능선을 따라 동쪽으로 높아지는 계단식 형태를 한 산지가람 양식을 따르고 있다.
▲ 삼층석탑에서 210미터쯤 왔던길로 내려가면 좌측 숲으로 이어지는 널찍한 갈림길이 있는데, 왼쪽길을 따르면 포석정으로 가는 지름길로 추측되는데 이정목이 없어서 그냥 확실한 오른쪽길로 내려간다. 후기를 적으면서 확인한바 예전에는 이곳 갈림길에 삼릉으로 가는 길 이정목이 있었고 좌측방향에 삼릉을 표시하고 있었는데 발굴조사중에 사라진것으로 보인다.
▲ 창림사지 갈림길로 되돌아와 좌향하여 포석정으로 이동한다. 창림사지 방향으로 되돌아 보고 ~ 하단 우측사진은 좌향해서 돌아 본 모습이다.
▲ 진행로 후방에 포석교회 십자가가 보이고, 좌후방으로 고개를 돌리면 방금 내려온 창림사지 삼층석탑과 삼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 들길을 따라 250여미터 가면 벽화가 그려진 마을길로 들어서고 ~
▲ 몇걸음 뒤 이정목이 서있는 삼거리에서 우향하여 포석정 방향으로 진행한다. 하단 우측사진은 우향하여 돌아 본 모습이다. 지금까지 온 방향은 당간지주 750m, 진행방향은 우향하여 포석정 400m 방향이다.
▲ 벽화가 그려진 포석정 안길을 따라 120미터쯤 이동하면 파란대문 앞 삼거리를 만나서 좌향한다.
▲ 좌향해서 40~50미터 가면 ~ 정자가 있는 주차장 삼거리에서 우향한다.
▲ 우향해서 70여미터 가면 소하천 Y자 갈림길에서 하천 왼쪽길을 따라간다.
▲ 소하천길을 따라 110미터쯤 가서 남산순환로를 만나 좌향하면 왼쪽에 포석정 주차장이 있고 ~
▲ 매표소 방향으로 80미터쯤 이동하면 뒷쪽에 포석정 입구가 있는데 포석정은 지난 9월 28일 경주 남산순환도로(포석정주차장 ~ 통일전주차장) 탐방시 돌아봤기 때문에 생략하고 곧바로 매표서 맞은편 이정목이 서있는 도로 오른쪽으로 턴하여 지마왕릉으로 향한다. 하단 최우측 사진은 우향하여 돌아 본 모습이다. 지마왕릉까지는 270m이다.

 

경주 남산 아래 사적 제1호로 지정된 포석정지는 화강암으로 수로를 만든 구조물이다. 신라 시대 별궁에 있던 곳으로, 통일신라 시대에 연회 장소로 쓰인 것으로 여겨진다. 돌에 홈을 파 물이 흐르게 한 뒤,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연회를 즐겼다고 한다.

경주 남산순환도로(포석정주차장 ~ 통일전주차장)   2020. 10. 6.

http://blog.daum.net/smirinae/6041961

 

경주 남산순환도로(포석정주차장 ~ 통일전주차장)

ㅇ 임도길을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사실이 그렇다. 그런데 가끔은 그러한 길이 부담없이 생각없이, 가볍게 휠링할 수 있는 코스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blog.daum.net

 

 

▲ 포석정 매표소 앞에서 인도블럭길을 잠시 270미터쯤 가면 전방 숲아래에 지마왕릉의 모습이 보인다.
▲ 왕릉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는 널찍한 주차장이 있고 그 뒤에는 안내판과 '삼릉가는 길' 표석이 자리하고 있다.

▲ 경주 지마왕릉 (慶州祗摩王陵)​
사적 제221호
이 능은 신라 제6대 지마왕(112~134 재위)이 묻힌 곳으로 알려져 있다. 파사왕의 맏아들로 왕위를 이었다. 지마왕의 재위기간에 신라는 백제와는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으나 가야와는 낙동강 하류를 둘러싸고 패권을 다투었다. 왜인들이 동쪽 변경을 침범하였으나 교섭하여 강화를 맺었고, 북쪽에서 말갈이 쳐들어오자 백제의 도움을 받아 물리쳤다. 
 무덤은 포석정에서 남쪽으로 200미터쯤 떨어진 남산의 서쪽 자락에 있다. 왕릉중에는 작은 편에 속한다. 발굴조사는 하지 않았으나 외형과 입지로 보아 내부구조는 굴식돌방무덤일 가능성이 있다. 
삼릉가는길의 현위치는 포석정과 태진지 중간지점이다.

 

 

▲ 왕릉 주위를 반시계 방향으로 한바꾸 돌아간다.
▲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에 있는 경주지마왕릉은 1971년 4월 21일 사적 제221호로 지정되었으며, 제5대 왕인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의 아들로서 성이 박씨다. 왕후는 김씨 애례부인으로 갈문왕(葛文王) 마제(摩帝)의 딸인데 아들은 없었다.
▲ 무덤의 모습은 둥근 봉토분으로 직경 12.17m, 높이 3.4m의 소형분에 속한다. 서쪽을 향하고 있는 능은 경사를 이용하여 한 단 높은 곳에 계단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능의 위치가 산기슭인 점과 봉분이 소규모라는 점을 들어 피장자가 지마이사금과는 관계없는 신라 중대 이후의 횡혈식석실분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 왕릉에서 내려와 왕릉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간다. 우측 사진은 돌아 본 모습이다.
▲ 지마왕릉에서 널찍한 길을 따라 90여미터 가면 부적처럼 생긴 오색지가 철대문에 걸린 농장 좌전방에 아담한 '태진지' 못이 나타난다.
▲ 못 입구에 이정목이 서있고 널찍한 길을 벗어나 좌측 못둑을 따라 조성된 데크로드를 따라간다. 하단 우측사진은 이정목 지나 데크로드에서 돌아 본 모습이다.
▲ 바닥돌이 깔린 못둑을 따라 숲 방향으로 이동한다.

▲ 태진지는 구상나무, 산철쭉, 꽃창포 등 다양한 수생식물을 만나 볼 수 있는 생태공원으로 청소년 생태학습장으로 인기가 높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그저 수초로 보일 뿐 키작은 억새들만이 가을이 깊어가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못둑에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못둑아래 포석로 사이에 널찍한 습지가 펼쳐져 있다. 

 

 

▲ 못둑을 따르면 벤치가 놓인 파고라 쉼터가 자리하고 있어서 편안히 쉬어갈 수 있다. 하단 우측사진은 돌아 본 모습이다.
▲ 못둑(데크로드)이 끝나는 지점 왼쪽에는 못둑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고 ~ 못둑 끝에는 '삼릉가는 길 안내판'이 서있다. 현재의 위치는 지마왕릉과 삼불사 사이의 태진지이다.
▲ 안내판 왼쪽 못가에는 목재형 벤치가 있는데 습기가 차서 그냥 앉을수는 없는 상태이다.
▲ 태진지 못에서 다음 목적지인 삼불사로 출발하면서 돌아 본 모습이다.
▲ 야자매트가 깔린 숲속 오솔길을 따라 100여미터 가지 않아 ~
▲ 이정목이 서있는 삼거리를 만나서 삼릉가는 길은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아무런 표시가 없는 삼거리 왼쪽 방향이 궁금해서 잠시 왼쪽길로 가본다. 지금까지 온 방향은 포석정 0.6km, 진행방향은 삼릉가는 길 0.6km이다.
▲ 삼거리에서 왼쪽길로 몇십미터 가니 '삼불사'의 뒷모습이 보이고 ~
▲ 다시 이정목 삼거리로 되돌아와 좌향하면 몇걸음 뒤 삼불사 주차장으로 연결된다.
▲ 주차장 입구 좌측에 삼릉가는길 표석이 제일 먼저 눈에 띄고 ~ 현위치는 태진지 못과 배동석조마애삼존불상 중간이다.
▲ 주차장에서 삼불사와 삼존불로 이어지는 계수대 앞 좌우에는 경주국립공원 안내판(좌)과 경주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 안내판(우)이 각각 서있다.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
보물 제63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산 65-1
여기에 있는 세 돌부처는 경주 남산 서쪽 자락의 삼불사에 인접해 있다. 이곳 선방사터 부근에 흩어져 누워있던 것을 1923년에 모아서 세운 것이다. 
 중앙의 본존불은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인데, 네모난 얼굴은 풍만하며, 둥근 눈썹, 다문 입, 통통한 뺨은 온화하고 자비로운 불성을 나타내고 있다. 
 본존불을 기준으로 왼편은 자비의 화신 관세음 보살상이다. 머리에 보관을 쓰고, 미소를 띠고 있다. 오른쪽 연꽃 위에 선 대세지보사살상은 두 어깨에서부터 발등까지 구슬과 꽃송이로 엮은 목걸이를 드리우고 있다. 
 이 삼존불은 웃음 짓는 얼굴 표정과 뺨에서 인간적인 정감이 넘치는 작품인데 전체적인 조각 양식으로 보아 제작시기는 삼국말기인 7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 주차장에서 계수대 왼쪽으로 곧바로 삼불사로 오솔길을 따라가도 되지만 ~ 이정목이 서있는 계수대를 통과하여 널찍한 길을 따라간다. 금오봉까지는 2.4km, 바둑바위까지는 1.5km이다.
▲ 계수대를 통과하여 주차장으로 되돌아 본 모습이다.
▲ 계수대를 통과하여 몇걸음 옮기면 길 좌측에 세심단속문(洗心斷俗門) 표석이 서있고 삼불사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마음을 씻고 속세를 끊고 들어오는 문'이라 하여 발을 들여 놓기가 왠지 부담스럽다.

▲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서면 '삼불사'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입구에서 더이상 가까이 들어가기 뭐해서 먼발치에서 보면 변변한 안내판 하나, 대웅전 편액도 걸리지 않은 소박한 모습이다. 
삼불사(三佛寺)는 경상북도 경주시 포석로 692-25 (배동)에 위치하고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발굴된 유물로 보아 신라때 창건된 것으로 보이나 연혁이 전하지 않아 절의 역사는 알 수 없다.  입구 게시대에 붙어있는 '노년의 지혜'를 끝까지 읽어보며 잠시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돈에 욕심을 가지기 보다는 산더미 같은 덕을 쌓되, 친구한테 술 한잔 사주고, 불쌍한 사람 베풀어주고, 손주 용돈 줄만큼은 있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내용도 맘에 닿는다.  

 

 

▲ 삼불사 석탑에서 오른쪽 지척에 보이는 석조여래삼존입상으로 이동한다.

▲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포석로 502(용장리)에 위치한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慶州 拜洞 石造如來三尊立像)은 높이가 본존불 2.78m, 좌협시보살 2.35m, 우협시보살 2.93m로 새로운 추상표현주의적 기법으로 조성된 7세기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 중앙의 본존불은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인데, 네모난 얼굴은 풍만하며, 둥근 눈썹, 다문 입, 통통한 뺨은 온화하고 자비로운 불성을 나타내고 있다. 본존불을 기준으로 왼편은 자비의 화신 관세음 보살상이다. 머리에 보관을 쓰고, 미소를 띠고 있다. 오른쪽 연꽃 위에 선 대세지보사살상은 두 어깨에서부터 발등까지 구슬과 꽃송이로 엮은 목걸이를 드리우고 있다.
▲ 불상은 이곳 선방사터 부근에 흩어져 누워있던 것을 1923년에 모아서 세운 것이고 삼존입상에 대한 안내판은 삼불사 주차장에 있다.
▲ 삼불상 뒷편에는 선방곡 부근에 흩어진 부재들을 모아놓은 다양한 유구들이 모여있다.
▲ 삼불상을 지나 산쪽으로는 이정목이 서있다. 금오봉 2.3km, 바둑바위 1.4km, 선방곡석불입상까지는 0.1km거리이다.
▲ 다음 목적지인 삼릉으로 가기위해 다시 삼불사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내려갈때는 오른쪽에 보이는 삼불사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널찍한 바닥돌길을 따라 내려간다.
▲ 계수대를 통과해서 곧바로 좌향해서 화장실뒤로 가거나 ~ 화장실 앞으로 나와서 좌향하여 샛길을 따라 30~40여미터 가면 망월사 주차장을 만난다. 하단 사진 망월사 주차장의 왼쪽이 망월사 입구이고 입구를 지나 모닝 승용차 방향으로 직진한다.
▲ 망월사 입구를 지나서 ~ 하단 사진은 망월사 입구에서 본 경내 전경이다.

망월사(望月寺)는 경주시 배동에 자리한 대한불교 원효종 사찰이다. 망월사는 원효종의 중요한 사찰로 꼽힌다. 대한불교 원효종은 우리 나라 18개 불교 종단 가운데 하나인데, 신라의 원효(元曉) 스님을 종조(宗祖)로 하여 1963년 경주에서 해인(海印) 스님이「대한불교원효종포교원」이라는 이름으로 창종하고 해인 스님이 초대 종정이 되었다. 그 뒤 1967년 8월 망월사가 총본원이 되었으며, 1977년 12월 대한불교 원효종이 되었다. 

 

 

▲ 망월사 입구를 지나면 모닝 승용차 뒤 샷시박스 앞에 이정목이 서있고 좌향해서 진행한다. 삼릉까지는 좌측방향 0.6km이다.
▲ 망월사 주차장에서 후방 죽림식당 간판 앞으로 진행한다. 우측 사진은 망월사 주차장으로 돌아 본 모습이다.
▲ 망월사를 지나 100여미터 가지 않아 죽림식당 입구 이정목이 서있는 삼거리에서 야자매트가 깔린 왼편으로 진행한다. 하단 최우측 사진은 좌향해서 돌아 본 모습이다. 지금까지 온 방향은 망월사 0.1km, 진행방향은 좌측 삼릉가는 길 0.5km이다.
▲ 삼거리에서 몇십미터 숲길을 따르면 삼릉가는 길 표석이 서있다. 현위치는 배동석조여래삼존입상과 삼릉 사이 지점이다.
▲ 탐방로의 좌측으로 공동묘지가 잠시 이어지고 ~
▲ 죽림식당 간판뒤로 이정목이 보인다. 이정목 뒤에서 좌향해서 삼릉 숲으로 들어선다.
▲ 지금까지 온 방향은 삼불사 500m, 직진하면 삼릉주차장 0.25km, 진행방향은 왼쪽 금오봉 2.35km, 상선암 1.35km, 삼릉 60m 방향이다.
▲ 삼릉 입구의 모습 및 좌향해서 돌아 본 모습이다.
▲ 50미터쯤 올라가면 삼릉 앞에 이정목이 서있고 ~ 우측 반시계 방향으로 삼릉 주위를 돌아보기로 한다. 지금까지 온 방향은 삼불사 550m, 삼릉주차장 0.3km, 왼쪽은 금오봉금오봉 2.3km, 상선암 1.3km
▲ 서쪽으로부터 각각 신라 제8대 아달라이사금, 제53대 신덕왕, 제54대 경명왕 등 박씨 3왕의 능으로 전하고 있는데 단정할 수는 없다고 한다. 세 고분 모두 외형은 원형봉토분으로 통일신라시대 왕릉의 규모와 비슷하나 아무런 장식이나 석조물이 없고, 현재 놓여 있는 3개의 상석도 모두 최근에 만들어놓은 것이라고 한다. 다만 고분 내부에서 발견된 벽화는 단순한 채색면에 지나지 않지만 벽화자료가 거의 없는 신라고분에서는 주목되는 자료이다.
▲ 삼릉의 서편에 안내판이 서있다.

경주 배동 삼릉
사적 제219호
이곳은 신라 제8대 아달라왕, 제53대 신덕왕, 제54대 경명왕의 능이 모여있다고 하여 삼릉이라 불린다. 모두 박씨 왕들이다. 중앙에 있는 신덕왕릉은 1963년 도굴을 당하였는데, 굴식돌방무덤으로 확인되었고, 벽면은 병풍처럼 색이 칠해져 있었다. 서편의 경명왕릉은 경명왕이 세상을 뜨자 황복사 북쪽에서 화장한 후에 다른곳으로 산골하였다는 기록이 전하기도 한다. 

 

 

▲ 삼릉 안내판 앞을 지나 울타리를 따라 몇걸음 더가면 천년미소 안내판(상선암 1.4km)이 있는데, 안내판 앞에서 왼쪽으로 진행하면 상선안 방향, 가야할 경애왕릉 방향은 동그란 안내판 뒷쪽으로 직진한다.
▲ 천년미소 안내판 뒤로 60~70미터 이동하여 짧은 석교를 건너면 후방에 경애왕릉이 보인다. 경애왕릉은 삼릉에서 남쪽으로 100여미터 떨어져 있다.
▲ 신라 제55대 경애왕(924~927재위)의 묘를 좌에서 우로 시계 방향으로 한바꾸 돌아보기로 한다.
▲ 경애왕은 경명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나 재위 4년이 되던 해에 포석정에서 잔치를 베풀고 있을 때,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서 비참한 최후를 마친 비운의 왕이다.
▲ 왕릉의 서쪽에 안내판이 서있다.

경주 경애왕릉
사적 제222호
이 능은 신라 제55대 경애왕(924~927재위)이 묻힌 곳으로 알려져 있다. 경애왕은 신덕왕의 둘째 아들이자 경명왕의 동생이다.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할 때 군사를 보내어 고려를 도왔다. 927년에 포석정에서 제사를 지낸 후 연회를 베풀던중 그곳을 기습한 후백제의 견훤에게 사로잡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기록에는 남산 해목령에서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능은 남산의 북서쪽 자락에 있다. 무덤의 가장자리를 따라가며 둘레돌로 보이는 석재가 일부 드러나 있다. 발굴조사는 하지 않았으나 내부구조는 굴식돌방무덤일것으로 추정한다. 

 

 

▲ 경애왕릉을 마지막으로 '삼릉 가는 길" 코스의 탐방을 모두 마친다. 원래 지정코스는 월정교에서 삼릉까지지만 바로 옆에 위치한 경애왕릉에서 마무리하게 되었다.

 

 


 

경애왕릉에서 승용차 회수를 위해 출발점인 월정교까지 다시 도보로 되돌아 가기로 한다. 다만 코스는 올때와는 다르게 차도를 따라 최단 직코스로 이동한다. 월정교로 돌아가는 거리는 왕복 17.4km중에 4.5km쯤 되는 비교적 짧은 거리이다. 

 

▲ 경애왕릉에서 서쪽으로 연결된 송림숲길을 따라서 ~ 짧은 석교를 건너고 ~ 왕릉에서 200미터쯤 숲길을 따르면 포석로를 만나서 우향한다. 하단 사진은 경애왕릉 입구에서 지나 온 방향으로 돌아 본 모습이다.
▲ 120미터쯤 가서 삼릉 입구를 만나고 ~ 하단 사진은 포석로에서 왕릉 방향으로 본 모습이다.
▲ 삼릉 정류장과 도로변 벤치/정자 쉼터를 지나면 ~
▲ 포석로의 좌측에는 '서남산 주차장'이, 우측에는 삼릉 입구가 있다. 삼릉 입구에는 '삼릉가는길'표석이 있다.
▲ 가로수와 함게 시원하게 뻗어있는 한적한 도로를 따라 걸어간다. 아직 여기는 단풍이 물들기 전이다.
▲ 고물건으로 마당을 채운 민속농원전시장과 금오산 망월사 표석 앞을 지난다.
▲ 망월사 정류장과 삼불사 안내판 앞을 차례로 지나고 ~
▲ 경주는 어디를 가든 시원하게 펼쳐지는 들판을 쉽게 볼 수 있다.
▲ 도로가의 조각상은 어디로 갈려다가 여기에 머물게 되었는지 ?
▲ 지마왕릉 표석이 서있는 포석정 입구를 지난다. 우측 사진은 도로에서 오른쪽 포석정 주차장 방향의 모습이다.
▲ 도로 우측 포석정길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각종 안내판이 어지럽게 서있고 ~
▲ 장독대와 감나무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린다.
▲ 도로 우측에는 오늘 가까이서 보았던 창림사지 삼층석탑이 저만큼 멀리 보인다.
▲ 나정, 양산재, 보광사, 배씨시조사당, 일성왕릉 등 오늘 돌아보았던 장소들의 표석이 나란히 서있고 ~ 그 직후방에 육부전 표석과 나정 정류장이 위치한다.
▲ 200미터 후방의 네거리 교통안내판을 지나서 ~
▲ 오릉사거리 정류장을 지나 ~ 버스터미널 방향으로 직진한다.
▲ 오릉네거리에서 직진하면 왼쪽에는 오릉 주차장이 ~ 몇십미터 더 진행하면 우측에 천관사지 들머리 ~ 진행방향은 계속 직진이다.
▲ 오릉후문 정류장과 경주한방병원 앞을 차례로 지나고 ~
▲ 하연지 식당을 지나서 ~
▲ 교통 안내판이 서있는 문천교 앞 사거리에서 경주박물관(월정교 공용주차장) 방향으로 우틀한다. 경애왕릉에서 이곳까지는 줄곧 직진하여 왔다.
▲ 월정교 앞 사거리의 모습이다. 우향하여 남천을 왼쪽에 끼고 도로를 따라간다. 하단사진은 우향하여 돌아 본 모습이다.
▲ 2차 세계대전 당시 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갔다가 사망한 수만명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개인이 지었다는 '낙천원' 앞을 지나 ~
▲ 일정로 좌편의 남천에는 평화로이 세월을 낚는 이들이 있다.
▲ 문천 남쪽의 마을로서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샘이 있다하여 마을 이름을 '천원'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천원마을' 표석 앞을 지나서 ~
▲ 이제 월정교 공영주차장이 150m 남았다.
▲ 교통표지판이 서있는 삼거리에서 박물관 방향으로 직진한다.
▲ 삼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서 전방에 보이는 월정교를 향해 황토 산책로를 따라간다. 삼거리 우측에는 월정교 공영주차장이 보인다.
▲ 남천 둑길을 따라 조성된 황토산책로를 따라 월정교 방향으로 이동한다.
▲ 산책로 주변에는 벤치 쉼터가 있어서 남천과 월정교를 보며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 월정교(月淨橋)는 월성 서쪽 끝에 위치하며 남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로 월성 서쪽 끝에 위치하며 남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경덕왕 19년 2월 궁성 남쪽 문천에 월정교와 춘양교 두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 월정교(月淨橋)
월정교는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졌던 교량으로, 조선시대에 유실된 것을 2018년 4월 국내 최대 규모의 목조 교량으로 복원하였다. 남천을 가로질러 복원된 월정교는 한폭의 그림이요 경주 시민들에게는 자랑스런 쉼터이다. 

월정교는 1984년 11월 26일부터 1986년 9월 8일 까지 진행된 두 번의 복원설계를 위한 자료수집과 발굴조사를 통해 나무로 된 다리가 있었음을 처음으로 확인하였고, 2008년부터 2013년까지의 공사로 길이 66.15m, 폭 13m, 높이 6m의 교량 복원이 완료되었다. 2016년 4월부터 시작된 다리 양 끝의 문루(門樓) 2개동을 건립하는 공사를 진행하여 2018년 4월 준공되었다.

문루(門樓) 2층에는 출토된 유물과 교량의 건축 역사를 보여주는 디지털 전시관을 설치하며, 월정교의 역사와 복원과정 관련 영상도 상영한다. 경주시의 신라 왕경 8대 핵심유적 복원 정비사업 중에서 첫 번째로 완성된 월정교 복원사업은 이후 진행될 황룡사, 신라왕궁, 쪽샘지구, 신라방 등의 복원 정비공사에도 많은 참고가 되고 있다.
출처 : Daum 백과

월정교의 내부소개는 아래 링크 참조
경주 동남산 가는 길 (2)   2020. 10. 22.

http://blog.daum.net/smirinae/6041966?category=1971146

 

경주 동남산 가는 길 (2)

경주 헌강왕릉 사적 187호 이 능은 신라 제49대 헌강왕을 모신 곳으로 알려져 있다. 경문왕의 맏아들로서 왕위를 이었다. 헌강왕은 불교와 국학에 큰 관심을 가지고 문치를 지향

blog.daum.net

 

 

▲ 월정교 앞에서 도로를 건너 오늘 탐방의 출발점이었던 안내판 앞으로 이동한다.
▲ 안내판과 이정목을 다시 한번 담고 ~
▲ 월정교를 마지막으로 돌아보고 ~
▲ 공영주차장으로 되돌아와 승용차를 타고 귀가완료한다. 13년 긴 시간동안 묵묵히 나의 다리가 되어준 달구지와의 마지막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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