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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영의 보금자리
▣ 경산의 산/팔공산

동화사-부도암-염불암-동봉-염불봉-조암-신령재-폭포골-옛산장-원점 (1)

by 영영(Young Young) 2010. 1. 22.

ㅇ 일시 : 2010. 1. 14(목) 맑음. 쌀쌀
언론에서 오늘 날씨가 무지 춥다고 호들갑을 떨어서 팔공산이 적막강산이 된날임.

 

ㅇ 코스 : 동화사-부도암-염불암-동봉-염불봉-조암-신령재-폭포골-옛산장-통일대불 
* 국제신문 산행안내도를 따라 산행함

 

ㅇ 거리 및 소요시간
* 거리 : 봉황문(주차장)-동화사(1.2km) + 동화사-염불암(2.1km) + 염불암-동봉(1.4km) + 동봉-신령재(2.7km) + 신령재-동화사(3.8km) + 동화사-봉황문(1.2km) = 12.4km
* 소요시간 : 아침 9:10~오후 2:00 (4시간 50분)

 

ㅇ 특기 : 지난 1월11일(월) 동화사 구 주차장(봉황문 앞)에서 출발하여 염불암을 거쳐 동봉에 올랐다가 신령재를 통하여 동화사 통일대불로 하산하기로 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여 오늘 다시 도전길에 나섰다. 오늘은 양진암과 염불암 갈림길에서 며칠전 처럼 양진암으로 우회하지 않고 곧바로 염불암길로 들어 상기 코스데로 한바꾸를 돌아보았다.

 

 ▼ 산행 안내도 : 국제신문

 ▼ 구 동화사 주차장
주차장 뒤로 봉황문이 있다. 새 주차장은 동화사 "동화문"으로 진입하면 만날 수 있다.

 

 ▼ 봉황문 앞에 있는 절벽바위
이 바위에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 봉황문 앞 절벽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좌상"
부조(浮彫)로 조각된 이 마애불좌상은 동화사 남쪽 입구에 있는 높직한 절벽의 천연바위에 새겨져 있으며 하늘에서 막 내려오는 듯 나는 구름을 탄 개성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 팔공산동화사봉황문
봉황문 뒷편 왼쪽에 보이는 건물은 휴게실.매점이다.

 ▼ 봉황문 뒷편 왼쪽에 있는 동화사 휴게실.매점

 ▼ 매점을 지나서 20여미를 따라가면 길 왼쪽에 폭포가 하나있다.

 ▼ 폭포를 지나 다리를 건너면 동화사안내도가 위치한다.

 

 

 

 ▼ 동화사안내도에서 계곡을 오른쪽에 끼고 약 2분정도 아스팔트길을 따르면 도로 좌측에 자연보호 팻말이 보인다.

 ▼ 팻말을 지나서 100여미터 안가서 오른쪽에 다리 하나가 있고 ~

 ▼ 오른쪽 다리는 신령재로 가는길임. 오늘 산행은 직진길로 동봉에 갔다가 신령재를 거쳐 폭포골을 따라 오른쪽 다리있는곳으로 하산할려고 한다.

 ▼ 다리옆에 서있는 이정표
여기서부터 동화사까지의 거리는 약 500미터, 신령재까지 3.0km, 산장까지 800미터

 ▼ 신령재로 이어지는 다리 삼거리에서 직진하여 30여미터를 가면 다시 다리 하나가 있고 다리 뒷쪽에 약사대불로 오르는 계단이 보인다.

 ▼ 다리를 건너 약 50여미터를 가면 통일약사대불로 오르는 108계단을 만나고 ~

 ▼ 계단 앞에 서있는 이정표
며칠전에 108계단을 올라서 대불을 돌아보았기에 오늘은 이정표 앞에서 직진하여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곧바로 동화사로 간다

 ▼ 도로를 따라 100여미터를 가지않아 대불에서 동화사로 연결되는 삼거리를 만난다. 108계단을 올라서 대불을 돌아보고 왼쪽 다리로 내려와서 동화사로 갈 수 있다.

 ▼ 삼거리 이정표

 ▼ 삼거리에서 직진하여 50여미터 가면 동화사 입구와 연결된 해탈교와 계단을 만난다.

 ▼ 해탈교를 건너고 ~

 ▼ 계단을 올라가는 오른쪽에 인악대사 나무가 서있고 나무뒤로 옹호문이 보인다.

 ▼ 수령이 500년 정도 된 이 느티나무는 동화사와 인연이 깊은 스님을 기리기 위하여 인악대사 나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 인악대사나무

수종 : 느티나무(느릅나무과)

인악대사의 속성은 성산 이씨이며, 법명은 의소, 이름은 의첨으르서 영조 22년(1746) 지금의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인흥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어릴때부터 신동이라 불리워졌으며, 인근에 있는 용연사에서 공부를 하다가 스님이 되었다. 스승인 벽봉 스님으로부터 금강경, 능엄경 등 불교경전을 배워 비슬산, 황악산 등에서 불경을 설파하다가 동화사에 머물렀다.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지은 용주사를 주관하는데 뽑혔으며, 불복장원문경찬소, 용주사제신장문이라는 글을 지어 바치니 정조가 크게 감탄하여 그에게 홍제라는 호를 내렸으며, 1796년 용연사 명적암에서 세수51세, 법랍34세로 입적하였으며, 저서로는 화엄사기, 금강사기, 기신론사기, 인악집 드을 남겼다. 수령이 500년 정도 된 이 느티나무는 동화사와 인연이 깊은 스님을 기리기 위하여 "인악대사 나무"라 이름지었다.

 ▼ 동화사 대웅전으로 통하는 옹호문(사천왕상)앞을 지나서 ~

 ▼ 좌측 오르막길로 20여미터를 따르면 ~

 ▼ 도로의 좌측에 새 주차장이 있고 ~

 ▼ 우측에 동화사참배안내도와 관광안내 부스가 있다.

 ▼ 동화사 참배 안내도

 ▼ 관광안내부스. 좌측에 이정표가 서있다.

 ▼ 이정표
부도암.내원암.양진암.염불암순으로 가깝다. 관광안내부스 앞을 지나서 도로를 따라간다.

 ▼ 관광안내부스를 지나 5분 내에 부도암 입구를 만난다. 부도암은 둘러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 부도암은 한때 동화사 암자중에 가장 규모가 큰 사찰인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비구니들이 거주하면서 비구니들의 참선도량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 부도암을 지나 약 1~2분 뒤에 염불암.양진암 갈림길을 만난다. 며칠전 이곳 삼거리에서 직진하여 양진암으로 갔다가 염불암을 만나지 못하고 염불봉에 올랐다가 되돌아 온적이 있다. 오늘은 이곳 삼거리에서 직진하지 않고 좌회전 하여 염불암으로 곧바로 간다.

 ▼ 삼거리에 서있는 이정표

 

 

 ▼ 삼거리에서 염불암과 동봉 방향인 좌측으로 꺾어서 오르막길을 들어선다.

 ▼ 오르막길을 따라 약 50여미를 오르면 오른쪽에 "동화사 부도암 부도"를 만난다.

 ▼ 안내판의 내용
"동화사 부도암 부도"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4호
부도는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모신 것이다. 이 부도는 바닥돌과 몸돌, 지붕돌을 갖춘 팔각원당형으로 크기가 작다. 팔각원당형의 부도 양식은 통일신라시대부터 유행한 것이다. 이 부도는 팔각원당형 부재석의 구성이 단조롭고 지붕돌의 모서리가 없어졌으며, 그 모습이 투박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임진왜란 이후에 제작된것으로 추정된다.

 ▼ 부도암 부도를 지나 약 8분뒤에 이정표가 서있는 삼거리에 도착한다.

 ▼ 이정표(←탑골정상 800M, ↑염불암 700M, ↓동화사 1.2KM), 표지판(탑골등산로 NO 087-05), 삼거리에서 직진하여 염불암 방향으로 간다.

 ▼ 계곡을 따라 염불암으로 송림 포장길이 이어진다.

 ▼ 앞 삼거리에서 8~9분쯤 길을 따르면 길이 좌측으로 꺾이면서 다리 없는 계곡을 건너면 왼쪽에 표지판이 서있다.

 ▼ 표지판(탑골등산로 NO 087-04)

 ▼ 길이 꺾이면서 계곡이 있는 지점

 ▼ 계곡을 건너서 20여미터를 가면 돌탑행렬이 약 200미터 정도 이어진다.

 

 ▼ 돌탑이 끝나는 지점의 왼쪽에 스카이라인으로 연결되는 샛길과 이정표가 서있다.

 ▼ 이정표(스카이라인 600미터, 염불암 200미터)

 ▼ 염불암 입구에 서있는 지주 앞을 들어서서 ~

 ▼ 염불암 입구의 돌탑을 지나고 ~

 

 ▼ 좌우의 능선으로 에워쌓인 지형에 자리잡은 염불암, 높은 축대를 쌓아 사역을 조성해 놓았다. 염불암(念佛庵)은 동화사에서 서북쪽으로 약 2.8km 떨어진 곳으로 팔공산 남쪽 기슭 중 가장 높은곳에 위치한다.  염불암이란 법당 뒤에 있는 큰바위에서 염불소리가 들려 이곳에 암자를 지어 불렀던데서 유래 한 것이다. 동화사 사적명비(同華寺 寺蹟碑銘)에는 신라말 928년(경순왕 2) 영조선사 (靈照禪師)가 창건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에는 만력(萬曆) 40년 (1612)"에 창건 하였다고 되어 있고 1962년 개축시 발견된 "양간록(樑間錄)에 1438, 1768, 1841년에 중창 했다는 기록이 있어 창건 연대는 928년에 가까울 것으로 본다.

 ▼ 극락전으로 올라가는 길에 위치한 동화사 염불암 청석탑 안내문

 

 

 ▼ 좌측 극락전과 중앙 염불바위 우측 요사체

 ▼ 극락전과 청석탑

 ▼ 극락전 앞에 위치한 동화사 염불암 청석탑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9호
청석탑이란 벼루를 만들던 흑색 점판암으로 만든 탑으로, 이 탑은 화강암인 바닥돌 외에는 모두 점판암을 사용했다. 탑의 몸돌은 없어졌고, 10층의 지붕돌만 남아있다. 하부 3층과 상부 1층을 제외한 나머지는 파손이 심해 각 층마다 빗물받이면에 돌을 괴어 지붕돌받침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막고 있다. 지붕의 두께가 얇고 물이 떨어지는 면은 평평하며 네 귀퉁이가 위로 솟아 있어 대단히 경쾌한 느낌을 준다. 지붕돌의 체감율은 비교적 적은 편이지만 넓은 바닥돌위에 놓인 작은 탑이기 때문에 안정감이 느껴진다.

 ▼ 경내 우측에 위치한 요사체, 염불암 현판이 붙어있다.

 ▼ 극락전 뒤 우측에 위치한 염불바위. 염불바위의 양면에 여래상과 보살상이 좌우에 나란히 새겨져 있다.

 

 ▼ 염불바위로 올라가는 길목에 서있는 "동화사 염불암 마애불좌상 및 보살좌상" 안내문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9호
동화사 염불암 안에 있는 큰 바위의 서면과 남면에 새겨진 불상으로 여래상과 보살상을 조각하였다.

 ▼ 염불바위의 서면(여래좌상)과 남면(보살좌상)

 ▼ 서면의 여래좌상
서면의 여래좌상은 남면의 보살좌상은 아미타불로 네모난 얼굴 입가에는 미소를 띄고 있다. 연꽃이 새겨진 화려한 대좌에 앉아 있는데 대좌의 높이에 비해 무릎 폭이 넓어 안정감이 있다.

 ▼ 남면의 보살좌상
머리에 부채꼴의 화려한 관을 쓰고 있다. 옷은 상의와 하의를 걸치는 일반적인 보살과는 달리 왼쪽 어깨를 걸치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방식으로 입고 있다. 무릎위에 얹은 왼손은 관음보살의 특징인 긴 연꽃가지를 들고 있다. 이 불상들은 간결한 선으로 표현하였으면서도 힘있는 윤곽을 나타내 고려초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 극락전 앞 마당으로 내려가 축대 아래 오른쪽으로 꺾어 나가 ~

 ▼ 팻말이 하나 서있는 계곡길로 들어선다.

 ▼ 팻말(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 대구 유형문화재 제20호)

 ▼ 팻말을 지나 4~5분 정도 완만한 오르막을 따라 오르면 좌측에서 올라오는길과 합류한다.

 ▼ 동봉에서 염불암 방향으로 하산시에 이곳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들지않고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염불암을 벗어날것 같다. 조심해야 할 지점

 ▼ 삼거리 뒷편에 서있는 표지판(탑골등산로 NO 087-02)

 ▼ 산 봉우리로 이어지는 철재 전주, 염불암에서 동봉으로 이어지는 길은 시계방향으로 산의 사면을 휘감아 돌아 너덜길로 이어진다.

 ▼ 너덜길에 설치된 자연석 계단

 ▼ 얼어있는 계곡과 자연석 계단

 ▼ 자연석 돌계단을 올라서면 ~

 ▼ 철탑 사거리에 도착한다. 철탑 사거리라고 하지만 철탑은 보이지 않는다. 이전에 이곳에 철탑이 있던 자리인가? 

 ▼ 비로봉 이정표(비로봉 0.9Km). 작년 10월경 비로봉이 개방된 후에 세워진것으로 보인다. 동봉은 오른쪽으로 꺾어 비로봉 방향으로 간다.

 ▼ 철탑 사거리 이정표
이곳이 수태골, 스카이라인, 염불암, 동봉 갈림길이다. 이곳부터 기암괴석이 이어지는데 사정상 촬영하지 못함. 아래 사이트를 참조
http://blog.daum.net/smirinae/6040305

 

 ▼ 철탑4거리를 지나 18분 정도 완만히 올라 동.서봉, 비로봉 갈림길에 이른다.

 ▼ 삼거리 갈림길 이정표

 ▼ 이정표 앞에서 오른쪽으로 동봉으로 향한다. 물론 좌측 비로봉도 작년 년말에 다녀왔었다.

 ▼ 종주등산로 86번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서 10여미터 들어가면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과 헬기장을 만난다. 이 지점은 특별한 표지판이 없기 때문에 이전 삼거리에서 동봉으로 가는 길에 무심코 지나칠 수 있다.

 ▼ 좌측으로 꺾어 들어가는 길목 오른쪽에 삐쭉 서있는 돌이 석조여래입상의 우측면이다.

 ▼ 석조여래입상의 우측 상단부

 ▼ 여래입상 앞(헬기장) 한켠에 서있는 각종 표지판

 ▼ "팔공산 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 안내판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호, 이 불상은 서쪽을 향해 바로 세운 전체 높이 6미터의 거대한 약사여래입상이다. 약사여래는 동방의 정유리 세계에 있으면서 중생의 고통을 없애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 불상도 역시 서쪽으로 향하고 있다. 정면을 향한 입상은 상투 모양의 육계를 갖추고 두 볼은 풍만하며 입가에 약간의 미소를 띠고 있다. 옷은 두 어깨에 걸치느느 방식으로 입고 치마를 걸쳤다. 오른손은 무릎위로 늘어뜨려 바닥을 안으로 하고 있고, 왼손은 가슴위에 올려 물건을 받치고 있다. 옷의 새김은 투박하고 전체 균형도 고르지 못하나 대체로 조화를 이룬다. 비바람에 노출되어 표면은 많이 풍화되었다. 이 불상에는 손과 발의 기형적 조각 수법이 나타나기는 하나 잘 조화되는 옷주름이나 얼굴 모습 등의 조각 솜씨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 팔공산 자연공원 안내도

 ▼ 석조여래입상의 정면, 여래상의 좌우 나무에는 눈꽃이 만발하다.

 

 ▼ 석조여래입상앞의 헬기장과 헬기장 건너 최근에 개방된 비로봉 전경

 

 ▼ 여래입상 앞 헬기장에 서있는 이정표
(←비로봉 0.3km, →동봉 0.2km,  ↑수도사 5.3km)

 ▼ 여래입상의 전면에는 헬기장과 비로봉이 있고 입상의 뒤로는 동봉이 서있다. 

 ▼ 여래입상을 되돌아 나가서 왼쪽으로 꺾어서 동봉으로 향한다.

 ▼ 돌계단과 나무계단을 이어서 따라 올라간다. 눈이 많이 녹지 않았다. 조금은 미끄럽지만 아직 아이젠은 착용하지 않았다. 

 

 

 ▼ 눈꽃이 만발한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 가면 바위로 조성된 동봉 정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