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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영의 보금자리
▣ 대구의 산/대암봉-요령봉-능천산

대암봉-옻골재(옥곡재)-요령봉-능천산 (3)

by 영영(Young Young) 2009. 5. 9.

   ▼ 왼쪽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매우 희미해서 자칫하면 지나치기 쉬운 지점이다.

   ▼ 옥곡재를 출발하여 오름길로 능선(봉우리)에 도착했을쯤 곧바로 방공호 옆으로 좌회전한다.

   ▼ 440미터 봉(갈림길)에서 좌회전 한후 짧은 급경사 내림길을 내려서면 편안한 길이 이어진다.

 

   ▼ 둥글므레한 방구들. 밋밋한 등산길에 반가운 친구다.

   ▼ 철늦게 핀 진달래 한그루

   ▼ 요령봉 정상 조금밑에 시커먼 고사목이 있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오른다. 왼쪽은 돌곡재를 거쳐 성령(새미기재), 환성산 방향이다.

 

   ▼ 커다란 바위옆을 지나서 ~

 

   ▼ 미끄러운 마사토 길을 로프를 잡고 올라서면 ~

 

   ▼ 바위들로 이뤄진 요령봉 정상

 

   ▼ 요령봉 정상. 누군가 바위에 검은글씨로 요령봉 492미터라고 표시해놓았다.

   ▼ 정임근...어디서 많이 들은듯한 이름

 

 

 

 

 

 

 

 

 

 

   ▼ 능천산을 향하여 다시 올라온길로 몇걸음 되돌아나와 오른쪽으로 진행한다.

 

 

   ▼ 내림길 오른쪽으로 석굴(토굴이란 표현은 잘못됨)로 가는 길이 있는데, 현재 이곳 주인이 수양에 방해가 된다고 나무로 등로를 가려 놓았다.

   ▼ 잠시 석굴을 둘러보고 내려가기로 했다. 요령봉 정상에서 만난 산객 한분이 이곳 석굴을 소개해 주셨다. 

   ▼ 석굴의 전면. 철판 출입구와 그 위에 안내문이 붙어있다.

   ▼ 이 석굴은 상매동에 있던 모씨가 수양을 하기위해서 5년간에 걸쳐서 축조한 인공석굴이라는 설명이다.

   ▼ 석굴을 되돌아나와 다시 가던길로 진행한다

   ▼ 왼쪽으로는 마을이 내려 보이고 ~

 

 

   ▼ 오른쪽으로는 봉우리 하나가 오뚝 섰는데 ~

   ▼ 갈림길에서 오른쪽 봉우리가 있는곳으로 진행한다. 왼쪽길은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다.

   ▼ 봉우리에 올라서니, 평평한 정상이고 다시 눈앞에 봉우리가 나타난다. 이곳은 고도 364미터로 능천산 정상(380미터)보다는 10~20미터쯤 낮은 지점이다.

   ▼ 다음 봉우리로 잠시만 진행하면 곧바로 능천산 정상이다. 돌탑과 정상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 상매동(매여동 아님) 마을이 나무사이로 내려보일뿐 능천산의 조망은 거의 없다.

 

   ▼ 능천산 표지판이 걸려있는 남쪽(상매동)방향으로 내려간다.

 

 

   ▼ 오늘 기온이 32도쯤 될것 같다. 다른해보다 5도 정도 높다고 한다. 능천산 정상에서 수통의 물은 바닥이 났다. 비교적 뚜렷한 오솔길을 따라 편하게 내려간다

 

   ▼ 진행로의 오른쪽(사진에서 왼쪽이란 표기는 잘못됨)에 영모제가 있다.

   

영모제와 능청산 망곡봉(綾泉山望哭峯)

대구시 동구 부동 동사무소에서 동쪽으로 1.5㎞쯤 가면 능천산 망곡봉(綾泉山 望哭峯)이 우뚝 솟아있다. 원래는 벌바위라 불리었는데 지금으로부터 300여년 전 조선 후기 경종 임금대에 이르러 효성이 지극하고 충성심이 강직하신 한 할아버지가 있었으니 성은 성산 여씨요 자(字)는 자고(子高) 諱자(回字)는 大翊(대익) 호는 영모재(永慕齋)이다.

   이 할아버지는 부친께서 병으로 눕게되자 의복을 벗지 아니하고 숙식을 같이 하면서 병을 간호하였고 병환의 정도를 알기 위해 부친의 대변맛도 보았다고 하며 또한 지혈로서 생명을 구하고자 했으나 타계하시어 능천산 양지바른 곳에 묘소를 정하고 그 옆에서 묘소를 보살폈다고 한다. 그토록 정성이 지극한 할아버지가 가뭄이 들어 물을 길어오기가 힘들었을 때 갑자기 산신령이 나타나 샘물자리를 찾아주므로, 그 곳에서 흙을 두자(二尺)도 파기전 솟아나 후세 사람들이 효천(孝泉)이라 불렀으며 그 곳은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았고 한다. 또 할아버지는 충성심이 남달라 숙종 임금께서 승하하시자 능천산에 망곡단(望哭壇)을 쌓아 놓고 목놓아 슬피 울면서 세월을 보내던 중 새로 임금자리에 오르신 경종께서 또 승하하셨다는 비보를 듣고는 영원히 산을 내려오지 않으므로 고을 사람들이 그 곳에 집을 지어 드렸으나 끝내 집에 들어가지 않으시고 세상을 떠나심에 300년이 지난 지금에도 할아버지 묘옆에 빈집이 할아버지를 대신하여 서 있으니 그 이름을 할아버지의 호를 따서 영모제라 했다고 한다. 그 후 영조대왕께서는 이 할아버지에게 증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贈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란 벼슬을 내리셨다고 하며 이 능천산(綾泉山)에 망곡단을 쌓았던 봉우리를 능천산 망곡봉(綾泉山 望哭峯)이라 불리어진다.

 

 

 ▼ 영모제의 맞은편에는 묘지가 있고 ~

 ▼ 영모제의 후방에는 쉼터가 있다.

 

 ▼ 이곳도 간이 제실?

 ▼ 영모제를 지나서는 임도길이 이어진다.

 

 ▼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간다.

 

 ▼ 영모제를 비롯하여 이곳 묘들이 굵직굵직한 묘들이다. 아래 사진도 가족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