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1일 두류공원의 주 산책로인 '두류여울길' 주변의 시설 등을 돌아보았는데 여울길에서 접근이 어렵거나 사전에 알지 못해서 미처 돌아보지 못한 2.28민주화기념탑, 두류수영장, 안병근올림픽기념관을 비롯한 유아숲체험장 등을 돌아 보았다.
광장휴게소 부근에서 출발해서 시계방향으로 한바꾸 돌면서 두류여울길 주변의 시설 등을 살펴보았다. 요 며칠간 차가운 날씨지만 미세먼지 없는 맑은 날씨를 보여 주었는데 오늘은 날씨가 풀리면서 갑자기 미세먼지가 나빠졌다. 봄바람 처럼 간간히 찬 바람은 불어오는 듯 했지만 따뜻한 날씨에 남녀노소 공원을 많이 찾아왔고, 다음달 9일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선거유세차의 홍보방송이 공원을 울리고 있었다.
■ 일 자 : 2022. 2. 25(금), 모처럼 포근한 날씨, 그간 미세먼지 없다가 오늘 날씨가 풀리면서 심해짐
■ 코 스 : 광장휴게소 - 2.28학생기념탑 - 두류도서관 - 분수대 - 두류야구장 - 유니버시아드테니스장 - 시민헌장 - 두류수영장 - 인라인스케이트장 - 안병근올림픽기념유도관 - 성당휴게소(이마트24) - 성당못/대구관광정보센터 - 자연석폭포 - 성니꼴라오피정의집 - 골프연습장 - 산마루휴게소 - 대구사범학생독립운동기념탑 - 인물동산 - 유아숲체험원 - 대구관광정보센터 - 광장휴게소
■ 탐방거리 : 4.96km * 산길샘 기록
■ 탐방시간 : 1시간 47분
2·28민주운동은 자유당 정권이 장면 박사의 유세장에 학생들이 참석하지 못하도록 대구의 8개 공립 고등학교에 일요일 등교 지시를 내리자, 1960년 2월 28일 경북고를 비롯한 대구 8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이에 반발하여 거리로 뛰쳐나와 자유당 정권의 독재정치와 부정부패에 항거해 가두시위를 벌인 것이다.
'위대한 인물 달성서씨 서강준의 덕을 밝히는 비’라는 뜻의 ‘偉人達城徐 俊彰德碑(위인달성서강준창덕비)’라고 새겨져 있다.
이 비석은 본래 반고개 정상 북편에 있던 것을 1977년 달구벌대로를 확장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온 것으로 두류공원관리사무소에서 관리하고 있다.
출처 : 영남일보 기고문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160225.010290814040001
인터넷뉴스팀 입력 2016-02-25 발행일 2016-02-25 제29면 수정 2016-02-25
1981년 개관한 두류도서관은 28만 여권의 도서와 14,000여점의 디지털 자료를 보유하고 독서문화행사, 평생교육 프로그램, 전시회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종합자료실, 어린이실, 범사 이상희 문고 등의 자료실를 갖추고 시민들의 독서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1983년 9월22일 밤, 당시 영남고등 1학년이었던 고 허병철은 미 문화원 앞에서 ASTA IPU국제 행사를 방해하기 위해서 북한에서 설치한 폭발물을 발견하여 이를 신고하고 현장에 다가서는 순간 폭발, 현장에서 산화하였고 이를 알리고 선양하기 위해 1984년 4월 대구시내 고등학생 일동이 세운 비문이다.
대구시민헌장은 1972년 1월 1일 제정 공포하였고, 1977년 10월 세워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두류공원에 밥 먹듯이 출근하는 사람도 시민헌장비가 어디에 있냐고 물으면 모른다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보통 사람의 패턴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사니까 ~
대구 시민헌장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들은 신라 문화의 유구한 전통의 계승자이며, 인계자로서의 성스러운 이상과 명예로운 의무에 사는 대구 시민이다. 인간의 가치로움과 평등의 이름 아래 모이고 일하며, 우리들 스스로가 마련한 우리들의 법률을 지키고 행할 것이며, 정다운 가정을 이룩하여 이웃을 사랑하고 내 고장의 풀 한 포기, 돌 하나에도 서로가 이해로써 아끼고 가꾸어, 우리 모두의 것으로 책임을 다 할 것이며, 보다 밝고 의젓한 시민으로서 귀여운 우리의 아들딸들에게 물려줄 크고 알찬 새 도시의 창조자이자 임자임을 자부한다. 』
띄어쓰기나 글자의 배열이 어설프지만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공덕비에 쓰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주한 미 후방 기지 사령관으로서 이 재이 매기우 소장께서 남긴 불멸의 공훈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대구시민의 이름으로 이 공덕비를 세우다. 4288. 3. 30 건립'
이 비는 6.25전쟁 당시 주한미군 후방기지 사령관으로 재임한 E.J메가우 소장의 전공과 전쟁직후 빈민구제사업 및 질서유지 등을 위해 남긴 불멸의 공훈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대구시민과 예하부대원들의 이름으로 1955년(단기 4288년) 3월 30일 달성공원내에 건립 존치해오다가 1978년 12월23일 달서구 두류동 571번지로 이전하였는데 우방랜드(이월드) 설치로 1991년 현위치로 이전하였다.
유니버시아드테니스장은 두류공원 경기장 또는 두류공원 축구장으로 불리며 약 20년 동안 축구 경기장으로 대부분 활용되다가 2003년 6월 20일 증개축 준공하여 2003년 8월 대구유니버시아드 대회때 테니스장으로 활용하였고 그때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부지면적 1만 5,603㎡, 건축연면적 1,617㎡, 센터코트 1면, 제1서브코트 1면, 서브코트 8면의 경기장 2,081㎡의 규모로 관람석은 3,095석이 마련되어 있다.
두류수영장 배치도와 항공사진이다.
출처 : 대구시설공단 두류수영장 홈페이지, https://duryuswim.dgsisul.or.kr/
두류수영장은 1984년에 건립되어 저렴한 비용부담으로 수영, 다이빙, 워터파크 등 여가활동을 제공하고 수영, 아쿠아로빅, 에어로빅, 요가 등 강습교육을 제공하는 복합 레저문화공간이다.
1984년 제23회 LA올림픽 유도부분 라이트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대구 출신의 안병근을 기념하기 위해 대구시가 국민체육진흥재단과 대한유도회의 지원을 받아 1987년 12월에 건립한 시설이다. 건립시 명칭은 두류유도관이었다.
유도관에는 기념전시실 등이 있고 일반인도 저렴한 가격으로 유도수련을 배울 수 있다.
대구사범학생 항일독립운동은 1930년 후반부터 40년대 초에 걸친 암울했던 시기에 일제의 국가총동원법과 치안유지법이 난무하던 가혹한 시대적 배경하에서 일어났고 혹독한 탄압 속에서 줄기차게 투쟁을 전개하였다.
기념탑은 1941년 2월 대구사범학교 재학생 박효준 등 35명이 항일결사 모임을 조직하여 일제 식민통치에 반대하는 항일투쟁을 전개한 데 대한 공훈을 기리고 옥중 순국한 강두안, 박제민, 박찬웅, 서민구, 장세화 등 5인에 대한 추모를 위하여 1997년12월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박희광 선생은 경북 구미 출신으로 일제시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펼치셨던 애국지사였다. 18세 때 대한통의부 특공대원으로 입대하였으며 만주지역의 다양한 항일독립전쟁을 전개, 봉천 일본총영사관에 폭탄을 투척 하는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1968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국민장 서훈을 받았다고 한다.
애국지사 백산 우재룡은 일제강점기 대한광복회를 결성해 무기조달 및 격문발송을 담당한 독립운동가로 광주, 목포, 만주에서도 활동하다 광복 후 대한광복회를 재건해 독립운동 관련 사업에 전념했고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되었다.
애국지사 운영 조기홍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3월 8일 대구큰장날 동지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친 인물로, 옥고를 치르면서도 출옥 후 항일 독립 운동을 계속 진행했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안내판에 유아들이 산림의 다양한 기능을 체험함으로써 오감을 통해 자연과 교감하는 등 진인적 성장을 유도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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