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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영의 보금자리
▣ 자전거 #라이딩

대구자전거길 01 시내권역

by 영영(Young Young) 2021. 6. 27.

2015년도에 대구시에서 작성한 '대구자전거지도'의 01 시내코스를 돌아보았다. 공식거리는 약 9km거리인데 주변을 돌아보니 1~2km가 더 길었다. '01 시내코스' 출발점인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까지 집에서 갈때는 금호강변 자전거길을 따라갔고, 수성구 사월동 집까지 돌아올때는 일반도로를 이용했다. 시내권역 탐방코스는 짧은 대신에 오고가는 접속거리가 41km나 되었다.  

이 코스는 대구의 중심 대구백화점, 동아쇼핑, 현대백화점, 롯데백화점 등 현대적인 상권이 모여있으며 대구의 양대 재래시장인 칠성시장과 서문시장에서 서민들의 삶을 느낄수 있다. 그 외 경상감영공원이나 종로, 동성로, 남성로, 서성로, 북성로 등 대구의 근대역사와 명물거리 등을 돌아볼 수 있고 코로나 19로 제약이 많지만 활기넘치는 많은 젊은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코스이다. 
개인적으로 이곳 시내는 70년대 중후반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자주 어울려 놀았던 곳이기도 하여 감회가 새로웠는데 새색시 분단장 하듯 모든것이 말끔하게 변해버린 지금은 옛 정취를 느끼기에는 부족했다. 


■ 탐방일 : 2021. 6. 23(수), 흐린뒤 갬

■ 탐방코스 : 대구자전거길 01 시내권역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시청-칠성시장-교동시장-경상감영공원-태평로-달성공원-서문시장-동산-병원-이상화 고택-약전시장-염매시장-동성로-대구백화점-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 탐방거리 : 10.9km  * 트랭글 기록  (대구자전거지도의 공식거리는 9km)

ㅇ 접속거리 및 시간 : 41.7km, 3시간 8분
 - 갈때(수성구 사월동에서 국채보상기념공원)  27.4km, 1시간 53분 / 금호강변 자전거도로 이용
 - 올때(국채보상기념공원에서 수성구 사월동)  14.3km, 1시간 15분 / 국채보상로, 고모로 등 일반도로 이용

■ 탐방시간 : 1시간 53분

 

 

▲ 대구자전거길 18코스중 01번 코스 '시내권역'코스
▲ 오늘 돌아본 코스를 다음지도에 표시해 보았다.
▲ 수성구 사월동에서 자전거 코스인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으로 향한다. 아파트 쪽문으로 나가는 길목에 서있는 큼직한 팽나무가 눈길을 끈다.
▲ 남천과 금호강을 따라 시내로 간다. 출발시에는 흐린 날씨였는데 차차 날씨가 개었다.
▲ 수많은 다리중에 첫번째 다리인 성동교를 지나고 ~
▲ 이어서 성동1교를 지나고 ~
▲ 금호강과 남천이 합류하는 매호교 부근에서 ~
▲ 우향하여 잠수교를 건너간다.
▲ 잠수교를 건너 우향하여 금호강 제방길을 따라간다.
▲ 진행로 우측 금호강 건너에는 율하단지가 위치한다.
▲ 율하지구로 연결되는 가천잠수교 옆을 지나서 계속 제방길을 따라간다.
▲ 금호강교에서 범안대교로 연결되는 비포장 자전거도로의 포장공사가 마무리중이다.
▲ 범안대교를 통과하고 ~
▲ 수성구 고모동 철새 전망대앞을 지난다.
▲ 강촌햇살다리를 건너서 ~
▲ 좌향하여 인터불고 방향으로 진행한다.
▲ 화랑교를 통과하고 ~
▲ 자전거도로를 살짝 벗어나 우측 데크길로 올라가 동촌해맞이다리를 건너간다.
▲ 다리건너 우향하여 금호강 자전거길을 이어가면 시원한 아양폭포를 만나고 ~
▲ 아양교를 통과하고 ~ 지난 5월 28일 신천을 따라 가창호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폭우를 만났고 이 다리밑에서 10여분 쉬어간 일이 있다.
▲ 지금은 용도폐지된 아양철교(현재는 카페와 문화공간)를 통과하고 ~
▲ 공항교를 통과하고 ~
▲ 금호2교 통과 ~
▲ 고속도로 처럼 쭈욱~ 뻗은 자전거길
▲ 우전방 금호강 건너에는 유니버시아드선수촌 단지가 들어서 있다.
▲ 유니버시아드선수촌 단지 앞의 금호1교 통과 ~
▲ 산격대교 통과 ~
▲ 무태교 통과 ~
▲ 침산교 직전 우회전하여 침산잠수교를 건너 자전거수리센터 앞에서 좌향한다. 오른쪽은 강정고령보 방향이다. 침산교 방향으로 직진하여도 되지만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는 신천을 건너야 한다.
▲ 신천의 첫번째 다리인 침산교를 통과한다.
▲ 신천 좌측에는 산격동의 대신초등학교 건물이 보이고 ~ 오른쪽 후방에는 침산화성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 성북교 아래를 통과하고 ~
▲ 도청교 통과 ~
▲ 경대교 통과 ~
▲ 신천을 따라 조성된 자전거길이 너무나 멋지다.
▲ 칠성교 부근 신천대로 아래에는 삼삼오오 많은 분들이 장기 등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신천 자건거길을 벗어나 칠성시장과 동인네거리 등을 따라 오늘 자전거길 ' 01 새내권역'의 출발점인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 도착한다.

 

▲ 국채보상(國債報償)운동
국채보상운동은 일본이 한국을 경제적으로 예속시키기 위해 강압적으로 떠안긴 차관 1,300만 원을 온 국민의 힘을 모아 청산함으로써 경제 자립을 실현하고 나아가 국권을 회복하자는 운동이었다.
국채보상운동이 처음 제안된 것은 고종 44년인 1907년 1월 29일, 대구에서 출판사를 운영하며 애국계몽운동을 벌이던 광문사의 서상돈이 금연운동을 통하여 국채를 보상하자고 제의했고, 이어 2월 21일, 대구 북후정(北堠亭)에서 대동광문회 주최로 국채보상을 위한 대구군민대회가 열려 국채보상취지서가 발표됐고, 대구 광문사(廣文社) 사장 김광제(金光濟)와 부사장 서상돈(徐相敦) 등의 명의로 〈대한매일신보〉에 국채보상(國債報償)취지서를 게재한 이후로 대구에서 비롯된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으로 급속히 확산돼 각계각층의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운동이었다. 

 

 

▲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에서 시작되어 전국을 휩쓴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2011년 10월에 준공 개관하였고 매년초 타종행사를 하는 달구벌대종각이 공원내에 위치한다.
▲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이 위치한 종각네거리에서 대구자전거길 01 시내권역 탐방을 시작한다. 북쪽 대구공항 방향으로 360미터 이동한다.
▲ 동인네거리에서 칠성시장 방향으로 직진한다.
▲ 곧바로 동인지하차도를 통과하고 ~
▲ 동인지하차도 지나서 70~80여미터 이동하여 칠성요양병원 앞에서 좌향한다.
▲ 칠성시장로를 따라 170미터쯤 이동하여 칠성시장 네거리에서 좌향하여 칠성시장로7길(중앙선 없는 골목길)을 따라 230미터 이동한다.

 

▲ 칠성시장
칠성시장(Chilseong market, 七星市場)은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에 위치한 대구광역시의 전통시장이다.
대구광역시에서 서문시장에 이어 규모가 2번째로 큰 시장이며, 서문시장과 함께 2대 장터를 이루고 있다. 동촌 및 하양 등지에서 사과와 농산물이 많이 집결하여 한때는 동천시장이라고 불리기도 했었다. 1946년에 시장공영화 정책에 따라 북문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상설시장이 개설되었고, 현재는 칠성시장, 경명시장, 대성시장, 칠성꽃시장, 대구청과시장, 삼성시장, 북문시장, 능금시장, 가구시장 등 여러 개의 시장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종합시장이 되었다. 9개 시장을 모두 합쳐 흔히 칠성시장이라고 부른다. 시장 구내에 대구청과시장, 삼성시장 등의 작은 시장들도 있으며, 시장 끝에는 칠성전자상가가 있다. 서문시장과는 달리 상가형 시장이며, 돼지골목과 닭골목 등 맛집 골목도 시장 구내에 많이 있다.
2019년 11월 2일 칠성교와 경대교 사이 신천둔치 공영주차장에 '별별상상 칠성 야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야시장이 개장했다. 대구역과 가까우며 인근시장으로는 교동과 대구약령시가 있다.

 

 

▲ 공평로를 만나 좌향하여 곧바로 칠성지하차도를 통과한다.

 

공평로는 중구 삼덕동2가 봉산육거리에서 북구 칠성동2가 칠성고가도로하단을 잇는 왕복 4차선 도로로서 총 거리는 약 6.0km이다. 도로명은 중구의 법정동인 공평동에서 유래되었다. 대구시청이 도로 중턱에 위치한다. 

 

 

▲ 도로 우측에는 칠성꽃도매시장이 위치한다.
▲ 교동네거리에서 경상감영공원 방향으로 우향하여 태평로를 따라서 580미터 이동한다.

 

태평로(太平路)
대구 도심인 동성로의 북쪽을 통과하는 도로라서 교통량이 늘 많은 편에 속한다. 도로 북쪽으로 경부선이 나란히 달린다. 원래는 대구광역시 원도심을 통과함으로써 철도역과 맞닿고 연선에 그에 따른 철물점, 공구점 등과 상업 시설이 많았으나, 최근에는 재건축을 통하여 대구역센트럴자이, 힐스테이트도원센트럴, 힐스테이트 대구역 등 많은 주거오피스텔 및 아파트가 지어지게 되면서 연선 풍경이 많이 바뀌고 있다.

 

 

▲ 대구역으로 가는 길 좌측에는 교동시장이, 우측에는 번개시장이 위치한다.

 

대구 교동시장
‘탱크 빼고 다 있다’. 없는 것이 없다는 교동시장. 교동시장의 역사는 약 60여년 전 6.25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6.25 사변 이후 대구역을 중심으로 대구에 몰려든 피난민들이 전시(戰時)시장을 펼쳤고,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군수품들이 거래되었다. 
1970~80년대 대구 양키시장은 군용품, 미제 물건의 집산지였다. 츄잉껌, 초콜릿, 꼬냑, 바셀린, 간스메(통조림), 비스킷부터 MRE(전투식량), 워커(군화), 군용담요, 군복, 대검, 야전삽, 수통까지. 상가엔 잡화, 식료품, 군수품이 차고 넘쳤다.
양키시장은 온갖 희귀품과 외제품 등 다양한 물건들이 있어 ‘도깨비시장’으로도 불렀는데, 단속반이 뜨면 가판의 물건들이 순식간에 사라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70년대 후반 교동시장으로 바뀌며 의류, 잡화, 라디오, 전자제품 등 다양한 물품을 판매하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전자거리, 귀금속거리, 양키골목, 먹자골목 등 다양한 골목이 형성되어 있다. 현재 이곳은 13개 품목을 판매하고 있으며 약 1500개의 점포가 운영되고 있다. 

번개시장
번개시장은 대구역과 롯데백화점 바로 옆에 위치한 곳으로, 지금으로부터 40여년 전 대구 근교 지역의 농민들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싸들고 와 역전에 자리를 펴면서 형성된 전통시장이다. 새벽부터 아침까지만 번개처럼 장이 섰다 사라진다 하여 번개라 불렸다는 이곳은 현재는 종일 장이 열리는 시장으로 변모했다. 

 

 

▲ 대구역 네거리에서 좌항하여 중앙대로로 들어선다.

 

중앙대로는 대구 남구 대명동에서 북구 산격동까지의 대구 중심의 정중앙을 종행하는 도로이며 우리에게는 '중앙통'이란 이름이 더 익숙하다. 

 

 

▲ 중앙대로를 따라 몇걸음 옮기면 우측에 '북성공구골목'이라는 표시판이 눈에 들어 온다.

 

북성루 공구골목의 흥망성쇠를 잠시 살펴본다. 
1950년 6·25전쟁을 전후해 북성로 인근에 미군부대가 주둔한다.
미군이 사용한 군수물자가 대구역과 같은 물류기지와 배급창을 통해 쏟아져 나왔고 일부 상인들은 이를 수집해 북성로에서 팔기 시작했다. 산업화가 본격화한 1970년대 들어 곳곳에 공단이 조성돼 산업용품 수요가 증가하면서 점포가 급증해 북성로 전체가 공구상으로 가득했다. 대구역 네거리에서 달성공원까지 1㎞에 이르는 거리에는 공구상, 철물점이 넘쳐났고 이곳에서 떼돈을 번 상인이 수두룩했다. 국내 대표적 공구상가로 특화한 북성공구골목은 점포마다 규모가 작아도 굴리는 자금이 만만찮았다고 한다.
1990년대 중반 대구시가 북구 산격동에 대구종합유통단지를 조성하며 공구골목도 전환점을 맞았다.
시가 정책적으로 이전을 장려해 유통단지로 점포를 옮기는 업체가 늘면서 공구골목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아직 수백개 점포가 영업하고 있지만, 경기침체에 인터넷 쇼핑몰까지 생기는 바람에 장사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 대구역에서 중앙대로를 따라 340미터 이동하여 중앙로역 4번 출구, 작은 사거리(우리소리보청기, GS25)에서 우향하여 경상감영길을 따라간다.
▲ 100미터쯤 이동하면 우측에 경상감영공원이 위치한다.

 

경상감영공원(慶尙監營公園)
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에 있는 공원. 조선 선조 때의 경상감영이 있던 곳으로 1910년부터 1965년까지 경상북도 청사로 사용하였다가 청사가 다른 장소로 이전되고 난 후 대구시에서 1970년 중앙공원으로 최초 개장하였다. 
1997년에 공원 내 문화재들을 바탕으로 새롭게 재단장 한 뒤 경상감영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변경했다. 
경상도 관찰사의 집무실인 선화당(유형문화재 제1호)과 처소로 사용한 징청각 (유형문화재 제2호) 그리고 관찰사의 치적이 담긴 선정비(29기) 등 대구의 역사와 관련된 문화유산이 존재한다.
출처 : Daum백과

 

 

▲ 대구중부경찰서와 곽병원 앞을 지나 ~
▲ 아까전 중앙로역 4번 출구 부근 작은 사거리에서 600미터 이동하면, 한일종합상사 네거리에서 서성로를 만나 우향하여 560미터 이동한다.

 

서성로
일제가 대구읍성 서쪽 성벽을 허물고 난 후에 생긴 길이 1.12km의 길로. 비교적 작은 인도로 되어있는 동성로, 남성로, 북성로와는 달리 유일하게 차도인 가로이다. 도로 한가운데에는 성곽 모양의 중앙분리대가 설치되어 있다.
명물거리인 돼지골목과 깡통골목이 있다. 돼지골목은 돼지고기집이 즐비하게 늘어선 골목이고 깡통골목은 함석점거리라고도 하는데 한국전쟁 이후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깡통이나 드럼통 등을 재생하여 파는 상점이 생기면서 깡통골목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이후 함석(아연도금철판) 사용량이 줄어들자 1978년경부터는 보일러상, 철물상, 함석상 등 다양한 상가가 형성되었다.
북성로와 서성로가 만나는 지점에 북성로 돼지불고기 골목이 있다.

 

 

▲ 진행로 우측으로 북성공구골목이 위치한다.
▲ 태평네거리에서 서대구IC방향으로 좌향하여 태평로를 따라서 880미터 이동한다. 네거리 좌측에는 대구역센트럴자이가 위치하고 수창공원을 지난다.
▲ 달성파크푸르지오힐스테이트 아파트 공사중인 달성네거리 에서 직진하여 태평로를 따라 100미터 이동한다.
▲ 적십자혈액원 승강장 지나 사거리에서 달성공원 방향으로 좌향한다.
▲ 달성공원로를 따라 150미터 후방 갈림길에서 큰길을 따라간다.
▲ 아까전 네거리에서 550미터쯤 가면 진행로 우측에 달성공원 입구를 만난다.

 

대구 달성(大邱 達城)은 대구시 중구 서문시장 가까이에 있는 성곽으로 평지의 낮은 구릉을 이용하여 쌓은 삼국시대의 성곽이다. 높이는 일정치 않으나 4m정도이며, 둘레는 약 1.3km이다. 성벽은 주로 흙으로 쌓았고, 성벽 윗부분에는 큰 돌덩어리들이 군데군데 드러나 있어 후대에 수리한 것으로 보인다.
달성공원은 일제 강점기 고종 광무 9년(1905)에 동물원으로 개장하여 대구의 가장 오래된 대표적인 공원으로 자리잡으며, 오랜시간 대구 시민과 함께 해왔다. 공원 안에는 경상감영의 정문이었던 관풍루가 있고, 잔디광장, 종합문화관, 동물원 외에 이상화 시비 등과 같은 기념물이 있다. 추억스린 달성공원 동물원은 달성 토성 복원 및 대구 수성구 삼덕동 대공원지구개발계획에 따라 대구대공원내(구름골 지구)에 2023년까지 이전할 계획으로 추진중이다.

 

 

▲ 달성공원 입구에서 직진하여 350미터 가면 큰장네거리에서 좌향하여 국채보상로를 따라 230미터 이동한다.
▲ 동산네거리에서 우향하여 달성로를 따라 620미터 이동한다.
▲ 진행로 오른쪽에는 서문시장이 위치한다.

 

서문시장(西門市場)
서문시장은 대구 중구 대신동에 있는 대구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재래시장이다. 재래시장으로 전국 3대 전통시장으로 꼽힌다. 조선 중기 5일장으로 시작했으며 과거에는 ‘대구장’이라 불렸다. 서문시장(西門市場)은 17세기 대구읍성 서문 밖으로 이전하면서 붙은 이름이다.
서문시장은 전체 6개 지구로 구성된다. 6개 지구는 1지구, 2지구, 4지구, 5지구, 동산상가, 건해산물상가 등이다. 2016년 기준 서문시장에서 영업하는 점포는 4,600개 이상이며 상인 수는 약 2만 명이다. 시장에서는 주단과 포목 등 섬유 관련 품목과 한복, 이불, 의류, 그릇, 공예품, 청과, 건어물, 해산물 등 다양한 상품을 거래한다. 영업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로 상가 및 점포마다 차이가 있다. 쉬는 날은 매월 첫째, 셋째 일요일이다.

 

 

▲ 진행로 왼쪽에는 전통을 가진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이 위치한다.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啓明大學校 大邱東山病院, KEIMYUNG UNIVERSITY DAEGU DONGSAN HOSPITAL)
대구동산병원 건물은1899년 초기의 근대적인 병원으로 세워진 제중원의 후신이다. 1905년 종합병원으로 설립되었고, 1967년 대구 동산기독병원 유지재단이 설립되면서 독립법인으로 발전했으며, 1982년에는 계명대학교의 동산의료원으로 편입되었다. 
2019년 4월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이 대구시 달서구로 이전하기 전 까지 사용하던 건물이다. 대구동산병원 내에는 의료선교박물관이 있어 100여 년에 걸친 대구지역 선교·의료·교육의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고 관람료는 무료이며, 휴일에는 휴관한다. 

 

 

▲ 청라언덕역(신남역) 4거리에서 좌향하여 달구벌대로를 따라서 500미터 이동한다.
▲ 진행로 우측후방의 서현빌딩은 지금은 고층건물에 빛이 가리지만 나름 오래된 건물이다.
▲ 계산오거리에서 직진방향으로 횡단보도 건너 미소시티 아파트 앞으로 이동하여 ~
▲ 계산오거리에서 달구벌대로를 따라 200미터쯤 진행하면 미소시티아파트 오른쪽에 2011년 8월 19일에 개점한 현대백화점이 자리잡고 있다.
▲ 미소시티 아파트 왼쪽 골목으로 70미터쯤 이동하면 골목 좌우에 시인 이상화 고택과 서상돈 고택이 자리잡고 있다.

 

시인 이상화 고택
계산오거리에서 신성미소시티 왼쪽 골목안으로 70미터쯤 들어가면 있음
대구 계산동 2가 84번지에 위치한 고택은 항일문학가로 잘 알려진 이상화(李相和, 1901 ~1943) 시인이 1939년부터 작고하던 1943년까지 거하던 곳이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민족의 광복을 위해 저항정신의 횃불을 밝힌 시인 이상화선생의 시향이 남아있는 곳이다. 
이상화고택은 1999년부터 고택을 보존하자는 시민운동으로 시작하여 군인공제회에서 인근 주상복합아파트를 건립하면서 고택을 매입해 지난 2005년 10월 27일 대구시에 기부채납했다. 대구시는 대지면적 205m², 건축면적 64.5m²(단층 목조주택 2동)의 고택을 보수하고, 고택보시민운동본부에서 모금한 재원으로 고택 내 전시물 설치를 완료했다. 이상화 고택은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 일제에 저항한 민족시인 이상화의 정신을 기리고 후손에게 선생의 드높은 우국정신과 문학적 업적을 계승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된다.
출처 : Daum백과

 

 

 

서상돈 고택
서상돈(徐相敦, 1851~1913)은 조선 말기의 기업인이자 관료였고 민족 독립운동가였다. 대구에서 지물 행상과 포목상으로 성공한 인물로, 정부의 검세관이 되어 조세곡을 관리하기도 하였다. 1907년 정부가 일본에 빚을 많이 져 국권을 상실한다고 생각하여 대구 광문사 사장인 김광제와 함께 금연으로 나라의 빚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을 벌였다, 대구시는 계산동 이상화 고택 옆에 있었던 서상돈의 생가를 복원하였고 국채보상공원을 조성하고 동상을 세우는 등 그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
출처 : Daum백과

 

 

▲ 고택과 연결된 담장에는 각종 근대건물에 대한 벽화와 설명이 붙어있다.
▲ 고택을 보고 약령길을 따라 100미터 이동하면 갈림길에 상평통보 조형물이 서있고 ~
▲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50미터쯤 가면 합천약업사/천일한약방 네거리에서 우향한다.

 

대구 약전골목
대구광역시 중구 남성로 51-1
대구약령시는 조선조 효종 연간에 한약재와 약초를 파는 시장으로 개설되었다. 과거에는 봄과 가을에 한 달씩 열렸지만 오늘날에는 상설화된 전통시장으로써, 한약재 도매시장을 통해 다양한 한약재를 사고팔고 있으며, 해마다 한방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점포 수 150여 곳, 시장 면적 28,454m2로, 현재 대구의 중심지인 남성로와 동성로, 계산1~2가, 종로2가, 장관동, 상서동 일부를 포함해 715m 가량의 도로변을 따라 가게들이 즐비한데 그 가운데 70~80%가 약재와 관련된 가게인 탓에 이곳을 약전골목이라 부른다.  

 

 

▲ 우향하면 도로 좌우에 근대식 건물인 제일교회와 교남YMCA건물이 위치한다.

 

대구제일교회
1933년 건축된 대구제일교회는 경북지방에 처음 생긴 기독교회로, 선교사들이 이 지방을 개화시키기 위해 근대적 의료 및 교육을 전개했던 곳으로 근대적 의료 및 교육을 전개하였던 거점으로서 역사적 의의를 지닌 곳이다. 또한 대구제일교회에서 개척하거나 분립하여 나간 교회는 20여 개에 달할 정도로 대구지역모교회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출처 : Daum백과

 

 

 

교남 YMCA 회관
대구 구 교남 YMCA 회관은 1914년 일제 강점기에 건립된 2층의 붉은 벽돌 건물로 중구 남성동에 위치한다. 일제 강점기 3.1독립만세운동 당시 주요 지도자들의 회합의 공간이었으며, 물산장려운동, 기독교농촌운동, 신간회운동 등 기독교민족운동의 거점공간으로서 사용된 역사적 장소이다.  2013년 10월 29일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570호로 지정되었다. 
출처 : Daum백과

 

 

▲ 남성로를 따라서 420미터 이동한다.

 

대구 남성로
옛 대구읍성을 기준으로 성의 남쪽에 있다고 하여 남성로로 불리어 지는데, 현재의 남성로는 약전골목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다. 종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남성로가 시작되고, 남성로 홍백원 자리에는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약령시(약 350년)로 경상감영 시절 감영 안 객사 주변에서 봄·가을에 정기적으로 열렸던 계절 시장이었는데, 읍성이 헐린 후 남성로 일대로 이전돼 상설화됐다. 읍성이 헐린 게 1906년과 7년 사이이니, '남성로 약령시'는 곧 100년을 맞는 셈이다. 
남성로 근대건축물 중 가장 명물은 제일교회 예배당(1933년 건립)과 그 종탑(37년 건립)이다. 
출처 : Daum백과

 

 

▲ 남성로를 따라가는 길 우측 행림서원/빈할김밥 골목 안에는 염매시장이 위치한다.

 

대구 염매시장
일제강점기 종로가 대구 행정의 중심지이자 최대 번화가로 번창해 갈 때, 도심 생필품, 식료품, 물산의 공급처로 자리잡은 것이 염매시장이다. .
약령시와 함께 대구 도심 상권을 형성하던 염매시장은 한국전쟁 발발 이후 피난민들이 몰려오면서 전시(戰時)시장이 열리게 되었고, 처음에는 인근 상인들을 대상으로 떡행상으로 좌판을 열었던것이 떡전골목으로 자리를 굳혔고 시민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1960년대 동아쇼핑 서쪽에서 상점으로 발전했다. 
1970년대까지 300개가 넘는 점포들이 성업 했고 대구에서 신선도가 높고 품질 좋은 식료품들이 유통돼 시내 상인들이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본래 염매시장은 지금 동아쇼핑 자리, 삼성금융프라자 자리가 모두 포함됐던 중형급 도심 시장 이었으나 1984년 동아쇼핑, 1996년 삼성금융프라자가 들어서면서 많은 부지를 잃은 떡전은 성밖골목 등지로 분산되면서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여기에 현대백화점까지 입점하면서 성밖골목의 떡전은 대부분 백화점 부지에 편입됐으며, 점포들은 하나둘씩 종로 쪽으로 밀려났다.
지금은 시장 곳곳에 생선, 반찬, 강정 같은 전통형 점포 외 커피, 토스트, 부산어묵 같은 신세대 취향의 점포도 많이 생겨 중구에서 운영중인 골목투어에 나선 젊은층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 본초당한약방(좌), 세븐일레븐(우) 앞 삼거리에서 좌향하여 중앙대로를 따라서 100미터(한브럭) 이동한다.
▲ 하나은행(한국공무원학원) 앞 작은네거리에서 우향하여 중앙대로를 따라서 130미터 직진한다.
▲ 빽다방/서울주얼리/KT매장 작은 네거리에서 좌향하여 동성로 6길을 따라서 130미터 이동한다.
▲ 대구백화점(동성로중앙무대) 앞에서 우향(동성로 로데오거리)하여 동성로 6길 따라 400미터 직진한다.

 

대구백화점
1944년 창업이래 순수 지역자본으로 운영되던 대구백화점이 77년의 발자취를 남기고 이달말에 문을 닫는다고 하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현대, 롯데, 신세계 같은 메이저 백화점의 대구점 오픈으로 경쟁이 치열해진데다 코로나로 인한 적자 증대가 이유라고 한다.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부터 대구에와서 생활하면서 친구들과 제일 많이 찾던곳이 동성로 한일극장과 더불어 대구백화점이었다. 친구들과 어디에서 만날래? 하면 누구나 쉽게 약속하는곳이 이곳 대백 앞이었다. 쇼핑보다는 대구 사람들에게 오히려 만남의 장소로 젊은시절의 추억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곳이다. 

동성로
동성로(東城路)는 대구광역시 중구의 법정동이자 동성로 관광안내소에서 대구역네거리에 이르는 구간에 조성된 대구광역시 최대 번화가의 명칭이다. 도심 체제의 대구 사람들에게는 시내(다운타운)로 통하기도 한다. 
동성로는 백화점, 쇼핑센터, 패션타운, 호텔, 레스토랑, 병원, 학원가, 통신골목 등을 비롯해 먹거리, 연극, 영화, 예술, 공원, 시민휴식처 등 거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대구광역시 문화와 쇼핑의 중심 거리이다. 
과거 대구읍성의 성곽이 있었으나, 1907년에 일본인 상권 확보의 목적으로 친일 관료에 의해 성곽이 사라진 자리가 도로가 되었고, 그 성곽의 동쪽에 해당하는 터에 현재의 '동성로'가 조성되었다. 
동성로 로데오거리는 옷, 액세서리, 구두 따위의 유행 패션과 관련된 저렴한 가격의 다양한 가게가 늘어서 있는 거리이다. 

 

 

▲ 3번의 작은 교차로와 2.28기념공원을 거쳐 ~

 

2. 28민주운동
2. 28민주운동은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일어났던 고등학생들의 반독재 민주 운동이다. 1960년 자유당 정권의 독재정치와 부정부패, 제4대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저질러진 불의와 부정에 항거하여 경북고를 비롯한 대구 8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일으킨 민주화 운동으로 3·15 마산의거와 4·19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이를 기리기 위한 기념공원이 2003년 12월, 대구 중구 동성로(공평동)에 조성되었다. 

 

 

▲ 공평로를 건너면 ~
▲ 출발점인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으로 되돌아온다.
▲ 집으로 돌아갈때는 왔던것과는 다르게 그냥 시내 일반도로를 따라간다.
▲ 국채보상로를 따라 MBC네거리 까지 직진
▲ 무열대 삼거리에서 좌향하여 고모로를 따른다. 진행로 우측에는 형제봉 들머리가 있다.

 

대구 만촌 형제봉   2009. 9. 16(수) 맑고 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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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만촌 형제봉

2009. 9. 16(수) 맑고 선선 ㅇ 형제봉은 대구 만촌동의 2군 사령부 뒷쪽(동쪽)에 자리한 야산으로 산의 높이를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낮은 야산이지만 제1봉과 제2봉을 돌아오는 코스에는 가파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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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모로는 왕복 4차선 도로에 한쪽에만 자전거길이 조성되어 있다. 고모역을 지나 달구벌대로와 합류하여 집에 도착한다. 

 

 

▲ 트랭글 기록(수성구 사월에서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 트랭글 기록(자전거길 01 시내권역)
▲ 트랭글 기록(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서 수성구 사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