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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영의 보금자리
▣ 트래킹# 탐방 #답사

경주 남산(고위봉-금오봉)

by 영영(Young Young) 2020. 8. 20.

ㅇ 신라천년의 역사속에 과거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는 남산, 산은 산인데 산행이라고 하기보다 고적탐방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남산 고위봉과 금오봉을 돌아 보았다. 

ㅇ 용장마을을 출발, 고위봉으로 올라가는 이무기능선길은 코앞에 있는 봉우리가 손에 잡힐듯 말듯 애간장을 태우면서 발을 옮길때 마다 나타나는 기암과 암반, 청솔, 전망터들이 작은고추가 맵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ㅇ 7개의 불상이 한자리에 모인 국보급 유물인 '칠불암' 에서 뜻하지 않게 절에서 제공해준 비빔밥 공양은 너무나 고마워 오랫동안 기억으로 남을것 같다. 
 
ㅇ 봉수대능선의 거대한 바위들과 금오정의 가슴 후련한 전망과 오층석탑, 포석곡 부엉골의 시원하고 널찍한 계곡 등은 흐르는 시간을 잊기에 충분했다. 

■ 탐방일 : 2020. 8. 9(일), 흐리고 맑음, 한때 소나기
■ 탐방코스 : 경주 남산(고위봉-금오봉)
용장마을(용장파출소) - 이무기능선 - 고위봉 - 백운재 - 금오봉 갈림길 - 신선암 - 칠불암 - 봉화대능선 - 이영재 - 임도 - 금오봉 - 금오정 - 늠비봉(오층석탑) - 포석정 주차장
■ 탐방거리 : 12.8km  * 트랭글 기록
■ 탐방시간 : 7시간 59분

 

 

▲ 본인이 편집한 지도는 아니지만 오늘 탐방한 코스와 같다. 

 

 

▲ 카카오맵에서 '포석정 주차장을 검색하니 '노외공영주차장'으로 표시된다. 승용차를 타고 경북 경주시 배동 476-2번지 '노외공영주차장'으로 이동한다. 1시간이 채 안걸린다. 주차장에는 달랑 1대만이 주차중이었고 아직 주차장 관리자는 나와있지 않았다. 주차비는 2000원이다. 이틀 연속 장마비가 온 뒤에 개인 날씨라 하늘에는 아직 구름이 많다.
▲ 주차후 도로변으로 나가 오른쪽으로 꺾어서 도로건너 20여미터 가서 포석정 정류장에서 10여분 기다려 500번 시내버스를 타고 오늘 탐방의 출발점인 용장파출소(경북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정류장에서 하차한다. 새마을금고 옆에 승강장 표지판이 서있고 길 건너 맞은편에 용장파출소(내남파출소)가 있다.
▲ 용장파출소 앞에서 시내버스를 타고왔던 방향으로 100여미터 되돌아가면 용장휴게소 앞의 작은 사거리에서 오른쪽 용장2길로 들어선다.
▲ (좌) 4거리에서 오른쪽 들머리의 모습이다. 뒷쪽에 고위봉이 멀지않아 보인다. (우) 4거리에서 우향해서 돌아 본 모습이다.
▲ 하천을 우측에 끼고 나란히 가다가 ~ 참살이 마을 안내판을 지나서 오른쪽으로 다리를 건너간다.
▲ 현대식 주택을 지나 얼마가지 않아 출렁다리와 지킴터, 이정목이 서있는 용장골 갈림길을 만난다. 진행방향은 길따라 계속 직진이다.
▲ 계속된 호우로 왼쪽 용장골 부분은 통제되고 있고 ~ 지금까지 온 방향은 용장마을 0.45, 왼쪽 출렁다리 방향은 통일전주차장 7.05, 금오봉 3.1, 이영재 2.35, 용장사지 2.0, 진행방향은 고위봉 2.2 방향으로 직진한다. 지킴터 앞에도 기상특보로 출입통제판이 서있다.
▲ 지킴터 앞에서 직진해서 돌아 본 모습이다.
▲ 계곡을 좌측에 끼고 나란히 완만한 오르막 시멘트길을 따라 녹색 하우스 앞을 지나고 ~
▲ 출발점(용장파출소)에서 1.1km쯤 가면 천우사 직전에 이정목이 서있는 화장실 앞에서 진행방향은 시멘트길을 벗어나 왼쪽 계곡으로 연결된다. 잠시 직진하여 천우사를 둘러보고 되돌아오기로 한다.
▲ 화장실에서 70여미터쯤 떨어진 천우사는 가정집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 불청객이라 입구부분에서 멀찍히 사진만 한컷 담고 돌아선다.
▲ 곧바로 화장실 앞으로 돌아와 계수대를 지나 얕은 개울을 건넌다.
▲ 개울을 건너면 산길 입구에 안내판이 서있다. 오늘 탐방로인 '천우사~고위봉' 까지의 '이무기 능선'은 탐방중 추락위험이 매우높은 재난취약(사고위험)지구라는 내용과 천우사와 관음사를 거쳐 고위봉으로 이어지는 일반 탐방로가 표시되어 있다.
▲ 오솔길 탐방로를 따르면 구조표시판(경주 17-1)과 이정목(고위봉 1.7km)을 차례로 만나고 ~
▲ 목계단을 따라올라 뒤돌아 보면 출발점인 용장마을이 바로 아래에 내려보인다.
▲ 천우사 앞(화장실)에서 300미터쯤 진행하면 큼직한 암반오름길이 시작되고 ~
▲ 다시 돌아보면 용장마을과 지나온 녹색하우스 단지가 아래에 내려 보인다.
▲ 목계단과 바윗길이 이어지고 ~
▲ 이정목이 서있는 중턱에 올라선다.
▲ 천우사에서 0.5km지점으로 고위봉까지는 1.2km다.
▲ 고위봉으로 이어지는 이무기능선 암반길에서는 거의가 조망이 시원시원하다.
▲ 좌측 쌍봉(태봉)과 전방 고위봉 진행방향
▲ 암벽을 잇는 목계단 오르막이 얼마간 이어지고 ~
▲ 마치 분재송을 닮은 나무들과 암릉길이 이어진다.
▲ 고위봉은 손을 뻗으면 잡힐 듯 한데도 한발 다가서면 한발 물러서는 듯 가깝고도 멀다.
▲ 다시 이정목이 서있는 조망처에 올라선다.
▲ 천우사에서 1.0km지점으로 고위봉까지는 0.7km다.
▲ (좌) 고위봉 방향의 모습 (우) 이정목이 서있는 암봉을 지나서 돌아 본 모습이다.
▲ 잠시 암릉구간을 벗어나 포근한 송림길이 나타나는가 싶더니 ~
▲ 곧바로 이정목뒤로 암릉구간이 시작된다. 지금까지 온 방향은 천우사 1.2km, 진행방향은 고위봉 0.5km 방향이다.
▲ 암벽 사이로 철계단을 따라 오른다.
▲ 철계단을 따라 바위옆으로 올라서면 방금전과 똑같은 거리표시의 이정목이 서있고 ~ 지금까지 온 방향은 천우사 1.2km, 진행방향은 고위봉 0.5km 방향이다.
▲ 로프를 잡고 짧은 구간의 암벽을 올라간다. 이곳 이무기 능선에는 예전에 7-8개 정도 로프구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철거되고 계단으로 대체되어 유일하게 여기만 밧줄이 남아있는 상태이다.
▲ 밧줄을 잡고 암반위로 올라와서 돌아 본 모습이다.
▲ 바위 틈새로 뿌리를 내린 끈질긴 생명력의 나무들과 조화를 이룬 암릉구간
▲ (좌) 연리지가 된듯 안된듯 ~ (우) 부주의 하면 군데군데 추락 요인이 있지만 아슬아슬하거나 위태로운 구간은 없다.
▲ 암릉구간은 꾸준히 이어지고 ~
▲ 이정목이 서있는 조망처에 올라선다. 천우사에서 1.4km지점으로 고위봉까지는 0.3km다.
▲ 소나무와 바위들이 조화를 이룬 조망처에서 잠시 내려와서 구조표시판(17-04) 앞을 지난다.

 

▲ 다시 철계단을 따라 오르고 ~
▲ 음주행위 금지판 앞을 지나 목계단을 따라 오르면 ~
▲ 시멘트 바닥이 모래로 뒤덮힌 자그만 헬기장을 만나고 ~ 헬기장에는 이곳이 재난취약지구라는 안내판이 서있다. 하단 사진은 헬기장을 돌아 본 모습이다.
▲ 헬기장을 지나 잠시 가면 정상석이 서있는 고위봉 정상이다.
▲ 봉우리의 이름을 앞면에는 한문으로 고위봉(高位峯), 뒷면에는 한글로 새겨 놓았다. 표석은 2015년도에 새운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 해발 494m의 고위봉 정상에는 이정목과 음주행위 금지 및 탐방로 안내판 등이 서있고 삼각점이 있다. 전망은 없다.
▲ 고위봉 정상의 이정목 : 지금까지 온 방향은 천우사 1.7km, 오른쪽은 용장마을(열반재) 2.65km, 진행방향은 왼쪽 통일전주차장 4.85km, 칠불암 1.4km 방향이다. 탐방로 안내판 : 오늘 탐방코스는 이곳 고위봉에서 백운재와 칠불암과 이영재를 거쳐서 금오봉에 올랐다가 포석정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 고위봉 정상에서 왼쪽 칠불암 방향에서 돌아 본 모습이다.
▲ 자그만 바위들이 자리잡은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
▲ 묘1기와 바위 조망처를 차례로 만나고 ~
▲ 고위봉에서 100미터쯤 내려가면 이정목 앞에서 왼쪽으로 휘어간다. 지금까지 온 방향은 용장마을 2.75km, 고위봉 0.1km, 진행방향은 왼쪽 통일전주차장 4.75km, 칠불암 1.25km 방향이다. 이정목에 아무런 표시 없이 로프로 차단된 오른쪽(직진)길은 봉수대로 이어지는 길이다.
▲ 이정목 앞에서 왼쪽으로 턴해서 돌아 본 모습이다.
▲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
▲ 고위봉에서 350미터쯤 내려가면 탐방로가 왼쪽으로 휘어지는 곳에서 이정목을 만난다. 지금까지 온 방향은 용장마을 3.0km, 고위봉 0.35km, 진행방향은 왼쪽 통일전주차장 4.5km, 칠불암 1.0km 방향이다.
▲ 좌향해서 돌아 본 모습이다.
▲ 고위봉에서 500미터쯤 내려가면 산정호수/용장마을 갈림길인 '백운재'에 내려선다. 백운재에는 이정목과 안내판이 서있다. 지금까지 온 방향은 용장마을 3.15km, 고위봉 0.5km, 왼쪽은 산정호수, 용장마을 3.65km, 진행방향은 통일전주차장 4.35km, 칠불암 0.85km 방향으로 직진한다.
▲ 백운재에서 직진방향으로 들어서 돌아 본 모습이다.
▲ 백운재에서 150여미터 가면 이정목이 서있고 ~ 봉화대로 가는 우측 능선길은 탐방로를 폐쇄 해놓았다. 좌측방향이다. 하단사진은 돌아 본 모습이다. 지금까지 온 방향은 용장마을 3.3km, 고위봉 0.65km, 진행방향은 통일전주차장 4.2km, 칠불암 0.7km 방향으로 직진한다.
▲ 탐방로는 잠시 사면길을 따르다가 ~ 얕은 개울을 건너 올라간다.
▲ 고위봉에서 800여미터 내려오면 봉수대 갈림길을 만나서 좌향하여 진행한다. 하단 사진은 좌향해서 돌아 본 모습이다. 지금까지 온 방향은 용장마을 3.45km, 고위봉 0.8km, 오른쪽은 새갓골주차장 1.95km, 진행방향은 왼쪽 통일전주차장 4.05km, 금오봉 3.25km, 칠불암 0.55km 방향이다.
▲ 탐방로 주변의 기암이 눈에 들어오고 ~
▲ 백운재에서 500미터 가면 이정목이 서있는 칠불암과 금오봉 갈림길을 만난다. 잠시 칠불암에 들렀다가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와 금오봉으로 가기로 한다. 지금까지 온 방향은 용장마을 3.65km, 고위봉 1.0km, 왼쪽은 금오봉 3.05km, 진행방향은 오른쪽 통일전주차장 3.85km, 칠불암 0.35km 방향이다.
▲ 이정목 앞에서 칠불암 방향으로 우향하면 바위 조망처가 있고 ~
▲ 바위 조망처 앞에서 왼쪽으로 50여미터 내려가면 자그만 안내판이 서있고 ~ 오른쪽 신선암에 갔다가 되돌아와서 칠불암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 안내판에는 60여미터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그보다는 조금더 내려가면 신선암을 만난다. 문화재로 지정된 곳임에도 입구가 어수선한 느낌을 준다.
▲ 칠불암 위 절벽 바위에 새겨진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은 통일신라시대 8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보물 제199호로 지정되어 있다.
▲ 신선암 바로 아래 칠불암이 내려 보인다.
▲ 신선암에서 이정표 앞으로 되돌아와 목계단을 따라 칠불암으로 내려간다. 칠불암에 갔다가 다시 이 지점으로 되돌아와서 금오봉 방향으로 갈 것이다.
▲ 목계단과 가파른 암반길을 따라 150~200여미터(5분)쯤 내려가서 대나무 오솔길을 통과하면 ~
▲ 입구에 이정목이 서있는 칠불암을 만난다. 지금까지 온 방향은 용장마을 4.0km, 고위봉 1.35km, 신선암마애보살반가상 0.2km, 칠불암 앞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통일전주차장 3.5km 방향이다. 오늘 진행방향은 칠불암을 돌아보고 다시 방금 내려온 곳으로 다시 올라가 금오봉 방향으로 진행예정이다.
▲ 입구에서 보면 칠불암 바위가 있고 그 안쪽에 암자가 위치한다.

칠불암에 도착했을때 마침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한꺼번에 식사중이라 염불암 신도들이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하면서 같이 공양을 하자고 한다. 먼저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절에서 제공한 커피마저 맛있게 마시고 있다. 염치불구 하고 보살님께 인사를 드리니 기꺼이 비빔밥과 시원한 챗국을 내어주신다. 점심시간이 가까와지는 11시 30분이라 배도 출출한 상태이고 운동후라 그야말로 꿀맛이다. 지금까지 갓바위 선본사나 약사암 등에서 만났던 공양과는 감히 그 차원이 달랐다. 정말 세상에 좋은 일 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있구나 하는 고마운 마음으로 순식간에 한그릇을 비우고 경내에 있는 식수대에서 간단히 설거지후 반납하고 바닥난 식수를 보충한뒤에 느긋한 마음으로 칠불암을 살펴 보았다. 칠불암의 공양은 잊지못할 고마움의 기억으로 오랫동안 남을것 같다. 

 

 

▲ 칠불암 건물의 제일 왼쪽방에서 보살님이 공양을 주셨고, 제일 오른쪽방에 스님이 거하고 계셨다. 건물 아랫쪽 울타리 아래에 식수대가 있어서 설거지와 식수를 보충할 수 있다.
▲ 칠불암을 왼쪽에서 본 모습이다. 앞쪽에 사방불(四方佛)이 있고 그 뒤에 삼존불이 있다. 사방불중에 왼쪽 건물쪽을 바라보는 불상이 남면, 오른쪽에 앉은 불상이 동면이다.
▲ 칠불암을 정면에서 본 모습이다. 앞쪽에 사방불(四方佛)중에 동면불이 있고 그 뒤에 삼존불이 있다.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
국보 제312호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산 36
이 불상들은 경주 남산 봉화골의 정상 가까이 위치한 마애삼존불과 사방불(四方佛)로서 '칠불암 마애석불'이라 불린다. 
 삼존불의 가운데에 있는 본존불은 앉아있는 모습으로 미소가 가득 담긴 양감있는 얼굴과 풍만하고 당당한 자세를 통해 자비로운 부처님의 힘을 드러내고 있다.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있는 옷은 몸에 그대로 밀착되어 굴곡이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무릎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왼손은 배 부분에 대고 있는 모습이다. 
 사방불도 모두 연꽃이 핀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각기 방향에 따라 손 모양을 다르게 하고 있다. 보살상이 본존을 향하고 있는 것이나 가슴이 길고 다리가 짧게 조각된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칠불암을 오른쪽에서 본 모습이다. 앞쪽에 사방불(四方佛)중에 북면불이 연꽃 좌대에 앉아있고 그 뒤에 삼존불이 있다.
▲ 칠불암 바로 앞에 경주 남산 봉화국 제1사지 탑부재가 있는데, 칠불암에 흩어져 있는 탑재들로 보면 최소 2기의 석탑이 있었다고 추정된다고 한다.
▲ 기암들 사이로 목계단을 따라 칠불암과 신선암 갈림길로 올라간다. 이 오르막 계단길이 힘들어서 칠불암 탐방을 생략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가보지 못한 사람들은 꼭 칠불암을 돌아보기를 권한다. 칠불암으로 연결된 목계단에서 보는 전망, 기암괴석, 국보인 칠불암 등 오늘 탐방의 주요지점인 고위봉과 금오봉 보다는 이곳이 오늘 탐방의 백미로 여겨진다.
▲ 칠불암과 신선암 갈림길에서 직진해서 몇십미터 진행하면 이정목이 서있는 칠불암과 금오봉 갈림길로 되돌아온다. 지금부터 우향하여 봉화대능선을 타고 이영재를 경유하여 금오봉 방향으로 진행한다.
▲ 목계단을 따라 내려가서 ~
▲ 칠불암/금오봉 갈림길에서 200여미터 내려오면 이정목이 서있는 안부 삼거리를 만나 직진(오른쪽) 한다. 지금까지 온 방향은 고위봉 1.2km, 칠불암 0.55km, 왼쪽은 용장계지곡삼층석탑 250m, 진행방향은 오른쪽(직진) 금오봉 2.85km 방향이다.
▲ 용장계지곡삼층석탑 갈림길에서 우향(직진)해서 돌아 본 모습이다.
▲ 공룡 알 닮은 둥근바위 옆을 지나 ~
▲ 바위 사이로 혹은 바위군 옆으로 탐방로가 이어가고 ~
▲ 계단길을 따라 내려가면 ~
▲ 기암들이 눈길을 끌고 ~
▲ 구조표시판(경주 19-05)을 만나고 ~ 구조표시판에 의하면 새갓골주차장에서 이영재 방향으로 진행중이다.
▲ 작은바위 몇개가 놓인 봉우리 앞에서 오른쪽으로 휘어간다.
▲ 완만한 오름길에 이정목 한개가 서있고 ~ 지금까지 온 방향은 고위봉 2.0km, 칠불암 1.35km, 진행방향은 금오봉 2.05km 방향으로 계속 직진이다.
▲ 내리막길에 구조표시판(경주 19-06)을 만나고 ~
▲ 삼거리 공터에 이정목이 서있는 '이영재'로 내려선다. 이영재는 용장마을 갈림길로 한무리의 산꾼들이 있었는데 해설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것으로 보아 단체탐방중인 모양이었다. 이영재에서 금오봉 방향으로 직진한다.
▲ 이영재의 이정목 지금까지 온 방향은 고위봉 2.3km, 칠불암, 왼쪽은 용장마을 2.8Km, 진행방향은 금오봉 1.7km 방향으로 직진해서 올라간다.
▲ 이영재에서 직진하여 돌아 본 모습이다.
▲ 이영재에서 만난 탐방객들과 같이 오솔길을 따라 올랐다가 내려가면 ~
▲ 이정목과 안내판이 서있는 임도와 접속하게 된다. 이영재에서 200미터 지점으로 좌향하여 금오봉 방향으로 진행한다. 임도와 접속지점에는 벤치가 있어서 잠시 쉬는 사람들도 있고, 이영재에서 만났던 단체 탐방객들이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중이었다.
▲ 임도와 만나서 왼쪽 포석정주차장 및 금오봉 방향에 이정목과 안내판 등이 서있다.
▲ 임도에 서있는 이정목과 안내판 지금까지 온 방향은 천룡사지 3.4KM, 칠불암 1.8km, 고위봉 2.5km, 오른쪽은 통일전주차장 2.7Km, 진행방향은 왼쪽 포석정주차장 5.8km, 금오봉 1.5km 방향이다. 이 임도는 오른쪽 통일전주차장에서 왼쪽 포석정주차장으로 이어지는 남산일주도로이다.
▲ 금오봉 방향으로 좌향하여 돌아 본 모습이다.
▲ 널찍한 임도길을 따라간다. 한여름 땡빛이면 많이 따가울텐데 오늘은 비온뒤 개인 날씨라 조금은 덜하다.
▲ 임도가 우측으로 휘어지는 지점 좌측에 이정목이 서있고, 이정목 옆으로 진행하면 용장계 연화대곡 비석대좌 50m 방향이고, 진행방향은 임도따라 계속 직진이다. 하단 사진은 직진해서 돌아 본 모습이다.
▲ 이정목 앞에서 임도를 따라 몇걸음 직진하면 전방에 안내판이 서있고 ~
▲ 안내판 20여미터전 임도 우측 산길 들머리에 연화대좌 60m를 알리는 이정목이 서있다. 연화대좌를 돌아보고 임도를 계속 따르기로 한다.
▲ 임도를 벗어나 잠시 올라가면 상단에 연꽃을 새긴 바위(삼화령바위), 대연화좌대를 만난다. 문화재로서 가치가 없는지 소문은 있는데 아무런 안내판이 없는것이 의아했다. 삼화령 바위에 대한 Daum 백과를 참고해보니 고증이 되지않아 문화재로 지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 이 바위를 삼화령 바위라고 하는 모양이다. 처음부터 연화무늬만 새겼는지?, 연화좌대위에 있던 불상은 사라졌는지 ?

삼화령 바위
위치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삼화령은 '삼화수리'라고도 하는데 수리(頂)는 높은 곳을 의미하며 남산에는 세곳 수리가 있는데 금오봉과 고위봉, 그리고 두 봉우리의 삼각형 위치에 해당하는 이 곳 봉우리를 합하여 삼화령이라 불렀다. 삼화령(三花嶺)은 신라 시대의 화랑(花郞)이 기예를 닦던 장소이자, 미륵사상이 융성했던 곳이다. 선덕여왕시절 생의스님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 '나를 따라오라'하며 남산 남쪽 골짜기에 데리고 가서 풀을 묶어 놓으며 "내가 이곳에 묻혀 있으니 나를 파내어 고개위에 안치 해 주시오"라고 했다. 다음날 그곳에 가 보았더니 꿈속처럼 풀을 묶어 놓은 곳이 있었다. 생의스님은 땅을 파 미륵불을 발견하고 삼화령 꼭대기에 모셔놓고 그 자리에 절을 지어 공양하였다. 또한, 이 곳이 미륵의 성지였음을 밝혀주는 설화가 『삼국유사』에 전한다. 3월 3일에 경덕왕이 신하들과 함께 귀정문의 누각에 나가서 이르기를, 뜻과 예절을 갖춘 승려를 데려 오라고 하였다. 이 때 검소한 옷을 입은 승려 한 사람이 남쪽에서 오고 있었는데, 왕은 그를 보고 기뻐하며 누각 위로 불러 영접하였다. 승려가 들고 있는 삼태기 속에는 다구만이 가득하였다. 왕이 그 이유를 물으니 “소승은 3월 3일과 9월 9일에 차를 달여서 남산 삼화령의 미륵 세존께 드리는데 오늘도 차를 드리고 오는 길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로써 삼화령이 미륵불과 인연이 있는 곳임이 밝혀졌으며, 경주 남산성 부근에서 삼화령과 관련된 석불 3존이 발견되어 현재 국립 경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미륵 세존이 있었다는 삼화령의 위치와 석불 3존에 대한 존명 등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이를 추측하는 다른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출처 : Daum 백과

 

 

▲ 바위 상단의 3개의 구멍은 크기나 모양이 비슷한것으로 보아 풍화 침식에 의한 자연현상보다 축대의 흔적일것 같은 생각이 든다.
▲ 대연화좌대 부근의 또 다른 바위 앞에는 목판에 글자를 새겨 놓았는데 부식되어 내용을 완전히 알 수 없어서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살펴보니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잔 차에 안민을 노래하고 ~
이 지역은 서라벌 삼월 삼일 날, 충담스님이 차를 다려 남산 삼화령 부처님께 차를 올린 고운 뜻을 받들어 차나무를 심고 가꾸어 이답게 살 수 있는 슬기를 함께 하고자 차나무를 심습니다. 차나무가 크게 꽃 필 수 있도록 마음모아 주세요
경주문화축제위원회 삼화령

 

 

▲ 대연화좌대 부근은 인적도 없을 뿐 아니라 너무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한참동안 쉬어간다. 여기서 능선을 이어가면 햇빛도 피하고 좋지만 출입금지 안내판을 보고 뒤돌아 왔던길로 나선다.
▲ 대연화좌대에서 바로 아래 임도로 다시 내려가 우향하여 안내판 앞을 지나간다. 안내판에는 '삼화령에서 바라본 고위봉' 전망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하단 우측 사진은 같은 위치에서 찍은 사진으로 안내판을 흉내내본 것이다.
▲ 전망사진판을 지나 몇걸음 가면 '삼화령'과 '남산 문화유산탐방로' 안내판이 서있다.

ㅇ 삼화령은 '삼화수리'라고도 하는데 수리(頂)는 높은 곳을 의미하며 남산에는 세곳 수리가 있는데 금오봉과 고위봉, 그리고 두 봉우리의 삼각형 위치에 해당하는 이 곳 봉우리를 합하여 삼화령이라 불렀다. 
 선덕여왕시절 생의(生義)스님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 '나를 따라오라'하며 남산 남쪽 골짜기에 데리고 가서 풀을 묶어 놓으며 "내가 이곳에 묻혀 있으니 나를 파내어 고개위에 안치 해 주시오"라고 했다. 다음날 그곳에 가 보았더니 꿈속처럼 풀을 묶어 놓은 곳이 있었다. 생의스님은 땅을 파 미륵불을 발견하고 삼화령 꼭대기에 모셔놓고 그 자리에 절을 지어 공양하였다.  경덕왕때 향가, 안민가와 찬기파랑가를 지은 충담(忠談)스님이 해마다 삼월 삼일, 구월 구일에 남산 삼화령 미륵세존께 차를 공양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있는데 바로 그 부처님으로 짐작된다. 
 지금 미륵불은 없어지고 지름 2m의 연화대좌만이 남아 있으며, 진입도로 아랫쪽에 절터가 남아있는데 그 곳이 생의사터로 추정된다. 자세한 내력은 절터 옆에 서있는 비석에 있으련만 이제 비석은 사라지고 비석 받침만이 역사의 궁금증을 더해주고 있다. 
ㅇ 탐방로 안내도상 현위치는 연하대곡 대연화대이다. 

 

 

▲ 벤치 쉼터를 지나 ~
▲ 임도가 우측으로 휘어지는 지점에 이정목과 안내판이 서있는 용장마을(용장사지) 갈림길을 만나서 계속 임도따라 직진한다.
▲ 용장마을 갈림길

ㅇ 이정목 : 지금까지 온 방향은 통일전주차장 3.5km, 왼쪽은 용장마을 3.0km, 용장사지 0.55km, 진행방향은 포석정주차장 5.0Km, 금오봉 0.7km 방향으로 계속 임도를 따라간다. 
ㅇ 탐방로 안내판 : 현위치는 용장마을에서 금오봉을 거쳐 삼릉으로 이어지는 4.7km, 3시간 35분 거리의 '용장골 탐방로' 코스이다.
ㅇ 용장골 안내판
용장계곡은 금오봉과 고위봉 사이 골짜기로 남산에서 가장 큰 계곡이며 용장사지 등 18개소의 절터와 7기의 석탑, 그리고 삼륜대좌불 등 5구의 불상이 남아있다.
 이곳에서 400m 아래로 내려가면 용장사터가 있는데 용장사는 계곡에서 가장 큰 사찰이었다. 용장사터 동쪽 높은 바위 위에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삼층석탑이 우뚝 솟아 장관을 이루고 삼층석탑 아래에는 삼륜대좌불과 마애려래좌상이 자리잡고 있다. 
 용장사는 통일신라시대 법상종을 개창한 대현스님이 거주하신 곳이며 조선 세조때의 대학자이자 승려인 설잠스님(매월당 김시습)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집필한곳이기도 한다. 대현스님이 삼륜대불을 돌면 부처님도 따라 머리를 돌렸다고 하며, 그 뒤쪽 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은 지금도 따뜻한 미소로 사바세계를 굽어보고 있다. 

 

 

▲ 탐방로나 주요지점에서 음주행위 금지판이 자주 보인다.
▲ 용장마을 갈림길을 지나 300여미터 가면 전방에 이정목과 안내판이 보이고 ~
▲ 안내판 앞에서 임도를 벗어나 왼쪽 금오봉 방향 산길로 들어선다. 지금까지 온 방향은 통일전주차장 3.8km, 용장사지 0.9km, 임도따라 계속 직진은 포석정주차장 4.7km, 금오봉 0.4km, 진행방향은 거리표시가 없는 왼쪽 금오봉 방향으로 산길로 들어선다.
▲ 이정목 앞에서 산길로 들어서서 돌아 본 모습이다.
▲ 완만한 오솔길을 따라 ~
▲ 비파골의 전설 안내판 앞을 지나고 ~ 비파골에는 네 곳의 절터와 있고 4기의 석탑지가 있다고 하는데, 비파골의 전설을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 정상석과 이정목, 각종 안내판이 서있는 금오봉 정상에 도착한다.
▲ 금오봉 정상석의 전면에는 해발 468m 산으로, 경주일요산악회에서 2004년도에 2차로 현재의 정상석을 세웠다는 표시가 있고, 후면에는 한시와 월성원자력에서 후원하였다는 표시가 있다.
▲ 금오봉 정상의 이정목과 각종 안내판

ㅇ 이정목 : 지금까지 온 방향은 고위봉 4.6km, 통일전주차장 4.2km, 용장마을 3.5km, 왼쪽은 약수골입구 1.5km, 약수계곡마애입불상 0.4km, 진행방향은 포석정주차장 4.7km, 삼릉주차장 2.6km 방향으로 직진이다. 
ㅇ 남산(南山)과 망산(望山)의 유래
옛날 경주의 이름은 '서라벌' 또는 '새벌'이라 했으며 새벌은 동이 터서 솟아오른 햇님이 가장 먼저 비춰주는 광명에 찬 땅이라는 뜻으로 아침 햇님이 새벌을 비추고 따스한 햇살에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변화가 아름답고 온갖 곡식과 열매가 풍성하여 언제나 복된 웃음으로 가득 찬 평화로운 땅이었다. 
 이 평화로운 땅에 어느 날 두 신이 찾아왔다. 한 신은 검붉은 얼굴에 강한 근육이 울퉁불퉁한 남신이었고, 또 한사람은 갸름한 얼굴에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 예쁜 웃음이 아름다운 여신이었다. 
 두 신은 아름다운 새벌을 둘러보고 "야! 우리가 살 땅은 이곳이구나!"하고 외쳤고, 이 소리는 너무나 우렁차 새벌의 들판을 진동하였다. 이때 개울가에서 빨래하던 처녀가 놀라 소리나는 곳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산같이 큰 두 남녀가 자기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처녀는 겁에질려 "산 봐라!"하고 소리 지르고는 정신을 잃었다. 
"산 같이 큰 사람 봐라!"라고 해야 할 말을 급한 나머지 "산 봐라!"하고 외쳤던 것이다. 갑자기 발아래에서 들려오는 외마디 소리에 두 신도 깜짝놀라 그 자리에 발을 멈췄는데 그만 왠일인지 다시는 발을 옮길 수 없었다. 두 신은 그 자리에 굳어 움질일 수 없는 산이 되었는데 소원대로 이곳 아름답고 기름진 새벌에서 영원히 살게 된 것이다. 남신은 기암괴석이 울퉁불퉁하고 강하게 생긴 남산이 되었고, 여신은 남산 서쪽에 솟아있는 부드럽고 포근한 망산이 되었다고 전해져온다. 

 

 

▲ 정상석 앞에서 직진하여 포석정주차장 방향으로 가면서 돌아 본 모습이다.
▲ 야자매트가 깔린 포근한 오솔길을 따라 ~
▲ 금오봉에서 100여미터 내려가면 이정목이 있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간다. 하단 사진은 우향해서 돌아 본 모습이다. 지금까지 온 방향은 금오봉 0.1km, 직진은 삼릉주차장 2.5km, 상선암 0.9km, 진행방향은 오른쪽 통일전주차장 4.0km 방향으로 꺾어 내려간다.
▲ 금오봉에서 사면 오솔길과 데크길을 따라 200여미터 가면 금오봉 직전에 헤어졌던 임도로 내려선다. 임도와 접속지점에는 공원지킴터와 화장실이 있다. 임도를 만나 좌향해서 진행한다.
▲ 임도와 접속지점에 있는 이정목과 각종 안내판

ㅇ 이정목 : 지금까지 온 방향은 삼릉 2.3km, 금오봉 0.2km, 오른쪽은 통일전주차장 4.0km, 용장마을 3.5km, 용장사지, 진행방향은 왼쪽 포석정주차장 4.5km 방향이다.   
ㅇ 탐방로 안내판에 의하면 현지점은 '약수골 코스'와 '용장골 코스'의 일부이다. 

 

 

▲ 임도와 접속해서 좌향해서 돌아 본 모습이다.
▲ 헬기장 앞을 지나서 ~
▲ 임도를 따르면(금오봉에서 500미터 지점) 이정목과 안내판이 서있는 사자봉 입구를 만나고 ~
▲ 최종 목적지인 포석정 주차장은 임도따라 직진이지만 팔각정터를 보기위해 잠시 오른쪽으로 돌계단을 올라간다.

ㅇ 이정목 : 지금까지 온 방향은 통일전주차장 4.3km, 금오봉 0.5km, 직진은 포석정주차장 4.2km, 진행방향은 오른쪽 통일전주차장 2.65km, 지암곡3사지삼층석탑 0.55km, 팔각정터 0.1km 방향이다.   
ㅇ 탐방로 안내판에 의하면 현지점은 '금오봉코스'의 일부이다. 

 

 

▲ 돌계단을 올라서면 곧바로 '사자봉(432m)' 정상 바위위에 '남산관광일주도로준공비'가 서있다.
▲ 오솔길을 따라 100여미터 가면 팔각정터를 만난다. 기단만 남아있는 현장은 안내판이 없어서 언제적 유적이고 흔적인지 팔각정의 유래는 알 수가 없다.
▲ 팔각정터에는 이정목이 서있고 전망이 트인다. ㅇ 이정목 : 지금까지 온 방향은 금오봉 0.6km, 직진해서 이동하면 통일전주차장 2.55km, 지암곡3사지삼층석탑 0.45km, 진행방향은 왔던 금오봉 방향으로 되돌아 간다.
▲ (좌) 다시 임도로 되돌아와 ~ (우) 포석정주차장 방향으로 우향해서 돌아 본 모습이다.
▲ 바닥돌이 깔린 임도 ~ 시원하게 둟린 길을 따라 ~
▲ 탐방로 주변의 기암과 풍경을 즐기며 ~
▲ 탐방로 우측 큼직한 바위 앞에 국사골 '상사바위' 안내판이 서있다.

신라 시대 여기 아랫마을에 혼자 사는 할아버지가 있었다. '피리'라는 소녀는 불쌍한 할아버지를 극진히 챙겼다. 세월은 흘러 피리도 처녀가 되어 결혼을 하고 마을을 떠나게 된다.
할아버지는 떠난 피리를 생각하며 눈물짓다가 자신도 모르게 피리를 사랑하게 된다. 이런 자신이 미워 이 산 나무에 목매어 죽어서 큰 바위가 되었다. 그리고 밤에는 뱀이 되어 피리를 칭칭 감고 괴롭혔다.
할아버지는 죽어서도 잊지 못하고 피리를 괴롭히니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빌고 빈다. 피리 소녀도 자기를 그리워하다가 죽은 할아버지가 너무도 불쌍하게 여겨졌다.
피리는 "인간 세상에서는 나이 때문에 사랑의 인연을 못 풀었으니 천년의 세월이 지나도 나이를 먹지 않는 바위가 되어 할아버지의 소원을 풀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고는 할아버지 바위에서 뛰어내려 죽었다. 그러자 할아버지 바위 옆에 또 하나의 바위가 우뚝 섰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상사바위라 불렀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 슬프고 애틋한 사랑을 가진 상사바위 직근으로는 접근을 막아놓아 멀리서 한컷 하고 ~
▲ 상사바위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경주 남산동 방향
▲ 때론 기능성을 가미한 길을 따라 ~ 한적한 숲길이 이어지고 ~
▲ 이정목이 서있는 갈림길을 만나서 임도를 벗어나 왼쪽길로 들어선다. 임도를 따라 계속 직진해서 내려가도 포석정 주차장으로 가지만 금오정과 5층석탑을 거쳐 포석정 계곡을 따라 가기로 한다. 하단 우측 사진은 왼쪽길로 들어서 돌아 본 모습이다. 지금까지 온 방향은 통일전주차장 5.0km, 금오봉 1.2km, 임도따라 계속 직진하면 포석정주차장 3.5km, 진행방향은 왼쪽 포석정주차장 2.7km, 금오정 150m 방향이다.
▲ 전방에 나타난 자그만 바위길을 올라서면 ~
▲ 널찍한 암반위에 자리한 금오정(전망대)을 만난다. 전방이 탁 트인 위치에 자리를 잡고도 정작 정자에서는 전망이 별로 없고 더구나 큼직한 규모에 비해 내부에는 쉴만한 자리 하나도 없고 콘크리트 소재의 색조가 퇴색되어 전체적으로 누추한 모습을 보인다. 앉아 쉴 마음없이 떠나기 바쁘다.
▲ 정자 우측에는 경주남산일원과 세계문화유산 인증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있고 정자 좌측편에는 이정목이 서있다.

ㅇ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주남산일원"
경주는 천년의 역사를 품은 신라의 수도로서 수많은 유적과 기념물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2000년 남산을 포함한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세계인류문명에 주목할 만한 문화적 업적을 보유하고 있다고 인정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남산은 금오봉과 고위봉을 잇는 남북길이 10km, 동서 너비 4km의 타원형으로서 40여개의 계곡을 품고 있다. 신라인의 신앙과 혼이 가득한 불교 관련 유적뿐만 아니라 왕릉, 궁궐터 등 소중한 역사 유산을 간직하고 있어 노천박물관이라 부르는 세계적 명소이다. 
ㅇ 이정목은 지금까지 온 방향(금오봉)만 가르키고 진행방향에는 별도의 표시가 없다. 

 

 

▲ 이정목이 서있는 금오정의 왼쪽편으로 내려간다.
▲ 내리막길에 포석곡 제7사지(큰늠비절터) 주변 석조유물인 삼층석탑의 부재들을 만난다.
▲ 포석곡 제7사지 큰늠비절터로 불리는 이곳에는 오래전부터 폐허가 된 절터에 탑재들이 흩어져 있었다. 1층 탑신과 옥개석, 기단갑석 등 6점의 석조 유물들은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삼층석탑의 부재로 추정된다. 유물의 망실과 훼손을 방지하고 보존하기 위하여 2013년 4월 현 위치에 받침대를 설치하고 정리하여 놓았다.
▲ 대나무 숲을 통과하고 ~
▲ 구조표시판(경주 04-05)을 만난다. 구조표시판에 의하면 해발 313m지점으로 금오봉에서 포석정 방향으로 진행중이다.
▲ 너럭바위를 지나고 ~ 오솔길을 따라 내려간다.
▲ 이정목이 서있는 포석정주차장/오층석탑 갈림길을 만나서 직진해서 오층석탑을 돌아보고 되돌아와서 포석정주차장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하단 우측사진은 직진해서 돌아 본 모습이다. 지금까지 온 방향은 금오봉 1.6km, 오른쪽은 포석정주차장 2.4km, 진행방향은 직진하여 오층석탑 200m방향이다.
▲ 갈림길에서 200여미터 내려가면 사방이 탁트인 늠비봉 암반위에 자리잡은 오층석탑을 만난다. 석탑 입구의 축대위에는 석조 부재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지만 탑이나 부재에 대한 별도의 안내판은 없다.
▲ 자연 암반을 기단삼아 높이 6.5m 규모로 조성된 오층석탑은 단아하고 기품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탑재의 형식으로 미루어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 포석곡 제6사지 늠비사터로 추정되는 이곳에 서있는 오층석탑은 흩어져 있는 부재들을 수습하여 2002년에 새롭게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 자연 암반을 기단삼아 조성된 오층석탑은 복원 과정에서 현재의 부재들이 많이 사용되어 근래에 조성한 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석탑 입구 외에도 주변에는 석조 부재들을 일렬로 모아 정리해 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제 모습을 찾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깝다.
▲ 경주 남산에서 조망이 뛰어난 곳 중에 하나인 이 곳은 현재 늠비봉 아래 자리하고 있는 부흥사의 원 절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 오층석탑을 보고 이정목이 서있는 포석정주차장/오층석탑 갈림길로 되돌아 나와 좌향하여 포석정주차장 방향으로 내려간다.
▲ 오솔길을 따라 ~ 작은 개울 통나무 다리를 건너서 ~
▲ 가정집 같은 곳을 '부흥사' 절을 만나 입구로 살짝 들어서서 ~
▲ 뒤로 보이는 계단을 올라서면 ~ 대웅전 건물이 보인다. 부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로 1971년 경주시 배동 남산(南山) 포석골에 있는 옛 절터에 건립되었다.
▲ 법당 앞쪽에 옛 절터의 유적인 석탑의 지붕돌 1개가 있고 ~
▲ 대웅전 앞에서 올라 온 입구로 내려다 본 모습이다. 대웅전에서 포석정주차장으로 이어지는 넓은 길이 있지만 계곡을 따라가기 위해서 올라 온 방향으로 다시 내려간다.
▲ 입구로 되돌아 나와 우향해서 화장실 건물 옆을 지나 오솔길을 따라 간다.
▲ 몇십미터 가면 왼쪽에 자그만 연못이 보이고 ~
▲ 그 맞은편 오른쪽에는 석축을 쌓아 인공석굴 안에 모셔 둔 조상신상과 외부에 노출된 다소 왜소한 석불이 있다.
▲ 갈대숲을 지나 ~
▲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구조표시판(04-04)을 만나고 ~
▲ 개울을 건너 ~
▲ 곧바로 로프를 잡고 올라간다. 하단 사진은 올라와서 계곡으로 돌아 본 모습이다.
▲ 이정목 앞에서 오른쪽으로 휘어가고 ~ 지금까지 온 방향은 금오봉 2.5km, 포석정주차장까지는 1.5km가 남았다.
▲ 비석없는 묘를 지나 ~ 계곡을 오른쪽에 끼고 내려간다.
▲ 구조표시판(04-03)을 만나고 ~
▲ 이정목이 서있는 계곡을 만나서 건너간다. 하단 우측 사진은 계곡 건너서 돌아 본 모습이다. 지금까지 온 방향은 금오봉 2.7km, 포석정주차장까지는 1.3km가 남았다.
▲ 어제까지 내린 비로 계곡물이 넓은 암반위를 덮고 있다.
▲ 계곡을 건너서 족욕과 함께 탐방 장시간 기록을 세울 만큼 한참을 휴식하며 자연과 동화된다. 골이 깊어 낮에도 부엉새가 운다는 부엉골이 포석정으로 이어진다.
▲ 한참을 쉬고 계곡을 벗어나 숲길로 들어선다.
▲ 잠시 뒤 또한번 넓은 계곡과 마주쳤다가 계곡을 왼쪽에 끼고 내려간다.
▲ 월성김씨 묘 앞을 지나고 ~
▲ 구조표시판(04-02)을 만나고 ~
▲ 별도의 탐방로 없는 좁은 수로를 따르면 ~
▲ 역시 별도의 탐방로 없이 넓은 계곡가를 따라간다. (상단사진은 상류쪽, 하단은 하류쪽 모습)
▲ 계곡을 벗어나며 시원한 송림 넓은길로 연결된다.
▲ 소나무 숲길을 따르다가 구조표시판(04-01)을 만나고 ~
▲ 이정목이 서있는 포석정 공원지킴터에 도착. 계수대를 통과하여 좌향하여 포석정주차장 방향으로 간다.
▲ 지금까지 온 방향은 금오봉 3.5km, 부흥사 1.5km, 오른쪽은 금오봉 4.2km, 진행방향은 왼쪽 포석정주차장 0.5km 방향이다. 하단 사진은 좌향해서 돌아 본 사진이다.
▲ 비포장길을 몇십미터 따르면 계곡 앞에 '오리나무' 안내판이 서있고 ~ '십리 절반 오리나무' 라는 전래동요의 가사처럼 옛날에 거리를 나타내기 위해 오리마다 심어 '오리나무'로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잠시 또 왼쪽으로 휘어가면 ~
▲ 안내판 두개가 연이어 서있고 ~ 숲에오면 기분이 좋아지는 이유가 숲이 내뿜는 피톤치드 물질이 스트레스 해소와 살균작용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진달래(참꽃)와 철쭉은 잎 모양으로 쉽게 구분이 되고 진달래는 식용이 가능하고 철쭉은 독성이 있어 불가하다.
▲ 몇걸음 뒤에 대형 안내판이 서있다.
▲ 대형 안내판을 지나서 돌아 본 모습이다.
▲ 잠시 가면 이정목이 서있는 탐방로 입구가 나타난다. 지금까지 온 방향은 통일전주차장 8.5km, 금오봉 4.7km 이다.
▲ 남산지구 세부 안내도가 서있는 포석정주차장으로 빠져 나온다.
▲ 오늘 탐방의 종착지(날머리)인 포석정주차장이다. 한창 정비공사중이고, 저녁에 친구들과 모임이 있어서 포석정을 돌아보지 못하고 주차해둔 차를 타고 급하게 대구로 출발한다.
▲ 통일신라시대 화려했던 궁정생활과 경애왕의 죽음이라는 역사를 간직한 포석정 입구를 뒤로하고 아쉬움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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