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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태골 & 노태우 생가

by 영영(Young Young) 2016. 8. 10.

2016. 8. 10(수)  찜통더위

 

 

수 태 골

 

 

 

 

 

 

 

 

노태우 생가

 

팔공산 순환도로를 타고 동화사에서 파계사 방면으로 가다 보면 도로 좌측에 노태우 전대통령 생가 라는 안내판이 있는데 좁은 시멘트 도로를 따라 700~800여미터쯤 내려가다보면 노태우 전대통령의 생가를 만날 수 있다.

 

대구시 동구 신용동 847번지 "용진마을"에 위치한 제13대 노태우 전대통령 생가는 팔공산 자락의 명당으로 소문이 나 있고 이곳은 대구 올레길2코스로 한실골 가는 길과 연결되어 있다. 생가는 40여호 되는 마을의 제일 윗쪽에 자리잡고 있다.

 

숨이 막히는 한여름, 그기에다가 평일이라서 그런지 이곳을 찾은 방문객은 우리뿐이다. 재임시절 많은 업적을 남겼고 지금도 많은 사람의 기억속에 살아있지만 휑한 생가의 모습앞에서는 권력의 무상함 같은것을 느끼게 된다.

 

▲ 생가 앞에 있는 안내판

팔공산 순환도로에서 생가가 있는 용진마을로 들어서는 진입로는 차량의 교행이 힘든 좁은 시멘트길이다.  15여년전에 이곳에 왔을때도 그랬지만 그래도 전임 대통령인데 어떻게 진입로 조차 확보하지 못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생가앞에 있는 안내판

 

 

▲ 안내판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사전에 올라온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에 대한 기록을 살펴 보았다.

대한민국의 제13대 대통령
(임기 1988년 2월 25일 ~ 1993년 2월 24일 )

 

노태우(盧泰愚[3], 1932년 12월 4일 ~ )는 대한민국의 제13대 대통령이다. 본관은 교하(交河)이다.

육군사관학교를 11기로 졸업하고 대장으로 예편하였다. 전두환, 김복동의 육사 동기이기도 하다.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와 12·12 군사 반란 등에 가담했다. 제12대 국회의원과 정무2장관, 체육부와 내무부의 장관을 지냈으며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제13대 대통령을 지냈다.

대구공업중학교를 다니다가 경북중학교로 전학한 뒤 1950년 한국 전쟁 중 학도병으로 헌병학교에 입대하였다. 1951년에 육사에 11기 생도로 입학하여 1955년에 졸업하며 소위로 임관하였다. 1961년에는 학생군사교육단(ROTC의 전신)의 창설준비요원과 교관을 역임했고, 베트남 전쟁에는 1967년 지구대대의 대대장으로 다녀오기도 했다. 1974년 장군으로 진급, 이후 신군부의 2인자로 공수특전여단장, 청와대 작전차장보, 보안사령부 사령관 등을 지냈으며, 1980년에는 국가보위입법위원회 비상대책위원과 상임위원을 지냈다. 예편 후 제5공화국에서 1981년 정무2장관, 대통령 특사, 1982년 체육부 장관, 41대 내무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1985년에 민주정의당 최고위원으로 전두환 당시 총재로부터 내정되어 당권 전부를 위임받고 1987년부터 민주정의당의 총재가 되었으며 1988년의 대통령 선거에 근소한 표차로 대한민국의 제13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1988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정치인 및 정치에 대한 풍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였으며 중화인민공화국, 동구권, 소련 등 공산권 국가들과의 외교 정책을 추진하였고, 1991년에는 야당과 시민단체의 자치제 부활을 수용하여 지방자치제도를 부활시키기도 했다. 또한 1991년 남북한 UN 동시 가입 결정이 내려지자 보수 세력의 반발에도 이를 강행하였다. 1993년 퇴임 후 1995년 비자금 사건 등으로 연루,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강제 진압과 12·12 군사 반란에 가담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구속되었다. 1997년에 특별사면을 받고 복권되었다.

1983년 서울 올림픽 임시 조직위원장이 되었다가 그해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구성되어 1983년부터 1986년까지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장으로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였고, 86 아시안게임을 유치시킨 뒤,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서울 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으로 준비와 진행을 지원했다.

체육을 좋아하여 육사생도 시절에는 육상부와 럭비부 팀원으로 활약했다. 1984년부터 1985년까지는 제28대 대한체육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제13대 대선 당시 보통 사람임을 강조했는데 이는 1994년 그가 정치 비자금을 챙긴 것이 당시 총무처 장관 서석재와 당시 국회의원 박계동 등에 의해 연이어 폭로되면서 풍자되었다.

 

 

▲  생가 입구

안내판을 지나 돌담장을 따라 돌계단이 보인다.  계단의 왼쪽이 사랑채이고 오른쪽이 외양간 건물, 정면이 안채이다.

 

 

▲ 외양간의 모습

옛날의 촌집이 다들 그러하겠지만 어릴적 우리집과 너무 닮았다. 마굿간이 별채로 있었다. 지금은 사람의 노동력을 전부 기계가 대신하고 있지만 옛시절 소는 가족일을 같이하는 식구와 같은 존재였다.

 

 

▲ 겨울철 김이 무럭무럭 나는 죽을 여물통(죽통)에 부어서 소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비록 말못하는 짐승이지만 열심히 일하고 잘 먹고,,,,,

 

 

▲  정면 안채와  좌측 사랑채

 

 

▲ 사랑채에는 방 2개와 창고와 곳간이 있다.

 

 

 

 

 

▲ 松無古今色(소나무의 색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 안채의 부엌

 

 

▲ 사랑채의 방과 창고(곡간) 사이에 위치한 디딜방아

 

 

▲ 사랑채의 제일 오른쪽에 위치한 곡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