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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영의 보금자리
▣ 청도의 산

청도 남산 13곡 (2) End

by 영영(Young Young) 2012. 3. 11.

▼ 운금천 안내판에서 계곡쪽으로 놓인 돌계단

 

▼ 운금천이 새겨진 바위는 계곡 건너에 위치한다.

 

▼ 바위에 새겨진 운금천

 

▼ 운금천 안내판을 지나서 몇걸음 가면 벤취 2개가 놓여있고 ~

 

▼ 벤취에서 몇걸음 옮기면 취암 안내판이 서있다.

 

▼ 취암(醉岩) * 4번 안내판
이곳은 청도의 문사(文士)들이 시회(詩會)를 열고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취암과 봉화취암 등 주변 바위 4곳에 모두 11수의 시가 새겨져 있다. 내용은 인생사의 부침(浮沈)을 노래 하였으며, 모두 오언절구(五言絶句)에 성(聲)과 정(精)으로 압운되어 있다. 취암에는 도광(道光)18년 무술(戊戌)이라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1838년(헌종 4년)에 해당된다. 송나라의 대문호인 취옹(醉翁) 구양수(歐陽脩)의 풍모를 본받는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 취암 안내판에서 계곡쪽으로 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있다. 

 

▼ 취암이 새겨진 바위와 시구가 각인되어 있다.

 

▼ 취암 안내판에서 몇걸음 가면 평상1개가 놓여있는 앞쪽에 질양석(叱羊石) 안내판을 만난다.

 

질양석(叱羊石)이 새겨진 바위는 계곡 왼편, 안내판뒤의 바위에 새겨진것으로 안내판에 기록되어 있으나 거리가 멀고 글자가 희미해서 확인되지 않는다.

 

▼ 질양석(叱羊石) * 5번 안내판
"양을 부르는 바위"라는 뜻으로 질석성양(叱石成羊)이라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중국 위진시대 목동 황초평(黃初平)이 도사를 만나 금화산(金華山)의 석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의 형이 수년동안 찾아다니다 겨우 만나서 양은 어떻게 되었는지를 묻자, 산의 동쪽에 있다고 했다. 가서보니 모두 흰돌 뿐이었는데, 초평이 돌을 꾸짖으며 "일어나라"고 외치자 수만 마리의 양으로 변했다고 한다. 흰돌이 많은것을 두고 이렇게 부른것이다.

* 질양석은 계곡에서 왼편으로 다소 떨어진 곳에 있으며, 높은바위에서 염소나 양을 부르기 알맞은 곳이어서 붙혀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 안내판뒤로 보이는 바위에 "질양석" 글자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 바위를 줌인 해보았으나 역시 "질양석"이라는 글자의 모양은 확인할 수 없다.

 

▼ 질양석 바위를 지나 곧이어 자연석 돌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곧바로 만옥대(萬玉臺)안내판을 만난다.

 

▼ 계곡 좌측, 안내판 왼쪽 뒤의 절벽에 만옥대 글자가 새겨져 있다.

 

 

 

 

 

▼ 만옥대(萬玉臺)  * 6번 안내판
글씨가 쓰인 바위에 흘러내리는 물줄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 아니라 맞은 편 벼랑 아래 층층의 폭포에서 시원스럽게 쏟아져 내리는 포말이 수만개의 구슬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것이다.

 

▼ 만옥대를 지나 1분쯤 가지않아 목교 앞에서 연주단(聯珠湍)안내판을 만난다.

 

 

 

 

 

▼ 안내판의 뒷쪽으로 보이는 계곡 건너 바위에 연주단 글자가 각인되어 있다.

 

 

 

▼ 연주단 글자가 새겨진 계곡건너 바위의 모습으로 글자의 모습은 직접 확인하지 못하였다.

 

 

 

▼ 연주단(聯珠湍) * 7번 안내판
연주(聯珠)는 "꿴 구슬" 혹은 "아름다운 시문(詩文)"을 가리킨다. 바위 앞 굽이쳐 솟구치는 포말을 이루며 흘러가는 물방울의 모습이 마치 구슬을 꿰어 놓은것 같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 연주단에서 1분을 가지 않아서 석문 안내판을 만난다.

 

 

 

 

 

▼ 석문이라는 글자는 안내판 왼쪽 절벽에 새겨져 있다.

 

 

 

▼ 석문(石門) * 8번 안내판
바위와 절벽 사이로 자연적인 출입구가 형성되어 있어 석문이라 붙여졌다. 석문을 통과하면 이 골짜기의 다른 세계, 곧 선경(仙境)으로 들어가는 문을 의미하는것으로 여겨진다.

 

▼ 석문을 지나 1분쯤 가면 정자가 있는 산수정(山水亭) 앞에 닿는다.

 

 

 

▼ 지은지 얼마 안되는 4각정자 앞 바위에 산수정 안내판이 서있는데 안내판 뒤쪽의 바위가 산수정이 새겨진 바위인지 알 수 없지만 바위의 어느부분에 글자가 새겨진지 확인하지 못했다. 산기슭과 물가 사이에 산수정이라는 글자가 남아 있다고 하는것으로 보아 안내판뒤의 바위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 산수정(山水亭) * 9번 안내판
소강(小岡) 최익주(崔翼周 1851~?))가 창건한 정자로 고을의 인사들이 산수계(山水契)를 만들어 사계절 이곳에서 시를 짓고 읊었다고 한다. 이곳을 시정(詩亭)골이라 부르는것은 여기서 유래한다. 1962년 퇴락한 산수정의 목재와 기와를 화강지 언덕으로 옮겨 화악루(華岳樓)를 지었다.

 

▼ 정자는 지금 막 새로 지은것 같았고 정자 앞에 놓인 돌길은 미처 조성을 마무리 하지 못한 상태로 보인다.

 

▼ 산수정의 새로 설치한 정자에서 몇 걸음만 더가면 유하담(流霞潭) 안내판이 있다.

 

▼ 유하담(流霞潭)안내판

 

▼ 안내판 뒤로 계곡 건너편에 보이는 바위에 유하담(流霞潭)글자가 새겨져 있다.

 

▼ 유하담(流霞潭) * 10번 안내판
유하(流霞)는 "신선이 마시는 좋은 술" 이라는 의미도 있고, 글자 그대로 "흐르는 노을"을 뜻하기도 한다. 이곳의 경치에 취해 술을 마시면 그 술이 바로 유하주일 것이요, 햇살에 금빛 노을처럼 일렁이는 물결을 품었으니 유하담인 것이다.

 

▼ 유하담(流霞潭)이 새겨진 바위의 모습

 

 

 

▼ 유하담(流霞潭)을 지나서 곧바로 목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

 

▼ 계단끝에 3번 휴게소 표지판이 서있고  오른쪽으로 정자의 지붕이 보인다.

 

 

 

▼ 이곳 휴게소에는 육각정자와 남산13곡의 16개소의 안내석과 ~

 

▼ 벤취와 간이화장실 등이 위치한다. 빨간지붕 건물이 간이화장실이고 저쪽 방향으로 가면 신둔사로 연결되는 차도와 만나게 된다.

 

▼ 남산계곡 곳곳에 새겨진 16개소를 소개하는 안내석

 

 

 

 

 

 

 

 

 

 

 

 

 

 

 

 

 

 

 

 

 

 

 

 

 

 

 

 

 

 

 

 

 

 

 

 

 

 

 

▼ 제3휴게소 정자 아래 계곡

 

▼ 정자 아래 계곡쪽으로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 본다.

 

▼ 계곡에 위험 경고판이 서있다.

 

▼ 경고판에 의하면 이곳 쉼터 조성시기가 2012년도 1월쯤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 정자 아래 계곡의 상류방향의 모습

 

 

 

 

 

▼ 정자 아래 계곡 소의 모습

 

 

 

▼ 휴게소에서 몇걸음 후방에 일감당(一鑑塘) 안내판과 옥정암&용항 안내판이 각각 서있다. 앞쪽에 보이는것이 일감당 안내판이다.

 

▼ 일감당(一鑑塘) *11번 안내판
일감당은 송나라 주희(朱熹)의 "관서유감(觀書有感)"이라는 시의 "반무방당일감개(半畝方塘一鑑開) 작고도 반듯한 못, 거울처럼 열렸고"에서 나온말로 하나의 거울같은 연못, 혹은 거울처럼 맑은 연못이라는 의미이다.

* 일감당이라는 글자가 어디쯤에 새겨져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 일감당(一鑑塘) 안내판 바로 옆에 옥정암(玉井巖)&용항(龍亢) 안내판이 서있다.

 

▼ 용항(龍亢) *12번 안내판
일감당 맞은편, 물웅덩이의 왼쪽 바위면에 새겨져 있으며 "용의 목구멍"이라는 뜻이다. 바위 사이로 물이 흐르는데 그 모습이 마치 용의 목덜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기우제를 지냈던곳으로 추정된다.

▼ 옥정암(玉井巖) *13번 안내판
화산동에서 최고의 명소가 이곳이다. 옥정이라는 말은 수세(水勢)가 소용돌이 치고 깊게 고인 것이 마치 옥이 우물을 채운 것과 같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이다. 당나라의 대문호인 한유(韓劉)의 시에 나오는 태화산(太華山) 꼭데기에 옥정(玉井)에 핀 "연꽃"에서 따온 말로 이 산의 이름이 화산(華山)이기 때문에 옥정(玉井)이 있는 것이다. 옥정암 아래 임술정미중위이대방서(壬戌鄭美仲爲李大防書)라는 글씨는 임술에 정미중이 이대방을 위해 쓰다 라는 뜻으로 영조 시대를 대표하는 서예가인 정하언(鄭夏彦)(1702~1769)이 경상도 도사로 재직할 때인 1742년에 적은 것으로 금석학적 가치가 상당히 높다. 아래의 만옥대로 정하언이 새긴 것이다.

 

 

 

▼ 옥정암이 새겨진 바위인데 어디쯤 각인되어 있는지 알 수 없고 용항이라는 글자는 어느 바위에 새겨져 있는지 알 수 없다.

 

▼ 옥정암(玉井巖)&용항(龍亢) 안내판에서 몇 걸음 옮기면 낙안봉(落雁峯) 안내판을 만난다.

 

 

 

▼ 낙안봉(落雁峯) * 14번 안내판
"기러기가 내려앉은 형상의 봉우리"라는 의미이다. 낙안봉 일대는 큰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가운데 기러기 형상의 바위에 글을 새겨놓았다. 중국 화산의 남쪽 봉우리가 낙안봉이라고 부른것에서 유래한다.

* 바위가 검어서 어디쯤 글씨가 각인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 낙안봉에서 몇 걸음 옮기면 자시유인불상래(自是遊人不上來) 안내판을 만난다.

 

▼ 자시유인불상래(自是遊人不上來) * 15번 안내판
주희의 <무이도가>중 제8수의 마지막 부분 "막언차지무가경 자시유인불상래(막언차지무가경 自是遊人不上來 이곳에 아름다운 경치가 없어 유람객이 올라오지 않을 것이라 말하지 마오)" 취한것으로 여기서 끝이 아니라 계속해서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져 있음을 말한 것이다.

* "여기서 부터 놀러 오는 사람은 올라오지마라"는 의미이다. 이곳은 예전에 유람객들이 절의 경내  계곡으로 놀러와서 소란스럽게하여  스님들의 수행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문구로 서 경계를 하였다. 계곡의 어디쯤의 바위에 새겨진것인지 확인하지 못했다.

 

 

 

▼ 자시유인불상래(自是遊人不上來) 안내판에서 1분 이내의 거리에 금사계(金沙界) 안내판을 만난다.

 

▼ 안내판 뒤로 보이는 바위에 금사계(金沙界) 글자가 새겨져 있다.

 

▼ 금사계(金沙界) * 16번 안내판
금사계는 불교용어로 "금모래가 펼쳐진 세계"로 관세음보살의 주거처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곳에서 바로 위쪽이 신둔사의 경내이다.

 

 

 

▼ 마지막 안내판인 금사계를 지나면 오솔길은 남산기도원 앞 시멘트 차도로 연결된다. 전면에 보이는 건물이 기도원 건물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신둔사, 좌측으로 가면 화양읍 방향이다.

 

▼ 시멘트 차도로 올라와서 본 모습으로 왼쪽길이 기도원, 오른쪽길이 신둔사 방향이다.

 

 

 

 

 

 

 

▼ 기도원에서 시멘트 차도를 따라 신둔사 방향으로 100여미터만 가면 자그만 공터에 간이화장실이 있고, 안내판 몇개가 서있다.

 

▼ 공터에 서있는 청도 남산 119구조위치 표지판 설치도 및 남산등산코스안내도

 

▼ 공터에 있는 오래된 이정표인데 지금은 이곳에서 신둔사 방향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새로운 이정표가 서있다.

 

▼ 공터에서 턴하여 왔던길로 되돌아와 기도원 앞에서 올라왔던 계곡쪽으로 내려가지 않고 시멘트 차도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도로 우측에 이름없는 약수터 1개소를 만난다.

 

 

 

 

 

▼ 시멘트 차도의 좌측 계곡 건너 산책로에는 4각정자와 물레방아가 있는 제2휴게소가 보인다. 올라갈때는 저길을 따라 갔었다.

 

▼ 화양읍내로 내려가다가 금장지 못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서 범곡지를 지나서 조금만 가면 가는 길 오른쪽으로 보면 산기슭 아래 범천사가 있고 범천사 이정표가 서있다.

 

 

 

▼ 범천사를 줌으로 살짝 당겨 보았다. 좌측편에 불상이 서있고 우측편에 사찰 건물이 위치한다.

 

▼ 범천사 불상 모습
범천사의 원경 사진은 아래 링크에서도 몇컷을 볼 수 있다.
1)겨울 : http://blog.daum.net/smirinae/6040553,
2)늦은봄 : http://blog.daum.net/smirinae/6040596

 

▼ 범곡리 복지회관을 지나 근무처로 돌아왔다.

 

▼ 오늘 돌아본 코스(구글GPS궤적)

 

 

 

 

 

 

 

 

 

▼ 돌아본 데이타(거리 및 소요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