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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영의 보금자리
▣ 청도의 산

청도 남산 13곡(1)

by 영영(Young Young) 2012. 3. 11.

2012년 2월 23일(목)

 

남산 13곡은 조선조 무오사화 당시 경북 청도군 화양읍 남산계곡 2.5㎞ 구간을 따라 이곳 고을 선비들이 남산계곡에 모여 시회(詩會)를 열고 자연 속에서 풍류를 읊었던 장소로 취암(醉岩), 운금천(雲錦川) 등 많은 글을 바위에다 새겨 남겨 놓았다. 계곡은 크고 웅장한것과는 다소 거리가 멀고 비교적 작고 아담한 계곡이지만 자연속에서 우정과 사랑을 노래한 옛 선조들의 멋을 느낄 수 있다.

 

지금은 다른 안내판으로 교체되고 없지만 불과 2~3년전까지 남산계곡의 백석뢰(白石瀨)인근에 설치된 "남산13곡 안내"판에 의하면 남산 13곡은 다음과 같다.

 

 

◆ 남산 13곡

   제1곡 여기추(女妓湫) 일명 청수대(靑水台)라고도 부르며 사대부의 안 여자들이 목욕하러 오는 것을 막기 위해 기생들이 목욕하던 곳.
   제2곡 록수문(鹿脩門) 녹피(鹿皮)를 상납할 때 포수들이 이곳에서 수렵제(獸靈祭)를 지내고 사냥하던 곳.
   제3곡 용음지(龍飮池) 한발 때 군수가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일명 기우단(祈雨壇)이라고도 함
   제4곡 백석뢰(白石瀨) 물 밑 흰돌이 많이 모여 보석처럼 반짝이는 여울
   제5곡 질양석(叱羊石) 바위가 우뚝 서 있어 소나 양을 치면서 감시하기에 알맞은 바위
   제6곡 운금천(雲錦川) 바위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햇빛에 반사되어 비단을 깔아 놓은 것 같아 붙여진 이름.
   제7곡 취  암(醉  岩) 무오사화(戊午史禍) 후 많은 선비들이 한을 달래던 곳
   제8곡 철주단(撤珠湍) 여울에 솟구치는 모래알이 구슬을 뿌리는 것과 흡사한 곳.
   제9곡 산수정(山水亭) 수계하여 자연과 더불어 작시하였던 곳으로 정자가 있다.
   제10곡 만옥대(萬玉臺) 나지막한 폭포로 물방울이 튀어 날리는 것이 놀라움
   제11곡 유하담(流霞潭) 노을 빛이 계곡에 가득하기가 큰못에 물이 가득한 것과 같다는 곳
   제12곡 낙석대(落石臺) 선녀들이 옥련대에서 목욕할 때 우의를 벗어 놓았던 곳으로 일명 낙안봉(落岸峯)이라고도 함.
   제13곡 금사계(金沙界) 이곳에서 몸과 마음을 청결하게 하여 신둔사(薪屯寺, 옛 鳳林寺))로 갔다는 곳.

 

 

2012. 3월 현재, 계곡과 산책로 및 표지판 등이 정비되면서 위에서 본 "남산13곡 안내"판이 사라지면서 따라서 이전에 있었던 제1곡 여기추(女妓湫)와 제2곡 록수문(鹿脩門) 등이 사라지고 석문(石門), 일감당(一鑑塘), 용항(龍亢), 자시유인불상래(自是遊人不上來) 등이 추가되어 현재 남산13곡은 실제 16개소로 지정되어 있다. 아래 사진은 남산계곡 제3휴게소에 위치한 안내석 사진을 모아서 편집한것이다.

 1. 음용지(飮龍池)
 2. 백석뢰(白石瀨)
 3. 운금천(雲錦川)
 4. 취암(醉岩)
 5. 질양석(叱羊石)
 6. 만옥대(萬玉臺)
 7. 연주단(聯珠湍)
 8. 석문(石門)
 9. 산수정(山水亭)
 10.유하담(流霞潭)
 11.일감당(一鑑塘)
 12.용항(龍亢)
 13.옥정암(玉井巖)
 14.낙안봉(落雁峯)
 15.자시유인불상래(自是遊人不上來)
 16.금사계(金沙界)

 

▼ 2012년 2월 23일(목) 오후 2:55경 근무처에서 남산계곡 방향으로 출발

 

▼ 약15분뒤에 화양삼거리에 도착, 직진하면 풍각,각남 방향이고 왼쪽길로 간다.

 

▼ 화양삼거리에서 약6분뒤에 남산13곡의 입구인 동천교 앞에 도착,  남산13곡 입구 부근의 동천슈퍼

 

▼ 남산 13곡 안내판
청도군 화양읍 동천리 동천교 옆에 남산 13곡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서있다. 동천교가 있는 이곳 도로의 명칭은 새주소에 의하면 "도주관로" 라고 불린다.  동천교에서 동천슈퍼 옆으로 난 아스팔트 차도로를 따라 "화양 남산길"을 따라가도 되지만 이용소 옆 인도(산책로)를 따라가는것이 산책 및 운동코스이다.

 

▼ 동천슈퍼 옆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살짝 들어서면 빨간 우체통 안쪽 입구에 표지판 두개가 서있다.

 

▼ 걷기운동 안내판과 남산골 산책로 안내판이다. 이용소 옆으로 새로이 인도길(산책로)이 조성되기 전에는 이 길이 남산골 주 산책로 입구였기에 여기에 안내판이 서있다.

 

▼ 남산골 산책로 안내판
이곳 남산골 입구에서 신둔사까지 왕복 거리가 7.4km로 표기되어 있다.

 

▼ 몇 걸음 더 진행하여 돌아보면 목교 뒤로 청도제일교회와 동천 다세대주택이 들어서 있는것이 보인다.

 

▼ 다시 동천교로 돌아나와 이용소 옆 인도(산책로)로 진행한다.

 

▼ 남산계곡으로 들어서는 입구 계곡쪽에 남산계곡산책로 표지판이 서있다.

 

 

 

▼ 표지판에 의하면 남산계곡은 약 3km(정확히 2.85km)이고 3개의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번에 남산13곡을 정비하면서 새로이 16개소를 지정하였는데 표지판에 표기된 현황은 16개소와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 하천 우측길을 따라 70여미터쯤 따라가면 ~

 

▼ 하천을 가로질러 놓인 목교가 있고 그 우측에 자그만 동천공원과 또 그 우측에 석빙고 유적이 있다. 석빙고 유적은 전국에 7개가 있다고 한다.

 

▼ 산책로의 우측 언덕위에 석빙고가 있다. 석빙고 앞으로 진행하면 남산 읍성과 향교를 만날 수 있다.

 

▼ 산책로의 우측 석빙고 아랫부분에 운동기구와 정자가 있는 자그만 동천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 동천공원의 입구에 이정표가 서있다. 오던 방향에서 직진하면 남산계곡, 왔던 방향이 화양읍, 오른쪽으로 가면 석빙고 방향이다. 이정표 뒤에는 동천공원의 표지석이 놓여있다. 

 

▼ 동천공원의 입구에 하천을 가로 질러 목교가 놓여있다.

 

▼ 동천공원과 목교 앞을 지나서 ~

 

 

 

▼ 계곡 건너편 차도 쪽에는 고목나무 두 그루가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는듯하다.

 

▼ 동천공원 앞을 지나 하천을 따라 직진하는 길에는 진달래 꽃나무가 줄지어 있는데 봄이 되면 참 보기가 좋을듯 하다. 동천공원에서 약 5분쯤 가면 다리를 만나고 ~

 

▼ 다리의 이름은 시정교(詩亭橋)이고 다리 옆에 이정표가 서있다.

 

 

 

▼ 지금까지 온 방향이 화양읍, 석빙고 방향, 직진하면 남산계곡, 우측으로 꺾어가면 향교, 좌측으로 꺾어가면 청도읍 방향이다. 도로를 횡단하여 남산계곡 방향으로 직진한다.

 

 

 

 

 

▼ 산책로 주변에는 철쭉나무가 도열해 있고 군데군데 벤취가 놓여있다.

 

▼ 시정교에서 1분쯤 가면 다리 없는 삼거리를 만나고 삼거리에서 직진한다.

 

▼ 삼거리에서 직진방향에 이정표가 서있다.

 

▼ 지금까지 온 방향이 화양읍과 석빙고, 남산계곡 방향으로 직진한다.

 

▼ 1휴게소
시정교에서 약 4분쯤 걸으면 남산계곡산책로 표지판과 간이화장실, 휴게소 알림판, 아담한 조형물들이 자리하고 있는 제1휴게소(쉼터)에 닿는다.

 

▼ 휴게소에 남산계곡산책로 표지판이 서있다. (두번째의 표지판이다)

 

 

 

▼ "휴게1" 이라는 표지판과 조형벤취

 

▼ 최근에 설치한여 깨끗하고 특히 휴지도 비치되어 있는 화장실.

 

 

 

▼ 휴게소에서 100~200여미터쯤 가면 원두막과 다리가 보인다. 

 

 

 

 

 

▼ 원두막이 있는 좌측 하천은 말라있고 물이 흐르는 일부구간은 얼어있다.

 

▼ 다리를 건넌다.

 

▼ 다리에서 하류쪽(지나온곳)으로 본 모습

 

▼ 다리에서 상류쪽(가야할 곳)으로 본 모습

 

▼ 다리건너 끝쪽에 이정표 하나가 서있다.

 

▼ 좌측으로 다리를 건너서 진행한다. 다리위에 서서 지나온 방향으로 본 모습이고 ~

 

▼ 다리위에 서서 가야할 방향으로 본 모습이다. 계곡물은 바짝 말라있다.  다리를 건너면 산책로는 오른쪽으로 휘어지며 이어진다.

 

▼ 다리를 건너서 200여미터 가면 앞쪽에 허름한 건물이 보이고 ~ 건물 앞 삼거리에 이정표 하나가 서있다.

 

▼ 지금까지 온 방향이 화양읍, 휴게1, 진행방향이 남산계곡과 휴게2이다.

 

▼ 건물 앞의 널찍한 길은 신둔사로 이어지는 차도와 연결된다.

 

▼ 차도쪽으로 나와서 산책길 방향으로 본 모습이다.

 

▼ 목교 옆에 있는 허름한 건물은 용주골 식당 건물이다.

 

▼ 식당 앞에서 오른쪽으로 목교를 건너간다.

 

▼ 목교에서 본 계곡 상류 모습

 

▼ 목교를 건너 올라와서 내려다 본 모습

 

▼ 목교를 건너 올라서면 다시 이정표 하나가 서있고 왼쪽으로 턴하여 간다.

 

▼ 계곡쪽으로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좁은 산책로에 원목 팬스를 설치해 놓았다. 

 

▼ 목교위의 이정표

 

▼ 제2휴게소
용주골 식당 앞에서 목교를 건너서 약 2분쯤 가면 4각정자와 물레방아. 휴게소 표지판 등이 있는 제2휴게소 앞에 닿는다.

 

 

 

 

 

 

 

 

 

 

 

 

 

▼ 휴게2를 지나서 목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 목계단을 올라서면 표지판이 서있고 ~

 

 

 

▼ 표지판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서 간다.

 

▼ 몇걸음만 더 가면 다시 계곡쪽으로 목계단이 연결되어 있다. 목계단은 산책로로 이어지는 길은 아니고 계곡쪽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 이곳 목교 앞에도 이정표 1개가 서있다. 목교로 내려가지 않고 직진하여 간다.

 

▼ 바로 앞 목교에서 약 2분쯤 가면 외딴 판넬 건물을 만나고 건물 앞에서 오른쪽 비포장 오솔길로 접어든다.

 

 

 

 

 

▼ 외딴 건물 앞에서 오솔길로 들어서면 거의 곧바로 자그만 전망데크와 안내판이 한개 보인다.

 

 

 

▼ 데크 옆 안내판 뒤로 보이는 계곡 건너 바위에 "음용지"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글자가 많이 훼손되었다.

 

 

 

 

 

 

 

 

 

▼ 음용지(飮龍池) *1번 안내판
계곡의 암반 큰 바위에 새겨져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극심한 가뭄이 들면 군수가 직접 기우제를 지냈던 곳으로 일명 기우단(祈雨壇)이라고도 한다. 주민들은 이곳을 용지골이라 부르고 있다.

 

▼ 음용지 부근의 계곡 모습으로 암반과 바위 한개가 계곡안에 있다.

 

 ▼ 음용지 부근의 계곡 모습

 

 ▼ 음용지 부근의 계곡 모습

 

 ▼ 음용지 부근의 계곡 모습

 

▼ 음용지를 지나서 1분 이내에 자그만 목교 하나를 만나고 ~

 

 

 

▼ 목교위에서 계곡 하류쪽을 본 모습

 

 

 

▼ 목교위에서 계곡 상류쪽을 본 모습

 

 

 

 

 

 

▼ 목교를 건너서 1분 이내에 안내판이 서있는 삼거리를 만난다.

 

 

 

▼ 오던 방향에서 좌측길은 신둔사로 이어지는 시멘트 차도로 연결된다.

 

▼ 삼거리를 돌아본 모습이다.

 

▼ 삼거리에 세번째의 남산계곡산책로 표지판이 서있다.

 

 

 

 

 

▼ 표지판 뒷쪽의 목교를 따라간다.

 

▼ 계곡 좌측으로 목교가 이어진다.

 

▼ 목교 아래의 계곡 모습

 

▼ 목교를 따라 몇걸음 가면 벤취와 안내판이 보인다.

 

 

 

▼ 백석뢰(白石瀨) * 2번 안내판
"흰돌이 아름답게 펼쳐진 여울"이라는 의미이다. 주위에 흰돌이 남아있지 않아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각자된 바위는 큰 바위에서 떨어져 나와 비스듬히 넘어져 있다.

 

 

 

 

 

▼ 백석뢰가 새겨진 바위 부근의 계곡 모습

 

▼ 백석뢰를 지나서 곧바로 계곡 좌측의 목교를 따라 올라간다.

 

▼ 목교를 잠시 올라서면 간이화장실이 위치한 삼거리를 만난다.

 

▼ 좌측길은 신둔사로 이어지는 차도로 연결된다.

 

 

 

 

 

 

 

 

 

▼ 앞 삼거리에서 1~2분쯤 가면 벤취3개가 놓인 자리에 계곡쪽으로 안내판 1개가 서있다.

 

 

 

▼ 봉화취암이라는 입간판이 서있고 우측 계곡을 향해 돌계단이 놓여있다. 돌계단 후방 계곡에 놓인 바위에 시글이 각인되어 있다.

 

▼ 봉화취암(奉和醉巖) 안내판
취암(醉巖)은 무오사화(戊午史禍)후 많은 선비들의 한 많은 시들이 있는 곳이다. 취암(醉巖)을 맨 처음 읊은 이는 호(號)가 일취(一醉) 이름은 도필락(都必洛)이며, 일취의 이름을 따 바위 이름도 취암(醉巖)이라고 단정하게 해서(楷書)로 써 넣었다. 취암 바위의 아래 부분에 시(詩)를 짓고 새기게 된 내력을 이관용(李觀瑢)이 적어 놓았다. 일취옹(一醉翁) 도필락이 시와 술로 정을 토로하여 친구들과 함께 문주회(文酒會)를 열고 이곳에서 술잔을 띄어놓고 시를 읊었고, 아들인 우엽(宇曄)이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돌에다 시를 새겼으므로 아버지를 사모하는 정이 남달리 깊었다. 사람은 떠났지만 시는 오히려 남아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술에 취했는지 경치에 취했는지 알 수 없지만 글이 새겨진 바위에는 "도광(道光)18년 무술(茂戌)"이라 새겨졌으니 곧 조선 헌종(朝鮮憲宗)4년(1838)으로 지금으로부터 174년 전이다. 취암에 5수의 시를 짓고 새기게 된 내력이 적혀있다. 아들인 우엽(宇曄)의 봉화취암(奉和醉巖) 시 1수, 그 외 3수, 김윤하(金允河)의 시 1수, 운금천(雲錦川) 바위에 김학연(金學鍊)의 시 1수 등 취암을 중심으로 위아래의 4개의 바위에 총 11수의 한시가 모두 "성(聲)과 정(情)"을 운자(韻字)로 해서 지은 시들이다.

 

▼ 돌계단을 따라서 계곡쪽으로 내려와 본다.

 

 

 

▼ 계곡가에 놓인 글자가 새겨진 바위

 

 

 

▼ 봉화취암이라는 글귀가 보인다.

 

 

 

 

 

▼ 봉화취암 부근의 얼어있는 계곡 모습

 

 

 

▼ 봉화취암이 새겨진 바위가 있는 계곡에서 벤취가 놓인 산책로로 다시 올라와서 우측으로 꺾어서 ~

 

▼ 몇십미터만 가면 운금천 안내판을 만난다.

 

 

 

▼ 운금천(雲錦川) * 3번 안내판
운금은 "구름을 수놓은 비단" 혹은 "아침노을"을 뜻한다. 긴 반석위를 흘러내리는 개울물에 아침 햇살이 반짝이고, 흐르는 물이 구름을 품었으니 선녀가 구름을 수놓은 비단을 씻었던 곳이라고 표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