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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영의 보금자리
▣ 대구의 산/초례봉

초례봉 가는 길-매일신문 기사

by 영영(Young Young) 2010. 7. 24.

 

감투봉에서 학봉을 향해 서쪽으로 달리는 산줄기를 살폈지만, 감투봉에서는 동시에 동쪽으로 가는 줄기도 하나 낸다. 무학산 가는 줄기와 평행해 달리며 그 사이에 환성사골을 형성하고 남쪽으로는 대곡골(하양 대곡리)을 낳는 산줄기. 두 골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조산천'으로 모여 하양 시장 일대를 돌아 나간다.

이렇게 감투봉에서 동서로 출발한 두 산줄기가 만들어 낸 평광동 불로천골과 하양 대곡골은 '새미기재'라는 재에서 거의 이어질 듯 근접한다. 감투봉으로 811m까지 높아졌던 능선이 540m까지 급작스레 낮아진 곳. 대구쪽 불로동 도동 평광동 사람들이 하양 시장을 보러 다니던 길목이었으리라.

그 길을 뒤따라 밟아 보겠다고 평광동의 시량이 마을을 출발해 쭉 골을 따라 올랐더니 지금도 재까지 줄곧 길이 살아 있었다. 걸린 시간은 40분 정도. 재의 하양 쪽 내리막 골 길이는 7.5km 정도로 측정됐다. 윗한실, 아래한실, 서사리 등의 마을을 거쳐 하양 초입에 이르는 구간. 이 길에는 임도가 놓여져 있어 하양을 출발할 경우 재 꼭대기까지 차가 올라간다.

이 재의 이름에도 문제가 생겨 있었다. 지도들은 거의가 이 재를 '성령'(城嶺)이라 표기했다. 그러나 평광동과 대곡동 어른들은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재 양쪽 마을 어르신들은 공히 그 이름으로 '새미기재'를 들었다.

이 재에서는 북쪽으로 길을 택할 경우 3, 40분이면 감투봉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고도가 270m 가까이 급등하는 구간이어서 만만치는 않은 오르막. 반면 남쪽 산길을 택할 경우에는 5분 정도면 전망 훤한 610m봉에 올라서게 된다. 산줄기는 610m봉에서도 서쪽으로 줄기를 하나 내려보내나, 그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회차에서 별도로 살피도록 하자.

 

610m봉을 거친 주맥은 남쪽으로 달리기를 계속하니, 이것이 초례봉 가는 맥이다. 그 후 '최종분기점'이라 불러도 될만한 651m봉에 도달할 때까지 610m 이상의 봉우리만 13개를 이어 간다. 10여m씩, 심할 경우 몇십m까지도 오르내리길 반복하는 봉우리들이 아기자기 연결된다. 덕분에 이 구간 걷기는 참으로 즐겁다. 환한 화강암들이 마음을 편하게 하고 마사토 밟는 느낌이 아삭아삭하다. 그 능선은 대구-경북의 구역 경계선이기도 하다.

그 중간 즈음에 655, 656, 653m 등 650m대의 봉우리 3개가 잇따라 솟았다. 새미기재 이후 최고 높이의 봉우리군. 그걸 보고 등산객들은 '낙타봉'이라 불렀지만, 인근 마을 사람들은 '독수리 형상'이라 했다. 꼭 독수리의 머리와 두 어깨 같이 보인다는 것. 대구 둔산동 토골 위의 대암봉, 소동골 뒤의 요령봉에 올라 보니 독수리의 느낌이 더 생생히 잡혔다. '독수리 삼봉'이라 불러둬도 좋을 듯 했다.

드디어 도달하는 '최종분기점' 651m봉을 마지막으로 산줄기는 100여m나 급격히 낮아져, 위풍 당당하던 주맥으로서의 기운이 소멸돼 갈 것임을 예감케 한다. 그리고는 스스로도 서남행-동남행의 두 갈래로 찢어져 버린다. 그 두 갈래 사이에 있는 골이 숙천골. 그 최상류, 651m봉의 바로 아래에 40년 역사를 자랑하고 적잖은 지역인들에게 추억의 장소가 된 '청천다락원'이 있다. '숙천'이라 불리는 물줄기는 이어 내곡동, 숙천동을 거치며 흐른다.

갈라진 줄기 중 특히 동남행 줄기는 확연히 기세를 잃어, 대체로 500m대 이하의 높이로 내려앉으며 점차 더 낮아져 간다. 조산천의 남녘 울타리이기도 한 줄기는 그 남으로 많은 실가지를 쳐 경산의 청천리 남하리 은호리 부호리 같은 마을들과 경일대 가톨릭대 등을 품는다. 반면 서남행 산줄기는 다시 잠깐 100여m 치솟아 600m대 봉우리로서는 마지막인 초례봉(635.7m)을 맺는다. 각산동 신서동 동내동 등의 마을이 자리잡는 곳이 그 가지 줄기들의 자락이다.

초례봉은 주맥이 세를 잃고 쪼개진 뒤의 가지 줄기에 있고 높이에서도 앞선 봉우리들에 밀린다. 그런데도 당당히 고유한 이름을 얻고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히 유명해지기까지 했다. TV 드라마 덕분이라는 얘기가 들렸지만, 봉우리 자체가 지닌 매력도 무시돼서는 안될 터. 북쪽만 감투봉으로 가려졌을 뿐 서쪽으로는 율하천골, 동과 남으로는 멀리 평야지대까지 훤히 살펴질 정도로 좋은 전망을 갖췄다. 그래서 산 밑 마을들에서 보면 초례봉은 어느 봉우리보다 우뚝 솟아 보인다. 그 꼭대기의 풍광 역시 상당해, 품격 높은 큰바위들이 갖가지 자세로 몸매 경연을 벌이기라도 하는 듯 하다.

그래서인지, 초례봉은 '초사모'(초례봉 사랑 모임)라는 단체까지 거느리고 있었다. 이를 이끄는 김채환(47)씨는 대구 신서동에서 나 그곳에서 줄곧 살고 있다고 했다. 어릴 때 솔방울 따러 가는 일로부터 시작해 지금의 등산로 보수 일에 이르기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는 것. 김씨가 동호회를 만들고 이벤트를 주최하기 시작한 것은 4년 전이라고 했다. '태조 왕건'이라는 드라마로 초례봉이 주목받기 시작할 즈음인 모양. 무엇보다 지하철을 이용한 봉우리 접근성이 좋은 점에 착안했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2001년에 그곳 특산물인 연근 축제를 겸한 초례봉 산행대회가 개최됐다. 이듬해부터는 1천여명씩이나 몰리는 초례봉 새해 맞이 행사도 주최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초례봉은 이렇게 사랑받고 있으나, 그 봉우리 이름에는 한번 되살펴 볼 점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대동여지도에도 '초례산'이라는 명칭이 등장하고 일부에서는 나무꾼과 선녀의 초례 전설까지 제시하고 있지만, 현지 주민들은 공통되게 그것을 '조리봉'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봉우리 서쪽의 율하천골 매여동에서도, 동쪽의 숙천골 내곡마을에서도, 들에 붙은 남쪽 마을에서도 조리봉이라 불렀다. 봉우리가 '조리'를 닮았다는 것이다. 그건 쌀을 일 때 사용하고, 복을 담을 경우 복조리가 되는 도구. 전문가들이 나서서 한번 조사해 줬으면 싶다.

새미기재를 지난 직후 만났던 610m봉에서 이곳 초례봉(조리봉)에 이르는 산줄기는 환성산군의 등뼈로서, '율하천'이라는 큰 물줄기 계곡의 뒷담 역할도 맡고 있다. 율하천골은 그 길이가 7km 정도나 되는 깊은 골짜기. 그래서 대곡골, 불로천골과 함께 환성산군의 땅덩어리를 나누는 가장 뚜렷한 갈림이 되고 있다.

율하천골의 동편 담장 역할은 초례봉에서 각산동으로 흘러내리는 한 능선이 맡는다. 반면 서편 울타리 역할은 앞서 610m봉에서 서쪽으로 출발한다고 했던 그 산줄기가 맡고 있다. 얼마 후 남쪽으로 굽어 돈 후 '능천산'을 거쳐 옛 영천 국도의 '율하교' 지점 바로 위까지 흐르는 그것.

율하천골을 율하교 지점에서 올라가며 살피자면, 먼저 율암동이 나타나고 이어 상매동을 지날 즈음 왼쪽으로 능천산이 솟아 있다. 골 끝 마지막 동네는 매여동. 율하교에서 매여동 입구까지는 4.5km 정도 됐다. 골은 거기서 두 갈래로 갈려, 줄곧 올라 갈 경우 '큰골'이 되고 왼쪽으로는 '점동골'이 나타난다. 갈림점에서 점동골 끝까지는 2.2km 전후로 측정됐다. 골을 상류에서 내려오면서 살필 경우, 점동골 윗부분에서 율하교에 이르는 6.7km 길이의 산줄기가 율하천골의 서쪽 울타리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매여동에서는 골의 끝이라는 지리 조건이 아직도 짐이 되는 모양이었다. 하루 12회 시내버스가 들어온다지만 초등학교 분교는 폐교돼 경로당으로 변했고, 마을 규모 역시 인접 상매동과 합쳐 70여호 정도로 줄었다고 한 할아버지가 전했다.

글 박종봉 편집위원 사진 정재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