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영영의 보금자리
▣ 경산의 산/팔공산

은해사-백홍암-중암암-선본사(1)

by 영영(Young Young) 2009. 8. 18.

 

 ㅇ '09.8.17(월), 흐리고 안개많음. 바람 약간, 크게 덥지 않음. 산행 내내 운무로 등로가 어두웠음.

 

ㅇ 코스 : 은해사 - 백홍암 - 중암암 - 선본사

- 하양에서 (구)우시장 앞에 달구지를 주차시키고, =>와촌1번 시내버스를 타고 영천 청통 은해사로 이동한다. =>은해사에서 시멘트 임도를 따라 백홍암 까지 걷는다 =>백홍암에서 등산로 이용 중암암으로 간다 =>중암암에서 등산로 따라 선본사 => 선본사에서 일반도로로 관음휴게소(주차장) =>803번 시내버스 이용, 출발지점 도착

- 은해사에서 중암암 주차장까지 시멘트 임도가 포장되어 있다. 따라서 본인의 목적에 따라 중암암까지 승용차를 이용하거나, 임도를 따라 도보로 갈 수 있으나, 가장 문안한 방법은 은해사에서 백홍암까지는 시원한 계곡과 임도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다가, 백홍암 부터는 임도를 버리고 등산로를 이용 중암암으로 가는것이 좋을것 같다. 이렇게 하면 은해사에서 중암암까지 4.8Km의 거리에 두시간 내외가 소요된다.

 

ㅇ 가까운 곳에 있으나 두번 찾기 힘든 곳, 15~20여년 전, 아직 중암암의 해우소에 구조물이 설치되기 전에 찾아 보았던 곳, 그곳이 궁금해서 길을 나섰다.  

 

 

 ▼ 중암암

중암암(中巖庵)은 경북 영천시 청통면 치일1리 576에 소재하며, 은해사의 산내암자 8개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통일신라 때인 834년(흥덕왕 9)에 심지 왕사가 창건하였는데, 심지 왕사는 같은 팔공산 내의 동화사를 창건한 분으로 진표와 영심을 이은 신라 법상종의 제3조이다.
정확한 창건의 사정은 전하지 않지만 왕사가 동화사를 창건한 후 산내 곳곳에 수행처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묘
봉암과 함께 이 곳 중암암이 들어 선 것 같다. 창건이래 별다른 변천 사실은 전하지 않으나 암자 뒤편의 산중턱에 삼층석탑과 석등, 그리고 부도 등이 파손된 채 남아 있다. 또 주위에는 건물지로 보이는 석축이 남아 있어 절의 유구한 역사를 말해준다.

1823년(순조 23) 태여(太如) 대사가 중수하였고, 1834년(순조 34) 우일(宇一)과 유엽(有曄) 대사가 힘을 합쳐 중수하였다. 지금의 가람은 최근에 중건된 것으로 법당과 산신각은 1958년에, 요사는 1980년대에 새로 지었다.

찾아가는 길은 먼저 은해사에서 2㎞ 거리에 있는 백흥암에 오른 다음 여기에서 다시 서쪽으로 산길을 오르면 중암이라 부르는 기암 절벽의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암자에 이르는 길은 마치 요새의 석문처럼 생긴 자연바위를 거처야 한다. 바위 중간에 있는 암자 라는 뜻을 가지고‘돌구멍 절’이라는 이름도 붙었다. 여느 절처럼 화려하거나 크지는 않지만 돌구멍절이라는 이름처럼 속세와 떨어져 바위틈에 은둔하듯 자리한 더할 나위없는

수행자의 기도처이다.

아래 사진 중암암 사진 두컷은 '09'9'20 맞은편 묘봉에서 찍은것임. 

 

  ▼ (구) 우시장 주차장

예전에는 우시장이었는데 지금은 공용 주차장으로 이용된다. 여기에 달구지를 주차하고 오늘 출발점인 은해사까지는 시내버스로 이용한다.

 ▼ 우시장 앞 승강장

와촌 1번 시내버스를 이용 은해사로 간다. 출발전에 김밥집에서 김밥을 두줄 샀는데 왠지 부족하다 싶어서 승강장 옆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핫도그를 두개 샀는데 산행중 먹어 보았더니, 아뿔싸 !!  어제 맹근것인 모양이다. 단단하게 굳어서 배가 고픈중에도 별맛을 몰랐다.

 

 ▼ 은해사 주차장

평일이자 특히나 월요일이라 주차장은 텅텅 비었다.

주차장에서 은해사로 가는 1번 방향은 음식점을 거쳐 가며, 2번 방향은 숲길을 통하여 가게된다. 1번 방향으로 가면 몇 발자국 가깝다. 나는 1번 음식점이 있는곳으로 갔다. 가게쪽으로 가다가 사람들에게 중암암을 갈려면 은해사 안으로 들어가야 되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 주차장 한켠에 서있는 영천시 관광안내도

 ▼ 은해사 입장권

백홍암을 거쳐 중암암을 가기 위해서는 은해사 입장권을 끊어서 은해사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2000원이다. 중암암을 가는데도 입장권을 끊어야 하느냐고 물으니 당근하단다.

 ▼ 은해사 일주문

일주문 좌측에 매표소가 있다. 절 입구에 주차장이 있는 모습이 그다지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

 

 ▼ 일주문 뒤 삼거리

일주문을 들어서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어느쪽으로 가도 좋지만 차량을 이용할 경우에는 오른쪽으로 가야한다. 도보로 가는 사람들은 통상 왼편1번 길을 이용한다.

 ▼ 삼거리 등산로 안내도

▼ 돌탑과 명언

자그마한 바위위에 나즈막한 돌탑들이 서있다. 그 옆에는 명언이 쓰여져 있는데 이 명언은 숲길의 100미터 간격으로 각종 명언들이 적혀있다.

 ▼ 은해사 대웅전으로 가는 길은 숲길이라서 맑은날이라도 그렇게 덥지는 않을것 같다.

 ▼ 사랑나무

 ▼ 사랑나무

수종이 서로 다른 두 나무가 접촉하여 오랜 세월이 지나서 합쳐진 나무를 연리목, 합쳐진 가지를 연리지라고 한다. 여기에 100년생 참나무와 느티나무가 서로 붙어 안고 자라고 있으니 연리지 중에 매우 휘귀한 경우이다. 나라의 경사, 부모에 대한 효성, 부부의 애정 등을 상징하는 연리지는 삼국사기 및 고려사에도 귀하고 경사스러운 일로 여겨 왔다. 연리지(연리목)아래에 촛불을 켜고 빌거나, 왼편으로 돌면 아들을, 오른쪽으로 돌면 딸을 낳고 사이가 안 좋은 부부가 손잡고 돌면 사랑의 묘약이 되어 서로 화합한다는 구전이 있다.

 ▼ 사랑나무 표지판

 ▼ 은해사 안내도

은해사의 유래와 안내도가 표기되어 있다. 은해교 직전에 위치한다.

 

 ▼ 안내도에서 적색선이 임도이고 노랑선이 등산로이다. 백홍암까지는 임도로 가서 백홍암에서 중암암까지는 등산로를 이용하고자 한다.

 ▼ 은해사 안내도를  지나 은해사 대웅전 직전에 은해교를 지난다. 은해교 아래에는 하절기라 꽤 많은 물이 흐르고 있다. 안개가 자욱하고 날씨는 비가 올듯 하지만 매미 소리는 귀청을 울린다. 

 ▼ 은해교 다리를 지나 은해사 대웅전을 들어서기 전 보화루 건물을 만난다.

 ▼ 보화루로 들어서서 정면에 보이는것이 은해사 대웅전 건물이다.

  ▼ 조계종 본사 답게 대웅전 앞에 때아니게도 연등이 달려있다.

 ▼ 은해사

ㅇ 종파  대한불교 조계종 
ㅇ 창건시기  809년 
ㅇ 창건자  혜철국사 
ㅇ 소재지  경북 영천시 청통면 팔공산 
전국 31본산(本山)의 하나이자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이다. 809년(신라 헌덕왕 1) 혜철국사(惠哲國師)가 해안평(海眼坪)에 창건한 사찰로 처음에는 해안사(海眼寺)라고 하였다. 그후 1264년(고려 원종 5)에 홍진국사(弘眞國師)가 중창·확장하였는데, 1545년(조선 인종 1)에 소실되어 1546년(명종 1)에 천교(天敎)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었다. 그리고 법당과 비석을 세워 인종(仁宗)의 태실(胎室)을 봉하고 은해사라고 하였다. 1563년(명종 18)에 다시 소실되어 이듬해 묘진(妙眞)이 중건했고, 1589년(선조 22)에 법영(法英)·의연(義演)·광심(廣心) 세 승려의 원력(願力)으로 다시 중창하여 대가람이 되었다. 1847년(현종 13)에 또다시 불탄 것을 후에 팔봉(八峰)·해월(海月) 두 승려가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는 대웅전과 설선당(說禪堂)·심검당(尋劒堂)·종루·보화루(寶華樓)·독성각·승당·요사채 등

이 있다. 주요 문화재로는 국보 제14호인 거조암영산전(居祖庵靈山殿), 보물 제486호인 백흥암극락전수미단(百興庵極樂殿須彌壇), 보물 제514호인 운부암청동보살좌상(雲浮庵靑銅菩薩坐像), 보물 제790호인 백흥암 극락전 등이 있으며, 이 밖에도 60여 점의 문화재와 24동(棟)의 건물이 있다.

 ▼ 대웅전을 돌아보고 다시 보화루 입구로 되돌아 나와 오른쪽으로 꺾어 담장 옆 길을 따라간다.

  ▼ 삼거리

중앙에 이정표가 서있고, 백홍암과 중암암은 직진한다.

 

 

  ▼ 수림장

직진길의 오른쪽에는 수림장 가는길이다.

수림장은 사람과 나무는 상생하며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회귀한다는 섭리에 따라 수림장(수목장)은 사후 화장하여, 그 유골을 지정된 수목 아래에 묻어서 그 소목과 숲에 자연과 함께 영원히 잠들게 하는 장례문화 이다. 은해사 수림장을 이용하는데는 사찰의 허가를 받고 소정이 비용이 들어야 한다. 현제 수백기의 명패가 붙어 있고, 작고한 고인의 부부인 경우와 가족인 경우는 같은 나무아래 묻기도 한다고 한다. 은해사만의 특이한 장례문화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 길가에 때아닌 코스모스가 피었다. 이상기온 탓인지 이런 모습은 여러군데서 볼 수 있다.  

 

  ▼ 계곡 주위에 나무 울타리가 쳐있는데 계곡은 사방댐이 조성되어 있다.

  ▼ 사방댐

  ▼ 사방댐이란 ?

사방댐은 산림내에 있는 계곡이나 작은 하천을 가로질러 설치하는 소규모의 시설물이다. 집중호우시 상류지역에서 산사태로 밀려오는 토석과 유목을 막아내고 물의 속도를 줄여 재해를 예방하고 하류의 마을과 농경지, 하천 도로 등을 보호하는 역활을 한다.

  ▼ 기와로 고풍을 낸 화장실도 있다.

 

 ▼ 임도를 따라 백홍암으로 가는 길은 오른쪽에 계곡을 끼고 진행한다. 임도길의 양옆으로는 아카시아, 참나무, 소나무 등이 그늘막을 이루고 있다.

 ▼ 작은 다리 하나를 지나면 ~ 

 ▼ 다리 뒤로 육각쉼터가 보인다. 다리의 오른쪽은 저수지이다. 

  ▼ 쉼터와 신일지 못

 

 

  ▼ 쉼터 앞 삼거리

왼쪽으로 가면 백홍암과 묘봉암, 중암암이고, 오른쪽길은 운부암 가는 길이다.

 ▼ 삼거리에는 이정표가 서있고, 왼쪽 백홍암 방향으로 진행한다. 

 

 ▼ 왼쪽으로 꺾어서 얼마가지 않으면 왼쪽으로 원두막 쉼터와 체육시설이 보인다. 

  ▼ 도로가 오른쪽으로 꺾이는 이 지점에 오니까 날이 밝아 오듯이 앞이 훤해졌다.

  ▼ 숲길을 따라 오느라면 온통 나무가 하늘을 가렸었는데, 이 지점에는 하늘이 뚫려 있다.

 ▼ 또다시 조그만 다리를 건너면 백홍암 입구의 나무아미타불이 적힌 비석 하나가 보인다. 

 ▼ 백홍암 입구 삼거리

왼쪽은 묘봉암, 중암암, 능성재, 오른쪽은 백홍암 가는 길이다. 중암암은 왼쪽으로 계속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가도 되지만, 산행을 즐기고 싶은 사람은 오른쪽 백홍암 주차장에서 왼쪽 산길로 중암암을 오를 수 있다. 은해사에서 이곳 백홍암 까지의 거리는 2.5Km이다.

  ▼ 이정표의 오른쪽 비석 서있는 곳이 백홍암 입구이다.

  ▼ 백홍암 입구 삼거리에 서있는 이정표

 

  ▼ 백홍암 입구의 비석

  ▼ 백홍암 주차장

주차장의 왼쪽에는 표지판이 있는데 표지판 옆으로 중암암으로 가는 길이 있다.

  ▼ 백홍암

869년(신라 경문왕9년)에 창건된 절로 은해사에서 1시간 남짓한 거리에 있다. 비구니스님들의 수행처로 일반인에게 사월 초파일만 공개된다. 조선 중기인 1643년 중건된 처마선이 아름다운 극락전(보물 제790호)과 그 안에 있는 현존하는 불단 가운데 구성과 조각솜씨가 가장 빼어나고 아름다운 것으로 평가되는 아미타불을 모신 수미단(보물 제486호)이 있다.

‘보화(寶華)’란 뛰어나게 존귀한 꽃으로, 부처님이 앉아계신 연화대좌를 말한다. 법화경 비유품에 보화승족(寶華承足)이란 말에서 유래하였다. ‘화엄경을 보배로 여긴다’로 풀 수 있으니 <화엄경>을 사상의 중심을 둔 것이거나 영,정조시대 화엄교학으로 이름을 떨치던 영파 성규(1728~1812)스님이 이 산중에 머무른 영향 일 수도 있다. 보화루의 현액은 해관 유한익(1844~1923)의 글씨이다. 선이 굵고 힘이 느껴지는 글씨다.
보화루의 창문은 그 크기가 각기 다르다. 중앙이 가장 크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작아진다. 이는 창문의 아래쪽을 조금씩 높여 위로 올라붙게 만들었다. 자연미를 그대로 살려 시선을 중앙으로 모아지게 하는 역할을 한다. 누각 안에 굽은 모습 그대로 사용한 섯가래들의 짙은 갈색이나 절집 앞마당에 일부만 남은 석탑도 오랜 세월의 풍파를 느끼게 해준다

 

 ▼ 백홍암 보화루

 

 ▼ 백홍암 출입문

비구니들이 생활하는 곳이라 하였고, 출입을 금한다는 표지판 때문에 안도 들여볼 수 없었다.

 ▼ 백홍암 경내는 비구니들이 거쳐하는곳이라서 그런지 각종 꽃들이 피어있고 그런중에도 인기척 없이 적막만이 흐르고 있다.

  ▼ 백홍암에서 중암암 가는 길

중암암까지는 1.7Km이다. 임도를 따라가면 2.3Km이니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약 600미터쯤 가깝다.

  ▼ 중암암을 안내하는 표지판 

▼ 중암암을 나와서 약 100미터 진행하면 앞쪽에 흰 건물이 하나 나타난다. 건물 방향으로 가지 말고 오른쪽길로 진행한다.

 ▼ 건물 앞까지 진행하여 건물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어가도 된다. 아마도 이 건물도 백홍암과 연관이 있는 건물이 아닐까 생각된다.

 ▼ 오른쪽으로 꺾어 올라가는길은 갈대 숲길이다.

▼ 좁은 갈대숲길이 몇십미터 따라 올라간다.

▼ 갈대숲길을 지나면 왼쪽으로 계곡을 끼고 등산로가 이어진다. 날씨가 흐리고 운무가 너무 심하여 왼쪽 계곡 아래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계곡의 물 소리와 간간히 매미 소리를 친구삼아 산길을 걷는다.  

 ▼ 등산로는 그렇게 경사가 심하지 않고, 편안히 걸을 수 있는 길이다.

▼ 백홍암을 지나 완만한 오름길을 약 300여미터 올라오면 도립공원관리사무소에서 설치한 안내판을 만난다. 여기서 중암암까지의 거리는 1.4Km이다

 

 

 ▼ 등산로는 진흙길과 마사토길이다.

 

 

 

 ▼ 백홍암에서 800m를 오르면 또다시 표지판을 만난다. 여기서 중암암까지는 900미터 남았다. 표지판의 앞쪽에는 삼거리인데 왼쪽은 우회로 직진은 오름길이다. 직진한다.

 

 ▼ 표지판을 지나면서 약간의 오름길이 시작되고 바위구간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비가 온뒤라 바윗길이 많이 미끄러웠다.

 

 

 ▼ 백홍암에서 1.4Km를 오르면 다시 표지판을 만난다. 중암암까지의 남은 거리는 300여m이다. 여기에도 삼거리인데 아마도 왼쪽길은 우회로인것 같다. 직진한다.

 

▼ 표지판 지나서 주의할것 !!

표지판을 지나서 얼마간 진행하면 오름길 정면에 나즈막한 바위가 나타나면서 갑자기 길이 끊기고 오른쪽으로 희미한 길이 있다.(아래 사진 참조). 오른쪽길은 산사면을 따라 위태롭게 이어지는 길인데 이 길을 따르다 보니까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바위 지점으로  되돌아와서 바윗길을 따라 오르니 길이 나타났다.

 

 

 ▼ 큼직큼직한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큰 바위아래 작은 바위사잇길을 따라 올라간다. 인적이 드물어서 별도의 길 흔적도 없다. 그냥 꼭데기를 향해서 가는것이 길이다.

 

 

 

▼ 봉우리의 꼭데기에는 삼인암이 있는데 삼인암 직전에 왼쪽으로 전망바위가 있다. 그러나 운무가 너무 심하여 불과 10미터 앞도 분간할 수 없었다. 

 

 ▼ 중암암은 돌구멍과 해우소로 소문나 있다. 전망바위를 지나 몇 발자국 옮기면 처음으로 돌구멍을 만난다. 바위 사이로 내린 나무 뿌리가 인상적이다.

 ▼ 삼인암 아래 공터

중암암은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 장군이 수련한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중암암 뒤쪽, 중암암과 만년송 조금 아래에 김유신 장군이 수련을 하며 기를 받았다는 전설이 있는 10평 남짓한 공간이 있다.

 ▼ 저 바위에 누가 어떻게 글을 팠을까? 

  ▼ 원주판관, 고산현감 등 고관을 하신 분들이 뭘라꼬 방구에 글을 새겼을까?

 ▼ 삼인암 앞 안내판 

  ▼ 운무로 인해 사진은 흐릿하지만 운취는 있는거 같다. 안내판이 설치된 이 장소가 봉우리의 정상이고, 중암암의 뒷부분이다. 이 부근에 삼인암과 건들바위, 만년송이 있다.

  

  

  ▼ 삼인암

큼직한 바위 세개가 같이 있다고 하여 삼인암?   관인을 가진 세사람의 이름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고 하여 삼인암? 누군가 바위에 삼인암이라 써놓았기에 그를 따서 삼인암? 삼인암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알려진 내용이 없다.

 

 

 

  ▼ 삼인암 부근에는 삼인암 외에도 많은 기암들이 있었다.

 

  ▼ 요거는 사람 궁뎅이 모습이다.

 

 

  

  

 

  ▼ 바위틈새로 뻗은 뿌리...끈질긴 생명력..

  ▼ 건들바위

삼인암에서 몇 걸음 왼쪽으로 비켜있는 반달 모양의 바위가 건들바위다. 바위에 얽힌 설화는 어느날 밤 바위에서 우뢰 소리가 나 주지 스님이 놀라서 달려 가보니 바위가 암자를 덮칠 듯이 요동을 치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주지 스님이 부처님께 열심히 기도하니 바위는 움직임을 멈추고 원래의 위치보다 북쪽으로 옮겨 현재의 자리에 있게 되었다는 바위다. 건들바위를 지나면 사람 하나 드나들기에도 힘겨운 구멍이 있는데 이 구멍을 지나게 되면 만년송을 만나게 된다.

  ▼ 만년송으로 가는 돌구멍길

건들바위를 지나서 만년송으로 갈려면 이곳 돌구멍을 통과해야 한다. 베낭을 양손으로 머리위로 들고, 가재걸음을 해야 겨우 통과한다.

  ▼ 

  ▼ 만년송

바위틈을 비집고 뿌리를 내린 끈질긴 생명력의 소나무. 바위 틈 아래 어디에쯤 흙 한줌이 있을까?  오랜 세월동안 인고의 날을 버텨내면서 자신을 지켜온 만년송을 보노라면 자연에 대한 경외스런 마음이 저절로 우러러 나온다. 

  ▼ 전체적인 모습을 담을 수 없어서 인터넷에서 퍼온 사진임.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안내문은 현재는 없음

 

 

 

 

 

 

 

 

 ▼ 만년송 주위는 큼직한 몇개의 바위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널찍한 바위는 조망하기에 더 좋은 바위지만, 오늘은 지독한 운무탓으로 불과 10~20여미터 앞이 안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