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후에 새로운 일상운동 및 산책코스로 선택한 곳이 집과 1km쯤 떨어진 달성토성(달성공원)이다.
많은 사람들이 달성공원은 알아도 달성토성은 관심도 없을뿐더러 직접 한바꾸 돌아보기도 쉽지않다. 그럴수 밖에 없는것이 문화재적으로 귀한 가치가 있는 토성이 동물원을 중심으로 한 공원에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다행히 달성공원 동물원이 내년까지 대구대공원으로 옮겨가면 달성토성 복원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동물원 이전 추진이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달성토성의 성벽 둘레는 1.3㎞, 성곽의 높이는 5~15m에 이른다. 청동기 이전엔 넓은 구릉지였고 1세기 무렵에 대규모 마을이 들어섰다. 삼국사기에 261년 ‘달벌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초기에 지금의 성곽 형태가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경주의 월성처럼 평지에 낮은 구릉을 이용하여 쌓은 것이 특징이다. 1963년도에 사적 제62호로 지정되었다.
달성은 이제까지 3, 4번의 발굴조사를 거쳤는데, 성의 맨 밑 토층에서 초기 청동기시대 조개 더미 유적이 발굴됐고 1970년대 연못 발굴 때는 삼국시대 토기류와 얼레빗, 철기들이 대량으로 출토됐다. 성벽은 주로 흙으로 쌓았고, 성벽 윗부분에는 큰 돌덩어리들이 군데군데 드러나 있어 후대에 수리한 것으로 보인다. 성안에는 조선시대 전기까지 군대의 창고가 있었고 우물과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대구 달성은 우리나라 성곽 발달사에 있어 가장 이른 시기의 형식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대구달성은 고려시대부터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이곳은 달성 서씨(徐氏)들의 세거지였으며, 임진왜란 때 잠시 경상감영이 들어서면서 점차 지역 행정의 중심이 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제가 민족정신을 짓밟기 위해 1905년 토성 안에 신사(神社)를 설치하고 요배전(遙拜殿)이 들어서면서 공원은 일제 황국신민화 선전장으로 변질된 아픔도 있으나, 1966년 일제 잔재를 없앤 뒤 1969년 달성공원을 조성하였고 이듬해 동물원을 설치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참고 : 위키백과
아래 사진들은
22. 6. 11, 6.13, 6.16, 6.18, 6.23 산책과 운동중에 찍은 사진들을 시간에 관계없이 짜집기 한것이다.
▲ 달성토성(공원) 입구의 안내판이 정문 앞 좌측에 서있다. 사진은 안내판의 밖과 안에서 본 모습이다. 대구달성에 대한 안내문의 내용은 안과 밖이 똑같은데 공원 안내도의 보습은 약간 차이가 있다.
대구향토역사관은 1947년 개관한 대구시립박물관(대구부립박물관)을 전신으로 1997년에 개관하였다고 한다. 1969년 건립된 낡은 건물과 열악한 전시 환경에도 불구하고, 대구에서 유일하게 근대 이전까지의 지역사 전반에 대한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1층에는 구석기 시대부터 1960년대까지 대구 역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살펴볼 수 있으며, 2층에는 대구의 농업, 상업, 약령시, 경상감영 등 지역 역사문화와 관련된 내용이 전시되어 있다.
현재 향토역사관 자리는 과거 토성이 위치한 자리였고, 토성의 벽은 향토역사관이 지어지면서 소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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