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영영의 보금자리
▣ 나의사랑/둥지

청도 석빙고 & 청도읍성

by 영영(Young Young) 2016. 10. 21.

 

2016. 10. 15(토)

 

청도 레일바이크를 보고 이어서 들린곳이 청도군 화양읍에 위치한 청도 석빙고 및 청도읍성이다.

 

 

▲ 청도읍성 부근에 주차를 하고 가까이 있는 석빙고 부터 돌아보기로 했다.  사진은 청도 읍성이다.

 

<석빙고의 일반적인 고찰>

석빙고(石氷庫)는 얼음을 저장하기 위하여 땅을 파고 만든 창고이다.
겨울에 얼음을 채취, 저장하였다가 여름에 사용하기 때문에 얼음이 녹지 않게 하기 위하여 지하에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빙고는 대개 성 밖의, 강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것은 강에 얼어붙은 얼음을 채취하여 운반하기 쉬운 곳에 창고를 두었기 때문이다.

빙고의 축조방법은 대개 일정하며, 규모 또한 대동소이하다. 보통 지하에 깊게 굴을 파고 안쪽벽을 석재로 쌓아올리고, 내부의 밑바닥은 장방형으로 경사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배수구를 설치하여 빙고 안의 녹은 물을 내보내고 있다. 천장은 잘 다듬은 돌로 짜아올린 홍예(虹霓 : 무지개모양의 문)를 4, 5개씩 연결하여 궁륭형(穹?形)을 이루었고, 그 사이마다 환기구멍을 마련하여 공기가 유통되게 하였다.

외부는 홍예천장 위로 흙을 덮고 잔디를 입혔는데, 경주석빙고의 경우 환기구멍에 벽체를 세우고 뚜껑을 덮어 빗물이나 직사광선이 들어갈 수 없게 하였다. 대체적으로 석빙고의 외부모습이 큼직한 무덤처럼 보이는 것은 봉토 위에 잔디를 입혔기 때문이다.

현재 석빙고에는 대부분 그 옆에 축조연기(築造緣記)를 새긴 석비(石碑)가 건립되어 있어 축조 연대 및 관계자를 알 수 있는데, 대개가 18세기초 영조대에 축조되었다.

 


 

▲ 청도 석빙고는 청도군 화양읍 동천리 285,  청도군 화양읍 소재지에 위치한다. 

 

 

▲ 청도 석빙고(石氷庫)는 1713년(조선 숙종 39)에 건립되어 보물 제323호로 지정되어 있다.

석빙고의 입구 왼쪽에는 石碑)(석비가 서 있는데, 앞면에는 공사에 동원된 인원수·쓰인 자료. 비용 등을 기록해 놓았고, 뒷면에는 비를 세운 연월일과 함께 관계된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놓았다.

 

 

 

 

▲ 동·서로 긴 형태로 축조되었으며 입구는 서쪽에 설치되어 계단을 따라 내부로 들어가면 지하 내부에 잡석으로 벽을 쌓아 올린 빙실이 조성되어 있는데, 바닥이 약간 경사져 있다. 빙실 바닥은 평평한 돌을 경사지게 깔아, 얼음 녹은 물이나 빙실 안으로 스며든 빗물이 바닥중앙의 배수로를 따라 동쪽 끝에 마련된 배수공을 통해 빠져나갈 수 있게 설계하였다.


 

▲ 내부의 길이는 14.75m, 폭은 5m이고, 높이는 4.4m로, 그 규모는 경주석빙고 다음으로 큰 규모이다.

 

 

 

▲ 청도 석빙고는 현재 양쪽 벽을 이어주던 반원아취 형태의 홍예(虹霓)가 4군데 남아있을 뿐 천장은 완전히 무너져 불완전한 상태이다. 하지만 비록 지붕이 없어지고 뼈대만 남아 있어도 다른 곳의 석빙고와는 달리 내부의 구조를 사실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좋다.

 

 

 

▲ 옛 유적을 볼때면 늘 궁금한것이 눈에 보이는것의 얼마쯤이 원래 있었던 원형이었을까 하는것이다.  청도 석빙고 역시 어느만큼 개 보수 된 것일까 하는것,,,

 

 

 

▲ 전국적으로 국가 문화재로 지정된 6기의 석빙고는 경주석빙고(慶州石氷庫, 보물 제66호)를 비롯하여 안동석빙고(安東石氷庫, 보물 제305호)·창녕석빙고(昌寧石氷庫, 보물 제310호)·청도석빙고(淸道石氷庫, 보물 제323호)·현풍석빙고(玄風石氷庫, 보물 제673호)·영산석빙고(靈山石氷庫, 보물 제1739호) 등이 있는데 청도 석빙고가 가장 오래된 것이다.

 

 

 

▲ 淸道邑城(청도읍성)은 청도군 화양읍 교촌리, 삼리, 동천동에 위치하며 1995년 1월 14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되었다. 

읍성은 지방관아가 소재한 고을의 방어 목적으로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 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기 위해 쌓은 성곽이다.
대표적인 읍성은 순천읜 낙안읍성, 고창의 고창읍성 등이 있고, 한양도성과 남한산성과 같이 산에 위치한 것도 있다.

淸道邑城(청도읍성)은 청도의 진산인 남산에서 청도천으로 뻗은 두 줄기의 능선 사이에 해발 120m의 구릉지에 축조된 성곽으로 문헌 기록상으론 고려초에 토석 혼축성으로 축조된 길이 1.9km 높이 1.65m의 규모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조선시대 선조 때 부산에서 서울을 향하는 주요 도로변 성지를 일제히 수축하는 과정에서 청도군수 이은휘가 이를 석축으로 다시 쌓은 것으로 선조 23년(1590)에 착수하여 선조 25년(1592)에 준공하였다.

南高北低(남고북저)의 扇狀地(선상지)에 축성된 石築城(석축성)으로서 山城(산성)과 평지성과의 중간형에 해당하는 평산성이다. 평면 형태는 네모꼴이며,
성벽은 자연석을 이용해 쌓은 夾築壁(협축벽)이다.

임진왜란을 맞아 동문 봉일루, 서문 무회루, 북문 공북루가 크게 파손돼 그 후 소실된 문루를 다시 세우고 성벽을 보수해 조선조 말까지 유지되었으나, 또다시 일제 강점기에 모두 파괴되고 헐린 아픈 역사를 가진채 방치되어 있다가 최근 재현되었다.

 

 

 

 

 

▲ 읍성 한켠에는 현재도 한창 개보수 중인 모습이 보인다.

 

 

 

▲ 청도군은 선사시대 유적 중 지석묘, 석관묘 등이 각지에서 발견되는 점으로 보아 일찍부터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이곳 읍성이 있는곳도 아늑하고 시골 내음이 물씬 풍겨 정겨움으로 닥아오는 곳이다. 

석빙고 앞 작은 길에 돌로 쌓은 낮은 성벽이 길따라 죽 있는데 그게 바로 '淸道邑城(청도읍성)'이다.

 

 

 

 

 

 

 

▲ 청도 남산에서 흘러내린 물을 가두기 위해 제방을 축조하여 인공적으로 조성한 연못이다.  성내지(또는 선내재)로 기록되어 있으며 연못의 기능은 전쟁시 화재 대비 방호수, 경작농수, 성내 배수를 위한 시설 등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한국식 전통정원 모습으로 꾸며져 있다.

 

 

 

 

 

▲ 이곳이 성이라는것을 알리듯 군데군데 깃발들 설치해 놓았다. 


 

 

 

 

 

▲ 운취있는 아취형 다리

 

 

 

▲ 읍성 바로 인근에는 화양읍 소재지인데  청도군의 상징인 감나무가 보인다. 

 

 

 

 

 

▲ 주차장이 그리 넓지는 않지만 찾는 사람에 비하면 그리 좁은편도 아니다.

 

 

▲ 주차장 옆에는 소담하게 꾸린 커피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