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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영의 보금자리
▣ 나의사랑/둥지

사고치지 말고 말썽없이만 지내라 했는데,,

by 영영(Young Young) 2014. 7. 10.

2014. 7. 10(목)  태풍 너구리 북상하다가 새벽 3시쯤 일본으로 빠지고 아침부터 날씨 좋다가 오후에 흐리고 한때 소나기

 

우리가 어릴적에는 커서 무엇이 될래 물으면

대부분 대통령이 된다. 멋진 군인. 경찰이 된다. 훌륭한 발명가나 과학자가 된다는 막연하고 한정된 직업을 답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한 지금에 와서는 다양한 직종과 전문직등이 등장하면서 본인의 꿈과 희망은 과거와는 달리 전문화되고 구체화 되었다.

그러나 대학 졸업자의 90%가 전공쪽으로 직업을 선택하지 못할 정도로 꿈과 희망은 단지 그기에서 그칠뿐 아이들을 키우는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이 초중고등을 마치고 대학 졸업이 다가올때쯤이면 거의 꿈과 희망은 포기상태에 이른다.(물론 아이들 당사자들도 내심 포기상태에 이를 것이다.)

 

남이 대학교에 가니 나도 거름지고라도 대학에 발을 디뎌놓고는(1년 재수하고도 모자라 그것도 거의 최저수준의 성적으로) 학교는 별 관심없고 집에 와서는 TV앞에 백수처럼 누웠다가 앉았다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 폰을 한참동안이나 만지막 거리다가, 가끔씩 친구들과 약속 있는 날은 먹지도 못하는 술을 퍼마셔서 얼굴은 홍당무에 술냄새를 "푹푹"풍기면서 귀가하기도 한다. 

 

자식 농사 부모 뜻데로 안된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이미 대학교까지 간 머리가 다 굵은 녀석을 한 두번이 아닌 그 이상 훈육한다는것 자체도 오히려 반발의 역효과만 일으킬 수 있음에 아예 다그치지 않는다.  

 

그래도 어쩌면 내가 아들넘과 같을때 보다는 낫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시골에서 대구로 유학을 나올때 이미 고등학교 화장실에서 시작한 담배를 지금도 못끊고 있지만

그래도 아들넘은 담배도 피우지 않고, 부모님께 특별히 말썽을 부리는 일도 없고, 밖에서 사고치고 경찰서에서 연락오는 일도 없으니

아빠의 소시적 모습 보다는 모범적이다. 이렇게 위안을 삼는다.

어릴적 꿈의 실현은 고사하고 그저 사고치지 말고 말썽없이만 지내라는 식으로 부모의 기대수준은 낮아진다.

포기라고 하는게 더욱 적절한 표현이다.

 

다만 부모로서 맘속으로 늘 기대하는것은

너가 걸어온 길을 냉철히 돌아보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반성하고 장래 꿈에 대한 실현을 위해 주어진 일(학생이라면 공부)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와 깨달음이 좀더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었다.

 

위에서도 잠깐 말했지만 대입 수능성적이 안 좋아 한해동안 재수를 하고 다시 치룬 수능성적, 재수전의 성적이랑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였고 그 실력으로 갈 만한 한양 지역의 사립대나 지방의 국립대는 찾을 수 없었고, 적당히 맞춰서 간곳이 현재 재학중인 지역 사대 교육학과, 지 딴에는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1학년 1학기 및 2학기 성적은 과에서 50%내에 들어간것이 최상의 성적표였다.

 

그렇게 하고는 국가의 부름을 받아 대한의 남아들이 밝아야 하는 코스로 떠났다.

전역한지 이미 2년이 가까와 오지만 아직도 입대전야 녀석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시고 늦게 귀가하여 새벽 2시쯤 한장의 편지를 남기고 떠났다. 

한장의 편지...그 내용중에 "군대가서 인간되어 돌아오겠다"는 말이 특히 기억난다.

 

군대생활,

내가 군 복무시 몇몇 부모님들이 면회를 오는 일도 있었지만

나는 그럴 형편이 못 되어 단 한번의 면회를 하지 못했던 섭섭함이 있었기에,

또한 사람이 고생할때 진정한 대화의 기회가 생긴다는 맘으로

아들이 군대 있을때는 최대한 많은 면회와 대화의 기회를 가질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 아들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고 신뢰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2년의 군대생활을 마치고 전역

아직 복학까지는 시간이 있는지라. 

복학전에 알바를 한다기에 하루나 이틀, 좀더 길면 보름이나 한달쯤 할줄 알았다.

그런데 예상외로 복학전에 시작한 알바를 몸에 화상을 입고 상처를 입으면서도 복학이후 거의 1년까지 이어갔다.

용돈을 자기가 벌어서 해결하고 있었다.

그리고 복학후 첫학기인 2학년 1학기 성적이 과내 3등으로 순위권내로 진입하였다.

 

아~~ 이넘 뭔가 달라졌구나 싶었다.

내가 옛시절 철이 들었던것이 군대 전역후였다.

군대 가기전만 해도 나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 그런 개념은 아예 없었고 세상의 모든 직업들이 다 만만하고 시시꼴꼴하게 보였던 것이

2년의 전문대학을 마치고 입대하였다가 막상 전역을 하고 사회에 나오니 "무엇을 해서 돈을 벌까? "앞이 깜깜하기만 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정신차린것이 군대 전역 이후였고 맘을 먹고 1년 공부를 하여 다음해에 지금의 직장에 첫발을 디디게 되었다.

 

아들넘도 저거 아비를 닮은 모양이다. 전역후에는 나름 철이 든 모양이니

아비 보다는 모범적이다.

대학졸업 이전에 정신을 차리고 공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과내 3등 장학금을 받은 후에는 이어서 성석향상 우수 장학금을 받았다.

다음 학기인 2학년 2학기에는 더욱 분발하여 3등에서 1등으로 등극했다.

그리고 어제 이번 3학년 1학기에도 1등을 했다는 연락을 해왔다.

수능성적은 안 좋았지만 평소 수학에 재능이 있음을 수학교육 전공으로 살렸고.

이 재능에 대한 믿음이 서서히 현실로 다가 온 셈이다.

 

참 대견했다.

그저 인간만 되었으면 바랬고. 내심 언제 철들까 했는데,

전역이후 제 갈 길을 착실히 가고있다.

다만 늘 성적우수에 대한 보상으로 당근을 요구하고 있는것이

옷 사달라, 신발 사달라, 그것도 최고 메이져급으로,

즐거운 맘으로 기꺼이 해 줄 수 밖에...

 

어제 오늘 기분이 참 좋다.

오늘 점심때 과내 식구들한테 점심 한턱 쐈다.

지금은 퇴직했지만 오래전 직장 선배중 한 사람의 아들이 서울대에 합격했는데

짬뽕 한그릇 사라고 했더니 왈 " 우리집 애가 서울대 합격했는데 왜 내가 니들한테 밥 사노?"

생각하면 참 불행한 사람이다. 좋은 일은 나누면 기쁨이 배가 되는데,

 

사고치지 말고 말썽없이 지내라고만 생각했는데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면서

방학중에는 휴대폰도 소지할 수 없는 학교 고시원에서 공부를 한단다.

열심히 하는 모습이 기특하기에

나도 다음달 8월 15일에는 담배로부터 꼭 해방되도록 노력하고

또다시 요구할 당근을 열심히 준비해야겠다.

 

 

 

2008년 11월 25일 구룡산

고3졸업후 수능시험 결과가 쉬원잖아 갈등을 겪고 있던 시절, 같이 갔던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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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7일   명마산

고3졸업후 수능시험 결과가 쉬원잖아 갈등을 겪고 있던 시절, 어떻게 할까 하다가 재수를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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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16일   초례봉 ==> 낙타봉

고등학교 졸업 후 재수생활 직전 마음 추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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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생활

 

2009년도  재수

 

2010년도 대학 1년

 

2011. 1. 18  군 입대

 

2012.  9월  전역

 

2013.  3   복학(대학2년)

 

2014.  4(대학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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