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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영의 보금자리
▣ 나의사랑/둥지

사진 단상, 가족단상

by 영영(Young Young) 2013. 8. 9.

2013. 8. 9(금)   푹푹찜

 

오랫만에 그간 볼로그에 올려져 있던 가족들의 모습을 뒤돌아 보았다.

큰넘이 직장생활을 하고 작은넘이 대학 2년 재학중이니 왠만큼 컸고 와이푸와 나의 나이도 50중반을 넘어가고 있음에 이제는 생활의 여유를 가져 봄직 한데  왜이리 살아갈수록 마음의 여유는 없어지는걸까?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는 가족 모두가 숨막히게 돌아간다. 식구 모두가 최소 저녁10시는 넘어야 귀가할 수 있으니,

와이푸는 토요일도 없이 출근이고, 이 몸은 토요일 1시까지, 애들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토요일은 쉬게 된다.

그나마 가족 모두가 한자리에 앉을 기회가 있는 일요일, 한주일의 피로를 풀 시간도 없이 오전중에는 교회가는일로 체운다.

겨우 가족간의 여가가 허락되는 시간이 교회에 다녀온 일요일 오후 시간이후이다.

이 시간은 대부분 쇼핑외출로 시간을 메꾼다. 한 주일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거의 유일한 일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여유없이 살아야 하는지, 이렇게 계속 살아야만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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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들의 현재를 돌아보자

 

큰 넘 미리내

대학졸업후 임용 때문에 한 3년간 고생을 많이했다. 물론 지금은 꿈을 이뤘지만 ~~

졸업후 두번째의 임용시험에 떨어진뒤 어느 날 현재 살고있는 반야월 모 학원에 수학강사를 하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때 속으로 마음이 참 아팠다.

미리내와 철이가 안심역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도 역시 마음이 아렸다.  어릴때 부터 큰 넘의 희망이 학교 가까운 곳에서 통학하는것이었는데 결국은 큰넘이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해결해 주지 못했다. 경산 진량 초원아파트에서 경대에 가기 위해서는 아침일찍 집을 나서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면서 3번을 환승해야 했다. 저녁시간 귀교시에는 아파트로 들어오는 차가 끊겨 아파트 주민들이 자체 운영하는 방범차량을 이용해야 했다. 물론 이것이 큰넘의 한이되어 애들의 희망에 따라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었지만,,,기본적인 통학생활이 이만큼 힘들었을진데 다른 문화생활이나 불편함은 이루 말 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둘째 녀석 준철이

어릴때는 무언가 희망을 보여줄듯 하더니 커 갈수록 기대가 무너졌다. 학교성적은 상위권과는 거리가 멀고 수능성적이 안좋아 한해 재수를 하였지만 결국 국공립은 가지 못하고 지방 사립대에 진학하는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인생에서 성적은 2차적인 문제다. 중요한것이 건강과 인성이다. 그간 아푸지 않고 착하게 자라 준것에 감사한다. 담배도 안 피우고 밖에나가 사고도 치는 일 없는데 체질에 안 맞는다고 하면서도 온몸이 붉어지도록 가끔씩 술을 주량이상 마시는것이 신경 쓰인다. 

군대 전역후 애가 철이 많이 들었고 전역 직후 알바자리를 얻어 9개월째 계속하고 있고 지나간 학기에는 학과 3등 장학금을 탔다. 열심히 할려고 무척 노력중인 모습이 보인다.

 

 

 

 

내 사랑하는 마누라

내 보다는 셩격이 다소 다혈질이고 가끔씩 무대뽀 성격을 주체하지 못하는것이 참 흠이다. 그래서 지금도 아주 가끔씩 충돌을 일으킬때도 있다. 자기도 어떨때는 성격을 통제하지 못하는것이 안타깝다고 하기도 한다. 늘 머리속에는 가족생각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다. 가정과 직장을 쳇바퀴 돌듯이 왔다가 갔다가 하면서 십년이상 맞벌이를 하고있다. 직장에만 너무 충실하기 때문에 가족에 대한 기대도 커서 가족들에게 상당한 스트레를 주기도 한다. 오랜기간 맞벌이를 하면서 나이도 꽤 되었겄만 그만두고 싶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언젠가 다니는 회사에서 구조조정이 있었는데 그 당시 며칠간 밤잠을 설치는 사람이다. 세상을 참 의욕적으로 산다.

 

 

 

 

본인 스스로에 대한 평가

야망없이 물 흐르는데로 살다보니 현 직장에서도 많이 뒷자리에 앉은 편이다. 그렇다고 뒤가 없는것은 아니지만,,,

욕심보다는 가능하면 세상을 순리데로 살려고 하고 될 수 있으면 양보하고 배려하면서 살려고 한다.

성공한 사람은 아니어도 적어도 실패한 인생은 아닐거라고 자평한다. 

늦은 나이지만 아이들이 출가전에 넓은집에서 별 사고없이 살고 있음에 감사한다.

 

 

 

 

철이와 엄마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녀석이다.

전역후 많이 철들었음에도 아직은 엄마한테 어린애다.

옷사달라, 신사달라, 가방사달라,  연일 졸라덴다.

 

 

 

 

미리내와 아빠

어릴때부터 참 아빠를 따르는 녀석이다.

자기 주변의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이제 머리가 굵었는지 예전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하루도 빠짐없이 직장에서 늦게 퇴근하여 부모의 마음을 애태우게 하고 스트레스를 준다. 

방학을 맞아 한달간 외국으로 배낭여행을 떠나니 속 쉬원하기도 하고 보고 싶기도 하다.

 

 

 

 

미리내와 철이

둘이 잘 지낸다.

큰넘이 자주 잔머리를 굴리는 일에 둘째 넘은 어리숙(?)하여 잘 따라간다. 그것도 연분이라면 연분이다.

사실 둘째넘은 이해심이 강해서 그렇다.

 

 

 

 

백년지기

다시 결혼하면 결고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사이지만

그러나 속으로는 꼭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

자기주관(고집?)이 강하고 이해심이 약해서 살면서 스트레스를 주지만 잘 설명하면 알아 듣는다. 애들은 아니니까,,,

 

 

 

 

우리가족

참 건강하다. 안 아푸고 안 다치고 사고 안나고 잘 살아왔다.

하나님께 십일조 잘 드린 덕분인지.

저녁 10시 가까이 되어 잠자리 들 시간이 되어야 모두가 한자리에 모인다.

가족모두 하나같이 제자리에서 열심히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