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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영의 보금자리
▣ 나의사랑/둥지

첫 면박

by 영영(Young Young) 2011. 4. 26.

 

2011. 4. 23(토) 약간 쌀쌀

 

금년 1월18일 입대하였으니 입대일로 부터 94일째, 지난 3월 12일 첫면회 이후 42일째, "면회"로 치면 2번째이고 "면박"으로 치면 첫번째 만남이다. 첫 면회 이후 두번째 부터는 대중교통을 이용할려고 했으나 부대에서 50Km 떨이진 숙박장소로 이동문제, 아들넘이 먹고 싶은 음식준비 등으로 또다시 승용차를 이용하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첫 면회때는 편도 312Km의 짧지않은 거리를 당일치기로 부대까지 갔다가 되돌아 와야 했었지만, 이번 면박은 하루 숙박하고 돌아오기 때문에 운전으로 인한 피로를 분산시킬 수 있었다. 부대에 도착하니 아침 9시 30분경, 전번에는 아들넘이 면회실로 들어서기 전까지 알아볼 수 없었기에 오늘은 면회실 밖을 나와 서성 거리며 아들넘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 제61보병사단 정문
부대의 입구이다. 지난달 처음으로 이곳을 방문 했을때는 왠지 낯설고 무거운 느낌이었는데 다시 보게되니 훨씬 정감이가고 포근한 느낌이 든다. 정문 좌측 위병소 뒤에 곧바로 면회실이 있다. 부대 정문 입구에 면회실을 배치한다는것은 군인가족이나 친지 연인들을 배려한 독특한 병영시설의 하나로 생각된다. 

▼ 부대내에서 정문 방향
앞에 보이는 건물이 면회실이다. 10시가 체 안되었지만 많은 면회객이 보였다. 아마 면회객 중에는 꿈에 그리며 사랑하는 아들을 처음으로 만나는 가족이 있으리라. 군복을 입은 아들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반갑고 마음 든든하고, 한편으로는 고생하는 모습에 안스럽기도 하고 ~~지난달 처음으로 아들넘을 만났을때의 생각에 눈물이 글썽거린다. 

▼ 야외 면회장 및 벤취
정문을 들어서서 면회실을 지나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50여미터 들어오면 도로 좌측으로 파란색 지붕의 야외면회실이 있다. 야외 벤취도 있어 따뜻한 날씨에는 야외에서 간단한 취사도 가능하다. 지난 3월 12일 첫면회때는 저곳 야외면회장에서 아들넘과 삽겹살 미팅을 한적이 있는데 오늘은 2가족이 고기를 굽고 있었다. 지금 저곳에 계신 가족들의 마음도 전달 우리 가족의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배불리 먹이고 싶고, 뭐라도 좀더 먹이고 싶고,,,

 

▼ 차이나타운
20여분뒤 면회실로 나온 아들넘을 만나서 부대와 20여Km 떨어진 인천광역시 중구 북성동의 차이나타운을 찾았다. 분식을 좋아하는 아들넘이 짜장면을 먹고 싶다고 했기에 이곳을 찾게 되었다.
차이나타운은 인천광역시 중구 선린동과 북성동 일대에 있는 중국인 거주 지역이다.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고 이듬해 청나라 조계지가 설치되면서 중국인들이 현 선린동 일대에 이민, 정착하여 그들만의 생활문화를 형성한 곳이다. 화교들은 소매잡화 점포와 주택을 짓고 본격적으로 상권을 넓혀 중국 산둥성 지역에서 소금과 곡물을 수입, 193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1920년대부터 6·25전쟁 전까지는 청요리로 명성을 얻었는데 공화춘, 중화루, 동흥루 등이 전국적으로 유명하였다. 한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외환 거래규제, 무역 규제, 거주자격 심사 강화 등 각종 제도적 제한으로 화교들이 떠나는 등 차이나타운의 화교사회가 위축되었으나 한중수교의 영향으로 활기를 되찾고 있다.

오늘날에는 역사적 의의가 깊은 관광명소로서 관광쇼핑, 특화점, 예술의 거리 등 권역별로 변화하고 있으며 풍미, 자금성, 태화원, 태창반점, 신승반점 등이 중국의 맛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화교 2,3세들로 구성된 약 170가구, 약 500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 연경 중국요리 식당
차이나타운에서 우리가 식사한 식당. 2층으로 올라가 탕수육1, 짜짱면1, 짬뽕1그릇을 시켜 묵었다. 일반 중화반점과 특별히 맛이 다른점은 없었고 영업주는 당연히 중국사람.

 

 

 

▼ 공연 연습모습
2층 식당에서 식사중 식당 옆 자그만 광장(마당이란 표현이 맞음)에서는 며칠뒤 있을 차이나타운 축제를 대비 중국학생들이 소고를 들고 춤 연습을 하고 있었다.

▼ 식당 옆 계단길을 따라 ~

차이나타운 3패루(선린문)와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조성된 계단이다.

 

 

 

▼ 선린문 앞
선린문이라고 쓰인 파란색 패루는 주위 사람들과 잘 어울려 살자는 뜻으로 옛날 이곳의 지명이기도 하다.

 

 

 

▼ 인천대교
선린문 앞에서 되돌아 나와 승용차를 타고 중구 을왕동 팬션으로 가기 위해 인천대교를 지난다. 인천대교는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와 송도국제도시를 연결하는 총연장 18.38km의 다리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길다. 6차로이며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양한 형식의 특수교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2005년 7월 착공하여 4년 4개월 만인 2009년 10월 완공하였다고 한다. 

 

 

 

 

 

▼ 을왕리 해변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약 41km를 달려 인천대교를 거쳐 팬션 근처의 해변에 도착. 을왕리 해수욕장은 이곳과 아주 조금 떨어져 있다. 썰물로 인해 드러난 해변가는 모래보다는 작은돌들이 많이 보인다.

 

 

 

 

 

 

 

 

 

▼ 팬션 도착
해변과 지척(2분 거리)에 있는 숙박장소인 중구 을왕동 팬션에 도착

 

 

 

 

 

 

 

▼ 다시 을왕리 해변으로
여장을 풀고 팬션 도착전에 보았던 해변으로 다시 나갔다. 주말을 맞아 연인들, 가족들, 단체모임객 등 많은 사람들이 해변을 거닐거나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바람이 세고 날씨가 조금 쌀쌀해서 우리 가족은 물론 모두가 오래 있지는 못했다. 

 

▼ 팬션 룸 내부 및 바베큐장
다시 팬션으로 돌아와 간소복으로 갈아입고 방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바베큐장으로 자리를 옮겨 삽결살과 목살을 구워 먹었다.

 

▼ 바베큐장

 

 

 

 

 

▼ 팬션 야경
잠자리는 좁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리 넉넉하지도 않았다. 오랫만에 만난 아들넘과 옆자리에 누워서 하룻밤을 보냈다.

 

 

 

▼ 이튿날 아침
아침 10시경 기상하여 된장을 끓여 아침을 먹은뒤 팬션 마당에서 기념사진

 

 

 

▼ 을왕리 해수욕장
짐을 챙겨 팬션을 나와 부대로 가는길에 팬션과 지척에 있는 을왕리 해수욕장에 잠시 들렀다

 

 

 

 

▼ 다시 인천대교를 지나서 ~

 

 

 

 

 

▼ 부대 가까이에 와 본가보리밥뷔페에서 점심 해결

▼ 아들넘은 귀대시간이 꽤 남아서 부대 인근 PC방으로, 우리는 귀가길에 오름, 너무나 짧고 아쉬운 1박2일의 만남이 또다시 이별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 저녁 7시경 대구에 도착, 가까운 경산 백천동 청국장 집에서 식사

▼ 정관장 홍삼원
내가 군대생활때는 막내이기에 부모님이 연로하셔서 한번도 면회나 면박을 하지 못했다. 그때의 서러움과 섭섭한 마음 때문에 아들넘의 면회에 유달리 관심을 갖는지 모른다. 어제 아침 10시경 면회실에서 아들넘을 만날때 한손에 종이박스를 들고 나오기에 외박 준비물인줄 알았는데 부모님께 드릴려고 PX에서 홍삼원 1박스를 구입하였다면서 건네 주었다. 이등병 한달 봉급 7만원으로 배고픔 해결하기도 부족할텐데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 기특하고 고맙다.   열심히 돈벌고 부지런히 모아서 힘 닿는데로 너의 밑거름이 되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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