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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영의 보금자리
▣ 나의사랑/연경지구

지묘동 서원마을

by 영영(Young Young) 2019. 4. 19.

연경지구 개발전의 옛 흔적들 모으기

(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서원마을"  )

 

2019. 4. 19(금)  아침 바람 많음, 흐리고 가끔 비, 구름.안개.미세먼지 등으로 꿀꾸리, 오전에 약간 쌀쌀, 오후에 푸근



현재의 연경지구가 조성되기전 옛 부락마을은 크게 "연경마을"과 "서원마을"로 나뉘어져 있었다.

지묘동 서원마을에 대한 내용을 인터넷상에서 찾아보기는 쉽지 않았다. 
다음지도에는 검색되지 않았고 네이버 지도상에 "동구 서원마을"로 검색하니 위치가 표기되었다. 
연경지구가 개발되기 전의 서원마을의 입구에는 "서원마을"이라는 표지석이 떡하니 자리잡은 모습을 로드뷰를 통해서 볼 수 있었다.

서원마을은 아마 이동네에 대구최초의 연경서원이 있었다는 기록과 구전으로 인해 지어진 이름이 아닌가 싶다.
연경서원은 동화천변에 우뚝 솟아 있는 '화암'(畵巖) 근처에 자리잡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 네이버 지도에서 부락명칭 "서원마을"을 검색하면 위 처럼 나타난다. 행정상 위치는 대구시 동구 지묘동,  현 연경지구 아이파크 건설현장의 왼쪽 부근이다.

 

 

 

 

 

▲ 카맵으로 본 2010년도 4월경 "서원마을" 입구의 모습이다.  마을입구의 오른쪽에 표지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 표지석에는 "서원마을"이라는 부락명칭이 적혀있다.

 

 

 

▲ 카맵으로 본 2012년도 2월경 "서원마을" 입구의 모습으로 입구 오른쪽에 보문식당 이라는 입간판이 보인다.

 

 

 

▲ 카맵으로 본 2014년도 7월경 "서원마을" 입구의 모습으로 마을 안쪽의 양옥집 등이 이미 철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래 사진 3장은 네이버 로드뷰 사진으로 서원마을 안쪽 풍경이다.

 

 

 

 

 

 

 

 

아래 사진 4장은 서원마을 또와식당 일천식당 근처의 마을 모습이다.

 

 

 

 

 

 

 

 

 

아래사진 2장은 마을내 외딴집의 모습이다.

 

 

 

 

 

아래 사진 2장은 바로 위 모습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본 모습이다.

 

 

 

 

 

아래 사진 3장은 서원마을의 전경이다.

 

 

 

 

 

아래사진 4장은 마을 입구를 지나 마을안으로 좀 더 들어선 모습이다.

 

 

 

 

 

 

 

 

 

 

 

아래사진 3장은 마을 진입도로 부근의 모습이다.

 

 

 

 

 

 

 

아래사진 4장은 서원마을의 보문식당 근처의 모습이다.

 

 

 

 

 

 

 

 

 

 

 

 

 

▲ 카맵으로 본 2016년도 1월경 "서원마을" 입구의 모습으로 연경지구 택지개발을 위한 팬스가 둘러쳐 있고 동네안의 옛 주거지가 모두 철거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카맵으로 본 2017년도 3월경 "서원마을" 입구의 모습으로 입구 왼쪽의 팬스가 철거되었다.

 

 

 

 

 

▲ 카맵으로 본 2018년도 4월경 "서원마을" 입구의 모습으로 마을 입구를 막고 있던 팬스들이 모두 철거되었다.

 

 

 

▲ 카맵으로 본 2018년도 4월경 "서원마을" 입구의 모습을 파노라마 형식으로 편집해 본 사진이다. 마을입구의 맞은편에는 이전에 있던 잠수교 및 새로 설치된 다리의 모습이 보인다.

 

 

 

▲ 카맵으로 본 2018년도 4월경 "서원마을" 입구의 모습

 

 

 

▲ 동화천 잠수교 건너서 본 서원마을 입구의 모습이다.  이 사진은 웹상에서 가져온 것으로 문제가 될 시 곧 삭제하겠습니다.

 

 

 

▲ 서원마을을 동네 산 위 연경동에서 지묘동 방향으로 본 모습이다. 마을 앞으로 편도 2차선 도로와 동화천이 흐르고 있고 마을 뒤 야산에 송전탑 1기가 마을 가까이 서있다.

 

 

 

▲ 서원마을 입구에서 지묘동 방향으로 산에서 내려 본 모습이다.

 

 

 

▲ 바로 위 사진의 오른쪽 방향(지묘동 방향)으로 담은 모습이다.

 

 

 

▲ 바로 위 사진의 오른쪽 방향(지묘동 방향)으로 담은 모습이다. 지묘와 연경을 연결하는 지방도와 동화천 사이에는 많은 비닐하우스 단지가 보이고 사진 오른쪽에는 보성3차 아파트가 보인다.

 

 

 

▲ 바로 위 사진의 오른쪽 방향(지묘동 방향)으로 담은 모습이다.

 

 

 

 

 

 

 

 

 

▲ 서원마을 주 진입도로 부분에서 보성3차 아파트 까지의 전경모습

 

 

 

▲ 원거리 산 위에서 "서원마을"을 담은 모습

 

 

 

▲ 바로 위 사진의 오른쪽 방향(지묘동 방향)으로 담은 모습이다.

 

 

 

▲ 바로 위 사진의 오른쪽 방향(지묘동 방향)으로 담은 모습이다.

지방도변 화암 및 대원사가 보이고 바로 앞에는 군들이 식당 흰 건물이 보인다.

 

 

 

▲ 원경을 좀 더 당겨담은 모습이다.

 

 

 

 

▲ 지묘동에서 멀리 연경방향으로 본 모습이다. 마을을 내려보고 있는 송전탑이 우뚝 솟아있는곳이 "서원마을"이다.  지방도와 동화천 사이의 대단지 비닐하우스들이 눈에 들어온다.

 

 

 

 

▲ 지묘동에서 연경동 방향으로 본 모습으로 동화천 오른쪽 앞쪽에 위치한 마을이 서원마을, 그 뒷쪽으로 위치한 마을이 연경마을이다.

 

 

 

 

▲ 개발지역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대구시 동구 지묘동 서원마을 주민들이 주택공사 지장물 조사원의 접근을 막기 위해 마을 어귀에 설치된 초소에 모여있다. 주민들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당번을 정해 돌아가며 감시하고 있다. 지금은 지구조성이 끝나고 공동주택 설치공사가 한창이지만 사진에 나오는 동네 원주민들께서 감당치 못할 불이익은 없었기를.....

 

 

대구 연경택지개발지구 주민 '生業 뺏길판 답답'

 

턱없는 토지보상비…代土는 어림도 없어
"졸지에 삶의 터전 뺏길 판"
"최소한 살 길은 마련해줘야지"

2007. 6. 8 /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팔공산의 경관을 보전하고, 대구에 마지막 남은 자연하천인 동화천을 보전할 수 있는 개발이라면 그래도 이해를 하겠는데 고작 짓는다는 게 고층 임대아파트라니 기가 찹니다. 지역 실정을 모르는 건설교통부나 주택공사는 또 그렇다 하더라도 대구시는 도대체 뭐하는 곳입니까." ☞3면에 관련기사

 

대구시 북구 연경동 연경지구택지개발대책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난 이승하씨(55)는 분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건교부는 지난 1월 연경지구를 개발계획지구로 승인했다. 1971년부터 그린벨트구역으로 묶여 있던 이곳을 지난해 12월 해제한 직후의 일이다. 주민들은 개발을 막기 위해 2년 전부터 청와대·건교부 등에 민원을 잇따라 제기했고 주택공사를 찾아가 항의집회를 벌인 것도 부지기수다.

 

이씨는 "인근에 농사 지을 땅도 없고, 있다 해도 보상비로는 대토는 어림도 없다. 최소한 살 방도는 마련해 줘야 하지 않느냐"며 "30여년 전 묶인 그린벨트 때 가격으로 보상해준다니, 여기 땅 몇 평을 팔아도 땅 1평 살까 말까 하다"고 소리를 높였다.

 

실제 이주가 시작되는 순간 주민들은 본업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이곳 주민 90%는 농업·축산업에 종사한다. 보상비로 생업을 이어갈 만한 땅을 확보하는 게 예삿일이 아니다. 축산업에 종사하는 이성태씨(50)는 "근근이 부지를 마련한다 해도 냄새 때문에 그곳 주민들이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인근 동구 지묘3동 서원마을 주민들도 개발에대한 불만은 다르지 않다. "죽을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나 죽으면 개발 하이소." 열일곱에 이 마을로 시집왔다는 정호남 할머니(77)는 "농사 지으며 늘그막에 경로당에 앉아 노는 게 낙인데 아파트 짓는다고 나가라는 게 무슨 소리냐"고 말했다. 30년째 이 마을에서 감자농사를 짓는 임정식 할아버지(69)도 "전답을 꽤나 가진 사람들이야 걱정 없겠지만, 주민 90%는 집 한 칸 가지고 남의 땅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이라며 한숨지었다.

 

채종한 서원마을택지개발대책위원장은 마지막 카드를 뽑아들었다. 그는 주공측에 '우리는 갈 데가 없으니 사는 집이라도 남겨 놓고 개발해 달라'고 요구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에서다.

 

주민 대부분은 이곳에 재정착하는 것은 꿈도 못 꾼다. 이승하씨는 "보상비 받아 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는 사람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라며 "도시 하층민을 위해 임대주택 짓는 건 우리도 좋다. 하지만 그 때문에 마을에서 밀려나 갈 곳 없는 사람은 어쩔거냐"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주공 대구경북지역본부 장문상 보상팀장은 "주민들이 딱하긴 하지만 토지보상법에 근거해 보상할 수밖에 없다"면서 "주민들이 억울하지 않게 적정 수준에서 보상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서원마을과 연경동은 각각 인천채씨·하빈이씨 집성촌으로, 주민들이 300년 이상 대를 이어 지켜온 곳이다. 대구에 몇 남지않은 집성촌 중 하나인 이곳이 조만간 사라지는 것도 개발이 남긴 어두운 그림자다.

 

[출처] 대구 연경택지개발지구 주민 '生業 뺏길판 답답'|작성자 김창곤

 

 

 

 

아래 사진들은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대원사 절 오른쪽에서 "서원마을"로 들어서는 도로 및 마을의 모습이다.

 

 

 

 

 

 

 

 

 

 

 

 

 

 

 

 

 

 

 

 

화암과 연경서원

 

화암(畵巖)은 대구광역시의 동구 지묘동과 북구 연경동 경계지에 위치하고 있다. 금호강과 동화천 두물머리에서 동화천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조계종 대원사 초입 왼쪽 도로변에 있는 거대한 바위벼랑인데, 동화천에 의해 침식되어 형성된 일종의 하식애(河蝕崖)로 자색의 퇴적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암(畵巖)아래에 연경서원(硏經書院)이 있었는데, 연경서원은 1564년(명종19년) 3월에 상량하여, 이듬해 겨울 10월에 완공된 대구지역 최초의 서원으로, 주세붕의 백운동서원보다 20년 후에 건립됐지만 달성 구지에 있는 도동서원보다 40여년이나 앞선 서원으로 현종 때 사액서원으로 승격된 유서 깊은 서원이다. 퇴계 이황을 주향으로 하고 한강 정구, 우복 정경세를 배향하였는데, 이곳에서 공부한 대구지역 유림들은 임란의병의 선봉에 섰으며 대구유학의 문풍을 이끌어 오는 등, 대구 유학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300여년이 지난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연경서원은 훼철되고 자취가 사라져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지금의 대원사부근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정확한 장소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화암(畵巖)은 연경서원이 철폐된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세간의 관심에서 점점 사라지게 되는데, 1980년대 대구의 산악회에서 화암(畵巖)을 암벽등반 코스로 개척하여 한때 화암(畵巖)은 산악인들 사이에 연경 듬바위(하늘바위)라고 알려져 일반인들에게 암벽코스로 유명한 곳이었다. 다행히 88올림픽이후 화암(畵巖)앞으로 도로가 포장이 되면서 밀려오는 차량들 때문에 더 이상 암장으로서의 가치가 없어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 2016년 5월29일 일요일
30도가 넘는 더운 날씨에 대구시 동구 지묘동과 북구 연경동 경계 지점에 위치한 연경서원 옛터를 청장년구향회원 13명이 답사한 사진

 

구향회에서 추정하는 연경서원의 옛터는 화암이 위치한곳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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