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23(수) 맑음. 미세먼지 여전, 약간 쌀쌀
ㅇ 거리 및 소요시간
- 거리 : 4.59km(트랭글 gps기준)
- 시간 : 1시간 42분
ㅇ 특기
- 집에서 약 6km쯤 떨어진 경산시 하양읍 남하리 361-1번지에 소재한 청천초등학교로 승용차를 몰고 갔다. 초등학교 주변 남하1리 마을입구 도로가에 승용차를 개구리 주차하고 남하1리를 트래킹 하기로 하였다.
- 트래킹 코스는 사전 네이버 지도를 탐색하여 초등학교를 출발 덕곡지 못을 지나 적당한 곳에서 능선으로 기어올라 출발점으로 되돌아 오기로 한다.
- 그런데 덕곡지 못을 지나 방상조 묘(도로 우측 계곡에는 사방댐이 있음)가 있는 곳에서 우측 산으로 무작정 치고 올랐는데 보기 보다는 경사가 심했고 잡목과 가시나무, 낙엽이 많이 싸여 있어서 상당히 힘들고 실족 위험이 따랐다. 겨우 힘들게 능선에 오르니 이런 젠장. 능선에도 전혀 길이 없는 넝쿨과 가시덤불 천지다. 잔 나뭇가지 등을 헤쳐가며 출발 방향으로 한참 내려가니 드디어 길이 나타나고 자그만 사찰인 영은사 방향으로 나오게 되었다. 오랫만에 제대로 개고생을 했다.
- 하양읍 남하1리는 대구 안심과 경산 하양읍을 연결하는 산업도로 주변에 위치한 동네로 마을 앞을 수없이 지났지만 정작 동리 안에 들어와 보는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요즘 시골 동네 대부분이 그렇듯 전반적으로 깨끗하고 옛 가옥도 몇 채 보였지만 대부분 현대식으로 전원주택을 신축해서 살고 있었고 옛 가옥을 개조해서 살고 있는 집들도 보였다.
하양읍-남하리(南河里) 의 위치와 동명 유래
국도 변에 자리하여 청천리와 함께 대구쪽에 가까이 있는 고장이다. 남하리는 골짜기가 많은 1리와 사열 혹은 사탄(沙灘)으로 불리우는 2리로 나누어 진다.
500여년전인 1526년 무렵에 경상, 전라, 충청 3도 수군을 통제하는 삼도통제사를 지낸 금포공 김시성의 고조부 때 부터 터를 잡아 청도김씨 집성촌으로 지금껏 이어져 오는 유서 깊은 마을이며, 창녕 조씨 문중을 비롯하여 300여집이 살고있다.
마을의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마을 이름을 덕곡(德谷) 혹은 호곡(虎谷)이라고 불렀다. 옛적에는 북쪽 골짜기에 살았으나 차츰 생활이 편리한 남쪽 금호강가로 옮겨 살면서 남하(南河)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을에는 나이가 200년쯤 된 팽나무가 경산 노거수 23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으며 아울러 의병장 신해(申海) 선생을 모시는 정자가 마을 사람들의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선생은 장절공 신숭겸 대장의 후손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 되어 영천성을 공략하였으며 전쟁 후에 인동 부사가 되어 선정을 폈다고 한다.<이상연 제보(72세)>
마을의 주 농산물은 사과와 벼에서 깻잎으로 바뀌었다. 깻잎을 시설에 재매하여 연간 상당한 소득을 올리고 있는 알찬 마을이다. 이르자면 백화점과 계약 재배하여 농산물을 내기 때문에 판로가 확실한 셈이다.
본래 하양군 마양면의 지역으로 칠곡.불당곡.제궁곡.호곡.덕곡에 살았으나 생활이 편리한 남쪽으로 내려와 금호강 가에 마을을 형성하여 살게 되었다고 하여 남하라 부른다.<이기우(남,72)외 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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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랭글 산행정보, 거리 약 5km, 운동시간 1시간 35분
▲ 트랭글 산행궤적, 청천초등학교에서 출발, 덕곡지(저수지)를 지나 능선을 타고 영은사를 거쳐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 구글궤적(남에서 북으로 본 모습)
▲ 구글궤적(북에서 남으로 본 모습)
▲ 남하1리 마을로 들어서서 입구, 산업도로 방향으로 돌아 본 모습이다. 입구에는 방범용 CC-TV가 있고 이 사진찍은 장소(청천초등학교) 인근 도로가에 승용차를 개구리 파킹하고 트래킹을 시작한다.
▲ 남하1리 마을 입구는 대구 안심과 경산 하양읍을 연결하는 산업도로변에 위치한다.
▲ 경산시 하양읍 남하리 361-1번지에 소재한 청천초등학교 동문이다. 이 부근에 파킹후 트래킹을 시작한다.
▲ 남하1리 마을 입구에서 마을 안쪽 모습이다. 넓지 않은 도로가 개울을 따라 마을쪽으로 이어진다.
▲ 마을 입구에서 200여미쯤 들가면 도로 좌측에 쉼터와 벤취를 갖춘 마실공원이 들어서 있다.
▲ 남하1리 복지회관
▲ 복지회관을 지나 왼쪽편에 서있는 느티나무
▲ 사전에 네이버 지도를 통하여 트래킹 목적지를 덕곡지로 잡았기 때문에 이곳 4거리에서 왼쪽으로 진행한다.
▲ 4거리 전주에 걸쳐있는 남하길 이정표
▲ 4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들어 돌아 본 모습이다.
▲ 흙길은 어디가고 이제는 시골 동네길은 거의가 아스콘 포장도이다.
▲ 삼거리에서 어디로 갈까? 덕곡지 못은 왼쪽으로 이어진다. 돌아 올때는 오른쪽 길로 빠져 나온다.
▲ 삼거리 전주에 붙어있는 이정표
▲ 삼거리 우측에 위치한 주택 담장에 붙어있는 주소, 이곳이 남하길 70번지
▲ 왼쪽으로 접어들어 돌아 본 삼거리 모습
▲ 어느 종친 사당으로 보이는데 지나서 돌아 본 모습이다.
▲ 이제 동네 마을은 끝이나고 본격적인 계곡길이 이어진다.
▲ 계곡을 따르는 길에는 경작지가 들어서 있고 농장 모습도 보인다.
▲ 노거수를 보면 어릴적 면사무소 느티나무에 올라가 놀던 생각이 난다.
▲ 문화재라고 하는것을 보면 사실 거의 대부분이 근래에 복원된것이고 이런 고목이야말로 오랜시간 그 원래의 모습을 담고 있어서 개인적으로 가장 옛스러움을 느낀다.
▲ 야산 산자락 아래에 보이는것이 못둑이다.
▲ 덕곡지, 마을입구에서 출발하여 이곳 저곳 사진을 담으면서 으슬렁 거리며 23분 걸려서 오늘 목적지인 덕곡지 못에 닿는다.
▲ 별로 크지 않은 아담한 못 우측으로 길은 이어진다.
▲ 못 어디에도 안내판은 보이지 않는다. 못 이름은 사전 네이버 지도를 통하여 덕곡지 못으로 알았다.
▲ 당초 계획은 이곳에서 못 맞은편 야산으로 기어 올라갈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너무 작게 걸려서 조금만 더 길을 따라가 가보기로 한다.
▲ 저수지를 지나면서 돌아 본 모습이다.
▲ 요즘은 어디를 가든 계곡마다 사방공사를 많이 해 놓았다. 저 돈 어디에서 나온거지?
▲ 덕곡지 못을 지나 한 5분쯤 길을 따르니 좌측에 묘2기가 있고 길 우측 계곡에는 사방댐이 있는곳을 만난다.
▲ 길 우측 계곡의 사방댐 조성 안내문
▲ 길 좌측 묘2기
▲ 방상조, 황씨 쌍분
▲ 눈에 띄는 공적비 만큼 오른쪽 묘 하단부가 훼손된 모습이 또한 눈에 들어온다. 사람은 옛날보다 훨씬 살기가 좋아졌는데 산짐승 들은 오히려 반대인가,,
▲ 묘 맞은편 계곡 사방댐의 모습이다. 사방댐 위를 지나서 능선으로 올라가고자 한다.
▲ 사방댐을 지나 산 기슭으로 올라 붙어서 내려 본 모습이다. 사진상에는 경사도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데 꽤 가파르다.
▲ 사방댐(묘)을 출발, 가시덤불, 잡목, 간벌목 개고생을 하며 20여분 생지옥길을 따라 오르니 봉우리의 능선길에 올랐다. 물론 경사도가 꽤 있고, 낙엽이 많이 쌓여 있어서 실족할 위험도 많았다. 사진은 올라온 방향의 모습이다.
▲ 능선에 접하여 우측으로 꺾어서 가고자 하는 방향의 모습이다. 얼추 길의 모습이 보인다.
▲ 능선에 접하여 가고자 하는 반대방향(즉 왼쪽편)의 모습이다.
▲ 능선에 접하여 오른쪽으로 꺾어서 50여미쯤 가니 비석은 있지만 봉분이 많이 훼손되어 알 수 없는 묘1기가 있다. 묘를 만난 이후부터는 길의 흔적은 전혀없고 사방댐에서 치고 올라왔을때의 상황과 똑같았다. 이제는 방향만 잡고 잡목길을 헤치며 내려간다.
▲ 10분쯤 내리막 잡목을 헤치며 길을 만들어 내려가니 출발 지점인 남하리 마을이 내려보인다.
▲ 줌으로 댕겨보니 양봉장의 모습이 보이고 ~
▲ 그 뒤로는 전원주택과 비닐하우스 단지가 보인다.
▲ 또 그 뒤로는 남하 마을 소재지가 보이고~
▲ 언젠가부터 소로길이 나오더니 급기야 편안한 넓은길로 바뀐다.
▲ 마을이 내려보이던 전망 지점에서 8~9분쯤 내려가니 위에서 보았던 양봉장을 만나고 ~
▲ 경작지 옆에는 작은 연못도 보이고 ~
▲ 비닐하우스 안을 살짝 들여다보니 깻잎을 재배하고 있었다. 지나서 돌아 본 모습이다.
▲ 양봉장을 지나 5분쯤 길을 따르니 드디어 마을 앞에 접어든다.
▲ 위에서 내려 보이던 전원주택 앞을 지난다. 지나서 돌아 본 모습이다. 전원주택 옆에는 영은사라는 자그만 절도 같이 있다.
▲ 전원주택을 지나자 말자 길 오른쪽 아래에 고목나무와 오래 되었을듯한 재실이 한채 보인다.
▲ 왼쪽 두동은 관리사 같고 오른쪽 동이 재실이다.
▲ 삼괴정(三槐亭)
귀가하여 인터넷을 통해 삼괴정에 대한 정보를 알아 보았다.
종 목 : 비지정문화재
소 재 지 : 경북 경산시 하양읍 남하리 551
시 대 : 조선
1838년(헌종 4년)에 건립한 삼괴정 김시명의 묘소재로 남하리 뒷산 중턱에 동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정자는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평면은 어간의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인데,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을 두었으며 좌측면에는 쪽마루를 설치하였다. 가구는 대량 위에 제형판대공을 세워 마룻대와 장혀를 받게 한 삼량가의 구조이며, 처마는 홑처마이다.
삼괴정은 김시명의 호이다.
삼괴(괴나무3그루) 아래 정자를 짓고 44세 때인 인조 25년(1647년)에 호를 삼괴정(三槐亭)이라 하였다. 휘가 시명(是鳴)이고 자가 문숙(聞淑)이다. 소시에 종백형 금포공과 손모당 유사월당 정한강 선생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관직은 인조27년 3월 46세 때에 훈련판관(당상관 정3품) 겸 절충장군을 역임하였고 효종5년 통정대부 함경도 개천군수와 병마절도사를 추증받았다.
▲ 삼괴정을 지나며 돌아 본 모습이다.
▲ 삼괴정을 지나 마을 입구방향으로 1~2분쯤 걸어가니 아까 지나갔던 삼거리를 만난다.
아까는 비닐하우스 앞에 있는 자그만 다리를 건너서 덕곡지 못 방향으로 갔었다.
▲ 개울가 옆에 석축을 쌓아 만든 대지위에 무우청을 말리는 모습이다. 옛 어린시절 보았던 모습이 여기에 살아있다.
▲ 개울을 따라 마을 입구로 연결된 동네 길
▲ 느티나무 앞을 지나고 ~
▲ 출발지점인 청천초등학교 인근으로 되돌아 와서 ~~
▲ 지나 온 길을 되돌아 보며 약 두시간의 짧은 트래킹을 마감한다.
경산시 하양읍 남하리가 고향인 어떤 분의 수필을 옮겨 보았다.
내고향, 꽃피는 남하리 손 영 복
나는 어린 시절을 경산시 하양읍 ‘남하리’에서 자랐다. 내 유년과 소년 시절의 보금자리인 ‘남하리.’ 유성이 흐르는 밤하늘은 유난히도 맑았다. 그런 밤이면 마당에 짚으로 만든 멍석을 깔고 모깃불을 피워 놓고 가족들이 둘러앉아 정담을 나누곤 했다 우리 마을 밤하늘엔 유난히도 별들이 많았고, 밤이 이슥해지면 별똥별들이 꼬리를 달고 아름다운 밤하늘을 수놓았다. 마을 주변을 작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어 봄부터 가을까지 풍성한 풍경을 만들어 주었다. 봄이면 진달래와 싸리꽃이 온 산을 뒤덮고, 여름이면 무성한 숲 속에서 하루 종일 노래하는 새들의 노래 소리, 가을이면 탐스럽게 달린 밤송이와 머루 다래, 한겨울엔 희고 아름다운 설경이 있었다.
기찻길 건너편에는 사과밭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고, 금호강 맑은 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새벽이면 자욱하게 강에서 물안개 피어오르고, 해가 지고난 후 마을 뒤 대나무 숲엔 새들이 깃드는 것을 관조하는 기쁨도 있었다.
산과 들과 물이 어울리는 곳, 나무와 풀이 아름다운 숲생태계를 이루는 곳, 뒷동산 자락의 밤나무 밭에서 알밤을 줍기도 하였다. 금호강 맑은 물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영을 하고, 해질 무렵 강둑에 앉아 조례봉 허리를 바라보면서, 초등학교 6학년 음악 시간에 배운 박태준의 ‘동무 생각’을 목청껏 불러 보곤 했다.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내고향, 꽃피는 남하리 앞에 있는 금호강에서 어떤 할머니가 머리에 보따리를 이고 강을 건너려 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할머니의 짐을 들어주고 싶었다. “할머니, 제가 들고 건너 드리겠습니다.”하니 괜찮다고 하셨다. 계속해서 할머니를 도와드리겠다고 하니 “고마워서 어쩌누.”하시면서 보따리를 내려주었다.
나는 짐을 들고 할머니와 같이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여울이라 물은 무릎 아래까지만 올라왔으나 강바닥에는 이끼 낀 자갈들이었다. 아! 강 중간쯤에서 발이 자꾸만 미끄러지는 것이 아닌가! 결국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보따리가 저만큼 둥둥 떠내려가고 있었다. 죽을 힘을 다하여 보따리를 겨우 건져서 강 건너 맞은편 강가에 내려놓았다. “할머니, 죄송합니다.” 몇 번이고 할머니께 머리를 숙였다. 할머니는 “학생이 착한 일을 하려다 이렇게 되었는데 어떠냐?. 괜찮다.”하시며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시었다.
보따리를 푸시는데 보니 그 속에는 대구에서 학교에 다니는 손자에게 주려고 삶은 고구마 옥수수등 먹을 것이 들어 있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할머니는 웃으시면서 괜찮으니 집으로 가라고 하시며 오히려 내게 고맙다는 인사까지 하시었다. 나는 할머니께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과수원 길을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혼자 피식 웃기도 하고, 할머니께 미안하기도 하다.
교직에서 퇴직하고 난 후, 직접 가르친 제자들이 찾아오는 것은 참 기쁜 일이다. 오늘이 바로 그런 기쁜 날이다. 40여 년 전에 내가 담임을 했던 제자들이 나를 만나려 내가 농사를 짓고 있는 내고향, 꽃피는 남하리의 과수원으로 온다는 연락이 왔다. 아침부터 농막을 대청소하고, 제자들에게 나누어 줄 무공해 채소들도 잘 손질했다. 오늘과 같이 제자들이 올 때는 농막이 있어 여럿이 빙 둘러앉자 이야기도 나누고 맛있게 식사도 할 수 있어 참 좋다. 특히 우리 농막은 현대식으로 만든 컨테이너가 아니고, 짚과 천등 재래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더울 때는 시원하면서도 햇빛의 자외선을 차단 시켜 주고, 바람이 심하게 불 때에는 바람막이 구실도 한다. 또 일을 하다가 피곤할 때는 잠시 낮잠을 즐기기도 한다. 그리고 나의 농막은 나의 도서실이자 공부방이어서,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쓰고 싶은 글도 써 보는 곳이기도 하다.
아침부터 제자들을 기다리고 있던 중, 오전 10시경에 10여명의 제자들이 도착했다. 나는 차에서 내리는 제자들을 일일이 이름을 불러 주면서 반갑게 맞아 주었다. 제자들은 준비한 도시락과 음식물을 농막에 내려놓았다.
잠시 후 커피를 끓여 한잔씩 마시면서 그 동안의 안부를 묻고 대답하는 순서가 진행되었다. 이어서 농장 밖으로 나가 김을 매고, 채소에 물도 주었다.
제자들과 같이 일을 하면서, 나는 1980년에 523평의 이 농장을 구입했으며, 그동안 남에게 주어 농사를 짓게 하다가 4년 전에 내가 직접 경작하고 있다는 말과 이곳에는 자두나무 50그루, 감나무 30그루, 그 외 대추나무, 오갈피나무, 석류나무, 매실나무등 10여 가지의 과일나무와 고추, 무, 배추 등 채소도 재배하고 있다는 설명도 해 주었다.
50대 중반의 제자들도 내 설명에 관심을 가지고 경청해 주었다. 이어 제자들이 갖고 갈 채소들을 뽑아 비닐 봉투에 넣어 나누어 주면서 내가 직접 재배한 것이고,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무공해 농산물이니 꼭 집에 갖고 가서 요리해서 맛있게 먹어라고 당부를 했다.
산과 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곳에서 옛 제자들과 같이 하루를 보내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나 행복했다. 이어 점심 식사 때가 되어 제자들이 준비해 온 음식으로 식사를 하니 그 맛이 꿀 맛 같았다. 3시경 오늘 하루 일정을 모두 마치고, 차를 한잔씩 다시 나누고 다음 또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제자들은 돌아갔다. 나는 자두나무 아래에서 돌아가는 제자들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면서 서 있었다.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한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과 같이 나도 내고향, 꽃피는 남하리에서 자두나무 사과나무를 심고 가꾸면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다.
출처 : 연주 하는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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