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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영의 보금자리
▣ 대구의 산/비슬산(대견봉)

유가사-대견봉-월광봉-조화봉(강우량 측정소)-대견사지-수성골-유가사 (2)

by 영영(Young Young) 2009. 11. 26.

 

 ▼ 비슬산 정상(대견봉) 조망

 ▼ 앞에 보이는 능선이 올라온 길이다.

 ▼ 앞으로 가야할 982봉과 월광봉,조화봉 방향

 

 

 ▼ 유가바위

 

 ▼ 지나온 도통바위

 ▼ 도성암 줌 ~

 ▼ 정상석과 10여미터 떨어진 지점에 또다른 이정표와 표지판이 있다. 왼쪽 대견사지 방향으로 가면 헬기장이 있다.

 ▼ 이정표(유가사 3km, 대견사지 4km)

 

 

 

 ▼ 헬기장의 오른쪽을 지나 완만히 내려간다.

 

 

 ▼ 내려가는 길에 돌아본 대견봉의 기암

 

 ▼ 완만한 내리막길에 돌탑을 만나고 ~

 ▼ 돌탑뒤에 "헐티재 9km(2시간)" 표지판과 준희님의 "청룡지맥분기점"표지판이 있다. 왼쪽은 헐티재로 내려가는 길이고 직진하여 완만히 간다.

 

 ▼ 982봉으로 가는길에 뒤돌아본 유가바위와 그 오른쪽 병품듬

 ▼ 돌탑이 있는 청룡지맥 갈림길부터 완만한 솔숲길을 이어오다가 뚜렷한 오른쪽길을 버리고 희미한 봉우리길로 오르면 지형도상 982봉이다(GPS 971m). 2평 될까말까한 뾰족한 봉우리에는 더 이상 갈길이 없다 올라온길로 다시 내려가서 오른쪽 우회길을 따라간다. 아래 사진은 982봉에서 내려다본 지나온 능선

 ▼ 982봉에서 본 진행할 방향. 앞의 봉이 월광봉이고 뒷쪽 강우측량소가 있는곳이 조화봉이다.

 ▼ 완만한 내리막길을 따르다가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이정표가 서있는 마령재이다. 왼쪽으로 내려가면 용천사이다.

 ▼ 이정표 직전에 마령재 표지판이 있다.

 

 ▼ 이정표(비슬산정상 1.0km, 20분, 대견사지 2.5km 40분, 유가사 2.6km 1시간 10분, 용천사 2.5km 1시간 30분, 참꽃군락지 2.5km 40분)

 ▼ 직진하여 대견사지 방향으로 간다.

 

 ▼ 마령재에서 1분정도 내려와서 오르막이 시작되는 부분 왼쪽에 자그만 등산 안내도 하나

 

 ▼ 마령재에서 월광봉으로 가는 길에 등로 오른쪽 납작한 바위 서너개가 일렬로 서있는 곳에 올라서 뒤돌아보고 ~

 ▼ 바위앞에서 가야할 방향을 보고 ~ 전면에 보이는것이 월광봉

 ▼ 우회하는 뚜렷한 길을 버리고 희미한 봉우리로 오르면 1003m 월광봉임.

 ▼ 소나무에 "월광봉 1003m, 목우수례"라고 표찰이 매달려 있음

 ▼ 월광봉에서 바라본 진행할 조화봉 모습

 ▼ 월광봉에서 직진하여 30초 정도 내려와 평탄한 길을 따르면 오른쪽 완만한 넓은 계곡이 참꽃군락지이고 ~

 ▼ 등로의 정면 오른쪽으로는 넓은 진달래 군락지가 분포하고 뒷쪽으로 대견봉이 보인다.

 

 ▼ 정면 왼쪽으로는 조화봉이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 줌 ~

 ▼ 뒤돌아보면 지나온 뾰족한 월광봉이 보인다.

 

 ▼ 등로 오른쪽에 벤취5개가 있는 쉼터, 그 뒤로는 대평원 참꽃군락지이다.

 

 ▼ 조화봉과 대견사지 갈림길 삼거리.

삼거리 중앙에 표지판이 서있고, 그 뒤에 달성소방서 구조표지판, 왼쪽으로는 톱바위와 조화봉, 오른쪽으로는 대견사지

 ▼ 이정표(비슬산정상 4.0km 1시간 20분, 대견사지 0.2km, 톱바위 0.2km 10 분, 휴양림 2.3km 1시간)

 

 ▼ 이정표 뒷쪽에 서있는 달성 4-4구조표지판

 ▼ 삼거리에서 진행할 조화봉 방향의 조망

 

 ▼ 삼거리에서 왼쪽 조화봉으로 감, 조화봉으로 연결되는 등로는 완만한 오르.내리막길의 편안한 길이다.

 

 ▼ 곧이어 조그만 삼거리를 만나는데,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대견사지로 감, 직진하여 조화봉으로 간다.

 

 ▼ 삼거리에서 20여미터 후방에 강우측량소로 이어지는 포장 임도 만남, 여기서 조화봉(1058m)으로 가기위해서는 임도를 횡단하여 산쪽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이몸은 강우량관측소로 갔다.

 

 ▼ 임도에서 좌로 꺾어 강우관측소 차단기를 지나서 ~

 ▼ 강우관측소로 이어지는 비슬교를 건너서 따라간다.

 

 ▼ 비슬교를 따라 강우관측소로 가는길 우편에 톱날모양을 한 톱바위가 위치하고 있다.

 

 ▼ 톱(칼)바위
지금으로부터 약 1만~8만년전 지구상에는 마지막 빙하기가 있었다. 그 당시 우리나의 기후는 빙하기 후대 주변에 위치하고 있어서 주빙하기 후대에 해당되며, 이 시기에 비슬산의 암괴류(Block Stream, Boulder Stream), 애추(Talus), 토르(Tor)등이 형성되었다. 톱바위는 이 시기에 형성된 지형으로서 애추로 분류되고 비슬산 일대 여러곳에 분포한다. 톱 바위와 같은 애추는 길이는 암괴류에 비해서 훨씬 작은 반면 사면경사는 30도 내외로 비교적 급경사이다. 바위 형태는 암괴류가 둥근맛을 보이는 반면 애추는 각이 진 바위들이 대부분이어서 두 지형간의 구분이 쉽다. 특히 현지에 분포하는 톱바위는 애추의 형성과정을 매우 모식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는 중요한 지형자원이다. 비슬산에는 톱바위와 같은 애추 외에 대견사지 부근에서 볼 수있는 각종 형상의 토르(Tor)와 천년기념물 435호로 지정된 비슬산 암괴류 등이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이루고 있다.

 ▼ 강우관측소 정문에서 턴 ~

* 조화봉 정상에는 강우레이더와 해맞이 제단, 조화봉 정상석이 설치되어 있다고 하지만 깜빡하고 돌아보지 못했다.

 

 

 

 ▼ 강우관측소 앞에서 비슬산 능선

 ▼ 강우관측소 앞에서 1034봉과 전망대(육각정)방향

 ▼ 전망대(육각정)방향 줌 ~

 ▼ 다시 강우측량소 차단기 앞으로 돌아와 약 20여미터 직진하여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감(대견사지로 가는 길)

 ▼ 삼거리 직전에서 바라본 대견사지 방향

 

 

 

 ▼ 대견사지 200m 못미쳐 오른쪽에 이정표가 서있다.

 ▼ 이정표(비슬산정상 4.0km 1시간 30분, 대견사지 0.2km 5분, 휴양림임도 4.2km 1시간 20분)

지나온길이 휴양림임도 방향이며 오른쪽길이 비슬산 정상 방향이다. 이정표에서 대견사지로 직진한다.

 ▼ 코끼리 닮은바위

 ▼ 등로 오른쪽에 자그만 "Tor관찰장소" 안내판이 있고 맞은편(왼쪽)에 커다란 전망바위가 있다.
Tor란 금이 가고 부서진 암괴들이 노출된 암체를 말하며, 토어는 높이가 15m를 넘는 경우는 드물고 도상구릉의 정상부나 페디먼트의 가장 높은 지점에 잔유물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며, 기반암 위에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며, 동결-융해 풍화작용이나 지하수에 의한 풍화작용을 받아 만들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 "Tor관찰장소" 안내판의 맞은편(왼쪽)에 커다란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모습(조화봉 강우량관측소 방향)

 ▼ "Tor관찰장소" 안내판의 맞은편(왼쪽)에 커다란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모습(대견사지 방향)

 

 

 

 ▼ 대견사지로 가는길에 등로변에 있는 기암(말바위)

 ▼ 대견사지로 가는길에 등로변에 있는 기암(부처바위)

 ▼ 대견사지로 가는길에 등로변에 있는 기암(코끼리바위)

 ▼ 대견사지로 가는 길에 돌아본 칼바위와 조화봉 강우량관측소

 

 ▼ 대견사지에 들어서면 넓은 광장에 왼쪽은 평탄한 암반지대, 오른쪽으로 기암바위(층바위)들이 있다. 대견사지의 오른쪽 방향,

 ▼ 대견사지의 왼쪽 방향, 벼랑끝에 머리와 목이 짤려나간 3층 석탑이 보인다.

 ▼ 대견사지 좌측의 거대한 바위들

 ▼ 대견사지 파노라마 사진

 ▼ 대견사지 파노라마 사진

 ▼ 대견사지 우측의 거대한 기암

 ▼ 대견사지 좌측의 기암

 ▼ 대견사지 우측의 기암

 

 ▼ 삼층석탑 앞에 "달성비슬산암괴류"에 대한 안내판이 서있다.
암괴류는 큰 자갈 내지 바위크기의 둥글거나 각진 암석덩어리들이 집단적으로 산사면이나 골짜기에 아주 천천히 흘러내리면서 쌓인것을 말하며
비슬산 암괴류는 지금으로부터 약 1만년전~10만년전인 주빙하기 후대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중생대 백악기의 화강암의 거석들로 구성되어 있는 특이한 것이다

 

 ▼ 3층석탑, 유형문화재 제42호

머리와 목이 짤려나간 3층석탑의 모습이 애처롭다. 석탑의 짤린 부분은 대견사지 한켠에 보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 대견사지 파노라마. 클릭하면 확대됨.

 ▼ 석탑의 오른쪽에 서있는 "대견사지 삼층석탑" 안내문
비슬산 주봉인 천왕봉에서 남쪽으로 약 2km, 해발 약 950m에 위치한 이탑은 중국 당나라의 황제가 절을 짓기 위하여 명당을 찾아 헤매다 9세기 신라 헌덕왕때 이곳 비슬산 터를 잡아 절과 삼층석탑을 건립하고 대국에서 본 절이라 하여 대견사라 이름지었다는 전설이 있다. 절을 처음 세웠을 때는 9층탑(또는 6층탑)이라 전해지기도 한다.
이 탑은 일반적인 탑과 달리 절벽의 바위를 바닥돌로 하고 그 위에 2층 기단의 3층탑을 세웠다. 하층 기단에도 양쪽 모서리 부분과 가운데에 기둥무늬를 돋을새김했고, 윗층 기둥돌과 몸돌에도 양쪽 모서리에만 기둥무늬를 돋을새김 했을뿐 별다른 꾸밈이 없어 소박하다. 지붕돌에는 4각의 지붕돌 받침과 2단의 괴암을 조각하였다. 기단부에 퇴화현상이 있고, 전체적으로 보면 탑 모양이 가늘고 높게 올라가 상승감이 있다. 이 탑은 절의 창건과 같이 하는 통일신라 후기(또는 고려 전기)에 제작된것으로 보인다. 현재 절은 임진왜란때 허물어져 버리고 빈터에 주춧돌과 석축만이 남아 있으며, 삼층석탑도 허물어져 있는것을 달성군에서 1988년도에 높이 3.67m의 3층탑으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기암들이 자연굴을 만들어 놓았는데 입구에 "낙뢰로 인한 석탑 임시보관"이라는 팻말이 놓여있는데 안쪽을 들여다 보았다.

 ▼ 굴안에 부러진 석탑 상단부가 방치되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 굴입구는 반대편으로 통과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