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5년전에 근무지였던 성주를 최근에 방문하게 되었다.
볼일을 보고 점심 식사를 위해 맛집을 검색하여 '장수 돼지국밥' 식당을 찾았고 식사후에 식당 가까이에 있는 '성주역사테마공원'을 돌아보게 되었다.
경북 성주군 성주읍 예산리 516에 위치한 성주역사테마공원은 성주의 옛 모습을 재현한 공원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성주사고'와 조선시대 전통연못인 '쌍도정' 그리고 조선시대 옛모습의 일부인 '성주읍성 북문과 성곽'을 한자리에 복원하여 역사테마공원으로 조성한 것이다.
성주읍성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임정사 앞 동북쪽 성곽의 흔적만 일부 남게 되었는데 2020년 10월에 재건하였으며 공원 산책로에 조성된 비석들은 조선시대 곳곳에 세워져 있던 것을 도로개설 등의 이유로 이곳으로 이전하여 그 뜻을 이어가고 있다.
■ 탐방일 : 2020. 3. 9(수), 대통령 선거일, 맑고 퀘청
■ 탐방코스 : 성주역사테마공원
자가용을 타고 식당과 600여미터 떨어진 성주테마역사공원을 찾았다.
경북 성주군 성주읍 예산리 516에 위치한 성주역사테마공원은 성주의 옛 모습을 재현한 공원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성주사고'와 조선시대 전통연못인 '쌍도정' 그리고 조선시대 옛모습의 일부인 '성주읍성 북문과 성곽'을 한자리에 복원하여 역사테마공원으로 조성한 것이다.
성주사고
사고란 실록을 보관하는 장소이다. 실록이란 임금이 재위하고 있는 동안 있었던 여러 일과 중요한 사실을 시간순으로 엮은 역사 기록이다. 고려왕조는 춘추관과 예문관에서 뽑은 사관을 두고 날마다 시정을 기록하기도 하였고, 임금이 죽으면 다음 임금이 실록을 편찬하면서 사고에 봉안 하였는데 조선 왕조도 이를 그대로 이어받아 더욱 발전시켰다.
조선 왕조의 실록은 3대 임금인 태종이 태조실록 15권을 편찬하면서 시작되었다. 세종은 정종실록 8권, 태종실록 36권을 편찬한 후, 태조.정종.태종의 실록을 각 2부씩 더 만들어 춘추관과 충주사고에 봉안하였다.
세종 27년에 실록을 보존하는데 사고 2곳으로는 부족하다 하여 바로 이곳 성주, 그리고 태조 어진이 있었던 전주 2곳에 사고를 늘려 짓고 실록(태조.정종.태종)도 2부씩 더 찍어 보존에 더욱 노력하였다.
성주사고는 조선 전기 3곳의 외사고(나며지는 충주와 전주) 가운데 하나로 조선왕조실록,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같은 문헌 기록에 의하면 성주 목관아 가까이 위치하고 있었다.
종종 33년에 화재가 발생하여 태조실록부터 연산군일기까지 664권 184책의 실록이 모두 불에 타는 사고가 발생하였고, 중종 35년에 다시 실록을 인쇄하여 봉안하였다.
성주사고에 대한 마지막 기록은 선조 25년 6월 임진왜란때 사각은 무사하였지만 피난하며 땅에 묻어 두었던 사궤는 모두 꺼내어져 불태웠다는 보고였다. 그때까지 성주사고는 태조부터 명종까지 13명의 임금, 805권 260책의 실록이 보관되었다. 2019년 성주군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이 봉안되었던 도시로써 선조들의 전통과 정신, 문화를 보존하기 위하여 역대 기록을 되짚어 성주사고를 본래 모습에 가깝게 재현하였다.
관천대(觀天臺)는 조선시대 천문관측 기구인 간의를 설치하였던 관측대를 말한다. 조성된 관천대는 서울 창경궁에 있는 관천대를 본보기로 하였다.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것을 하늘로 삼으니 농사는 의식의 근원이고 왕정의 급선무이다."고 했던 세종대왕의 백성을 사랑하하는 마음과 혼을 담아 이 자리에 관천대를 조성하였다고 한다.
성주읍성은 고려 우왕 6년(1380) 토성으로 축성되었으며, 조선 중종 15년(1560) 석성으로 개축하였다. 또한 임진왜란 발발 한 해 전인 선조 24년(1591)에는 성문이 건설되었다. 읍성은 현재 성주읍의 중심부인 경산리, 예산리, 성산리. 백천리 일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주목읍지'에 따르면 읍성의 둘레는 6,755척으로 약 2.1km에 달하는 대규모의 읍성에 해당하며, 평면형태는 옛 고지도 자료 및 지표조사보고서 등을 통해서 볼 때, 정타원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성주읍성은 북문을 포함한 270m구간을 전문가 자문을 거쳐 2020년에 재현하였다.
작은연못과 정자, 두개의 섬으로 조성된 쌍도정(雙島亭,연못)은 조선시대 성주관아의 객사인 백화현의 남쪽 연못에 있던 정자의 이름으로 정선이 그린 그림을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재현하였다.
네모꼴의 연못속에 석축으로 둘러싼 2개의 섬이 조성되어 있어 쌍도정이라 칭하며, 왼쪽 섬에는 나무만 심겨져 있지만 오른쪽 섬에는 정자가 설치되어 있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정선이 그린 최고의 작품이라 평가되며, 연못의 조성은 고산 윤선도가 성주고을 수령 재임시절(1634~1635)과 관련 있다고 추측한다.
혼자 왔으면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천천히 돌아봤을텐데, 옆지기가 있어서 대충 공원을 돌아보고 조금은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린다.
성주군 홈페이지에 의하면, 작년 12월 현재, 성주 인구는 23,621세대, 42,842명이라고 한다. 5만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많은 예산을 투자하여 조성한 역사테마공원을 성주군민뿐 아니라 대구를 비롯한 성주 인근 지역의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고 즐겼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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