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우리나라 천년기념물 제1호인 '도동 측백나무숲' 군락을 이루고 있는곳이 대구시 동구 도동에 소재한 '향산'이고 이곳 마을이름이 '향산마을'이다. 향산마을은 대구시 도심재생사업 대상으로 선정되어 2015년부터 60여억원의 예산을 들여 도동문화마을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측백나무숲 앞 도로의 확장 및 인도 신설, 커뮤니티센터 신축, 마을 환경정비, 관광 브랜드와 프로그램 운영 등을 추진하고 있는데, '향산칠색(香山七色)'은 도동문화마을을 중심으로 관광 및 탐방코스를 7개로 나누어 돌아 볼 수 있도록 휠링코스를 구성한 것이다. 7개의 코스는 모두 도동측백나무숲에서 출발하여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순환형 코스이며 일부 코스는 독립적이 아니라 혼재형으로 예를 들어 단산지R은 4, 5, 7코스에 공유되어 있다.
ㅇ 지난 11월 18일 향산칠색중 제일 처음으로 3코스를 탐방하고 이어서 11월 20일에 6코스, 오늘 7코스 탐방에 나섰다. 7코스는 도동측백나무숲을 출발하여 반시계방향으로 용암산 - 이기세폭포 - 도성사 - 구절송 전망대 - 봉무정/독좌암 - 단산지 - 불로고분군을 거쳐 출발점인 도동측백나무숲으로 돌아오는 21km, 8시간 소요되는 구간이다. (도동문화마을 관광안내맵 기준)
ㅇ 7코스는 향산칠색 7개의 코스의 최외곽을 연결하는 가장 길고 탐방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구간이다. 그러나 오르막 급경사가 있는곳은 용암산 오를때와 단산지 전망대 오를때 두곳 정도로 쉬엄쉬엄 한바꾸 돌면 운동과 휠링을 동시에 할 수 있다. 7코스 역시 현지에 설치된 표시판의 화살표 방향이 도동문화마을 관광안내맵과는 정반대로 역방향으로 표시되어 있다.
ㅇ 측백나무는 주변환경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선조들이 즐겨 심던 나무의 하나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1540년(중종 4년) 10월 20일 전주 부윤 이언적이 올린 나라를 다르시는 방법에 대한 상소문의 내용에 <옛날 이덕유가 당나라 무종에게 "군자는 소나무나 측백나무 같아서 홀로 우뚝 서서 남에게 의지하지 않지만 간사한 사람은 등나무나 겨우살이 같아서 다른 물체에 붙지 않고는 스스로 일어나지 못한다.">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간하였다. 영조대왕의 묘지문에는 <장릉을 옮겨 모신 뒤에 효종께서 손수 심으신 측백나무의 씨를 옛 능에서 가져다 뿌려 심고 '대개 영릉의 효성을 나타내려는 것이다.' 하셨으니, 또한 성효가 끝이 없음을 알 수 있다.>하여 묘지의 둘레나무로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심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ㅇ 불로동에서 동쪽으로 2km쯤 가면 오른쪽에 불로천을 낀 향산(香山)이 나타난다. 이 산 북쪽 비탈의 높이 100여 미터의 낭떠러지를 온통 덮고 있는 울창한 숲이 바로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제1호호 지정된 도동측백나무숲이다. 조선초기의 문신 서거정(1420~1488)은 그의 시문집 사가집(四佳集)에서 대구십영(大邱十詠)을 노래하고 있다. 대구십경(大邱十景)이라고도 하는데, 제6경 '북벽향림'이 바로 이 측백나무를 두고 하는 내용이다. 서거정 선생이 시를 남긴것을 보아도 수령이 500년 이상이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ㅇ 평범한 이 측백나무숲이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제1호로 선정된 까닭은 상록 침엽수로 중국특산으로 알려져 왔던 이 나무가 단양(제62호), 영양(제114호), 울진(제155호), 안동(제250호) 등 우리나라 여러곳에서 발견되었지만 그 재생지 중에서도 도동측백나무숲이 가장 남쪽에 위치한 남한지(南限地)인 곳으로서 식물 지리학적 가치를 인전받았기 때문이다. 측백나무숲은 절벽바위에 뿌리는 내리고 숲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옛날 대구에서 영천, 경주로 가는 도로가 있어 절벽 아래를 흐르는 계곡수와 더불어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어 행인들의 피로를 덜어 주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물이 줄어들어 옛날과는 다른 모습이다.
ㅇ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 쳔연기념물 제1호 대구광역시 도동 산 180 이곳은 조선초기의 대학자 서거정(1420~1488) 선생이 말한 대구의 경치가 좋은 열 곳 중 제6경에 해당하는 북벽향림(北壁香林)이다. 옛날에는 절벽 앞 개울물이 깊고 푸르렀으며 숲도 훨씬 울창하여 시인들과 풍류객들이 자주 찾았다고 한다. 대구에서 영천, 경주로 가는 길목이어서 길손들의 쉼터가 되기도 했다. 천연기념물을 처음 선정할 당시에 측백나무가 집단으로 자라는 곳으로는 가장 남쪽이며, 옛날에는 묘지의 둘레나무로 심는 등 측백나무 쓰임의 귀중함을 감안하여 제1호로 지정(1962)되었다. 현재 1,200여 그루의 측백나무가 굴참나무, 느티나무, 굴피나무, 물푸레나무 등과 같이 섞여 자란다. 이 중 일부는 나이가 수백년에 이르나 대체로 키 4~5m, 줄기지름 10cm 전후에 불과하다. 흙 한 점 제대로 없는 바위틈에서 긴 세월을 간신히 지키고 있는 이 측백나무 숲은 지키고 가꾸어야 할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이다.
ㅇ 구로정(九老亭)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도평로 248(도동) 향산 북쪽 절벽 중턱에 19세기 초엽 인근에 살았던 아홉 노인의 시회(詩會)를 기리는 후손들이 중국 白樂天(백락천)의 香山九老會(향산구로회)를 본떠 1933년 3월에 이 산 낭떠러지 중턱 10여 평 남짓한 터에 3樑 맞배집을 짓고 九老亭(구로정)이라 하여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한다.
ㅇ 우향해서 관음교를 건너서 관음사까지는 150m, 용암산성 까지는 1.51km이다.
ㅇ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 천연기념물 제1호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도동 산 180 불로천의 상류지역에 해발 160m되는 향산이 있다. 이 향산의 북쪽에는 불로천이 흐르면서 높이 100m, 길이 600m에 이르는 절벽에 측백이 자생하고 있다. 측백은 우리나라와 중국을 원산지로 하는 항상 푸른 '상록바늘잎나무'로 떨기나무 또는 큰 키 나무로 자란다. 이곳의 측백수림은 측백나무가 자생할 수 있는 남쪽 한계를 나타내므로 식물 지리학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때문에 1962년 천연기념물 1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자연생은 대부분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낭떠러지에 남아있다. 이 곳에 자생하고 있는 측백도 처음 지정될 때는 나이 100년, 밑둘레 20cm, 높이 10m나 되는 수천 그루가 모여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높이 5~6m정도 되는 100여 그루의 측백이 잡목과 섞여있다. 또한 숲 아래의 바위 틈에는 일본학자가 여기서 처음 발견하여 새로운 변종으로 이름 붙인 '구와꼬리풀'이 자라고 있다.
ㅇ 관음사 觀音寺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672 낙가산에 자리잡은 이 절은 670년(문무왕 10)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고려 광종때에 심지왕사가 중창하였으며, 1933년 해인대사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이 절은 이 고장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관음전에 모신 관음보살은 큰 영험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ㅇ 용암산성 용암산성은 해발 380m의 산꼭데기에 가파른 경사를 이용하여 쌓은 성으로, 안심과 하양으로 이어지는 통로상에 있어, 지형상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성벽의 둘레는 약 1km이며, 성의 서쪽과 남쪽의 산기슭에서 능선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경사지에는 인공적으로 절벽을 만들어 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용암산성>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5호,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산 35.36 이 성은 옛날 대구-경주의 간선도로 옆에 위치한 해발 382m의 용암산 정상부를 돌아가면서 머리띠를 매듯이 흙과 돌을 섞어서 성벽을 만든 테뫼식 산성이다. 이 성의 둘레는 1km정도이며, 성벽의 높이는 약 10m이다. 출입문은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의 남동쪽에는 "옥천"으로 불리는 우물이 남아있다. 산성 남서쪽의 해발 320m의 능선에는 삼국시대의 고분 20여기가 위치하고 있어, 이 산성도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용암산성 누리길> 용암산성 누리길은 팔공산의 풍경과 지역의 향토문화자원을 통해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감상하고 도시의 역사, 문화자원을 체험하고 탐방할 수 있는 길입니다. 봉무공원(단산지)과 연계하여 레포츠, 자연생태학습, 여가와 휴식을 할 수 있으며, 용암산. 대암봉. 요령봉. 능천산 등의 산길을 따라 걸으며 자연속에서 명상과 산책을 즐기고, 우리 지역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또한 누리길 주변에는 고분군,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 용암산성, 옥천, 골마을 등 다양한 지역의 문화재가 산재하고 있어 자연 경관과 동시에 역사, 문화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대구광역시 동구에서는 우리 지역의 문화자원을 홍보하고, 시민의 건강과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 이 길을 만들고 안내문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ㅇ 용암산성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5호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산 35.36 이 성은 옛날 대구-경주의 간선도로 옆에 위치한 해발 382m의 용암산 정상부를 돌아가면서 머리띠를 매듯이 흙과 돌을 섞어서 성벽을 만든 테뫼식 산성이다. 이 성의 둘레는 1km정도이며, 성벽의 높이는 약 10m이다. 출입문은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의 남동쪽에는 "옥천"으로 불리는 우물이 남아있다. 산성 남서쪽의 해발 320m의 능선에는 삼국시대의 고분 20여기가 위치하고 있어, 이 산성도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ㅇ 옥천 玉泉 이 우물은 용암산성(대구광역시 기념물 제5호)안에 위치해 있으며 산 정상(해발 382m)에서 남동쪽으로 약 150m 떨어진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임진왜란(1592~1598)시 백성들과 의병들이 왜군에 맞서 이 산성에 들어와 항쟁하였으나 전세가 불리해 장기간 고립되자 그ㅡ 난국을 극복하기 위하여 우물을 판것이 유례이다. "옥천(玉泉)"이란 명칭은 항상 옥같이 맑고 찬 물이 솟아난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며 돌을 쌓아놓은 모습이 자연부락의 우물을 연상케 한다.
ㅇ 와룡암(臥龍巖)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평광동 1525번지 와룡암은 해안현 입석리에 세거해온 영양인 남명신(南命新.1968~1772)이 영조원년(1725)에 초창하고 영조 27년(1751)에 중건한 건물이다. 남명신은 뛰어난 효자로 생존시나 돌아가신 뒤에도 극진한 효성을 다하여 재상 이성중과 어사 한광조로부터 "출천지효(出天之孝)"라 하여 포상을 받기도 하였다. 와룡암은 서실(書室) 및 재실(齋室)로 사용되었는데 주로 서실은 강습의 공간이었으며 재실은 사방에서 온 문사(文士)들이 기거하는 공간이었다. 이 건물은 중건된 후 남명신의 증손 형일(衡馹)등에 의해 중수되었다.
ㅇ 대구시 동구 "이기세골 폭포" 2016. 4. 7 ~ 4. 8 (4. 6 종일 비, 4. 7 아침에 겜)
ㅇ 이기세폭포 이기세폭포는 대구시 동구 도동에서 평광동으로 가는 길의 우측에 자리한 계곡으로 대암봉과 용암산 사이의 계곡 폭포이다. 우기(비오는 철)가 아닌 한 이틀만에 폭포수의 물은 다 말라버린다고 한다. 폭포를 돌아 본 뒤 폭포의 상단에 잇는 조선조 남명신이 중건한 와룡암을 함께 돌아 볼 수 있다.
ㅇ 이정목 왔던 방향에서 우측은 평광동(당수나무 기점) 2km, 진행방향은 좌향하여 측백나무 숲 2km 방향이다. 이정목에 원형의 색바랜 대구둘레길 표시가 붙어있다. 이기세폭포는 대구둘레길 3코스(평광공산길)의 일부이다.
ㅇ 도성사(道成寺) 장두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도성사는 경상북도 대구시 달성군 공산면 소재지 작은마을에 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한 경산(京山)스님 문도(門徒)의 법현(法顯)스님이 1957년 창건한 절이다. 1979년 대구시의 상수원인 공산댐이 준공 되면서 자연부락은 수몰되었으나, 사찰은 철거반경에서 벗어나 지금까지 건재하여 60여년이 지난 전통사찰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현재 주지스님인 도융스님이 새로 중창불사를 거듭하여 대웅전, 약사전, 산신각, 칠성각, 용왕단을 갖춘 규모있는 사찰로 번창하여 산명수려한 기도영험도량이 되었다. 사찰경내에는 여러 전각 이외에도 500년이 넘은 고목 모과나무와 전설의 말채나무가 서있으며, 등산로를 따라 정상에 이르면 도성사 사유지에서 자생하는 희귀한 소나무 구절송과 전망대가 대구시의 명소가 되어 많은 시민들에게 휠링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불기 2562년(서기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