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방일자 : 2020. 7. 17(금), 날씨 맑음
■ 옻골마을과 관련한 옛 탐방 일지
ㅇ 대암봉-옻골재(옥곡재)-요령봉-능천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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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최씨 옻골마을 - 대암봉 - 옥곡재 - 옻골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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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옻골주차장-대암봉-용암산-대암봉-상동 새바우식당 앞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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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동구 동네귀경 (4.토골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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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둔산동)
문화재 지정 : [대구 옻골마을 옛 담장] 등록문화재 제266호(2006.06.19 지정)
대구시 동구 둔산동에 있는 옻골마을은 마을이 자리잡고 있는 곳의 지형이 남쪽을 제외한 3면이 산으로 둘러쌓여 오목하다고 옻골이라고 불리웠다는 이야기와 주변 산과 들에 옻나무가 많아서 옻골이라고 불리웠다는 두가지 유래를 가지고 있다. '옻칠'자'시내계'자를 쓰는 '칠계'라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후자의 유래가 더 적합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옻골마을은 1616년(광해 8년) 조선 중기의 학자 대암 최동집이 이곳에 들어와 살면서 경주최씨의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다.
출처 : 안내판 내용
보호수 특징
풍수지리를 고려하여 마을중심에 학자를 상징하는 회화나무, 동쪽에는 느티나무를 심어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반대로 좋은 기운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옻골마을에 비보숲을 형성하였다.
비보숲
수령 350여년의 아름드리 나무들은 마을의 터가 주변보다 높아 금호강 지류가 훤히 내다 보이므로 나쁜 기운이 마을로 들어오는것을 경계하고자 심었다고 한다.
▲ 대구 동구청에서 배부한 홍보 팜프렛 스캔 사진(둔산동 옻골마을)이다. 내용에 의하면, 마을 뒷산 정상에는 거북같이 생긴 생구암이 있는데, 풍수지리학상 거북은 물이 필요하다하여 마을 입구 서쪽에 연못을 조성하였으며, 동쪽은 양의 기운을 받기 위하여 숲을 만들지 않았고, 서쪽은 음의 기운을 막기 위하여 연못 주위에 울창한 느티나무 및 소나무 숲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 길 왼쪽 느티나무와 비보숲 앞에서 직진하여 길따라 몇걸음 옮기면 오른쪽에도 수령 350년의 느티나무가 서있고 ~ 안내판에는 둔산동 옻골마을 앞에 숲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마을의 터가 주변보다 높아 금호강 지류들이 훤히 내다보이므로 악기를 막으려 마을앞에 동서방향으로 깊게 병풍처럼 나무를 심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보호수 맞은편 길 건너에는 이정표가 서있다. 지금까지 온 방향은 주차장, 왼쪽은 등산로, 직진은 백불고택 방향이다.
옻골마을 옛 담장은 흙다짐에 돌을 박은 형식인 토석담이 주류를 이루며, 마을 안길의 돌담길이 대부분 직선으로 구성되어 있어 질서 정연한 느낌을 주는것이 특징이다. 전통 가옥들과 어우러져 동선을 만들어 내는 돌담길은 전형적인 반촌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큰 역활을 하고 있으며,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채로우면서도 고즈넉한 분위기를 잘 연출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세대를 이어가며 만들고, 덧붙인 우리민족의 미적감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문화유산이다.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387
대구문화재자료 제41호
최흥원 선생의 처음 號(호)를 딴 數咎堂(수구당),
이 건물은 백불암 최흥원이 제자들과 강학하던 곳이었는데, 후에 자손들의 살림집으로 개조되면서 사랑채와 안채 2동만으로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다.
건립 당시 안채는 기와가 얹혀진 와가였던 반면 사랑채는 초가지붕을 갖추고 있었다. 1918년 두 건물을 고쳐지으면서 안채는 칸수를 늘리고 기둥을 높였으며, 사랑채에는 새로 기와를 올렸다.
안채와 사랑채 모두 중앙에 개방된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다양한 공간이 구성되었는데, 안채에는 2개의 방과 부엌이, 사랑채에는 사랑방. 침방을 두었다.
수구당은 안채와 사랑채만 갖춰진 단순한 구조지만, 조선말기 대구지방의 양반집 살림채 형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출처 : 현지 안내판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옻골로 195-5(둔산동 386)
국가민속문화재 61호
조선 인조때의 학자 대암 최동집이 옻골에 정착하면서 그 이후에 지은 집으로, 대구에 있는 조선시대 주택중 가장 오래되었다. 1630년에 지은 안채와 원래 백불암 최흥원을 추모하기 위해 설립한 동산서원이 1868년 훼철되면서 그 자재를 사용하여 다시 지은 사랑채, 제사를 지내기위해 지어진 보본당과 포사, 그리고 불천위 사당인 벌묘와 가묘 등이 있다. 생활공간의 오른쪽에 있는 보본당은 1753년에 지었으며, 보본당의 동쪽 담장 밖에 위치한 포사에서는 제사음식을 준비하였다고 한다. 보본당 뒷편에 있는 2동의 사당중 벌묘튼 최동집의 위패를, 가묘는 조선 정조때의 학자인 최흥원의 위패와 종손의 4대 봉사위 위패를 모시고 있다. 살림채와 재실. 사당 등 많은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대구 둔산동 경주최씨 종택은 조선시대 양반주택과 그 생활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있다.
출처 : 현지 안내판
이곳 보본당 서쪽방은 우리나라 실학의 효시라 할 수 있는 반계 유형원(柳馨遠) 선생이 저술한 반계수록(磻溪隨錄)을 1770년 백불암 선생께서 영조 임금의 명을 받아 이곳에 교정청을 설치하고 최초의 교정본을 완료하여 나라에 바친 유서깊은 곳이다.
- 현지 안내판 옮겨 적음
아래 사진은 대구 동구청 홍보 팜프렛(옻골마을)을 스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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