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추리(음지마)를 들어서서 임도를 따라 거의 1km가까이 걸어왔을때쯤 앞쪽에 사찰이 보인다.
▲ 태안사, 칠곡군 가산면 응추리 32, 칠곡 태안사에 대한 웹 게시물이 별로 없다.
아까 묵은터를 지나 150미터쯤 가서 곧바로 이곳으로 오는 표석이 있었는데, 둘레길은 응추리 음지마를 거쳐서 이곳으로 빙~ 돌아 우회한것이다.
▲ 사진에 보이는 5개의 탑이 납골탑인데 작년 4월경 태안사에서 군에 설치신고를 했지만 지역 집단민원으로 반려되었다고 한다.
▲ 태안사 후방 50미터쯤에 있는 파란 양철지붕의 송정농장, 농장 앞에 이정목이 보인다.
▲ 좀 더 가까이 ~ 이정목 앞에서 직진길을 버리고 야자매트가 깔린 우측으로 꺾어서 올라간다.
▲ 우측 쉰재 방향으로 올라간다. 근데 후기를 적으면서 보니까 이정목 옆에 안내판이 있다. 이런 ~~~~!! 농장의 개 두마리가 얼마나 짖는지 정신이 없어서 안내판이 있는줄도 몰랐다. 안내판의 구체적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쉰재(방태골재)에 대한 내용이다. 쉰재는 이곳이 아니지만 쉰재에는 군위군에서 세운 둘레길 안내판이 있기 때문에 칠곡군에서는 엉뚱한 이곳에다가 쉰재 안내판을 세워 놓은것으로 보인다.
▲ 우틀해서 돌아 본 모습이다.
▲ 과수원을 둘러싼 녹색 팬스 옆 완만한 오르막 야자매트길을 따른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고, 오늘은 이런 개, 저런 개들 만난다.
▲ 야자매트길은 과수원 팬스가 끝남과 동시에 끝나고 둘레길은 야산 임도길로 이어진다. 야산으로 오르면서 돌아 본 모습이다. 지나 온 태안사, 송정농장, 과수밭이 보인다.
▲ 널찍한 산길이 오른쪽으로 살짝 휘어지는 지점에 둘레길연구노선 표지기가 하나 걸려있고 ~
▲ 그 맞은편 좌측편에 이정목이 걸려있다.
▲ 삼존석굴 방향으로 그리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길을 따른다.
▲ 아직 이곳은 처녀지대, 둘레길 표지기가 거의 없다. 노랑색 무지 표지기와 둘레길연구노선 표지기만 가끔 보일뿐 ~
▲ 힘들지 않은 오르막길을 따르니 앞쪽에 벤취와 안내판이 보인다.
▲ 안내판 직전 우측에는 가지치기 한 나무줄기에 안면있는 김경진님 표지기가 보인다.
▲ 쉰재
쉰재라는 아무런 표식은 없지만 아마 이곳이 쉰재(방태골재) 가 아닌지 ?
쉰재(방태골재)는 칠곡군 가산면 응추리와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의 경계지점으로 이곳 쉰재의 시설은 군위군에서 설치한것으로 보인다.
▲ 쉰재에 서있는 이정목과 안내판
▲ 쉰재에서 남산리회관까지 1.2km
▲ 팔공산 둘레길 8구간 안내판
이곳이 칠곡과 군위 경계지점이다 보니, 시종점이 아닌 이곳에 둘레길 안내판이 서있다. 그런데 구간거리가 9.8km로 공식자료보다 300m 더 길다. (공식자료는 석굴암까지, 군위군 자료는 석굴암 지나서 석굴암휴게소 까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8구간 지도는 응추리 부근이 완전 바꼈기 때문에 안내판의 지도는 현재와 맞지 않다.
▲ 안내판을 지나서 각골로 내려가며 돌아 본 모습이다.
▲ 야자매트가 깔린 널찍한 임도길에 국번이 서있고 ~
▲ 둘레길은 과수밭 옆길로 이어지고 자그만 농막이 보인다.
▲ 거의 개인사물 용도로 쓰이는것으로 보이는데 개인이 설치한것 ? 각골회관에 가서 알게 되었지만 골드봉 애플 체험시설이다.
▲ 전방에 이정목이 보인다. 직진이다.
▲ 그냥 팔공산 둘레길? 차라리 가까운 목표물과 거리를 나타내면 좋을텐데 ~
▲ 직진해서 돌아 본 모습이다.
▲ 시멘트길을 휘어가며 따라간다.
▲ 삼거리에 이정목이 서있고 ~
▲ 요거는 삼거리 우측의 골드봉 이정목이다. 방금 내려 온 길이 체험농장 방향이다.
▲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서 내려간다.
▲ 좌틀해서 돌아 본 삼거리 모습이다.
▲ 조금 가니 아까와 똑같은 농막과 안내판 한개가 서있다.
▲ 각골드림작목반 산들농원이다.
▲ 농막 맞은편에는 골드봉 애플 농원전망대가 안내판과 벤취가 있다.
▲ 안내판 뒤 언덕위에 올라서 본 애플 농원의 모습이다.
▲ 조금 가니 도로가에 이정목이 서있고 ~
▲ 볼수록 어딘가 모르게 이정목이 어색하다.
▲ 각골에 세번째 농막 건물이 보이고 완만한 내리막길을 따라간다.
▲ 돌아서서 본 모양이다.
▲ 좌측에 민가가 몇세대 보이고 이정목이 서있다.
▲ 좌측 민가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있는 이정목과 안내판
▲ 돌아서서 본 모양으로 골드봉 안내판에 의하면 오른쪽으로 100미터쯤 들어가면 사과 체험농장이 있다고 한다.
▲ 드디어 각골 마을이 나타난다.
▲ 산길은 적벽돌 마을회관 뒤에서 끝나고 ~
▲ 건물 전면에는 "각골마을노인회관" 이라는 현판과 "각골마을회관"이라는 현판이 각각 걸려있다.
군위군 부계면 남산1리에 위치한 마을회관이다. 각골(갖골)마을은 현재 30여 가구가 살고있으며 약 700년전 고려중엽때부터 자연부락이 있었으며 부계면에서 제일 갓쪽에 위치하여 枝谷(가지골)이라 전해지고, 부림홍씨(缶林洪氏)가 경기도로부터 남하(南下)하여 이 부락에 제일 먼저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 회관 전면에는 커다란 안내판 한개가 우뚝 서 있는데 ~
▲ 각골의 특산물인 "골드봉 애플"에 대한 안내판이다. 부계면 남산1리(각골)는 송림 숲속의 팔공산 고산지대로 "골드봉애플"의 재배지이다. 26개의 농장과 4개의 체험장이 있고 경상북도와 군위군에서 정책적인 지원을 받아 산책로를 조성하고 사과 체험활동 등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안내판을 유심히 보니까 농막이 있었던 농장은 체험장을 운영하는 곳으로 이해된다.
▲ 골드봉 안내판 뒤에는 둘레길 이정목이 서있다.
▲ 둘레길 이정목이 생각하기 따라 방향이 조금 이상하게 느낄수도 있지만 어쨋든 회관앞에서 우틀해서 올라가면 된다.
▲ 회관 앞에서 우틀하여 올라오며 돌아 본 모습이다. 홍색 기와지붕이 마을회관 건물이다.
▲ 회관을 지나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80여미터쯤 가면 적색지붕 건물 앞, 좌측에 이정목이 보이고 ~
▲ 좀 더 가까이 ~ 이정목 앞에서 포장도로를 벗어나 좌틀해서 이어간다.
▲ 좌틀하면 안쪽에 정자 한개가 있고 ~
▲ 좌틀해서 돌아 본 모습이다.
▲ 좌틀하면 후방 40미터 삼거리에 "향존당" 입구가 보이고 ~
▲ 소나무가 보이는곳으로 시멘트 길을 따라 직진한다.
▲ 소나무를 지나 이정목이 서있는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
▲ 돌아 본 모습이다.
▲ 비에 젖은 숲길을 따라서 ~
▲ 이번에는 삼거리에 이정목이 없고 그냥 국번(국가지점번호)만 있다. 둘레길은 오른쪽길이다.
▲ 좀 더 가까이서 ~ 오른쪽 방향으로 간다.
▲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몇걸음 옮기면 눈길이 가는 전원주택을 만나고 ~ 널찍한 태양광 시설이 눈에 들어온다.
▲ 멋지다, 살고싶다.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
▲ 둘레길 연구노선 표지기가 보이고 깔끔한 건물의 뒷태가 보인다.
▲ 건물 좌후방에서 옆길을 따라가면 ~
▲ 이정목이 서있고 ~
▲ 각골마을회관에서 600미터 이동했고, 삼존석굴은 400미터 남았다. 후방에 보이는 도로는 우/군위(부계)와 좌/칠곡(가산)을 연결하는 지방도이다. 둘레길은 오른쪽으로 꺾어서 이어진다.
▲ 도로건너서 돌아 본 모습이다. 이정목이 서있는 저길 모텔뒤로 빠져 나왔다.
▲ 우틀해서 몇걸음 가면 V모텔 정면 좌측 갈림길에 이정목이 보이고 ~
▲ 이정목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서 진행한다.
▲ 돌아 본 모습이다.
▲ 왼쪽으로 꺾어들면 곧바로 갈림길이 있는데 전방에 보이는 기와 건물 방향으로 오른쪽길을 따라 내려간다.
▲ 우측으로 눈을 돌리니 오늘 아침 일찍 석굴암휴게소에서 윗산당방향으로 걸어갔던 삼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 줌으로 댕기면 ~
▲ 방금 지나 온 V모텔을 돌아보고 ~
▲ 전방에 고택들이 눈에 들어온다.
▲ 좀 더 가까이 ~ 서원건물이다.
▲ 고택 앞에는 큼직한 고목(노거수)과 둘레길 이정목이 서있다.
▲ 고목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가라는 말씀이다.
▲ 오른쪽으로 턴하면 길 좌측에 노거수가 두그루 ~
▲ 길 우측에 한그루가 서있다.
▲ 왕버들 노거수는 수령 400년 이상된 지정 보호수이다.
▲ 담장 안으로 서원풍경을 본다. 숭덕사(崇德祠) 편액이 걸려있다. 양산서원의 부속건물이다.
▲ 숭덕사 앞쪽에 자리한 건물
▲ 양산서원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 노거수 방향으로 돌아 본 모습이다.
▲ 삼거리에 이정목이 서있고 ~
▲ 둘레길 삼존석굴은 삼거리에서 좌틀 ~
▲ 삼거리에서 좌측 방향으로 본 모습이다.
▲ 좌측으로 몇걸음 옮기면 양산서원 표석과 안내판과 그 뒤로 읍청루 건물이 보인다.
▲ 양산서원(陽山書院) 안내판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 296번지에 위치한 이서원은 1786년 정조 10년에 설립된 지방교육기관(地方敎育機關)이며 성현(聖賢)을 존숭(尊崇)하던 곳이다. 이 고을은 부림홍씨(缶林洪氏)의 세거지(世居地)로 고려말의 충신 문하사인 경재 홍노(門下舍人 敬齋 洪魯)선생과 조선조 좌참찬 겸양관 대제학(朝鮮朝 左參贊 兼 兩館 大提學)을 역임한 시호 문광공 허백 홍귀달(諡號 文匡公 虛白 洪貴達) 선생, 이조좌랑(吏曹佐朗)을 역임한 대학자 우암 홍언충(大學者 寓庵 洪彦忠) 선생의 충절(忠節)과 학덕(學德)을 기리기 위해 세 분 선생의 영위(靈位)를 봉안한 묘우(廟宇)를 비롯하여 유생 강학(儒生 講學)을 위한 흥교당(興敎堂)을 중심으로 입나재, 구인재, 읍청루, 반무당(立懦齋, 求仁齋, 揖淸樓, 半畝齋) 등의 부속 건축물로 그 규모가 방대하였으나, 1868년 고종 5년 조정의 서원 철폐령으로 묘우(廟宇)를 비롯한 전 건물이 훼철(毁撤)되는 비운(悲運)을 겪었다. 그 후 1897년 광무원년에 현 규모의 강당을 중건한 후 1989년에 중수를 하고, 강당 후정(後庭)에는 장판각을 지어 경재 선생 실기 목판과 조선조 후기 사학자이며 성리학의 대가인 목재 홍여하(木齋 洪汝河) 선생이 수찬한 휘찬려사(고려사)[彙纂麗史 (高麗史)] 목판(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51호)을 보존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이 서원은 1786년 정조 10년에 설립된 지방사립교육기관이며, 성현을 존중하던 곳이다.
고려말 문신 경재 홍노, 조선 전기 문신 허백 홍귀달, 우암 홍언충 선생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기 위해 영위를 봉안한 묘우(廟宇)와 유생 강학을 위한 홍교당을 중심으로 한 여러채의 방대한 부속건축물이 있었으나 1868년 고종5년 대원군의 서원 철패령으로,전 건물이 훼손된 비운을 겪었고, 그 후 1897년 강당을 중건한 후 1989년에 중수 하였고, 최근 2014년 군위군에서 실질적인 복원을 완료했다고 한다.
▲ 양산서원 읍청루(挹淸樓), 우측에 서있는 한밤마을 인성교육원이라는 표석도 눈에 띈다.
▲ 양산서원 읍청루 앞을 지나 몇걸을 옮기면 웅장한 3층 기와건물로 바로가는 길은 막혀있고 오른쪽으로 해탈교를 건너서 ~
▲ 다리를 건너서 좌틀해서 돌아 본 모습이다.
▲ 3층으로 지어진 웅장한 건물 앞을 지나 석굴암으로 간다. 본 건물은 팔공산전통문화교육원으로 전통문화를 계승할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용 강당으로 문화재청 소속이라 한다.
▲ 교육원 앞으로 개울이 흐르고, 전방 극락교 후방으로 석굴이 있는 학소대 천연절벽의 모습이다. (교육원 앞 다리위에서 본 모습)
▲ 석굴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좌측에는 통제구역 안내판이 서있는데 저쪽으로 가면 범종각과 비구니 스님의 선방인 광명선원 가람이 있다. 석굴은 오른쪽 방향이다. 갈림길 중간에 팔공산석굴암중창공덕사적비가 서있다.
▲ 아무런 편액이 없는 건물 우편에 비석과 안내판이 서있고 ~
▲ 팔공산 석굴암에 대한 안내판이다.
석굴암은 신라 제19대 눌지왕때 아도화상께서 수도전법 하시던 곳으로 화상께서 처음으로 절을 짓고 그후 원효대사께서 절벽동굴에 미타삼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조성 봉안 하였다. 이곳 석굴암은 7세기경 조성으로 경주 석굴암보다 약 1세기 정도 앞선 선행양식으로 토함산 석굴암 조성의 모태가 되었다. 옛날에는 석굴암을 비롯한 이 고을에 8만 9암자가 있었다고 전해오고 있으나 임진왜란 당시 거의 소실되고 망각의 세월속에 묻혀오던 중 1927년경 한밤 마을 최두환씨에 의해 삼존석굴이 다시 발견되고 1962년 정부로부터 국보 109호로 지정되었다. 현존하는 사찰건물은 1985년 12월 조계종 법등스님이 제3대 주지로 부임하여 10년간 중창 대작불사를 발원하여 도량을 일신 하였다. 임신년 삼월 음오일 석굴암 합장
▲ 불상과 안내판이 서있다.
▲ 군위 삼존석굴 석조비로자나불좌상.
▲ 좌상 왼편에 서있는 안내판
군위 삼존석굴 석조비로자나불 좌상은 삼존 석불이 모셔진 이후인 9세기 경에 만들어졌다. 당시에 유행하던 신라 비로자나불상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불상의 변천과 신앙 추이를 확인할 수 있다.
불상은 결가부좌(부처님이 좌선할때 앉는 방법의 하나)를 하고 통견(가사를 입는 방법의 하나로 양 어깨를 모두 덮는 형태)식의 법의를 하고 있다. 양쪽 어깨에 법의가 조금씩 걸쳐저 있어 앞가슴이 넓게 드러나 있다. 두팔을 타고 내려온 옷 주름은 두 무릎에서 다시 물결무늬를 만들고 있다. 수인(불상이나 보살의 서원을 나타내는 손의 모양)은 지권인이며 목에는 삼도가 있다. 두 뺨은 풍만하며 귀가 길게 늘어져 있고 머리는 소라 껍데기처럼 말린 모양이며, 육계(부처의 정수리에 상투처럼 우뚝 솟아 오른 혹과 같은 모양)는 편평하다. 원래는 파괴된 대좌(불상을 안치하는 대)와 함께 지금의 위치에서 약 30미터 북쪽에 있었으나, 1990년 대웅전을 늘려 지으며 대좌와 불단을 새로 만들고 옮겼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58호이다.
▲ 좌상 우편에 서있는 안내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58호
소재지 : 경북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
이 불상은 9세기 후반에 유행하던 비로자나불상으로 광배는 없고 대좌는 일부 파손되어 사찰에서 보존되고 있다. 머리는 나발에, 육계는 평평한 편이며 얼굴은 풍만하고 목에는 삼도를 표시하였으나 목은 짧은 편이다. 수인은 전형적인 비로자나불상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각부의 모습은 양감을 느끼게 한다.
똑같은 불상에 두개의 안내판이 서있다. 사실 먼저 설치된 안내판은 자동으로 철거하는게 보기에도 좋을껀데 ~
▲ 정면에서 본 비로자나불의 모습
▲ 비로자나불좌상 앞을 지나서 석굴 방향에 비로전과 모전석탑의 모습이 보인다.
▲ 말없이, 티없이, 탐욕과 성냄없이,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라 ~
▲ 비로전과 모전석탑, 구 후방에 삼존석굴
▲ 모전석탑과 삼존석굴
모전석탑(模塼石塔)은 돌을 벽돌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탑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분황사 모전석탑이 유명하다. 통일신라때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굴암의 모전석탑은 원래3층이었는데 탑신부에 자생한 소나무가 태풍에 쓰러지면서 탑도 같이 무너졌는데 1949년 당시 창건주가 주선하고 신도들의 힘을 모아 현재 모습데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1호로 지정되어 있다.
▲ 비로전(毘盧殿)
일반적으로 사찰에서 가장 큰 전각을 대웅전(大雄殿)이라고 하지만 비로자나불(모든 부처의 진신[眞身]: 육신이 아닌 진리의 모습)을 모시는 경우에는 ‘비로전’으로 명명한다고 한다. 비로자나란 무한한 빛을 발하여 어둠을 쫓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 모전석탑 후방 절벽에 자리잡은 원형의 석굴이 보인다. 자연석굴이라고 한다.
▲ 모전석탑 앞에서 줌 ~
제2석굴암(군위 삼존석불)
천연절벽의 자연동굴(지상 6M)속에 만들어진 이 석굴사원의 입구는 높이 4.2M, 굴속 길이는 4.3M로 인공적 석굴사원인 경주 석굴암보다 조성연대가 1세기 정도 앞선 것으로 국보 제109호로 지정되어 있다. 석굴안에는 통일신라 초기, 7세기 말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삼존석불이 안치되어 있다. 본존불인 중앙의 여래상은 통일신라 불상의 특징인 장중한 위엄을 갖추고 항마촉지인을 하였으며 통견의 얇은 법의를 입고있다. 좌우의 협시불 보살상은 날씬한 몸매에 목,허리,다리에서 살짝 굽어진 삼곡자세를 하고있다. 세련된 옷주름과 왼쪽 보살상의 정연한 보주형 두광은 통일신라 조각예술의 사실적 솜씨를 잘 보여주고 있다. 본존 여래상의 상현대좌와 보살상의 복련대좌와 부드러운 선각등에는 삼국시대 조각예술의 상징성도 엿볼 수 있다.
▲ 석굴로 이어진 "석불교"다리, 1963년 故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곳을 찾아 당시 돈으로 삼천만원을 시주한 돈으로 계단도 올리고 주변 정비도 했다고 한다. 그후 1985~86년 이후 비로전, 교육원 등이 들어서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 석불교를 건너면 관람안내판을 만나게 된다.
문화재 보존을 위해 석굴 가까이의 관람을 제한한다는 말씀이고, 단 참배는 가능하단다. 눈으로 보는거는 안되고, 절하는거는 되고?
▲ 석굴암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 작은 공터에는 안내판과 표석이 서있다.
▲ 석굴암으로 올라가는 길은 계단길은 철문으로 잠겨있고 ~
▲ 계단 앞에 서있는 안내판은 군위 아미타여래 삼존 석굴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다.
군위 아미타여래 삼존 석굴은 이곳에서 오른쪽 계단을 오르면 보이는 석굴로 아미타여래 삼존불을 모신 곳이다. 이 석굴은 지금으로부터 1500여 년 전 신라 눌지왕때 아도화상께서 수도전법 하시던 곳으로 문무왕때 원효대사가 본존불과 본존불의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신 곳이다. 이 삼존석굴은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경주 토함산 석굴암의 모태가 되었다.
가람은 오랜 세월 폐허로 방치되어 있었는데, 1927년 새롭게 발견되어 삼층 모전석탑을 보수하였고, 1961년에는 초대 주지스님이 부임하면서 법당을 지었다. 삼존석굴은 1962년 황수영 박사의 학술조사를 통해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되었고, 그해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예산을 받아 석불교, 계단, 석난간이 추가로 설치되었다. 1985년부터 3대 법등 주지스님이 다시 절을 지어 지금의 도량이 되었다.
▲ 고려말기 고승인 나옹사님의 시조
언제 들어도 좋은 말씀인데 실천하기란 참 어려운 현실
▲ 석불교를 돌아 나간다.
▲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 나가다가 ~
▲ 교육원 방향으로 직진하지 않고 좌측 다리를 건너간다.
▲ 극락교 다리를 건너 석굴암휴게소를 찾아간다.
▲ 윗쪽에 보이는 다리가 아까 건너서 교육원 방향으로 들어섰던 해탈교이다.
▲ 극락교 다리위에서 석굴의 모습
▲ 석굴암 표석과 둘레길 이정목이 서있는 삼거리로 연결된다. 삼거리에서 좌측행이다.
▲ 삼거리에서 좌틀해서 돌아 본 모습이다.
▲ 삼거리에 서있는 석굴암 표석과 둘레길 안내판
▲ 식당가를 따라간다. 평일이라 식당가도 조용하고 임대를 내놓은 식당도 몇군데 된다.
▲ 석굴 방향으로 지나온 길을 함 돌아보고 ~
▲ 삼존석굴에서 300여미쯤 식당가를 따라 나오면 지방도 삼거리를 만난다.
▲ 삼거리에는 군위삼존석굴(제2석굴암) 안내판이 서있고 ~
▲ 도로 건너에 석굴암휴게소(공용주차장)가 있다. 남산1리 표석과 정자가 보인다.
▲ 좀 더 가까이 ~
▲ 석굴암휴게소(공용주차장) 전경이다. 무료이다.
둘레길 8구간의 종점이자 9구간의 시점이다. 별도의 둘레길 안내판은 보이지 않는것 같다.
아침 일찍 주차해둔 달구지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8구간의 시점인 윗산당마을까지 걸어가는것은 힘든 일이었지만 그 대신에 대중교통의 두세번 대기와 환승없이 귀가가 이렇게 편하다.
▲ 승용차에 베낭을 벗어두고, 트랭글앱도 꺼고, 석굴암 방향 식당가로 다시 되돌아간다.
▲ 동촌 석굴로식당에서 시원한 칼국수 한그릇으로 땀에 젖은 한기를 죽이고, 오후 1시 40분경 자가용으로 석굴암을 출발, 40분만에 귀가 완료 ~
'▣ 팔공산둘레길 > 08구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팔공산 둘레길(8구간) 윗산당마을(산당저수지) => 군위삼존석굴(석굴암 휴게소) (1) (0) | 2020.01.0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