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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영의 보금자리
▣ 대구올레길/대구올레 팔공산 4코스

도심속의 시골풍경, 동구 평광동 (2) End

by 영영(Young Young) 2016. 4. 11.



▲ 집짓골 갈림길
4거리에서 6분쯤 길을 따르면 이정표가 서있는 집짓골 갈림길을 만난다. 이름도 부르기 힘드네




▲ 이정표
(왔는방향은 측백나무숲 4km, 직진하면 평광지 0.2km,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집짓골 0.2km) 직진한다.



▲ 갈림길에서 몇 걸음 가지않아 진행로 오른쪽에 재실(?)을 만난다.



▲ 쪽문이 열려있어 빼꼼히 안을 들여다 보니 "진모재(進慕齋)"라는 현판이 달린체 잡목이 무성하고 폐가상태다.



▲ 평광지 갈림길
재실을 지나 1분이 안되어 크지않은 평광지(못) 삼거리에 닿는다.



▲ 저수지 삼거리에는 이정표와 표지석이 있다.



▲ 삼거리 진행로 왼쪽에는 왕건길 표지석이 있고 ~




▲ 진행로 맞은편(영모제로 가는 방향)에는 이정표가 서있고 오른편에는 올레길 표지판이 서있다.



▲ 대구올레 표지판에 의하면 이곳 평광지 갈림길에서 첨백당까지는 1km, 모영재 까지는 왕복4km(편도2km)이다.





▲ 이정표
평광지 갈림길에서  좌측은 샛터마을 경유하여 효자 강순항 정려각 1.5km,  우측은 신숭겸 영각유허비(모영재) 2.0km, 왔는길은 첨백당 1km이다. 오른쪽으로 간다.



▲ 이정표 20여미터 후방에 모영재 표지석이 있다.



▲ 농민의 땀이 젖은 사과 도적질하지 말것



▲ 쪽박골 갈림길
평광지를 출발 4분뒤 쪽박골 갈림길을 지난다. 그참 골짝이름 별나고 재밋네. 우짜다가 조리 재밋는 이름이 붙었을까?




▲ 원두막1
평광지를 출발 5분뒤 원두막 쉼터를 만난다.




▲ 올레길 표지판을 따른다.



▲ 앞 전주에도 여러 표지판이 붙어있다.
(왕건임도 모영재, 올레길, 왕건길)




▲ 옥송밭골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정겨운 느낌이다.






▲ 평광지를 출발 15분쯤 시온성기도원을 지나고 ~




▲ 대부지골





▲ 원두막2
평광지를 출발 18분쯤 두번째 원두막에 닿는다. 이곳에서는 원두막 우측으로 올라가 한바꾸 빙돌아 모영재를 거쳐 원두막 좌측으로 내려오고자 한다. 모영재로 직코스로 가고자 하면 왼쪽길로 갔다가 되돌아오면 된다.







▲ 올레길 안내판은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가서 왼쪽으로 내려오도록 안내하고 있다. 올레길 안내 방향따라 진행하고자 한다.



▲ 황토색 주택과 산불초소 앞 삼거리에서 초소앞으로 직진한다.



▲ 양지들/작은논골(볼록거울) 삼거리에서 좌회전 한다.



▲ 볼록거울 삼거리에서 우측은 작은논골, 좌측은 양지들 방향으로 표기하고 있다.



▲ 몇걸음 안가서 볼록거울이 서있는 삼거리에서 다시 왼쪽편으로 내려간다.



▲ 방금전 삼거리를 돌아보고 ~




▲ 다음 삼거리에서 파란지붕이 보이는 지점으로 직진





▲ 삼거리에서 직진하여 돌아보고 ~



▲ 새미양지(물골상, 동네갓) ?  전부 순우릿말 같은데 당체 무슨뜻인지?   가방끈이 넘 짧나??



▲ 전주에 올레 표지판이 붙어있는것이 보인다.



▲ 이곳이 모영재라는 말씀이다.  근데 모영재 입구는 어딨어??



▲ 자그만 바위위에 모영재 표지석이 서있다.




▲ 표지석 후방 공터 뒤로 모영재 건물이 있다.



▲ 건물 입구 좌우에 안내판 세개가 서있다.



▲ 모영재에 대한 설명이다.
모영재, 소재지 : 대구시 동구 평광동 108번지, 모영재는 1931년 고려 개국공신인 장절공 신숭겸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것인데 매년 음 9월 9일에는 신씨문중에서 합동으로 향사를 지내오고 있다. 1866년 중수한 기록이 남아 있으며, 방3칸, 대청1칸 건물로 홑처마 맞배지붕을 이었다. 모영재 뒤에 순조 32년(1832) 후손 신정위가 신숭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영각 유허비가 있다.



▲ 모영재 및 신숭겸영각유허비에 대한 안내판이다.
신숭겸영각유허비는 모영재 뒷쪽 70미터 지점에 위치한다.



▲ 모영재는 문이 잠겨져 있어 내부를 볼 수 없었는데 담장 밖에서 건물을 보았는데 꽤 깔끔한 느낌을 받았다. 최근에 보수한듯하다. 방3칸, 대청1칸 건물로 홑처마 맞배지붕을 이었다.



▲ 신숭겸영각유허비
모영재의 왼쪽 뒷쪽으로 70여미터 돌아가면 담장을 두른 신숭겸영각유허비 건물이 보인다.



▲ 유허비로 출입하는 대문이 있고 대문 왼쪽에 유허비 표지석이 있다.



▲ 대구시 지정문화재 제46호 지정 표식비



▲ 유허비를 보관중인 건물도 문을 잠궈놓아 담장밖에서 구경을 하고 ~




▲ 유허비를 돌아보고 내려오는 길에 다시한번 모영재를 살펴보고 ~



▲ 평온한 시골마을의 풍경을 담으며 평광종점 방향으로 향한다. 마을어귀를 비롯해 군데군데 서있는 고목들은 옛 어린시절의 정취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 앞쪽에 제2원두막이 보인다.



▲ 왕건길과 올레길 표식이 군데군데 붙어있다.



▲ 제2원두막을 지나고 ~



▲ 제2원두막을 지나 12분쯤 제1원두막도 지난다.



▲ 사과밭 뒷쪽으로 평광지 못과 샛터마을이 보이고 ~



▲ 평광지(못)와 샛터마을이 좀더 가깝게 보인다.



▲ 평광지 못 옆에 위치한 산불초소 앞을 지나고 ~



▲ 제1원두막을 지나 5분뒤 평광지 갈림길에 닿는다.



▲ 평광지 갈림길을 지나 6분뒤 4거리 마을 4거리에 도착한다.





▲ 4거리에서 평광종점으로 걸어가 부근에 주차시켜 놓은 승용차를 타고 평광동 마을 입구 삼거리에서 샛터마을 방향 200미터 지점에 위치한 효자 강순항 정려각으로 간다.  정려각(旌閭閣) 이란 임금이 충신이나 효자, 열녀들의 뜻을 기리고 모범을 표창하기 위해 그 동네에 세워 기념하는 누각을 말한다. '정려'는 유교가 도입되기 시작한 고려시대부터 있었으나 조선시대 때 가장 많았는데 이는 '忠' '孝'를 근간으로 하는 유교를 국가의 기틀로 잡고자 함 때문에 효자 정려각은 전국 곳곳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대구 동구 도평로107길 9 (평광동)에 자리한 이곳 강순항 정려각은 2000.2.29,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되었다. 




▲ 효자 강순항 정려각 안내판
평광동 마을입구에 서있는 효자 강순항 정려각의 안내판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5호,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평광동 1180-5
이 건물은 효자 강순항(姜順恒 1745 ~ 1830)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이 세웠다고 한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 1칸, 옆면 1칸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때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이다. 정면에 정려 현판이 걸려있다. 현판에는 "효자숭정대부행(孝子崇禎大夫行)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使) 강순항지려숭정기원후(姜順恒之閭崇禎紀元後) 사을미십일월일(四乙未十一月日)" 이라는 기록이 있어 1835년(헌종 1) 11월에 건립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강순항은 어릴때부터 부모에대한 지극한 효행으로 지역민들의 칭찬을 받았다. 그는 병으로 누워 있던 아버지에게 겨울에 참외를 구해주고, 잉어를 잡아 주었다고 전한다. 또 여름의 바쁜 농사철에도 쇠고기를 구해 주는 등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이에 1816년(순조 16) 경상관찰사 이재수(李在秀)의 건의에 따라 효자로서 포상과 함께 통정대부가 된다. 1630년(순조 30)에는 숭정대부행동지중추부사(崇政大夫行同知中樞府事)가 되었으며, 이로써 그의 부인 및 조상 3대(三代)가 여러 관직을 거슬러 받게 되었다.
맞배지붕 : 건물의 모서리에 추녀가 없고 용마루까지 측면 벽이 3각형으로 된 지붕


본래의 碑(비)는 멸실되고 지금의 碑(비)는 1991년 당시 경북대학교 대학원장 徐首生(서수생)이 撰(찬)하여 다시 세운 것이다.




▲ 도동대교를 지나 ~



▲ 대구공항 활주로 옆을 지나 ~



▲  집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