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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영의 보금자리
▣ 대구올레길/대구올레 팔공산 4코스

도심속의 시골풍경, 동구 평광동 (1)

by 영영(Young Young) 2016. 4. 11.

2016. 4.7 ~ 4.8


대구 동구 평광동 마을 돌아보기


단양우씨의 집성촌인 평광동은 대구 사과의 명백을 이어 오고 있는 곳이다. 평광동은 "사랑이" 마을이라고도 불리는데, 왕건과 관련된 일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927년 지묘동 일대에서 벌어졌던 공산전투에서 수세에 몰린 왕건은 불로동과 도동을 거쳐 평광동까지 이르게 되는데. 마을 어귀에서 나무꾼을 만나 주먹밥을 얻어 먹고 힘을 내어 도피한다.  왕건이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나무꾼은 그를 찾아 이곳저곳 누볐으나 결국 찾지 못했고, 그 부근에서 왕을 잃어버렸다 해서 실왕리(失王里)라 부르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사량이. 사랑이 동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전체면적 80%가 임야로 처음에는 넓은 마을이라 하여 광리라 불리어 오다가 일제시 평광이라 개칭하여 8개 자연부락(시랑리, 중시랑리, 샛터, 평리, 섬뜸, 아랫뜸, 큰마을, 당남리)으로 추씨가 먼저 자리를 잡았다고 하나 현재는 단양 우씨가 주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도심속의 시골풍경을 품고있는 평광동은 팔공산 녹색길의 올레4코스로 산책이나 라이딩으로 시골의 정취를 누리기에 좋은곳이다.


 

▲ 평광동 마을입구

마을입구를 좀 멀리서 보면 마을의 당산나무 역활을 하는 고목나무와 마을 표지석이 우뚝 서있다.



▲ 좀더 가까이 간다.



▲ 나무 앞 큰 돌에 평광동이라 새긴 표지석이 있다.



▲ 큰 돌 뒤에도 옛날에 세운 좀더 작은 표석인 평광동 표지석이 있다.



▲ 표지석 옆에는 보호수에 대한 안내판이 서있는데 이 왕버들나무는 수령이 150년 되었단다. 보호수로 지정된 1982년 부터 35년쯤 지났으니 185년쯤 되었네. 오가는 나그네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기 위해 심어졌다고 한다.




▲ 마을 표지석의 뒷면을 보면 12년전인 2004년 4월 2일에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 보호수를 뒷쪽(마을방향에서 입구쪽으로)에서 본 모습



▲ 한쪽편에 서있는 또다른 안내판에는 이 나무를 효자 강순항 나무로 소개하고 있다.



▲ 효자 강순항 나무
가은(稼隱) 강순향(姜順恒)(1745-1830)은 어릴적부터 효행이 지극했다. 어느해 겨울 병상에 누워있던 아버지가 참외를 먹고 싶어하자 엄동설한인데도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당시 참외농사를 많이 짓던 방촌에 가서 남의 집 가축 사료더미를 뒤져 찾아드렸고, 또한 잉어를 먹고 싶어하자 낚시를 놓기 위해 꽁꽁 얼어붙은 얼음을 깨니 잉어가 튀어 올라와 고아드렸으며, 쇠고기를 먹고 싶어하자 해안장에 가서 쇠고기를 사오는 도중, 향산 밑 개울에서 땀을 씻기 위해 사온 고기를 잠시 바위위에 놓아 두었는데 지나가던 독수리가 낚아채 가 풀죽어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국을 끓이고 있었다. 영문을 알아 보았더니 "남편의 귀가가 늦어 마당에 나섰는데 마침 독수리가 집으로 날아와 떨어뜨린 쇠고기를 끓인 것"이라 하여 새조차도 그의 지극한 효심에 감동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순항의 지극한 정성도 아랑곳 없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3년동안 무덤옆에 초막을 짓고 보살피니,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1830년(순조 30) 정려가 내려지고 숭정대부지중추부사(崇政大夫知中樞府事)가 증직되었다.
마을입구 효자각 앞의 이 왕버들나무는 그의 효행을 상징이라도 하듯 우뚝 서 있어 "효자 강순항 나무"라고 하여, 그의 효행을 기려 많은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게 하고자 한다.

▲ 마을로 들어서는 삼거리 부분 다리를 복개하여 덮었는데 그 다리 이름이 봉화교(奉華橋)라 한다.



▲ 세월의 흐름앞에 장사가 있을까?   이빨 썪은거 치료할때 때운다고 하는데,,,



▲ 평광동 마을 입구 삼거리.

평광동 당산나무와 마을 표지석이 서있는 후방 30여미터 지점이 삼거리이다.

좌측은 샛터마을, 우측은 평광종점 방향이다.  좌측길로 들면 효자 강순항 정려각을 만날 수 있고, 우측길로 가면 첨백당을 만날 수 있다.  



▲ 삼거리에는 각종 현수막과 이정표가 서있어 다소 혼란한 느낌마저 준다.



▲ 삼거리 안내판 및 이정표들(평광동 왕건길, 모영재, 시온성기도원)



▲ 평광동 왕건길 안내판(대구올레 팔공산 4코스)
효자 강순항나무 → 강순항 정려비 → 평광지 → 신숭겸장군 영각유허비(반환점) → 첨백당(광복 소나무)



▲ 이곳 삼거리 다리는 아스팔트로 복개되어 분간하기 힘들지만 다리 이름이 봉화교(奉華橋)이다. 마을 표지석 옆에 다리 이름을 알리는 표지석이 같이 서있다. 다리 옆에 이정표가 서있다.



▲ 삼거리에서 왼쪽길은 효자 강순항 정려각이 200미터쯤 떨어져 있다.



▲ 삼거리에서 오른쪽길로 1.4km가면 첨백당이 있다. 측백나무숲에서 이곳 삼거리까지의 거리는 2.5km




▲ 삼거리에서 효자 강순항 나무와 마을 표지석(평광동)이 서있는 방향의 모습이다.



▲ 삼거리에서 왼쪽 강순항 정려각 방향으로 접어들어서 되돌아 본 모습이다.




▲ 평광동 농협(평광종점)
평광동 입구 삼거리에서 오른쪽길로 들어서 마을안쪽으로 1km쯤(15분)을 걸어가면 평광동 농협(동촌 농협)을 만나는데 농협왼쪽 공터가 평광종점 팔공1번 시내버스 주차장이다.



▲ 도로변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종점 뒷쪽에는 평광농산물간이집하장이 있다.



▲ 평광종점에서 70미터쯤 가면 큰 느티나무 한그루가 서있는 작은 사거리를 만나는데 그 옆에는 이곳 평광을 운행하는 팔공1번의 버스시간표가 있다.



▲ 2012년 현재의 버스시간표라서 지금과 맞는지 모르지만 ~~
거의 1시간 간격으로 배차되어 하루 17회(오전7, 오후 10)를 운행한다.



▲ 그 뒷쪽으로 팔공산 녹색길 안내판과 이정표가 서있다.



▲ 녹색길 안내판
녹색길이 뭔데?  궁금하면 => http://blog.daum.net/smirinae/6041381



▲ 4거리 녹색길 안내판 옆에 서있는 이정표
4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첨백당 0.3km, 왼쪽으로 꺾어 올라가면 평광지(모영재) 0.6km, 평광지와 첨백당 사이의 중간길로 직진하면 당남리 1.6km, 도동 측백나무숲까지는 3.5km)
오른쪽길로 가서 첨백당을 돌아보고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 평광지를 거쳐  모영재로 가고자 한다. 



▲ 4거리 평광지 방향의 모습으로 왕건길 표지석과 광복소나무, 시온성 기도원, 모영재, 시량리 방향, 왕건임도 등 각종 표지판과 이정표가 혼란스럽게 서있다.



▲ 광복소나무는 첨백당 앞에 위치한다. 대구올레 표지판에는 첨백당까지의 거리를 500미터라고 표기하고 있어서 이정표와는 200미터의 차이가 있다.



▲ 왕건길 표지석
왕건길은 매여종점과 백안삼거리로 이어진다.



▲ 4거리 평광지 방향 각종 안내판
미타암, 시온성기도원, 모영재, 시랑리 방향, 왕건길 발자취길, 왕건임도 등이 설치되거나 달려있다.




▲ 4거리 당남리 방향에는 비석이 일자로 나란히 도열해 있다.




▲ 단양우씨평광유허비라는 비석이 제일 앞을 차지하고 있다.



▲ 4거리에서 작은 다리를 건너 고가옥이 보이는 첨백당 방향으로 비스듬한 오르막길을 따른다.



▲ 첫번째 만나는 집 대문에는 향양문 이라는 현판이 붙어있고 문은 잠겨있다.



▲ 대문 오른쪽에는 와룡정(臥龍亭)을 안내하고 있다.
와룡정은 조선후기 정자로 단양 우씨(丹陽 禹氏) 선조인 용재공(龍濟公) 우명재를 봉향하기 위해 고종 16년(18790) 건립 되었다. 원래의 위치는 현재의 위치 건너편 산 속 후미진 곳이였다. 후대에 와서 정자가 너무 외딴곳에 떨어져 있어 관리하기가 불편하여 1966년 현 위치로 이건 하였는데 와룡정이라 하게 된 연유는 동네 어귀 냇가에 와룡지처(臥龍之處)가 있다고 하여 골안 이름과 아울러 와룡정이라 했으며 후대 서당으로 활용했다.



▲ 바로 다음 집 대문에는 광거문이라는 현판이 붙어있고 역시 문은 잠겨있다.



▲ 대문 오른쪽에는 경희정(景喜亭)을 안내하고 있다.
경희정 재실은 단양 우씨 평광동 세거조(世居祖)인 우익신(遇翊臣)의 10세 손인 만희재 영석, 11세 손인 단봉 규환.12세 손인 운제 효봉을 위하여 삼대의 추원정(追遠亭)으로 후손들이 1970년에 건립한 것이다.
만희재는 경사에 박섭하고 위선사에 유성하였으며 후진 교육에도 힘써 수통장대부가 되었다. 한편 단봉은 관위원으로 식견에 풍단하고 시문에 능통하여 경향사우가 출중하였고 문집을 남기고 있다. 운재는 품성이 강명하고 규도가 엄정하며 덕망이 높았으니 기호동지와 같이 낙육재에 거쳐 하였으며 1913 - 1914년에 독립자금 사건으로 일경에 피체 되기도 하였다.



▲ 와룡정과 경희정 이후 특별한 유적물 없이 전봇대의 왕건길 표시를 따라 마을안쪽으로 이어간다.



▲ 3분쯤 올라가면 바위가 있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이정표가 있다.



▲ 왼쪽길은 매여종점 방향, 첨백단은 오른쪽으로 가란다.



▲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간다.



▲ 삼거리에서 체1분이 안걸려 첨백단 앞에 닿는다. 왼쪽길은 대구지역 최고수령 사과나무가 있는 재바우농원 방향이고 오른쪽길에 첨백단이 있다. 오른쪽길 전주에 현판이 하나 걸려있다.



▲ 첨백단 입구 전주에 "대구지역 최고수령 사과나무"를 알리는 이정표가 달려있다.



▲ 좌측길에는 재바우 농원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있고 ~



▲ 입구에서 본 첨백단의 전경이다. 결론적으로 첨백단이 마을끝에 위치한 셈이다.



▲ 첨백당 전면 좌편에 이곳이 평광동 왕건길(대구 올레 팔공산 4코스)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있고 ~



▲ 건물 전면 중앙에는 광복 소나무가 자랑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 광복소나무의 유래를 적고 있다.
1910년 8월 29일 일본이 우리의 주권과 영토를 강탈한 후, 근 35년 동안 우리민족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1945년 8월 15일, 나라를 되찾은 날, 단양우씨 첨백다아 문중에서 우하정 선생 주관으로 문중원들과 뜻을 모아 광복의 기쁨을 기리고, 망국의 원한을 잊지 않고자 기념식수를 하기로 하고 백발산에 가서 소나무 세 그루를 옮겨와 첨백당 앞에 심고, 옆에 기념 표지석을 세웠다. 광복 당시 기념물로서 유일한 소나무를 통해 광복의 의미를 길이 전하고 애국심을 고취하고자 유래비를 세운다.  2014년 8월 15일,  단양우씨 첨백당 문중,  광복소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일동



▲ 광복소나무에 대한 오래된 기념비 같은데 글쎄요. 봐도 모르겠다.





▲ 소나무 뒷쪽으로 첨백당 건물이 있다.



▲ 첨백당 앞 안내판
첨백당은 효성이 지극했던 우효중(禹孝重)과 절의를 지켰던 조선시대 말기의 선비 우명식(禹命植)을 기리기 위하여 1896년(고종 33) 후손이 세운 재실이다. 대구시 문화재 자료 13호로 지정된 이 건물은 한일자형 구조이다. 건물은 동향이며 중앙 5칸은 홑처마 맞배지붕을 달고, 좌우 협칸은 박공면에 내림지붕을 달았다. 양쪽에 있는 작은 툇마루가 멋스럽고 실용적이다. 첨백당이라는 당호(堂號)는 우명식의 묘가 있는 ‘백밭골(栢田谷)을 우러러 보는 집’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 대문으로 들어서는 현판은 흘림 글씨체라 당체 알수가....
알고보니 선조께서 가신 길을 그대로 따른다는 "이유문(履有門)"이라 한다.



▲ 대문은 열려있고  관계자는 보이지 않고 인기척이 없었다.



▲ 일자형 구조 건물의 양끝에 난간을 돌린 툇마루를 달아내어 정자의 형식을 겸한 형식이 독특하다.




▲ 마당에는 마사토흙이 쌓여있고 자그만 중장비가 있는것으로 보아 보수중임을 알 수 있다.



▲ 첨백당 입구로 나와 왼쪽 재바우농장(평광동 971) 방향으로 잠시 가본다. 대구 최고령 홍옥 사과나무가 있다나?



▲ 재바우농원 팻말을 지나 몇걸음 옮기면 바위 뒷쪽 전주에 뭔가 걸려있다.



▲ 이곳이 백발골이란다. 참 골짝 이름도 많심다.  백발골이란 명칭은 첨백단 안내판에 있었다.



▲ 아무래도 전주에서 50여미터 안쪽에 자리한 파란지붕(판넬건물)이 재바우농원이지 싶은데 입구는 닫겨있다. 하는 수 없이 판넬건물 오른쪽으로 난 시멘트길을 잠시 따르다가 ~~



▲ 인근 알맹이 없는 껍데기 사과나무만 사진에 담고 ~




▲ 첨백당을 좌우에서 호위하는듯한 느티나무 두 그루는 이 건축물과 같이 심었다니(1896년) 지금으로부터 130년 이상이 되었다.



▲ 첨백당을 둘러보고 다시 왔던곳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나름 살만한 집인데도 빈집이 눈에 띈다.



▲ 대나무 군락과 장작, 잔가지  땔감 구하는게 전쟁이었지. 힘들었지만 돌이켜 보면 추억이다.



▲ 대구사과의 명맥을 유지하며 대부분 사과농사를 짓고 있는 평광동 주민들




▲ 대구올레(평광동 왕건길) 이정표, 팔공산4코스는 신숭겸장군유허비(모영재)에서 첨백당까지이다.



▲ 도심에서 보기 힘든 촌집, 정감스럽지 않나?



▲ 요런 촌집을 보면 불과 2년전, 영덕 원룸생활이 생각난다. 내 한몸 원룸 방 한칸도 넓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 다시 평광종점 부근 느티나무 4거리로 돌아왔다.



▲ 4거리에서 평광지 방향으로 줄지어 있는 각종 표지판들을 다시한번 훑어본다.  오늘 본인은 올레길의 반환점인 모영재까지 갔다가 빠꾸할 예정이다.  평광지 방향은 곧 시량리 방향이요, 왕건임도이다. 시온성기도원을 지나 모영재로 이어진다.




▲ 여기도 빈집이네, 에구 떠나는 사람만 있고 되돌아 오는 사람은 없는가?


~~~~~~~~~~~~(2)부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