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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영의 보금자리
▣ 나의사랑/신서 동네

대구시 동구 "이기세골 폭포"

by 영영(Young Young) 2016. 4. 11.

2016. 4. 7 ~ 4. 8   (4. 6  종일 비,   4. 7 아침에 겜)


ㅇ 위치 : 대구시 동구 도동에서 평광동으로 가는 길의 우측에 자리한 계곡으로 대암봉과 용암산 사이의 계곡 폭포이다.
(계곡의 들머리는 도동 산9번지이고, 계곡의 중심부는 평광동 산 188번지이다.)


ㅇ 특징 : 골이 300~400여미터로 아주 짧고 얕아서 계곡물은 손을 담그기 힘들 정도의 탁수이고 산사태가 난것처럼 크고 작은 청석들이 널부리하게 흩어져 있어 다소 혼란한 느낌을 준다. 반면에 근교에서 보기힘든 기암괴석과 암반공터 등이 있어 힘들이지 않고 남녀노소 부담없이 다녀 올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도심 가까이서 심산 계곡의 맛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폭포를 돌아본뒤 폭포의 상단에 있는 조선조 남명신이 중건한 와룡암을 함께 돌아볼 수 있다.





▲ 도동 측백수림에서 평광동 방향으로 2km쯤 가면,  도로가 좌측으로 비스듬히 굽어지는 지점에 주서로 된 낙석주의 입간판이 서있다.



▲ 빨간글씨로 된 낙석주의 입간판 뒤, 길 가장자리 전주옆에 이정표 한개가 서있고 오른쪽 계곡 쪽에는 자그만 다리 하나가 놓여있다.



▲ 이정표에는 이기세골 폭포는 도로 오른쪽으로  다리 건너 0.3km지점에 있다고 표기되어 있다.



▲ 이기세골 폭포의 들머리인 이 지점이 도동(측백나무숲)과 평광동의 딱 중간지점이다.



▲ 도로에서 보면 우측 계곡 산불초소 옆으로 이어지는 이기세골과 초소 오른쪽 이기세폭포로 올라가는 길이 뚜렷이 보인다.



▲ 많은 비는 아닌지만 어제 하루종일 봄비가 내려 나름의 자그만 폭포를 보여준다.



▲ 이기세 폭포로 들어가는 작은 다리. 폭우가 내리면 잠겨 버리는 잠수교가 아닐까?  이기세골은 이곳에서 불로천과 합수한다.



▲ 자그만 다리에 다리이름을 붙인것도 그렇다지만 그 이름을 또 누가 일부러 지와뿐네



▲ 다리위에서 평광동 방향의 모습이다.



▲ 다리위에서 도동 방향의 모습. 벚꽃과 개나리가 만발했다.




▲ 다리를 건너면서 도로방향으로 뒤돌아 보고 ~~



▲ 초소방향으로 비스듬히 올라간다.



▲ 다리를 건너 30여미터 올라가면 이기세골 산불초소가 있다.



▲ 초소 앞에서 방금 올라온 다리 입구를 다시 돌아보고 ~



▲ 전방을 보면 자그만 폭포가 하나 보인다.




▲ 초소 앞을 지나 40미터쯤 가면 방금 보았던 폭포의 상단부로 이어진 개울을 건넌다.



▲ 개울을 건너기전 근접 모습이다.



▲ 개울을 건너서 돌아보면 초소가 저만치에 있고 그 뒤로는 도동과 평광동을 연결하는 도로가 보인다.



▲ 얕은 개울을 건너면 30여미터 후방 계곡 좌측에 크고작은 돌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 요렇게 정성스럽게 쌓은 탑은 두개이고 ~~



▲ 거의 전부가 그냥 돌 몇개를 포개어 놓은 정도이다.




▲ 이렇게 자연석을 그대로 입석처럼 세워 놓기도 하고 ~




▲ 돌탑 20여미터 후방에 바위1개가 지혼자서 버티고 있다.



▲ 바위의 바로 오른쪽에는 또 하나의 폭포가 있다. 이기세골에서 두번째의 폭포라고 부를만 하다.




▲ 방금전 바위의 왼쪽으로 길을 따라 20여미터 올라가면 바위의 상단부에 다다른다.



▲ 바위위에 올라와 방금 지나온 돌탑들을 내려보고 ~



▲ 바위 밑에서 봤던 폭포도 바위위에서 다시 본다.



▲ 폭포의 물은 꾸정물로 하절기 알탕도 어렵게 보인다.  이곳 계곡물이 이렇게 탁한 이유는 아마도 청석 지질 및 계곡이 얕은것에서 기인하는게 아닐까



▲ 바위를 지나 이어지는 계곡의 모습이고 ~



▲ 계곡의 왼쪽으로는 널찍한 길이 ~



▲ 계곡의 왼쪽으로 널찍한 길을 150여미터쯤 따라가면 계곡의 끝쯤에 우람한 절벽이 나타나고 ~



▲ 절벽의 좌전방에 가지런히 축대를 쌓은 위에 소나무 서너그루가 보인다.



▲ 좌는 축대, 우는 절벽의 모습이다.



▲ 축대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서 ~



▲ 돌아보면 특별한 것 없는 공터이다.



▲ 축대공터를 지나 30여미터 후방에 절벽이 버티고 서있는데 ~




▲ 절벽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가는 널찍한 길은 와룡암으로 연결된 길이고 ~



▲ 절벽앞에서 오른쪽 오솔길이 폭포로 가는 길이다.



▲ 절벽 앞 삼거리에서 오른쪽 폭포쪽으로 80여미터쯤 들어와서 입구쪽을 돌아보고 ~



▲ 두세걸음 전진하면 요렇게 폭포 옆에 지성터(?)를 만나고 ~




▲ 바로 옆이 이기세골 폭포이다.  ㄷ자형의 형태를 띤 폭포의 높이는 15미터쯤 될까?  입이 떡 벌어질 폭포는 아니지만 도심 가까운 얕은 계곡에 이만한 폭포가 있다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나중에 산불감시원 한테 들은 말씀인데 이렇게 물이 있어도 우기(비오는 철)가 아닌 한 이틀만에 폭포수의 물은 다 말라버린다고 한다.  그만큼 계곡이 얕다는 말씀같다.













▲ 이제 절벽 앞 삼거리로 돌아가서 와룡암을 다녀 오기로 한다.



▲ 절벽 앞 삼거리로 돌아왔다. 왼쪽으로 내려가면 계곡 초입지점이고 직진한다.



▲ 삼거리에서 널찍한 직진길로 20~30여미터 가지않아 요렇게 나무더미로 길을 막아 놓았다. 직진하면 어디로 연결되는지 모르지만 곧바로 오른쪽 희미한 오솔길 오르막으로 올라가야 한다.



▲ 오르막을 따라 20여미터 올라오면 석문을 만난다.




▲ 석문을 통과해서 돌아본 모양으로 왼쪽편 돌에 글자를 새겨 놓았다.



▲ 그늘이 드리워서 영 ~~~ 글자가 ~~~



▲ 노출을 달리해서 다시 함,,,,  "南氏 臥龍庵 石門(남씨 와룡암 석문)" 이라고 파 놓았다. 암자의 주인이 영양남씨다.



▲ 석문을 들어서면 평평한 암반 공터이다. 여름철 돗자리 깔고 쉴만한 장소 같은데 잠들어 몸부림 잘못치면 절벽아래 황천길로 ~~



▲ 암반 공터주면 아담한 소나무에는 부처손 무단채취 금지한다고 ~~



▲ 이곳 암반 공터는 아래에서 보았던 절벽의 상단부분이다. 생각하면 아찔..



▲ 암반 공터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도동대교(대구포항고속도로)와 그 뒤쪽 문암산의 모습이 보인다.



▲ 공터를 뒤돌아 보고 ~



▲ 공터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이기세골 폭포의 상단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상 캄캄한 부분이 폭포의 절벽 부분이다.



▲ 석문을 통과해서 150여미터 가면 계곡의 왼쪽에 기와집이 보인다. 와룡암이다. 



▲ 철근으로 만든 대문은 잠겨 있다.



▲ 할 수 없이 철조망 울타리 외곽으로 건물 뒷쪽을 돌아본다.




▲ 스레트, 기와 각 1동 단아한 모습이다.
이곳 와룡암에 대해서는 크게 알려진것이 없으나 웹상에서 얻은 자료(사단법인 대구문화유산에서 암자내에 설치한 안내판)에 의하면 와룡암의 소개를 이렇게 하고 있다.
와룡암(臥龍巖)은 해안현 입석리에 세거해온 영양인 남명신(南命新.1968~1772)이 영조원년(1725)에 초창하고 영조 27년(1751)에 중건한 건물이다. 남명신은 뛰어난 효자로 생존시나 돌아가신 뒤에도 극진한 효성을 다하여 재상 이성중과 어사 한광조로부터 "출천지효(出天之孝)"라 하여 포상을 받기도 하였다. 와룡암은 서실(書室) 및 재실(齋室)로 사용되었는데 주로 서실은 강습의 공간이었으며 재실은 사방에서 온 문사(文士)들이 기거하는 공간이었다. 이 건물은 중건된 후 남명신의 증손 형일(衡馹)등에 의해 중수되었다.





▲ 이제 계곡아래로 내려가 "도심속의 시골마을" 평광동을 구경하러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