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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영의 보금자리
▣ 신돌석/화화(火話)

영덕군 지품면 눌곡리

by 영영(Young Young) 2014. 2. 16.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눌곡리()

 

 

 

지품면[ Jipum-myeon , 知品面 ]

경상북도 영덕군 중서부에 있는 면. 

동쪽은 축산면(丑山面)·영덕읍, 남쪽은 달산면(達山面)·강구면(江口面), 서쪽은 청송군 청송읍·부동면(府東面), 북쪽은 영해면(寧海面) 및 영양군 석보면(石保面)과 접한다.

서쪽에는 태백산맥이 남북으로 뻗어 있어서 지세가 험하며, 주위에 국사당산(國祠堂山)·삿갓봉·돌시산·대수산(大遂山)·명동산(明童山:812m) 등과 그 지맥이 뻗어 있다. 대수산 등에서 발원한 작은 하천이 동류하여 오십천(五十川)과 합류하여 동해로 흘러가는데 하천 연안의 골짜기 사이에는 좁은 충적지가 발달하여 경지로 이용된다. 경지율이 8%로 낮으며 지형관계로 밭의 비율이 높다. 잎담배·마늘·약초 등의 특용작물과 과수재배가 성하며 양잠도 이루어진다. 안동∼영덕 국도가 지난다.

문화재로는 경주김씨눌곡종택(慶州金氏訥谷宗宅:경북민속자료 119), 돈수재(遯峀齋:경북문화재자료 316), 용운사(龍雲寺), 사자갑사지(獅子岬寺址) 등이 있다. [

 

 

 

눌곡리[ Nulgok-ri ]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에 있는 리(里)이다.
동으로는 시루봉, 남은 퉁소암, 북은 마고산 등이 가로놓여 있다. 자연마을로는 주사동(做士洞), 배나무쟁이, 인지(仁旨) 등이 있다. 배나무쟁이는 마을의 제일 첫 어귀에 있는 마을인데 옛날에는 이 마을에 배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해서 배나무쟁이라 불렀다. 눌곡리 동명의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본래 황곡(黃谷)이라 했다는 말이 있는데 황(黃)은 누르실 또는 누리실이라고도 하며, 이 누르실의 한자 표기로 눌곡(訥谷)이라 한 것으로 추측된다.

 

 

 

출처 : 위 사진과 내용은 네이버 "두산동아" 자료임

아래 사진은 노트2 본인 실사 사진임

 

 ▲ 밖안마을 눌곡리 회관 : 안 마을 주민들이 새로이 이주하면서 신설된 마을회관이라고 한다.

 

  ▲ 안마을 눌곡리

 

 

  ▲ 안마을 눌곡리 전경

 

 

 ▲ 눌곡리 경로당

 

 

 

경북민속자료 제119호-경주김씨 눌곡 종택

 

소재지 : 경북 영덕군 지품면 눌곡리 366

시대 : 조선시대           분류 : 가옥

 

1999년 8월 9일 경상북도민속자료 제119호로 지정되었다. 김인식이 소유하고 있다. 경주김씨 아천공파(我泉公派)의 종택으로,

신라 경순왕의 셋째아들인 영분공(永芬公)의 32대손 김주린(金周麟)이 영덕에 와 있는 동안 그의 아들 김언수(金彦壽)가 1600년대에 건립하였다.

독립된 사랑채와 ‘ㅁ’자형 정침(正寢:거처하는 곳이 아니라 주로 일을 보는 몸채의 방)으로 이루어졌다. 정침은 정면 4칸, 측면 4칸의 골기와집으로, 지형에 맞게 전면에 돌을 쌓고 산을 등지며 동남향으로 앉혔다.

정침의 안채는 오른쪽으로부터 정지 1칸, 내실 1칸, 대청 2칸, 상방 1칸의 순으로 배치되었으며, 정지 왼쪽 벽과 안방 쪽의 모퉁이에는 코쿨을 놓고 부엌에 붙은 내실에는 정지 쪽 상부에 감실을 설치하였다.

정침 전면에는 오른쪽으로부터 아랫방 1칸, 외양간 1칸, 대문간 1칸, 안사랑방 1칸, 그리고 안사랑방 왼쪽에 뒷방을 덧들여 전면에만 5칸을 배치하였다.

 대청은 마룻바닥에 우물청판을 깔았으며, 후면에 쌍여닫이 판장문을 달고 문 하부에는 머름중방을 설치하여 머름동자와 머름착고를 끼웠다.

안사랑방은 대청과 높이를 맞추기 위해 경사진 지형 위에 높은 기단석을 쌓아 그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방주를 세웠다.

기둥은 모두 덤벙주초 위에 방주를 사용하여 납도리로 꾸몄으며 상부가구는 3량가로 구성하였다.

대청 상부는 용마루대를 지지하기 위해 내실과 상방 쪽 벽 상부에 동자대공을 세웠고, 대들보 위에 각대공을 놓아 마루도리를 받게 하였다.

정침 앞에 따로 자리잡은 사랑채는 정면 2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와가로 온돌방과 사랑마루가 각 2칸의 통칸으로 꾸며졌다.

막돌기단 위의 덤벙주초에 방주를 세웠으며, 납도리와 대들보를 장식 없이 5량가구로 결구하였다.

상부가구는 대들보 위에 각대공으로 종도리를 받치고 마루 상부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꾸몄다.

주변에 모선재(慕先齋)와 반송정(盤松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