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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영의 보금자리
▣ 경산의 산/비오재-갈고개-잉어재

비오재-대천고개-갈고개-대왕산-잉어재 (2)

by 영영(Young Young) 2009. 6. 21.

 

ㅇ 일      시 :  2009. 6. 16(화) 말고, 푹푹 찜

ㅇ 산행코스 :  비오재 = 대천고개 = 갈고개 = 대왕산 = 목고개(벗고개) =  잉어재

                   

오늘은 위 구간중 갈고개에서 잉어재 까지를 마감한다. 

 

▼ 갈고개에서 도로를 건너 “갈지리 영농회 농산물 간이집하장”조립식 판넬 건물의 오른쪽으로 삼성마을 시멘트길을 따라 동네로 들어선다.

 ▼ 갈지리 영농회 농산물 집하장 건물과 건물 오른쪽으로 삼성리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 농산물집하장에서 약 150여미터 들어가 전원주택앞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서 약 100미터 정도 간다. 고목나무 앞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하면 오른쪽에 묘가 보이고 곧이어 왼쪽으로 황색담장(전원주택)이 나타난다.

 ▼ 담장의 맞은편(진행로의 오른쪽)에는 멋진 노송과 묘지가 있다.

 ▼ 전원주택을 지나 임도 삼거리에서는 시멘트 포장임도를 버리고 왼쪽 비포장 임도를 잠시 따라 올라간다.

 ▼ 임도삼거리에서 산길로 접어들어 100여미터 진행하면 철사줄로 막은 과수원 입구에  파란건물이 나타난다.

 ▼ 파란집을 지나 과수밭을 통과하여 노송과 느티나무 뒤쪽으로 산길로 접어든다.

 ▼ 완만한 오르막길과 산의 왼쪽사면을 따라가면 노거수(나이가 많고 커다란 나무)가 나타난다. (금천면 김전리에서 오름길과 합류지점이다)

 ▼ 노거수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가파른 길을 오르면 준희팻말과 삼각점이 있는 448봉이다. 잡초와 잡목이 무성한 448봉 모습.

 ▼ 448봉의 등로 오른쪽 한켠에 준희팻말이 있다.

 ▼ 이전에 대왕산을 처음으로 찾았을때, 준희팻말이 잡목속에 가려서 하산길에 겨우 찾은적이 있다. 그때도 삼각점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 준희팻말의 인근에 삼각점이 있다.

 ▼ 표시를 제대로 알 수 없는 448봉의 삼각점

 ▼ 448봉은 언제 보아도 잡목으로 무성하다.

 ▼ 448봉에서 완만한 봉우리에 오르면 작은 바위가 서너개 있는 457봉이다.

 ▼ 457봉을 지나 또하나의 봉우리를 만나면 등로 양쪽에 나즈막한 바위가 있는 491봉이다.

 ▼ 다시 급경사의 오름길과 완만한 오름길이 끝나면 사조봉(571봉)이다.

 ▼ 누군가 조그만 돌위에 사조봉이라고 검은 매직으로 표시해 놓아서 그렇게 불리었지만 지금은 거의다 지워지고 “사”자만 어렴푸시 보인다.

 ▼ 사조봉에서 한참 능선을 걷다가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면 대왕산 정상(606.0봉)이다. 대왕산 정상은 잡목과 잡초로 무성하고 조망은 없다. 정상석과 죽창의거전적비가 있다.

 

 ▼ 정상에는 한개의 봉수대가 있고 산 허리에는 원효대사가 창건한 일곱개의 옛 절터가 있으며, 일제때 남산면민의 항일 죽창의거 활동의 중심지였으며, 대왕산 아래에 분표한 여섯개의 자연부락의 이름을 유추해볼때 작은 부족국가가 존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 경산시에서 2000년도에 세운 정상석에는 대왕산의 높이가 잘못 표기되어 있다. 641.2m는 다음 봉우리인 삼면봉의 높이를 말하는것이고 현재 대왕산의 높이는 606.0m이다.

 ▼ 대왕산 정상석과 죽창의거 전적비

 ▼ 항일대왕산 죽창의거 공적비

<항일대왕산 죽창의거 공적비>는 일제말기인 1944년 7월 경북 경산시 남산면 대왕산에서 안창률 등 29인이 나라를 빼앗긴 설움과 일제의 압정을 성토하고 징용을 반대할 목적으로 모여 돌과 죽창으로 일제 총칼에 맞서 항거한 것을 기념하여 건립한 공적비이다.
1944년 7월 15일 밤 자인면 원방보에서 안창률, 김명돌, 성상용, 송수답 등 29인이 모여 돌이 많고 산세가 험한 대왕산에 진지를 구축하고 신축 중에 있는 남산주재소를 습격하는 것을 일차 목표로 하고 준비에 착수하였다. 7월 25일 밤 죽창으로 전원 무장하고 대왕산에 집결하여 26일 아침 안병률의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7월 26일 무장한 일경 30명을 돌과 죽창으로 맞서 물리쳤고, 8월 5일에도 일경 30명을 격퇴하였으나 보급이 끊기고 식량이 바닥나 8월 10일에서 13일 사이에 전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8.15광복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으나 안창률, 김경화 선생은 옥중 순국하였다.

 ▼ 항일 대왕산 죽창의거 전적비

 ▼ 지맥길은 대왕산 정상석 뒤쪽으로 이어진다.

 ▼ 잡초가 무성한 대왕산 정상

 ▼ 대왕산을 지나면서 이제 본격적으로 잡목이 시작된다. 잡목이 가장 심해지는 지점은 목고개를 지나서 520봉으로 오르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 대왕산을 지나서 이어지는 잡목길

 ▼ 잡목길

 ▼ 대왕산을 지나 한참동안 능선을 따른다.

 ▼ 한참동안 능선을 따르다가 잠시 전방이 훤해지고 봉우리에 올라서니 598봉이고 오른쪽으로 꺾어 진행한다.

 ▼ 598봉에서 골로 내렸다가 완만히 오른다.

 ▼ 601봉을 왼쪽으로 비켜간다.

 ▼ 다시 골로 내렸다가 올라서면 633봉이다.

 ▼ 633봉에서 조금더 진행하면 641.2봉 정상에 올라선다.

 ▼ 등로의 왼쪽 작은 바위앞에“동곡412/1982 재설”이란 삼각점이 박혔고, 준희 선배님의 하얀 팻말도 바위 뒤 오른쪽에 걸려 있었다.

 

 ▼ 이곳은 대왕산 보다도 더 높은 봉이며, 경산시 남산면, 청도군 금천면 매전면 경계지점인 삼면봉이다. 조그만 봉우리의 가운데에 조그만 바위하나가 놓여있고, 이곳에서 좌측 방향은 돈치재, 학일산,통내산으로, 우측 방향은 비슬기맥 마루금으로 진행하는 분기점이다

 

 ▼ 641.2봉에서 오른쪽(=북서쪽)으로 내려 평탄한 길과 골을 지나 완만하게 올라서 다줄기 소나무가 있는 봉우리(583~591봉)에 오른다.

 ▼ 봉우리에서 오른쪽 아래로 내려가면 등로의 좌측 아래로 마당마을이 내려 보인다.

 ▼ 매전면 마당마을

 ▼ 송림길과 잡목길을 헤치고 나가면 ~

 ▼ 잡목길

 ▼ 오솔길이 수레길로 잠시 변했다가 ~

 ▼ 가파른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면 ~

 ▼ 등로의 오른쪽 아래로 시멘트 포장도가 보이는 목고개에 도착한다.

 ▼ 목고개 부근에서 내려보인 마을인데, 진행방향의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기억이 아삼무사...등로의 오른쪽 남산면 사림리 마을 방향이 아닐까?

 ▼ 목고개

목고개는 청도 관하사람들이 자인시장을 보기위해 넘었던 고개로 남산면 사림리와 매전면 금천리 마당마을을 연결한다. 안부에 내려서면 왼편 청도 매전면 마당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있고, 우측으로는 시멘트 임도(상대온천 위에서 시작, 대왕산 밑에까지 연결)가 2-3m로 가까이 있고, 그쪽에 많은 리본이 달려있다.

 ▼ 목고개의 오른쪽으로 뻗어있는 임도

 ▼ 안부에서 임도로 내려서지 않고 직진하여 마루금을 이어간다. 520봉을 향한 출발이다. 지금부터는 그야말로 잡목천지이다.

 ▼ 등로 좌측으로 경주최씨 묘 1기를 지나고 ~

 ▼ 역시 등로 좌측에 절충장군의 묘를 지난다. 한때는 정삼품 자리에 버금가는 대단한 자리였을 터인데 어딘가 모르게 초라하다. 절충장군의 묘가 맞는지 ?

 ▼ 오래되어서 흐릿한 비석이 절충장군의 묘앞에 서있다.

 ▼ 바위군을 지나서 ~

 ▼ 두릅나무 군락지 급경사를 잠시 치고 올라서면 520봉 정상이다. 준희팻말이 달린 나무에 도착하기 직전 오른쪽에 전망바위가 있다.

 

 ▼ 새로 정비된 준희팻말.

520미터봉에는 얼마전 까지만 해도 준희팻말의 511.29m를 최중교님이 2007년경 매직으로  520m로 정정 기록하여 놓았는데, 지금은 520m로 수정한 새로운 팻말을 걸어 놓았다. 산을 사랑하는 마음이 참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 나같이 홀로 산행을 즐기는 사람한테는 더 없이 고마운 표지기다. 520봉은 지도에는 511봉으로 표기되었지만 내 GPS로 확인한바 520m로 나온다.

 ▼ 교체되기전 준희팻말, 최근에 교체된 모양이다.

 

 

 ▼ 520봉의 준희팻말 앞에 서있는 전망바위

 ▼ 520봉의 정면 좌측으로 내려보이는 마을

 

 ▼ 520봉에서 준희팻말의 옆으로 잡목길을 몇걸음 내려오면 ~

 ▼ 조그만 바위 몇개가 있고, 이곳에 서도 전망이 좋다.

 ▼ 뾰족바위가 서있는 493봉을 지나고 ~

 ▼ 넝쿨지대를 지나서 ~

 ▼ 470봉에 오르니 잡목으로 갑자기 진행로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겨우 오른쪽으로 꺾어 길을 찾아 등로를 따라간다.

 

 ▼ 회나무

 ▼ 등로 왼쪽의 비석없는 무덤을 지나 송림 잡목길을 따라 내려간다.

 

 ▼ 등로의 오른쪽으로 목고개 이후 처음으로 임도가 보이는데 무성한 잡목으로 잠시만에 시야에서 사라진다. 얼마뒤 등로와 5미터 근접한 임도가 다시 나타난다. 목고개 이후 전반적으로 등로에 잡목이 많아서 진행에 애로사항이 많았지만 반팔 착용으로 산행을 나섰기에 잡목에 거슬려 손과 팔, 얼굴에 풀독이 잔뜩 올라있었다. 키 높이 이상인 잡목속을 더 이상 헤쳐나가기는 무리여서 임도로 빠질 수밖에 없었다.

 ▼ 오솔길에서 임도로 빠져 나간다.

 ▼ 임도로 빠져서 150여미터 진행하면 다시 왼쪽 마루금(산길)으로 붙는길이 있다.
  (마루금을 따르지 않고 임도길로 계속 가는 바람에 마루금에 접속할 지점을 놓치고 486.1봉은 우회하게 된다)

 

* 여기에서 잠시 다른 분의 산행기를 참고로 적어본다.

ㅇ 임도와 등로가 아주 가까운 지점을 지나면 우측 아래로 사림지가 내려보이고, 무덤1기를 지나며 올라서고 마지막 5분정도 가파르게 올라서면 삼각점(동곡 411,1982재설)이 있는 486.1봉 정상이다.
ㅇ 486.1봉 정상에서 북쪽(오른쪽)은 삼성산으로 이어지고 직진으로도 길이 있고 리본도 보이지만, 지맥은 왼편으로 팍 꺾이어 서쪽 송림사이로 내려서야 한다. 내려서면 나무들이 자라난 무덤2기를 지나며 뚝 떨어지다가 금방 가시잡목 사이로 올라서면 송림아래 평평한 좁은 공터의 봉우리다. 우측 아래로 남천면의 이어지, 신방소류지, 송백지가 차례로 펼쳐지고,,
ㅇ 북서쪽으로 내려서면 3분후 임도의 종점인 공터가 나타나난다.

 

 ▼ 임도길을 따라 올라간다.

 ▼ 임도 오른쪽 송백기점 7.0Km 표지석을 지나면 ~

 ▼ 임도의 우측 아래로 남산면 사림지가 내려 보인다.

 ▼ 남산면 사림지(못)

 ▼ 임도 오르막을 따르면 전면에 철탑 상단이 보이고 ~

 ▼ 임도변 송백기점 6.5Km 표지석을 지나서 ~ 

 ▼ 임도의 오르막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면 ~

 ▼ 좌후의 산위에 철탑2기가 서있고 정면 150여미터 후방에 철탑1기가 서있는 임도삼거리가 나타난다.

 ▼ 임도 삼거리에서 전면에 보이는 철탑, 전면 철탑 방향으로 계속 임도를 따라가다가 다시 임도삼거리(조곡재)에서 오른쪽으로 오르면 삼성산으로 가게된다.

 ▼ 철탑 임도삼거리에서 좌로 꺾어 진행한다.

 ▼ 좌로 꺾으면 2시 방향에 잉어재 도로가 내려보이고 ~

 ▼ 잉어재에서 남천면 신방리 내려오는 길

 ▼ 임도삼거리를 지나 공터 도착전에 있는 표지석

 ▼ 임도길을 따라가면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 공터가 있다.  (마루금을 따라 486.1봉을 거쳐 지나온 길과 합류지점임)

 ▼ 공터에서 잉어재로 내려가는 길의 오른쪽으로는 남천면의 잉어지, 신방소류지, 송백지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 시멘트 배수로옆 비탈길을 따라 내려가면 ~

 ▼ 도로변 잉어재 절개지와 도로표지판이 보이고 ~

 

 

 

 ▼ 옹벽이 끝나는 지점(도로 표지판에서 청도방향)으로 잉어재에 내려선다.  

ㅇ 잉어재(일명 이어재, 이현재)
 잉어재는 경산 남천면 신방리와 청도 매전면 금천리를 연결하는 925번 지방도로 과거에는 비포장이었으나 현재는 포장도로이며(잉어재로 내려서면서 보았을때 왼쪽이 청도, 오른쪽이 경산이다), 잉어재의 유래는 인근에 있는 잉어지 못이름을 따서 부른 것으로 보인다.

 ▼ 오른쪽(오르막쪽) 경산방향으로 몇걸음 걸어가서 도로를 건너면 ~

 ▼ 도로표지판에서 경산쪽으로 지우친 지점에 선의산으로 가는 초입부가 있다.

 ▼ 선의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흰 마닐라 로프와 시그널이 길 안내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