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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임영웅, '조용필의 길' 걷나

by 영영(Young Young) 2023. 4. 11.

출처 :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에디터    2023.04.11

 

 

 

한때 록생록사(록에 죽고 록에 산다)를 인생 철학으로 여기던 한 로커가 트로트로 전향했다. "왜 바꿨느냐"는 물음에, "먹고 살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가수도 생존의 위협에 노출되면 장르를 바꿀 수밖에 없다. 80년대 록의 시대를 지나 90년대를 맞이하면서 록에서 트로트로 전향하며 충격을 던진 가수들이 적지 않았다. 헤비메탈의 상징인 그룹 백두산의 유현상도 그랬다. 물론 생계의 목적으로 그런 건 아닐지라도 록과 트로트는 마치 교환할 수 없는 고유의 가치로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암묵적 시선과 평가가 존재했던 게 사실이다.

아무래도 트로트는 생계 해결에 가장 손쉽고 빠른 장르라는 인식이 컸다. 한 트로트 여가수는 "록은 밴드 멤버들까지 (몫을) 일일이 나누고 악기 장비도 모두 구비해서 다녀야 하지만, 트로트는 행사장에 사과박스 하나면 충분하다"며 "시장 5일장부터 크고 작은 행사까지 전국에서 가장 많이 모여있는 무대가 트로트"라고 했다. 아무리 고급진 재즈라도, 아무리 강렬한 록이라도 트로트만큼 가창 하나만 가지고 이해하기 쉽고 구슬프고 공감할 수 있는 장르가 없단 얘기다.

장윤정(1999년 강변가요제 대상)처럼 다른 장르를 하다 트로트로 빠지는 경우는 있으나, 트로트를 하다가 다른 장르로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만큼 트로트의 매력은 부르는 창법뿐만 아니라 활동 영역, 개런티 등 다방면에서 장점이 많은 장르다.

여기에 몇 년 전부터 방영된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전 국민의 호응과 인기를 얻으면서 트로트는 '최고의 장르'로 부상했다. 다른 장르의 오디션 프로그램보다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가수들은 특히 각종 행사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행사료도 높고 불러주는 곳도 많다. 트로트 가수 할 맛 난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행사료만 놓고 보면, 현재 상위 10권에는 모두 '미스트롯'이나 '미스터트롯' 방송 출신 가수들이 휩쓸고 있다. 15년 전만 해도 장윤정이 2500만원대로 행사비 최고 가수로 평가받았으나, 지금 트로트계의 행사비 '톱10'은 김호중(4000만원대), 영탁(3500만원대), 송가인(3000만원대), 이찬원(2800만원대), 정동원(2500만원대) 등으로 가격도 오르고 가수도 늘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미스터트롯'에서 1위를 차지하고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는 임영웅이 빠졌다는 사실이다. 트로트 가수가 행사를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처럼 여겨지는 가요계에서 임영웅의 불참은 희귀한 사례로 평가받을 만하다. 일각에선 임영웅이 나서기만 하면 '부르는 게 값'이라는 얘기가 나돈다. 심지어 '행사비=최소 1억원'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임영웅은 그러나 행사를 '뛰지' 않는다. 임영웅이 그간 했던 말과 행동, 소속사의 멘트, 주변인들의 말 등을 종합하면 그는 어떤 특정한 누군가를 위해 움직이는 걸 체질적으로 싫어한다. 특별한 조직(또는 사람), 있는 자의 특권 같은 것에 기대지 않고 보편적인 정서, 보통 사람, 자신보다 낮고 보잘 것 없는 이에게 손을 내미는 일을 마음 편히 생각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런 팬과 함께하며 즐기는 일을 가장 '건강하고 행복하게'(건행) 여기는 데 익숙하다.

임영웅의 시작은 그렇지 않았으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1위를 하고 정규 음반을 발매한 뒤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지금까지 보여준 행보를 보면 가왕 조용필이 걸어온 길과 비슷한 행보를 보이는 흔적이 읽힌다.

 

 

 



조용필도 어떤 특정한 누군가를 위한 행사를 한 적이 없다. 그 강박이 얼마나 심한지, 심지어 콘서트가 끝나면 바로 차를 타고 떠난다. 대기실에서 자신을 찾아오는 어떤 특별한 누구와도 만나지 않기 위해서다. 조용필도, 임영웅도 자신의 무대는 공적 영역이나 국가적 행사, 더 낮은 이들을 돌보는 데 쓰는 걸 기꺼이 허락하면서도 개인의 이익이나 타인의 권력을 위한 목적에선 타협하지 않는다.

톱스타다운 기부의 면모도 비슷하다. 단순히 눈에 띄는 금액으로 화제 몰이하는 기부가 아닌, 꾸준하면서 의미있는 기부라는 점에서 그 정신이 옹골차다. 조용필은 고인이 된 아내 안진현씨의 유산 24억원을 심장병 어린이 치료를 위해 내놓은 것을 비롯해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100억원에 가까운 금액을 기부했다. 그의 회사 YPC프로덕션은 주주배당금 대신 기부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어릴 때부터 기부를 생활해온 임영웅은 방송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뒤부터 소외계층 아동, 신불피해 복구 등을 위해 수억원이라는 거금을 꾸준히 기부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비슷한 점은 뮤지션에 대한 태도다. 임영웅은 자신의 첫 정규 음반 'IM HERO'(아임 히어로)를 준비하면서 트로트를 잘 쓰는 작곡가 대신 뮤지션으로서 도약할 기반을 만들어 줄 아티스트와 협력하는 데 집중했다. 타이틀곡 '다시 만날 수 있을까'를 뮤지션 이적에게 맡기고 '천재 뮤지션'으로 평가받는 정재일에게 스트링 편곡을 부탁했으며 포크의 아름다운 선율을 잘 다듬는 송봉주와 신세대 록감각의 그룹 '딕펑스' 김현우와 음악적 교감을 나누며 장르의 한계를 일찌감치 벗어났다.

조용필이 록과 트로트의 감각을 동시에 배어 문 '뽕짝 록'이라는 장르로 시작해 지금은 아티스트 조용필로 수식되는 것처럼, 임영웅 역시 첫 음반부터 "나는 트로트에 갇힌 가수가 아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며 아티스트로서의 발판을 마련했다. 첫 정규 음반 선곡 순서를 정하는 데도 몇 개월이 걸렸다는 임영웅의 얘기를 들으니, 19집 음반 녹음을 마치고도 그게 못마땅해 다시 외국에 나가 몇 개월간 수정의 열정을 퍼부은 조용필의 경험담이 언뜻 스쳤다.

 

 

 



임영웅의 '뮤지션의 태도'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증거품들이 '방송과의 거리두기'다.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데뷔한 덕분에 방송 출연도 적지 않았으나, 지금의 임영웅은 예능에 안달하고 방송의 주인공이 되려고 안간힘을 쓰는 '관종'으로 비치지 않는다. 되레 예능 1시간 방영분을 찍기 위해 반나절을 소비해야 하는 시간보다 음반 작업이나 콘서트 준비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쪽을 선호하는 행동을 자주 보여왔다.

조용필은 80년대 후반 정점을 찍을 때 방송과 결별했다. 조용필은 "그 당시 내가 준비해 간 음악을 방송 편집에 맞게 자르는 걸 보고 떠날 결심을 했다"며 "90년대 초 방송을 떠나 라이브 콘서트를 처음 준비하고 지금까지 왔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임영웅이 그렇다고 당장 방송을 그만두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의 얼굴엔 음악에 대한 갈증, 콘서트에서 팬들과 자주 만나고 싶은 욕심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 자신이 직접 사인한 축구 대표팀 유니폼 경매를 결국 취소한 것도 자신이 벌인 일에 팬들이 과열 경쟁으로 비판받는 것 자체를 경계한 측면이 적지 않다. 결국 임영웅은 오랫동안 사랑받는 보편적 가수의 이미지를 꿈꾸고 실현하고 싶을 것이다.

그가 반세기 넘어서도 제2의 조용필이 될지는 단언할 수 없다. 다만 그 시작이, 그 싹수가 그 흔적을 타고 온다면 누가 막을 수 있을까.
현빈처럼 생긴 준수한 외모에 조용필 같은 '국민 가수' 정서에 이입된 태도, 임영웅의 다음 행보가 벌써 기다려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