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이달 16일, 봉무공원 숲길 산책에 나섰다가 산책로에서 새로 발견한 표지기와 자그만 안내판을 보고 귀가후에 웹상에서 확인해보니 '향산칠색'이라는 탐방코스가 대구시 동구청에 의해 새로 조성되었다. 길을 새로 내거나 또는 기존의 길을 정비하거나 이정목 등을 새로 세우는 과정이 없이 코스만 지정하고 군데군데 간이 방향표시와 표지기만이 설치되었기에 탐방로를 조성했다는 표현보다는 지정(구성)했다는 표현이 어울릴듯 하다.
ㅇ 우리나라 천년기념물 제1호인 '도동 측백나무숲' 군락을 이루고 있는곳이 대구시 동구 도동에 소재한 '향산'이고 이곳 마을이름이 '향산마을'이다. 향산마을은 대구시 도심재생사업 대상으로 선정되어 2015년부터 60여억원의 예산을 들여 도동문화마을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측백나무숲 앞 도로의 확장 및 인도 신설, 커뮤니티센터 신축, 마을 환경정비, 관광 브랜드와 프로그램 운영 등을 추진하고 있는데, '향산칠색(香山七色)'은 도동문화마을을 중심으로 관광 및 탐방코스를 7개로 나누어 돌아 볼 수 있도록 휠링코스를 구성한 것이다. 7개의 코스는 모두 도동측백나무숲에서 출발하여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순환형 코스이며 일부 코스는 독립적이 아니라 혼재형으로 예를 들어 단산지R은 4, 5, 7코스에 공유되어 있다.
ㅇ 향산칠색 3코스는 도동측백나무숲을 출발하여 반시계방향으로 용암산과 이기세폭포를 돌아오는 7.3km, 4시간 20분 소요되는 구간이다. (도동문화마을 관광안내맵 기준) 본인은 이기세폭포에서 용암산으로 연결되는 길이 가장 궁금했기에 이기세폭포 입구에서 출발하여 시계방향으로 백발고개와 용안산을 거쳐 출발점인 이기세폭포로 한바꾸를 돌았다.
ㅇ 이기세폭포와 용암산을 포함하는 3코스의 대부분은 답사경험이 있지만, 이기세폭포 지나 와룡암에서 백발고개를 지나 용암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이번에 처음 답사하게 되었는데, 향산칠색 표지기가 아주 촘촘하게 달려있어 길 찾는데는 어려움이 전혀없고 향산칠색 표지기 외에도 오래된 무지 표지기가 많이 있는것으로 보아 예전부터 탐방로로 검토되던 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이기세 폭포 지나 와룡암에서 용암산으로 올라가는 요령은 우측으로 곧바로 치고 올라갈수도 있지만 향산칠색 코스는 줄곧 이기세골(계곡)을 따라 가다가 계곡이 끝날즈음에 능선으로 올라 붙으면서 우측으로 휘어져 용암산(옥천)에서 대암봉 방향으로 약 300미터 지점과 연결된다.
ㅇ 이기세폭포 이기세폭포는 대구시 동구 도동에서 평광동으로 가는 길의 우측에 자리한 계곡으로 대암봉과 용암산 사이의 계곡 폭포이다. 우기(비오는 철)가 아닌 한 이틀만에 폭포수의 물은 다 말라버린다고 한다. 폭포를 돌아 본 뒤 폭포의 상단에 잇는 조선조 남명신이 중건한 와룡암을 함께 돌아 볼 수 있다.
ㅇ 이정목 지금까지 온 방향은 측백나무 숲 2km, 직진하면 평광동(당수나무 기점) 2km, 이정목에 원형의 색바랜 대구둘레길 표시가 붙어있다. 이기세폭포는 대구둘레길 3코스(평광공산길)의 일부이다.
ㅇ 와룡암(臥龍巖)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평광동 1525번지 와룡암은 해안현 입석리에 세거해온 영양인 남명신(南命新.1968~1772)이 영조원년(1725)에 초창하고 영조 27년(1751)에 중건한 건물이다. 남명신은 뛰어난 효자로 생존시나 돌아가신 뒤에도 극진한 효성을 다하여 재상 이성중과 어사 한광조로부터 "출천지효(出天之孝)"라 하여 포상을 받기도 하였다. 와룡암은 서실(書室) 및 재실(齋室)로 사용되었는데 주로 서실은 강습의 공간이었으며 재실은 사방에서 온 문사(文士)들이 기거하는 공간이었다. 이 건물은 중건된 후 남명신의 증손 형일(衡馹)등에 의해 중수되었다.
옥천 玉泉 이 우물은 용암산성(대구광역시 기념물 제5호)안에 위치해 있으며 산 정상(해발 382m)에서 남동쪽으로 약 150m 떨어진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임진왜란(1592~1598)시 백성들과 의병들이 왜군에 맞서 이 산성에 들어와 항쟁하였으나 전세가 불리해 장기간 고립되자 그 난국을 극복하기 위하여 우물을 판것이 유례이다. "옥천(玉泉)"이란 명칭은 항상 옥같이 맑고 찬 물이 솟아난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며 돌을 쌓아놓은 모습이 자연부락의 우물을 연상케 한다.
ㅇ 용암산성(龍岩山城)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5호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산 35-36 이 성은 옛날 대구-경주의 간선도로 옆에 위치한 해발 378m의 용암산 정상부를 돌아가면서 머리띠를 매듯이 흙과 돌을 섞어서 성벽을 만든 테뫼식 산성이다. 이 성의 둘레는 1km 정도이며, 높이는 성 밖에서 10m이다. 출입문은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동쪽 성 밖에는 우물로 전하는 흔적이 남아있다. 산성이 있는 남서쪽의 해발 320m의 능선에는 삼국시대의 고분 20여기가 위치하고 있어, 이 산성도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ㅇ 용암산성 누리길 용암산성 누리길은 팔공산의 풍경과 지역의 향토문화자원을 통해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감상하고 도시의 역사, 문화자원을 체험하고 탐방할 수 있는 길입니다. 봉무공원(단산지)과 연계하여 레포츠, 자연생태학습, 여가와 휴식을 할 수 있으며, 용암산. 대암봉. 요령봉. 능천산 등의 산길을 따라 걸으며 자연속에서 명상과 산책을 즐기고, 우리 지역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또한 누리길 주변에는 고분군,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 용암산성, 옥천, 골마을 등 다양한 지역의 문화재가 산재하고 있어 자연 경관과 동시에 역사, 문화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대구광역시 동구에서는 우리 지역의 문화자원을 홍보하고, 시민의 건강과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 이 길을 만들고 안내문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ㅇ 용암산성(龍岩山城)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5호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산 35-36 이 성은 옛날 대구-경주의 간선도로 옆에 위치한 해발 378m의 용암산 정상부를 돌아가면서 머리띠를 매듯이 흙과 돌을 섞어서 성벽을 만든 테뫼식 산성이다. 이 성의 둘레는 1km 정도이며, 높이는 성 밖에서 10m이다. 출입문은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동쪽 성 밖에는 우물로 전하는 흔적이 남아있다. 산성이 있는 남서쪽의 해발 320m의 능선에는 삼국시대의 고분 20여기가 위치하고 있어, 이 산성도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관음사 觀音寺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도동 672 낙가산에 자리잡은 이 절은 670년(문무왕 10)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고려 광종때에 심지왕사가 중창하였으며, 1933년 해인대사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이 절은 이 고장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관음전에 모신 관음보살은 큰 영험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ㅇ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 천연기념물 제1호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도동 산 180 불로천의 상류지역에 해발 160m되는 향산이 있다. 이 향산의 북쪽에는 불로천이 흐르면서 높이 100m, 길이 600m에 이르는 절벽에 측백이 자생하고 있다. 측백은 우리나라와 중국을 원산지로 하는 항상 푸른 '상록바늘잎나무'로 떨기나무 또는 큰 키 나무로 자란다. 이곳의 측백수림은 측백나무가 자생할 수 있는 남쪽 한계를 나타내므로 식물 지리학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때문에 1962년 천연기념물 1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자연생은 대부분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낭떠러지에 남아있다. 이 곳에 자생하고 있는 측백도 처음 지정될 때는 나이 100년, 밑둘레 20cm, 높이 10m나 되는 수천 그루가 모여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높이 5~6m정도 되는 100여 그루의 측백이 잡목과 섞여있다. 또한 숲 아래의 바위 틈에는 일본학자가 여기서 처음 발견하여 새로운 변종으로 이름 붙인 '구와꼬리풀'이 자라고 있다.
구로정(九老亭) 소재지 : 대구광역시 동구 도평로 248(도동) 향산 북쪽 절벽 중턱에 19세기 초엽 인근에 살았던 아홉 노인의 시회(詩會)를 기리는 후손들이 중국 白樂天(백락천)의 香山九老會(향산구로회)를 본떠 1933년 3월에 이 산 낭떠러지 중턱 10여 평 남짓한 터에 3樑 맞배집을 짓고 九老亭(구로정)이라 하여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한다.
▲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 쳔연기념물 제1호 대구광역시 도동 산 180 이곳은 조선초기의 대학자 서거정(1420~1488) 선생이 말한 대구의 경치가 좋은 열 곳 중 제6경에 해당하는 북벽향림(北壁香林)이다. 옛날에는 절벽 앞 개울물이 깊고 푸르렀으며 숲도 훨씬 울창하여 시인들과 풍류객들이 자주 찾았다고 한다. 대구에서 영천, 경주로 가는 길목이어서 길손들의 쉼터가 되기도 했다. 천연기념물을 처음 선정할 당시에 측백나무가 집단으로 자라는 곳으로는 가장 남쪽이며, 옛날에는 묘지의 둘레나무로 심는 등 측백나무 쓰임의 귀중함을 감안하여 제1호로 지정(1962)되었다. 현재 1,200여 그루의 측백나무가 굴참나무, 느티나무, 굴피나무, 물푸레나무 등과 같이 섞여 자란다. 이 중 일부는 나이가 수백년에 이르나 대체로 키 4~5m, 줄기지름 10cm 전후에 불과하다. 흙 한 점 제대로 없는 바위틈에서 긴 세월을 간신히 지키고 있는 이 측백나무 숲은 지키고 가꾸어야 할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