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부고속도로 교량 아래를 지나고 ~
▼ 경부고속도로 교각
▼ 교량 아래를 지나서 약 30여미터 가면 작은 보 하나가 있다.
▼ 하천에 흙이 많이 퇴적되어 실질적인 보의 구실은 하지 못하고 있다.
▼ 보행로의 좌측에는 과수원, 오른쪽은 율하천이다.
▼ 지나온 길은 되돌아 보고 ~
▼ 오래되어 녹이 많이 슨 과수원 파이프 철대문
▼ 과수원이 끝나고 보행로 좌측에 전답이 이어지는데 무척 오랫만에 보는 석축이 정겹게 느껴진다.
▼ 보행로 오른쪽의 하천. 물이 거의 말라있어 흐르지 않고 고여 있는 형편이다.
▼ 앞쪽에 양림교와 그 오른쪽에 멋진 소나무가 보인다.
▼ 양림교 앞에 이르러 "성불사" 마당앞으로 직진하면 측백수림으로 직행할 수 있고 ~ 양림교를 건너서 왼쪽으로 꺾어 측백수림으로 갈수도 있지만, "제현사" "백원서원" 등을 돌아보기 위해 왼쪽 향산길로 간다.
▼ 양림교의 성불사, 검은색 현판이 붙은곳으로 가면 측백수림으로 가는 최단코스이다.
▼ 양림교
▼ 좌로 꺾어서 아스팔트길을 몇십미터 가다가 ~
▼ 왼쪽 시멘트 길을 따라 마을길로 들어간다.
▼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농가앞에 텃밭이 보이고 ~
▼ 농가를 지나고 몇걸음 더가면 "제현사" 가 나타난다. (제현사의 정식 입구가 아닌 뒷쪽 요사체 방향으로 들어가게 된다)
▼ 제현사의 풍경과 단층모습
"제현사"는 2007년 지역의 뜻있는 불자들에 의해 "시비동산"을 모토로 새로이 건립한 사찰이다. (다음은 2007.11.21일자, 영남일보의 기사이다)
팔공산 자락인 대구시 동구 도동 향산마을에 아담한 시비동산이 생겼다. 천연기념물 제1호인 도동측백수림 조금 못미쳐 반대편 산자락에 위치한 제현사(주지 우록 보각 스님) 경내에 들어선 도동시비동산은 모두 28편의 시가 담긴 시비가 세워져 있다.
공자의 '禮란 무엇인가', 정몽주 '단심가', 신사임당 '어머님이 그리워', 이순신 '한산도가' 등과 한용운 '알 수 없어요', 조지훈 '승무', 박목월 '나그네', 서정주 '국화옆에서', 김춘수 '꽃', 박화목 '과수원길', 고은 '그 꽃', 김황희 '푸른정신' 등의 시가 담겨 있다. 또 지역 시인으로는 김규태 '고욤나무 그늘에서', 김지한 '온누리', 김종상 '어머니', 권기호 '不二', 이일기 '그리움', 도광의 '이런 낭패', 김하나 '체조를 하다가', 문인수 '달북', 이재윤 '대조', 문무학'비비추에 관한 명상' 등이 있다. 동화사 비로암주인 해월 스님의 '烘雲 托月法(홍운 탁월법)' 시비도 있다.
이 도동시비동산은 제현사를 창건하면서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심신수양의 공간이 되도록 꾸며보자는 불자들의 노력에 의해 탄생했다. 이차운 기원정사신도회 고문, 권영도 제현사 신도회장을 비롯해 권대자 영남아동문학회 부회장과 제현사 신도들이 마음을 모아 시비를 건립했다. 시비 조성작업에는 김하나 영남아동문학회장, 문무학 대구문인협회장, 문인수 대구시인협회장, 김황희 한국환경노래보급협회 명예회장 등이 도움을 줬다. 제현사는 앞으로 자연, 환경, 생태 등 자연의 이치를 소중히 여기는 테마동산을 조성해 시민들의 편안한 휴식공간으로 꾸며나갈 계획이다. 제현사는 21일 준공법회와 시비 제막식을 가졌다.
▼ 제현사 마당에 서있는 각종 시비들
▼ 8각정의 대적광전
▼ 경주에 있는 다보탑의 형상을 닮았다.
▼ 제현사 입구 모습
▼ 제현사(시비동산)을 돌아보고 대장군.여장군이 서있는 제현사 입구로 빠져나와 ~
▼ 도로로 나가는 길에 한창 배추 수확중인 농민을 만난다. 올해 배추값이 헐타고 하던데 ~ 이곳 산지에서는 밭데기(포기당 약 1100원 정도)로 나간다고 한다.
▼ 비닐하우스 앞에서 돌아본 제현사의 모습
▼ 비닐하우스를 지나면 석물공장이 있고 아스팔트 도로를 만난다. 전주에 "제현사, 시비동산" 표지판이 붙어있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서 진행한다.
▼ 왼쪽으로 꺾어서 아스팔트길을 따라 올라가면 삼거리 전주에 "향산1길" 표지판이 붙어있고 오른쪽으로 꺾어간다.
▼ 오른쪽으로 꺾어서 50여미터 가면 오른쪽으로 기와지붕이 보인다. 기와지붕이 보이는것이 "백원서원"이다.
▼ 약 150여미터 뒷쪽에 백원서원이 있다. 백원서원의 앞쪽 돌탑
▼ 서원 뒷쪽에는 "미당"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데 수공예품 작업을 하는 곳이 아닐까,,
▼ 백원서원의 입구인 "유인문" 닫겨져 있어 안은 들여다 볼 수 없었다.
본래 이 터에 건물이 세워진 것은 1600년경이라 한다. 효자 徐時立(서시립, 1578∼1665)의 호는 全歸(전귀), 자는 立之(입지)이다 고려 版圖判書(판도판서) 達城君(달성군) 晋(진)의 后(후)로 壬亂時(임란시) 조부모와 부모를 모시고 八公山(팔공산) 三省庵(삼성암)으로 피난하였는데 그의 극진한 孝行(효행)이 온 고을에 자자하였다. 때마침 정승 五峰(오봉) 李好閔(이호민)이 王子(왕자) 胎室使(태실사)로 南行(남행)하였다가 이 사실을 듣고 達城(달성) 孝子(효자) 徐時立(서시립) 其孝人稱類厥慈今日偶看三省錄(기효인칭류궐자금일우간삼성록) 有慈如比有兒宜(유자여유아의)라 詩(시)를 읊고 堂號(당호)를 全歸(전귀)라 지어주니 부모에게서 실로 온전히 나서 온전히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가 죽자 조정에서 旌閭(정여)가 내려오고 1692년(肅宗, 숙종 18) 전귀당 곁에 百源書院(백원서원)을 세워 그를 享祀(향사)했으니 百源(백원)은 孝(효)가 百行之源(백행지원)이라 함이다. 그러나 1864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서원은 제철되었고 남아오던 전귀당도 1945년 음력 섣달 그믐의 화재로 회진되었다. 다행히 유림의 호응으로 현재의 전귀당을 그 이듬해에 重建(중건)하게 되었다. 50cm 축대위에 방 3칸 대청 2칸 우물마루에 툇마루가 곁들린 팔작지붕이다 그러다가 1991년 단오절에 제철되었던 百源書院(백원서원)을 전귀당과 합치고 景德祠(경덕사)를 지어 先生(선생)을 奉安(봉안)하였으며 廟庭碑(묘정비)와 先生(선생)의 母夫人(모부인) 康氏(강씨)의 孝行碑(효행비)도 由仁門(유인문) 안뜰 550평 대지위에 함께 建立(건립)하였다.
▼ 백원서원의 왼쪽 돌담
▼ 백원서원 유인문 앞을 지나 직진하여 산이 보이는 방향(측백수림)으로 간다.
▼ 도로의 왼편 뒷쪽으로 우람한 관음사 건물 지붕이 보인다.
▼ 백원서원에서 약 300여미터를 못가서 삼거리 오른쪽 적벽돌(기와지붕) 건물이 "도동이발소"이다. 그 뒤로 보이는 숲이 측백수림
▼ 이발소 앞에서 만난 동네어른의 말씀에 따르면 현재 주인이 최소한 30년은 넘게 했다고 한다.
▼ 도동이용소 앞 삼거리에는 "백원서원" 입구를 알리는 표지석이 서있고, 여기서 오른쪽으로 꺾어서 도로를 건너 약 20여미터 가면 도동 측백수림이다.
▼ 측백수림의 앞 관음교 앞 오른쪽에 구로정의 유래와 달성의 측백수림에 대한 안내가 적혀있다.
▼ 구로정(九老亭)의 유래
香山 북쪽 절벽 중턱에 19세기 초엽 인근에 살았던 아홉 노인의 詩會를 기리는 후손들이 중국 白樂天(백락천)의 香山九老會(향산구로회)를 본떠 1933년 3월에 이 산 낭떠러지 중턱 10여 평 남짓한 터에 3樑 맞배집을 짓고 九老亭(구로정)이라 하여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한다.
▼ 도동의 달성측백수림
천연기념물 제 1호, 1962년 12월 3일 지정
소재지 : 동구 도동 산180번지
불로동 다리 남쪽 제방을 따라 동으로 약 2㎞쯤 가면 길 오른편에 내(川)를 끼고 향산(香山)이 나타난다. 이 산 북쪽비탈의 높이 100여m, 길이 600m나 낭떠러지를 통 덮고 있는 울창한 숲이 동구 도동 산 180번지의 천연기념물 제1호인 달성의 측백수림이다. 이 숲은 1934年 처음 지정될 당시에는 둘레 20㎝ 나무 높이 40m.의 100년을 묵은 수천 그루의 측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나무 높이 5∼7m의 것이 100여 그루 쇠물푸레나무, 회화나무, 골람초, 난티나무 등과 함께 자라고 있을 뿐이다. 숲 아래 바위틈에는 한국식물을 연구한 일본의 나까이(中井)박사가 이곳에서 처음으로 발견하여 새 변종(變種)으로 명명한 '구와꼬리풀' 등이 자라고 있다. 측백수림이 이렇게 된 것은 일제 말기와 해방 초의 혼란을 틈탄 남벌과 관리 소홀이 원인이 아닌가고 추측된다.
이 측백수림 사이에는 관음사(觀音寺, 지금은 성불사)와 구로정(九老亭)이 자리잡고 있으며 절벽 아래를 냇물과 더불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대구에 하나밖에 없는 천연기념물 제1호인 이 숲을 아끼고 가꾸어 옛모습을 되찾아 고히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 문화시민으로서의 우리 모두의 의무라고 생각된다.
측백은 우리나라와 중국을 원산지로 하는 상록 바늘잎나무로서 떨기나무, 큰키나무로 자라는데 자연생은 모두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낭떠러지에만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 측백의 자생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충북 단양군 냉천리의 측백소림(천연기념물 제 62호) 경북 영양군 감천동의 측백수림(천연기념물 제114호), 안동군 남후면 구리(龜里)의 측백수림(천연기념물 제250호), 경북 울진 성류굴(천연기념물 제155호)에 일괄 지정된 측백수림 등 모두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에 자리 잡고 있다.
대구가 낳은 대학자인 서거정의 대구10경 중에 한곳으로 측백수림 아래에는 옛날 대구, 경주로 가는 길이 있어 절벽아래를 흐르는 계곡수와 더불어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어 행인들의 피로를 덜어 주었다고 한다.
▼ 측백수림이 있는 절벽쪽으로 연결되는 다리는 "관음교"이고 그 뒤로 "해탈문"이 있고, 측백수림의 왼쪽 아래로 관음사가 위치한다.
▼ 도동 달성 측백수림 모습
▼ 해탈문 입구에 서있는 경고문
▼ 관음사(대구시 동구 도동)
낙가산에 자리잡은 이 절은 670년(문무왕 10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고려 광종때 심지왕사가 중창하였으며, 1933년 해인대사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이 절은 우리고장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관음전에 모신 관음보살은 큰 영험을 지닌것으로 유명하다.
▼ 관음사 맞은편 절벽위에 서있는 암자들
▼ 관음사를 둘러보고 관음교로 되돌아나와 왼쪽으로 꺾어서 도로를 건너가면 ~
▼ 관음사 절에서 나와 주차장에서 바라본 측백수림의 모습
▼ 문화관광해설사의집 뒤로 넓은 주차장이 있고 ~
▼ 주차장의 안쪽에 보호수가 있다.
▼ 수령 약 120년된 회화나무, 느티나무와 같이 자라고 있다. 회화나무의 뒷쪽에 도동정미소가 있다.
▼ 주차장에서 도로변으로 빠져나가 오른쪽으로 꺾어 30여미터 가서 ~
▼ 다리를 건너기전 오른쪽길로 들어 20여미터 정도 들어가면 도동정미소 입구이다.
▼ 회화나무와 느티나무의 뒷쪽에 도동정미소가 있다.
▼ 정미소는 어릴적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정미소는 배고푸고 어렵고 힘들던 옛 시절에 유일한 지역의 문화시설이었다. 리어카에 나락(벼)을 싣고 방앗간에 가서 찧을 동안 방안간 내부와 외부를 번갈아 돌아댕기며 놀던 기억, 방안갓 내부는 머리위로 동력전달을 위한 축들이 어지럽게 지나가고 그 아래로 각종 정미기계들이 놓여 있었는데 큰 원동기가 쉬룩쉬룩 하면서 시동이 걸리고 쾅쾅~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조금은 겁이 나기도 했었다.
▼ 어릴적 우리 고향에 있던 정미소보다는 꽤 적어 보였다. 멋적어서 안에 들여다 보지는 못하고 멀찍이서 겉모습만 보고 돌아 나왔다.
▼ 도동정미소를 둘러보고 되돌아나와 오른쪽으로 황산교를 건넌다.
▼ 중앙선이 없는 아스팔트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전주에 이정표가 붙어있는 삼거리에서 ~
▼ 오른쪽으로 꺾어서 향산길로 몇십미터 가면 ~
▼ 양림교를 만나고 양림교를 건너서 왼쪽으로 꺾어서 진행한다.....이후 길은 돌아가는 길이다. 돌아가는 길은 올때와 같은 코스지만 하천길 보다는 하천길 오른쪽의 일반도로를 따라간다.
▼ 달구지를 주차시켜 놓은 해뜨는 횟집 부근으로 돌아와 낭구를 차에 두고 인근에 있는 추어탕집을 찾아 배를 채웠다. 하도 맛이 있어서 두그릇을 단숨에 해치웠는데 5,000원이다.
* 기타 대구올레 2코스에 대한 "교통편" 등은 "대구녹색소비자연대 홈페이지" 를 참조
http://www.dgcn.org/bbs/board.php?bo_table=16_2&wr_id=10
▼ Go~~ Ho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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